그날 도현은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보고서 제출일을 맞추느라 주말 내내 일을 해서인지 월요일부터 유난히 피곤했는데도 도현의 생체시계는 반응이 늦었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 앉는데도 뇌가 꺼지지 않았다. 도현은 할 수만 있다면 제 몸을 대신해 머릿속에 있을 종료버튼을 눌러주고 싶었다. 수요일이 되서야 그간 밀린 피로가 도미노처럼 도현을 톡 하고 쓰러트렸다.
도현의 주중 스케줄은 늘 비슷했다. 퇴근 후 늦은 저녁을 챙겨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잠시 스트레칭 하다 샤워를 했다. 매일 아침 조금이라도 더 잘 요량으로 머리는 늘 밤에 감았다. 젖은 머리를 털며 거실까지 나와 TV를 켰다. TV를 틀었을 때 나오는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고 나서야 무슨 요일인지 알 수 있었다. 하루가 한 시간 쯤 남은 시점에서 알게 되니 유효기간 한 시간짜리 정보였다. 도현이 즐겨보는 토크쇼라도 하는 날엔 자정이 한참 넘어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정신차리면 핸드폰 속 시계는 새벽 한 시. 이깟 예능이 뭐라고, 좀 더 일찍 누울 걸, 후회가 밀려올 때쯤이면 새벽 한 시 반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옷으로 갈아입고 대충 세수만 했다. 조금만 누워있다 밥 먹고 샤워해야겠다, 생각하며 누웠는데 전화벨소리가 날 때서야 까무룩 잠들었다는 걸 알았다.
발신자 이름을 보고 긴가 민가했다. 바로 이름 위에 작게 뜬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두 시. 핸드폰 화면을 뒤집고 잠시 눈을 감았다. 사람은 참 안 변하는구나, 헛웃음이 났다. 핸드폰 화면을 돌려 통화버튼을 눌렀다.
- 도현쓰.
전화기 너머 불콰하게 취한 얼굴이 금세 떠올랐다.
- 현욱쓰.
도현은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상대방이 어색해하거나 대화 중간에 마가 뜨면 몸 둘 바를 모르는 성격이었다. 필요 없는 얘기, 쓸 데 없는 얘기, 제 살 깎아먹는 얘기를 해서라도 상대를 웃게 만들어야 마음이 편했다. 안 친한 사이에선 유독 그랬다. 낯선 사람 앞에선 유난히 티 없는 애처럼 맑게 웃고 떠들었다. 도현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 "웃는 얼굴이 예쁘다"고 칭찬하면 눈매가 휘어지도록 싱긋 거리면서도 속으론 '서비스용 미소입니다' 하고 자조했다. 그 새벽, 그 깜깜한 방안에서 도현은 핸드폰 너머의 사람에게까지 환한 잇몸 미소를 띄웠다.
현욱은 마지막 대화가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연락이 없던 사람이었다. 도현과 현욱의 친구들이 "다 같이 밥이나 먹자"고 불러내 두 사람을 소개시켜줬다. 일종의 소개팅이었다. 다만 그날 감자탕집에 모인 여섯 명 중 도현과 현욱을 제외한 사람들 모두가 주선자였다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했달까. 도현과 현욱은 그날 처음 만났고, 정확히 반 년 뒤 두번째 만남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아마 도현은 몇 번 문자를 넣었을 거다. 그리고 현욱은 대답을 하는둥 마는둥 했겠지.
그렇게 따져보니 1년만에 걸려온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