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스터디 파트너 언니에게 입학시험 전형이 바뀌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맙소사.
시험이 고작 반년 남았는데, 이노무시키들. 결국 학원 수업을 하나 더 들어야 한다.
그게 다 돈인데. 으으으.
대학원 홈페이지를 한바퀴 휘리릭 돌아보고나니 덜컥 겁이 났다.
올해도 잘 안 되면 그땐 정말 어쩌지.
잘 하고 있는 걸까?
2.
체면을 지키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대학원에 낙방하고 가장 괴로웠던 건 물론 '내가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 자질에 대한 의구심이었지만 '쪽팔림'도 못지 않았다.
퇴사, 퇴사, 퇴사 직전 반년 동안은 거의 곡을 했다.
(노래를 불렀다고 쓰려고 했지만 이 회사가 하고 있는 일과 팔고 있는 상품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지 않는다고 버거킹에서 점심을 먹다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던 게 생각나서 곡을 했다고 고쳐 썼다.)
회사는 출근도장을 찍으면 월급을 준다. 규칙적으로 얼굴을 보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수백통의 메일을 보내고, 전세계 각지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려서 받은 돈으로 대학생 때는 서점에서 적어도 세 번은 펼쳐보고 1시간을 고민해도 겨우 한 권 살까 말까 했던 책들을 이틀에 한 번 꼴로 거침없이 사제끼고, 초밥을 사먹고, 동생들 만나 맛난 거 먹이고, 친구들 집에 놀러 갈 때 이런 저런 걸 챙기다 보면 또 한 달이 지나갔다. 그것도 그것대로 즐거웠다.
등 따시고 배부른 게 행복이지, 이렇게 부품같은 인생도 괜찮겠다, 그래, 영화판 같은 거 역시나 내 길이 아니었어, 대학원은 무신, 이렇게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살거야, 싶었다.
하지만 전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는 늘 내가 하는 일을 똑바로 설명하지 못했다.
회사 이름도 잘 얘기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쪽팔려서.
회사가 아니라, 표리부동한 인생을 살고 있는 스스로가 쪽팔려서.
졸업하기 전까지는 진로로 고민하는 친구나 동생들에겐 좋아하면서 잘 할 수 있는 걸 업으로 삼으라고 내 같잖은 경험을 팔고 다녔다. 하지만 정작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회사에 다녔다.
그러는 동안 제 갈 길 가겠다고 나선 고집 센 친구들은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때 아차 싶었다.
3년이나 같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놓고도 내가 하는 일을 남들에게 설명하기 꺼려진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3.
고로, 쪽팔리기 싫으니까 5월부턴 바짝 정신 차려야지.
바뀐 에세이 시험 연습도 하고 ㅠ 통역 연습도 녹음하면서 ㅠ 들어야지 ㅠ
(번역하면서 제일 괴로운 건 초고를 퇴고하는 일과 인쇄된 내 문장을 읽는 일이며
통역하면서 제일 괴로운 건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 내 목소리를 듣고 또 들으며 교정하는 일이다. 다들 자기 결과물을 들춰보고 자기 전에 벽 한번씩 차고 그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