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6.




1.
집 근처에 도서관이 두 곳 있는데,
비교적 최근에 생긴 청계도서관은 두 층으로 이루어져있고 성인이 사용 가능한 곳은 6층뿐이다. 하지만 조용하고, 사람도 별로 없고, 새 책이 많아서 자주 간다.

한 3주 전에 가서 '다윈 영과 악의 기원' 희망도서로 신청하고 왔는데, 며칠 전에 도착했다고 문자가 왔다. 받으러 갔더니 무슨 백과사전을 주대?

곧 3권 분량으로 나누어 2판을 찍을 예정이라고 한다.
여튼, 3페이지 읽었는데, 재밌네, 이거.



2.
어제 처음으로 칼을 갈았다. 내가 간 건 아니고 칼갈이 소형 트럭이 와서 맡겼다.
니네 칼 갈아봤니?

엄마가 요리를 못하게 된 뒤로 내가 칼을 잡을 일이 많아졌는데, 늘 칼이 너무 무뎌서 고생이었다. 근데 딱히 칼을 어떻게 가는지, 어디서 갈아야 하는지 몰라서 냅뒀다가 어제 집 앞에 "칼~ 갈아요~" 하는 트럭이 왔길래 냅다 뛰어나갔다.

아저씨에게 아주 공손하게 "얼마예요?" 하고 묻고 (5,000원 넘으면 안 갈았을 듯)
"3,500원인데, 3,000원만 주세요." 하시길래 감사합니다! 하고 맡겼다.

10분 뒤에 칼을 찾으러 갈 땐, 집에 있던 비타 500과 빅 파이 한 개를 챙겨갔다.
인정 많은 어른인 척 한 것 같아 조금 뿌듯했다.



3.
복싱장 근처에 태국 음식점이 있다. 엄청나게 현지음식같은 건 아니고 그래도 태국음식을 전문으로 파는 곳이 도보 거리에 있다는 게 반가워서 종종 (이래봤자 반 년동안 세 번) 갔다.
갈 때마다 같은 걸 먹었다. 갠적으로 젤 좋아하는 태국 요리라!!! 

여튼, 근데 어제는 (칼 갈기 전에 복싱장에서 짐챙겨 나왔고, 오는 길에 여기 들렀다) 계산할 때 사장님이 말을 거시더라.

"뵐 때마다 공부하거나 책 보고 계신 것 같아요. 헤헤"

그래서 나도 "아, 헤헤. 네, 헤헤." 했다.

세 번 밖에 안 갔는데 왜 난 늘 어느 가게엘 가든 눈에 띄는 사람인 걸까, 의아해하면서 더 좋은 대답은 없었을까, 후회했다.



4.
포트노이의 불평이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서 일단 편의점 인간부터 읽었다.
임소라 작가님에게 편의점 사회학을 추천해드리고 싶은데, 사실 막 우와 하는 책은 아니라...

편의점 인간을 읽고 왜 주인공이 살인을 안 하지? 라고 생각했다가
인간으로 사는 건 진짜 피곤한 일이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게 아니면 현대 사회의 특징인 걸까, 원인은 뭘까, 왜 나는 자꾸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걸까, 알아서 뭐 하려고, 왜 알지 못하면 안심하지 못하지, 막 그런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5.
내가 없는 건 참을만 하겠다고 판단했겠지.
나는 잃어도 그 사람은 못 잃는 거였겠지.

처음엔 그 사람이 틀렸다는 걸 스스로 깨닫기를 바랐다.
나는 본인이 맘대로 상상했던, 보채고, 조르고, 닦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결이든 박이든, 해보지도 않고 다 안다는 듯 말하던 그 사람이 틀렸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다른 땐 안 그러다가 연애 얘기만 나오면 몸과 정신을 이분법적으로 갈라 보는 것도,
둘 다 못 끊는 건 똑같으면서 어느 하나가 더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머지 하나를 '치료'해야 할 해로운 중독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근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나 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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