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27.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





1번은 내가 한 통역 녹음해서 들어보기.
2번은 내가 한 번역 시간 지나고 다시 보기. 너 막, 어, 응, 어쩌려고, 엉? 이런 생각이 들지만 아무에게도 말 못함. 일 끊기면 앙대자나...



2.
올 한 해도 많은 일이 있었다.
이직을 하고, 가장 아끼는 친구를 잃어야 했고, 더 가난한 공부노동자가 되었으며, 머리를 숭덩 잘랐다. (일주일 전에 더 잘랐는데 내년에 더 더 자를 듯)

그래도 퇴사하고 엄마 쓰러졌던 작년보다야, 훨 나았다.
인생은 늘 창의적인 고난의 구덩이로 (pitfall) 나를 밀어넣는데, 그때마다 꿋꿋하게 군말않고 기어올라온다. 그런 걸 생활력이라고 부르나. 

개인적으로 마음은 덜 힘들었는데,
직업적으로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다. 내 노동력 가격 매기기.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하겠다고 선언한 건 아닌데 (왜냠 넘 옛날부터 돈 받고 번역하고 있었는데?) 여튼, 본격적으로 일을 몇 개 하다보니 요율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첨엔 "전에 어떻게 계산하셨어요?" 라고 물어봤는데,
처음 일을 맡기는 분들에겐 그런 질문도 못하겠어서 페이지로 계산했다, 시급으로 계산했다, 하는데 이게 막상 일을 시작하면 작업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초반이니 일의 속도가 빠르지 않고, 그럼 시급의 의미가 사라지고, 번역도 '글'을 쓰는 일이다보니 다 끝냈다 생각하고 다시 보면 또 뭐가 보이고, 고치고 싶고, 오탈자가 나오고, 그런 거지.

그리고 내 번역에 자신이 없다. 내 위치를 잘 모르겠다. 물론 겸손이 70%정도 있다.
내가 못하는 건 아니다.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번역가/통역가'에는 아직 한참 못미친다.
내 기준이 높다.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나도 알아. 근데 그래도 어떡해. 아직은 '잘한다'고 못하겠는걸.

그러다보니 요율이. 아직도 어렵다. (이젠 가이드가 좀 생겼지만... 그게 적절한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음)

한편 또 누구는 (상대적으로 낮게 부른 가격에도) "왤케 비싸요?" 하는데, 미래의 고객을 한 명이라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럼 다른 분 찾으세요" 하지도 못하겠고 근데 또 너무 낮게 부르면 추후에 가격 조정이 어려워서 역풍 맞기 좋고.



그리고 시간관리가 참 애매하더라. 나름대로 하려고 하는데, 프리랜서가 아닌 친구들은 내가 오후에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니 약간 시간 많은 백수로 봤다. 자꾸 오후 시간에 뭐 하자고 하면 거절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엔 약간 짜증? 나기도 했고.

이젠 좀 괜찮은데, 여전히 오후 근무는 너무 힘들어.
회사 다녀오면 진이 빠진다고 해야 하나. 
개강하면 이제 더 지옥같겟지 ^^^^^^^^^^ 헤헤헤ㅔㅎㅎ^^^^^^^^^^



3.
악화일로.

도현이는 대부분의 경우 짜증나게 만든 원인보다 그런 일로 짜증을 느끼는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이따위 일에 감정이 흐트러지다니, 자존심이 상했고, 자존심이 상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그걸 인정하면서 또 자존심이 상했다. 

도현이는 스스로에게 야박하다 싶을 정도로 객관적이려고 노력했다. 누가 말한 건지 기억도 안 나지만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이성을 가진 사람이고자 했다.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현대 지성인이 롤모델이었다. 물론 그 롤모델도 이름이나 얼굴은 없었다. 하지만 도현이의 이성은 감정을 다스리는 대신 감정을 고조시키거나 악화시키기만 했다. 차분히 앉아 현실을 직시하고 인과관계를 따져볼수록 이성은 번번이 감정에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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