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31.





그날 도현은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보고서 제출일을 맞추느라 주말 내내 일을 해서인지 월요일부터 유난히 피곤했는데도 도현의 생체시계는 반응이 늦었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 앉는데도 뇌가 꺼지지 않았다. 도현은 할 수만 있다면 제 몸을 대신해 머릿속에 있을 종료버튼을 눌러주고 싶었다. 수요일이 되서야 그간 밀린 피로가 도미노처럼 도현을 톡 하고 쓰러트렸다. 
도현의 주중 스케줄은 늘 비슷했다. 퇴근 후 늦은 저녁을 챙겨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잠시 스트레칭 하다 샤워를 했다. 매일 아침 조금이라도 더 잘 요량으로 머리는 늘 밤에 감았다. 젖은 머리를 털며 거실까지 나와 TV를 켰다. TV를 틀었을 때 나오는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고 나서야 무슨 요일인지 알 수 있었다. 하루가 한 시간 쯤 남은 시점에서 알게 되니 유효기간 한 시간짜리 정보였다. 도현이 즐겨보는 토크쇼라도 하는 날엔 자정이 한참 넘어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정신차리면 핸드폰 속 시계는 새벽 한 시. 이깟 예능이 뭐라고, 좀 더 일찍 누울 걸, 후회가 밀려올 때쯤이면 새벽 한 시 반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옷으로 갈아입고 대충 세수만 했다. 조금만 누워있다 밥 먹고 샤워해야겠다, 생각하며 누웠는데 전화벨소리가 날 때서야 까무룩 잠들었다는 걸 알았다. 
발신자 이름을 보고 긴가 민가했다. 바로 이름 위에 작게 뜬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두 시. 핸드폰 화면을 뒤집고 잠시 눈을 감았다. 사람은 참 안 변하는구나, 헛웃음이 났다. 핸드폰 화면을 돌려 통화버튼을 눌렀다.

- 도현쓰.

전화기 너머 불콰하게 취한 얼굴이 금세 떠올랐다.

- 현욱쓰.

도현은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상대방이 어색해하거나 대화 중간에 마가 뜨면 몸 둘 바를 모르는 성격이었다. 필요 없는 얘기, 쓸 데 없는 얘기, 제 살 깎아먹는 얘기를 해서라도 상대를 웃게 만들어야 마음이 편했다. 안 친한 사이에선 유독 그랬다. 낯선 사람 앞에선 유난히 티 없는 애처럼 맑게 웃고 떠들었다. 도현은 처음 만나는 사람이 "웃는 얼굴이 예쁘다"고 칭찬하면 눈매가 휘어지도록 싱긋 거리면서도 속으론 '서비스용 미소입니다' 하고 자조했다. 그 새벽, 그 깜깜한 방안에서 도현은 핸드폰 너머의 사람에게까지 환한 잇몸 미소를 띄웠다.
현욱은 마지막 대화가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연락이 없던 사람이었다. 도현과 현욱의 친구들이 "다 같이 밥이나 먹자"고 불러내 두 사람을 소개시켜줬다. 일종의 소개팅이었다. 다만 그날 감자탕집에 모인 여섯 명 중 도현과 현욱을 제외한 사람들 모두가 주선자였다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했달까. 도현과 현욱은 그날 처음 만났고, 정확히 반 년 뒤 두번째 만남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아마 도현은 몇 번 문자를 넣었을 거다. 그리고 현욱은 대답을 하는둥 마는둥 했겠지. 

그렇게 따져보니 1년만에 걸려온 전화였다.





2017. 12. 27.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





1번은 내가 한 통역 녹음해서 들어보기.
2번은 내가 한 번역 시간 지나고 다시 보기. 너 막, 어, 응, 어쩌려고, 엉? 이런 생각이 들지만 아무에게도 말 못함. 일 끊기면 앙대자나...



2.
올 한 해도 많은 일이 있었다.
이직을 하고, 가장 아끼는 친구를 잃어야 했고, 더 가난한 공부노동자가 되었으며, 머리를 숭덩 잘랐다. (일주일 전에 더 잘랐는데 내년에 더 더 자를 듯)

그래도 퇴사하고 엄마 쓰러졌던 작년보다야, 훨 나았다.
인생은 늘 창의적인 고난의 구덩이로 (pitfall) 나를 밀어넣는데, 그때마다 꿋꿋하게 군말않고 기어올라온다. 그런 걸 생활력이라고 부르나. 

개인적으로 마음은 덜 힘들었는데,
직업적으로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다. 내 노동력 가격 매기기.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하겠다고 선언한 건 아닌데 (왜냠 넘 옛날부터 돈 받고 번역하고 있었는데?) 여튼, 본격적으로 일을 몇 개 하다보니 요율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첨엔 "전에 어떻게 계산하셨어요?" 라고 물어봤는데,
처음 일을 맡기는 분들에겐 그런 질문도 못하겠어서 페이지로 계산했다, 시급으로 계산했다, 하는데 이게 막상 일을 시작하면 작업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초반이니 일의 속도가 빠르지 않고, 그럼 시급의 의미가 사라지고, 번역도 '글'을 쓰는 일이다보니 다 끝냈다 생각하고 다시 보면 또 뭐가 보이고, 고치고 싶고, 오탈자가 나오고, 그런 거지.

그리고 내 번역에 자신이 없다. 내 위치를 잘 모르겠다. 물론 겸손이 70%정도 있다.
내가 못하는 건 아니다.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번역가/통역가'에는 아직 한참 못미친다.
내 기준이 높다.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나도 알아. 근데 그래도 어떡해. 아직은 '잘한다'고 못하겠는걸.

그러다보니 요율이. 아직도 어렵다. (이젠 가이드가 좀 생겼지만... 그게 적절한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음)

한편 또 누구는 (상대적으로 낮게 부른 가격에도) "왤케 비싸요?" 하는데, 미래의 고객을 한 명이라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럼 다른 분 찾으세요" 하지도 못하겠고 근데 또 너무 낮게 부르면 추후에 가격 조정이 어려워서 역풍 맞기 좋고.



그리고 시간관리가 참 애매하더라. 나름대로 하려고 하는데, 프리랜서가 아닌 친구들은 내가 오후에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니 약간 시간 많은 백수로 봤다. 자꾸 오후 시간에 뭐 하자고 하면 거절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엔 약간 짜증? 나기도 했고.

이젠 좀 괜찮은데, 여전히 오후 근무는 너무 힘들어.
회사 다녀오면 진이 빠진다고 해야 하나. 
개강하면 이제 더 지옥같겟지 ^^^^^^^^^^ 헤헤헤ㅔㅎㅎ^^^^^^^^^^



3.
악화일로.

도현이는 대부분의 경우 짜증나게 만든 원인보다 그런 일로 짜증을 느끼는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이따위 일에 감정이 흐트러지다니, 자존심이 상했고, 자존심이 상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그걸 인정하면서 또 자존심이 상했다. 

도현이는 스스로에게 야박하다 싶을 정도로 객관적이려고 노력했다. 누가 말한 건지 기억도 안 나지만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이성을 가진 사람이고자 했다.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현대 지성인이 롤모델이었다. 물론 그 롤모델도 이름이나 얼굴은 없었다. 하지만 도현이의 이성은 감정을 다스리는 대신 감정을 고조시키거나 악화시키기만 했다. 차분히 앉아 현실을 직시하고 인과관계를 따져볼수록 이성은 번번이 감정에 불을 질렀다.




2017. 12. 19.





도현아, 도현아, 어디쯤이었니? 

나는 걔가 어디냐고 물으면 그게 그렇게 좋더라.
그리고 전화 되냐고 물으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어. 좋은 소식일 때가 거의 없었거든. 꼭 그럴 때만 전화하더라. 의연해지려고 했었는데, 매번, 쿵 했어.








거의 3주가 걸린 원고가 끝났다.
헤헤, 저 탈고 햇찌용! 어서 궁디 팡팡 해주라주, 하고 어리광과 잘난체를 동시에 부리고 싶은데,
이 순간에도 그 사람이 생각난다. 사실 무슨 답을 해줄지도 너무 예측가능한데, 그런데도 그 말을 또 듣고 싶은 게. 오늘은 잠깐만 슬퍼하다 자기로 한다.

글을 빨리, 잘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
언제 그런 사람 되지?




2017. 12. 17.




너무 너무 또라이같은데,
보고 싶다. 

너랑 같이 있을 때면, 매번, 완벽하게 빈틈없이 맞아들어가는 느낌이 너무 황홀했는데.





2017. 12. 16.




1.
집 근처에 도서관이 두 곳 있는데,
비교적 최근에 생긴 청계도서관은 두 층으로 이루어져있고 성인이 사용 가능한 곳은 6층뿐이다. 하지만 조용하고, 사람도 별로 없고, 새 책이 많아서 자주 간다.

한 3주 전에 가서 '다윈 영과 악의 기원' 희망도서로 신청하고 왔는데, 며칠 전에 도착했다고 문자가 왔다. 받으러 갔더니 무슨 백과사전을 주대?

곧 3권 분량으로 나누어 2판을 찍을 예정이라고 한다.
여튼, 3페이지 읽었는데, 재밌네, 이거.



2.
어제 처음으로 칼을 갈았다. 내가 간 건 아니고 칼갈이 소형 트럭이 와서 맡겼다.
니네 칼 갈아봤니?

엄마가 요리를 못하게 된 뒤로 내가 칼을 잡을 일이 많아졌는데, 늘 칼이 너무 무뎌서 고생이었다. 근데 딱히 칼을 어떻게 가는지, 어디서 갈아야 하는지 몰라서 냅뒀다가 어제 집 앞에 "칼~ 갈아요~" 하는 트럭이 왔길래 냅다 뛰어나갔다.

아저씨에게 아주 공손하게 "얼마예요?" 하고 묻고 (5,000원 넘으면 안 갈았을 듯)
"3,500원인데, 3,000원만 주세요." 하시길래 감사합니다! 하고 맡겼다.

10분 뒤에 칼을 찾으러 갈 땐, 집에 있던 비타 500과 빅 파이 한 개를 챙겨갔다.
인정 많은 어른인 척 한 것 같아 조금 뿌듯했다.



3.
복싱장 근처에 태국 음식점이 있다. 엄청나게 현지음식같은 건 아니고 그래도 태국음식을 전문으로 파는 곳이 도보 거리에 있다는 게 반가워서 종종 (이래봤자 반 년동안 세 번) 갔다.
갈 때마다 같은 걸 먹었다. 갠적으로 젤 좋아하는 태국 요리라!!! 

여튼, 근데 어제는 (칼 갈기 전에 복싱장에서 짐챙겨 나왔고, 오는 길에 여기 들렀다) 계산할 때 사장님이 말을 거시더라.

"뵐 때마다 공부하거나 책 보고 계신 것 같아요. 헤헤"

그래서 나도 "아, 헤헤. 네, 헤헤." 했다.

세 번 밖에 안 갔는데 왜 난 늘 어느 가게엘 가든 눈에 띄는 사람인 걸까, 의아해하면서 더 좋은 대답은 없었을까, 후회했다.



4.
포트노이의 불평이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서 일단 편의점 인간부터 읽었다.
임소라 작가님에게 편의점 사회학을 추천해드리고 싶은데, 사실 막 우와 하는 책은 아니라...

편의점 인간을 읽고 왜 주인공이 살인을 안 하지? 라고 생각했다가
인간으로 사는 건 진짜 피곤한 일이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게 아니면 현대 사회의 특징인 걸까, 원인은 뭘까, 왜 나는 자꾸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걸까, 알아서 뭐 하려고, 왜 알지 못하면 안심하지 못하지, 막 그런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5.
내가 없는 건 참을만 하겠다고 판단했겠지.
나는 잃어도 그 사람은 못 잃는 거였겠지.

처음엔 그 사람이 틀렸다는 걸 스스로 깨닫기를 바랐다.
나는 본인이 맘대로 상상했던, 보채고, 조르고, 닦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결이든 박이든, 해보지도 않고 다 안다는 듯 말하던 그 사람이 틀렸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다른 땐 안 그러다가 연애 얘기만 나오면 몸과 정신을 이분법적으로 갈라 보는 것도,
둘 다 못 끊는 건 똑같으면서 어느 하나가 더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머지 하나를 '치료'해야 할 해로운 중독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근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나 잘 해야지.





The Best Everything of 2017 - Songs




영화 다 하고 나니 힘 딸려서 음악은 번역 못하겠는데,
심지어 54개나 돼???

이건 귀찮아서 그냥 링크만 올려야겠다. 헤헤헤헤.
나 책 리스트도 올려야 된단 말이야 헤헤헤헿... 그건 내일 하는 걸로?

2. 음악 The Best Songs of 2017



The Best Everything of 2017 - Movie




In the lead up to the end of a tough year of 2017, the New York Times is running articles on the best of everything that we should not miss before the year ends.

Here are some of the things that grabbed my eyes.

Hope you will have a wonderful Christmas and memorable year-end parties :)



여기서부터는 우리말로 적겠습니다.
그게 지금 이 포스팅을 하는 목적이니까.
NYT만 구독하는고로 NYT의 성향이 반영된 리스트예요.
음악은 솔직히 진짜 잘 모르겠고 영화는 좀 공감해서 번역해서 올려드립니다.


1. 영화 The Best Movie of 2017

Dunkirk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승리가 아닌 생존에 대해 다룬 전쟁영화. 
크리스토퍼 놀란은 세계2차대전을 배경으로 육해공을 넘나들며 구출작전을 펼치며, 구조 작전이 끝난 후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는 참혹한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Ex Libris: the New York Public Library (감독: 프레드릭 와이즈먼)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환상적이고, 방대하며 완벽하게 빠져드는 다큐멘터리.
뉴욕 공공 도서관을 심도 깊게 다루며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문화사회적 기관으로써의 도서관을 그린다.

Faces Places (아그네 바르다Agnes Varda 와 JR (어?...))
바르다 감독은 비쥬얼 아티스트인 JR과 함께 현재의 프랑스와 자신의 과거를 떠돌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오래 전 친구들을 찾아간다. 그 과정을 아름답고 생생하게 기록한 작품. 바르다 감독은 종종 현존하는 최고의 여성 감독 중 하나로 꼽히며, 실제로 그렇다. 바르다 감독 최고. (그래?...)

The Florida Project (감독: 션 베이커)
(급작스럽게 귀찮아졌다. 아니 ㅋㅋㅋ 이렇게 전부 번역하려던 게 아닌데)
션 베이커 감독은 영화에서 보통 다루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가슴 저리는 작품들을 만든다. "스탈렛"은 포르노 여배우와 사람들에게 잊혀진 노년의 여성이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렸고, "탠저린"에서는 두 트랜스젠더 여성 매춘부를 등장시켰다. "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는 그는 디즈니 세계에서 밀려난 어른들과 어린이들의 고난을 다루며 지극히 미국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싸이키델릭한 컬러와 gobs of spit (이거 뭐지...) 로 재현된 21세기판 "분노의 포도."

Get Out (감독: 조단 필르)
수많은 밈(meme)을 탄생시킨 영화이자 사회 비판물인 동시에 우리 시대에 대한 메타포.
바로 영화 겟 아웃. 조단 필르 감독의 뛰어난 데뷔작품이기도 하다. 잘 만든 영화라는 사실 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이유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영화의 메세지와 더불어 치밀하게 계산된 타이밍으로 그 메세지에 영화적 힘을 불어넣은 방식이 바로 그것. 소외된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그 소외의 틈을 둘러 싼 쫓고 쫓기는, 지울 수 없는 잔상.

*첨언을 하자면, 우리나라는 인종차별에 정말이지 둔감하다. 유치원때부터 단일민족 사상과 그에 대한 자긍심을 주입받으면서 자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게 '자랑'스러울 일이 아니란 생각을 잘 못한다. 게다가 피부색으로 사람 차별하는 건 진짜 미국보다 더 천박하고 직접적인데 그게 '인종차별'이란 걸 인지를 못해. '짱깨,' '왜놈,' '양키,' '흑형' 이런 단어를 서슴없이 입에 올리는 내 또래를 보면 속으론 뜨악 하지만 괜히 꼰대질 한다고 생각할까봐 매우 매우 우회적으로 "저가 미국에 있을 때 말입니다..."라고 운을 떼며 경미한 수준의 인종차별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흑과 백처럼 극명하진 않아도 인종차별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해있다. 그리고 모두가 눈 뜬 장님이다. 눈 뜬 사람만 괴로워지는 세상. 

Lady Bird (감독: 그레타 거윅)
(아아... 나 프란시스 하 재미 없었는데... 혹시 좋아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이 자신의 상처에 대해 울부짖은 뒤부터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10대 주인공은 영화 속 클리쉐가 됐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인생이 드라마인 사춘기 소녀를 섬세하며 긴장감 있게 담아냈다. 영화 주인공인 소녀는 차에서 뛰어내린다. 그러고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소녀는 여성 아티스트가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은 희생이 아닌 존재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Okja (감독: 봉준호)
Filled with lapidary visual touches (정교한 비주얼 기술) and pictorial splendor(화려한 영상), Mr. Bong’s lovely, often funny and achingly soulful movie about a girl and her pig didn’t receive the theatrical release(흥행, 흥행몰이?) it deserved because it was bought by Netflix, which largely seems committed to shoveling product into its pipeline. That may be the future, but it’s infuriating that — like the villain in this movie — it can’t see past the bottom line.

*이건 제 영어 공부를 위해 그냥 영문을 퍼오겠습니다.

Phantom Thread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귀찮... 플러스, 내 스타일 아님)

A Quite Passion (감독: 테렌스 데이비스)
우아하고 아름다운 에밀리 딕킨슨의 전기. 전율이 느껴지는 신시아 닉슨의 연기를 볼 수 있다. 데이비스 감독은 영상으로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he turns images into feelings). 에밀리 딕킨슨의 일상으로 관객을 끌어들여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공간을 보여준다. 에밀리 딕킨슨의 삶과 작품 속에 넘쳐흘렀던 아름다움과 우아함,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는 영화.

Wonder Woman (감독: 패티 젠킨스)
*이거 봤어야 했는데, 원작의 모티브가 된 SM 얘기만 잔뜩 하고 정작 영화를 못 봄...

그 외 (트이타에서 좋은 리뷰를 본 작품은 하이라이트)
“After the Storm”; “The Big Sick”; “Bombshell: The Hedy Lamarr Story”; “Call Me by Your Name”; “The Challenge”; “Dawson City: Frozen Time”; “The Death of Louis XIV”; “Escapes”; “Girls Trip”; “Good Time”; “The Happiest Day in the Life of Olli Maki”; “I Am Not Your Negro”; “Jim & Andy: The Great Beyond — Featuring a Very Special, Contractually Obligated Mention of Tony Clifton”; “Kedi”; “The Lost City of Z”; “Mother!”; “Mudbound”; “My Journey Through French Cinema”; “Norman: The Moderate Rise and Tragic Fall of a New York Fixer”; “The Ornithologist”; “Patti Cake$”; “Personal Shopper”; “The Post”; “Professor Marston and the Wonder Women”; “Quest”; “Song to Song”; “Tonsler Park”; “Twin Peaks: The Return”; “The Woman Who Left”; “Wonderstruck.”


음악은 번역 안 하고 리스트만 긁어와야겠당...




2017. 12. 8.

















이럴 때 딱히 어떻게 하면 좋은지 잘 모른다.
그래서 책을 잔뜩 빌려왔다.
한 번 봐요, 했던 것과, 봤어요? 했을 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던 영화도 VOD로 담아뒀다.

다른 때는 괜찮은데, 그래도 좀 나은데,
재밌는 걸 봤다거나, 보다가 아 맞다 그때 이거 알려주려고 했었는데, 하는 게 생각나서
왜 재밌는지, 왜 재미 없는지 얘기하고 싶어질 때
서러워서 자꾸 운다. 네 멍청함이, 기만이, 자만이 너무 서러워서 운다.

나 말고 너.




2017. 12. 7.





사람이 한 생애를 다 살아내는 동안 세상이 모두 몇 번이나 무너질 수 있을까? 몇 번이나 무너져야 생이 끝날까? 

선택받지 못한 사과가 지구로 쿵, 하고 떨어졌고
발밑에서 지구가 두 동강으로 갈라지고, 부서져 자유낙하 하는 기분이다.
중력은 내핵으로 갈수록 강해지니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점멸할 수 있을까?
그 전에 뜨거워서 화상으로 죽으려나.


실없기는. 실없는 얘기 들려주고 싶다.





2017. 12. 5.

사랑에 대한 단편들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그래. 누가 누굴 가져야 버리는 거지.
그런 미성숙한 사고를 버리자.
알겠니? 반성하자.




2.
#1
90년대 발라드를 들을 때면 어린 마음에 노래가 다 너무 무섭다고 생각했다. 하나 같이 "왜 하늘은 널 데려갔는지" 알려달라고 목놓아 울거나 "구름 뒤에 숨어" 날 보고 있느냐고 원망하는 가사뿐이었다. 곱게 헤어진 사람들이 없었다. 다 여자가 죽어서 피치 못할 이별을 한 사람들이었다. 어른들의 연애엔 사별이 저렇게나 많은 건가, 진짜 무서웠다.

근데 생각해보면 선택에 의한 이별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던 시대였던 것 같다. 죽음이 아니고서야 한번 맺은 인연이 끊어질 일도, 끊을 수도 없다고 굳게 믿던 시절이었을 거다. 그러니 이별을 하려면 둘 중 하나는 요단강을 건너야 했겠지. 그래서 유지태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느냐"고 이영애를 추궁하고 힐난하며 울었던 걸거고. 
이제 더는 노래 가사 속에서 누구 하나는 꼭 이승에 남아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뿐"이라며 공길같은 대사를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2
나는 너무 행복하면 그대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버거울 땐 다 버리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정말 눈물나도록 행복한 순간엔 그대로 숨을 거두고 싶었다. 더 행복한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 그대로 그냥 그렇게. 낙담도 아니고, 상대적 박탈감도 아니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우울증도 아니다. 삶을 종료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순간 종료 버튼을 누르고 싶다는 기분인데. 너무 재밌는 게임이었고 가장 만족스러운 엔딩을 봤으니 이제 그만,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의 만족감.
물론 그정도로 행복한 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에 아직 살아있다. 종종 클로이스터가 떠오르는 날엔 그날 죽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진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기억 속에 새기는 그 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나의 의식은 종료됐겠지. 나는 그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죽어야 완성되는 해피 엔딩.


#3
1. 어제 귀 사장님이 책을 빌려주셨다. 궁금해서 만지작 거리니 선뜻 빌려드릴게요, 하셨다. "제가 안 가져오면 어쩌시려고요?!" 믿을만 하니 빌려드리죠, 하셨지만 집에 가기 전엔 언제 돌려주실거예요? 라고 물어보셨다 ㅋㅋㅋ

2. 남이 끓여준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광화문 어딘가의 백반집에 갔다. 김치찌개를 시켜놓고 멀뚱 멀뚱 앉아있는데 아주머니가 "양배추쌈 줄까요?" 하셨다. 팟캐스트를 듣던 중이라 이어폰을 뽑으며 네? 하고 다시 물었더니, 아니, 백반에만 나가는 건데 양배추쌈 먹겠느냐고요, 하고 웃으셨다.
내가 생각했던 김치찌개는 아니었지만 양배추는 맛있었고 배부르게 잘 먹었다. 

3. 밥 먹는 동안 경력 30년이 넘은 스탠드업 코메디언의 인터뷰를 들었다. 인터뷰 말미에 인터뷰어가 자신에게 묻고 싶은 건 없냐고 물었다. 코메디언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지금 뭘 입고 있냐고 물었다. 뭐 이런 변태적인 질문이람(이라고 생각한 건 내가 변태적인 걸까), 하고 있는데 인터뷰어는 초록색에 남색 땡땡이가 그려진 셔츠요, 라고 답했다. 코메디언이 지금 자신의 모습이 맘에 드냐고 묻자 인터뷰어는 아이를 낳은 뒤로 몸이 많이 변해서 좀 고생 중이라고 했다. 코메디언은 이렇게 덧붙였다.
"Be kind to yourself. You always hear people say that, but really, be nice to yourself. The world is not out to make you feel better. It can sometimes, but in general, you are in charge of being nice to yourself. You are the only one you've got when you get up in the morning."
누군지도 모르는 코미디언의 말에 툭하 숟가락을 쥐고 있던 손등에 툭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4. '#보건교사안은영'은 다 읽는데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중간에 몇번 잠시 쉬었는데, 오른손은 책갈피처럼 책장 사이에 껴두고 왼손으로 책장을 덮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건강하고 유쾌한 글을 쓸까' 부러우면서 좋기도 하고 문학적 깊이고 나발이고 이런 글을 쓰는 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읽는데 역시나 상냥해서 또 눈물이 터졌다. 

5. 새까맣게 탄 애가 목 늘어난 티셔츠에 바지라고 부르기 민망한 숏팬츠(라고 친구들이 말하지만 나에겐 둘도 없이 사랑스러운 여름 교복)를 입고 책을 펼쳤다 덮었다 하며 울고 있으면 그건 접니다.


#4
1. <시인의 사랑> 중,
"선생님, 어떻게 하면 시인이 돼요?"
"시인은, 대신 슬퍼하는 사람이야. 사람들을 대신해서 슬퍼해주는 사람. 시인은 슬퍼도 괜찮아. 왜냐면 시인에게 슬픔은 글을 쓰는 재료가 되거든."

1-1. 내가 좋아하는 시가 나왔고, 양익준 연기가 참 괜찮아서 참 놀랐다.

2. 일희일비하지 않게 해주세요.

3. 안부 인사를 넣고 싶은데 사실 한 번 무시당했다. 문자로 보냈으니 읽고 잊었거나 읽어야 할 이유를 잊었거나, 그도 아니면 잊어서 읽지 않았거나.
해명하고 싶은 사람만 자꾸 늘어나는 서른.

4. 소녀는 타고난 도둑입니다
어려선 부모의 꿈과 청춘을 앗아 제 배를 채웠고
커서는 제 변명을 하려 수도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빌리고 단어를 훔쳐다 썼습니다
평생 그렇게 자란 소녀는 무엇이 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소녀의 도벽은 혀도 앗아갔습니다
소녀는 그밤의 가장 낮은 옥상, 철무덤 아래 제 혀를 묻고 왔습니다
꺼내어 묻고, 주인에게 돌려주세요





2017. 12. 3.




장강명 작가가 전에 그랬던가?
책날개를 폈을 때, 작가 소개가 짧을수록 간지인 것 같다고.
첨엔 독자에게 어떻게든 나를 알려야 해서 자기도 구구절절 썼는데,
그럴수록 구차해지는 것 같다고.

나도 그런 사람 되고 싶다. 구구절절 하는 스스로를 막을 수 있는, 덜 구차한 인간.
물론 사람들이 장강명 작가에 대해 아는 것보다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오조 오억분의 일 정도로 더 적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속사정을 모두 바깥에 걸치고 각설이처럼 나다닐 이유는 없으니까. 내가 나를 망치지 않을 수 있는 인간.

좀 닥쳐야겠다.








글을 삼십사 개쯤 썼다 닫고, 썼다 닫고.
임시보관함에 글이 쌓이고 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왜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소용 없는 일은 하면 안 되는 걸까?
난 제정신인가?



2.
올 초에 여기다 편지를 하나 썼다.
솔직히 편지 주인이 날 잊고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니까 내 블로그 같은 거 들어올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썼다.
더 솔직히 말하면 양가적인 감정으로 썼다. 봐줬으면 했다. 



3.






















인스타에도 적었지만 이상하게 인스타에는 못난 얘길 못 적겠다.
그말인즉슨, 지금껏 내가 여기 적은 얘기 대부분은 남 앞에서 잘 못 한 못난 얘기란 거다.

어제 쓴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 결론에 도달했다.
아, 나 되게 치졸하다.

치졸해서 잘났단 것도 좋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한테도 굉장히 치졸한 면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는 거지.

치졸한 소리를 계속 하느라 일을 제대로 못했다.
일 해야 해, 언리밋 다녀와야 해, 결혼식장 가야 해, 
이런 생각을 하느라 사실 울 틈도 없었다.
계속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난다. 눈물이 나려다가도 일상이 치고 들어온다.
일상에 밀려서 우는 일이 자꾸 사치가 된다. 

그냥 좀 이기적으로 계속 미웠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것도 오래는 못하겠지.
하지만 솔직히 내가 '벌 받을' 선택을 해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회하는 것도 없다. 뻔뻔한 소리 같겠지만 so be it. 

어제 그래도 짬 내서 언리밋에 들렸다. 가서 임소라 작가의 책을 두 권 사왔다. 사실 그거 사려고 한 시간 걸려서 갔는데 예식 시간 때문에 15분만에 나왔다.
하나는 봉이 오빠 선물 주고, 하나는 내가 읽을 거다. 임소라 작가는 특유의 만연체가 있는데, 이상하게 집중하고 후루룩 읽게 된다. 만연체 싫어하는데, 희한해. 임소라 작가 글 속 화자는 눈치보고, 당황하고, 스스로 의심하는 게 꼭 나같아서 재밌다. 나같아서 좋다니, 얼마나 나르시시스트 같은 이야기인가. 

일이 밀려서 오늘 언리밋 다시 가긴 글른 것 같다.
이제 밥 먹고 새로 산 노트북 들고 일하러 나가야지.
돈을 벌려고 돈을 계속 쓴다. 이렇게 프롤레탈리아로 살다간 평생 1원도 못 모으고 죽겠지. 앞으로 족히 50년은 더 노동자로 살텐데 참내. ㅋㅋㅋㅋ 기가 막힐 노릇이군.

맘 같아선 다 그만 두고 싶다. 그게 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