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19.





글을 보더니 슬프다, 넌 너무 낭만적이다, 문자가 오는 거야.
분명 즐거운 연애였는데, 그래서 슬픈가.
아니면 다들 그렇게 되돌릴 수 없는 시절의 '우리'가 있는 걸까?



2.
나는 크리스마스에 이별을 고하는 못된 여자친구였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하고 일주일만에 다시 이별을 고해서 한 해의 마지막 날 두번째 이별을 고하는 정말 못된 여자친구였다.



3.
헤어지고 반년쯤 지났을 때, 영화제에서 다시 만났다.
영화제 10주년이었어서 그랬던가, 역대 수상작 감독을 모두 초대했었다.
나는 안내와 초청 티켓 배부를 맡고 있어서 곧죽어도 한 번은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눠야 했다. 숨고 싶었다. 원래 헤어진 연인은 다 그런건가. 알 턱이 없었다. 헤어지면 칼같이 끊는 편이라 헤어진 사람과 다시 연락하거나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색함을 숨기지 못하고 존댓말로 인사했다.
너는 웬 존댓말이냐고 웃었다.
나는 어색하니까요, 라고 다시 존댓말로 답했다.
니가 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무슨 영화 보러 오셨느냐고 선수쳤다.
너는 영화 제목을 이야기 했고
나는 다년간 체득한 노련함과 신속함으로 즐거운 관람되시라고 영화표를 건내며 서비스 미소를 날렸다.

너는 약간 주춤하더니 상영관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3일동안 마주쳤다. 

시간되면 차 한 잔 하자는 너의 말에 사실 반, 거짓 반, 데스크에서 정신이 없다고 이따 행사 때 보자고 웃었다.
그제서야 너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줄 게 있어서. 손 내밀어 봐." 했다.
멍청한 나는 "왜? 수고한다고 용돈 주는 거야?" 같은 소릴 했고
너는 내 뻔뻔한 손바닥 위에 가벼운 무언가 올려주며 그랬다.

"이 반지, 니가 좋아했던 거잖아."


커플링은 하고 싶은데 커플링을 하기는 싫다는 이상한 소릴 하며 내 엄지 손가락에 끼고 있던 걸 빼 네 새끼 손가락에 끼워줬던 5000원 짜리 육각형 반지.
내가 젤 좋아하는 건데, 난 뭐 서울 올라가면 또 사면 되니까, 이거 끼고 있어, 하면서 나눠꼈던 나의 첫번째 커플링.
고향집에서부터 챙겨왔을 반지.
3일 내내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고 만지작 거리며 어떻게 돌려줘야 하나 고민했을 그 반지.

용돈 따위 운운했던 내가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워서 또 이상한 말을 지껄였던 것 같다.
"이까진거 뭐라고..."

너는 웃으면서 잘 지내라고 인사했고
나는 네가 극장 밖으로 나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부스 뒤에 숨어, 울었다.



3.
그래도 별다를 것 없는 연애였다.
남들만큼 특별하고 남들만큼 평이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헤어지고 나서 내가 진심을 담아 행복을 비는 유일한 친구라는 점이랄까.




4.
뭐 다른 점이랄게 혹시 있었나, 적다가 깨달았는데
그 친구랑 나는 별 공통점이 없었던 것 같다.

친구는 문자도 전화도 싫어했다. 남자가 간지럽게 문자는 무슨, 이라면서.
나는 연락 횟수 이꼬르 관심의 척도라는 말을 속삭이는 사람들 때문에 친구에게 실망할 때도 있고 상처 받을 때도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 골수팬인 친구는 야구 경기를 볼 때 더더욱이 연락을 받지 않았다. 나는 평생 야구 중계는 커녕 야구장에서도 야구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딱 한 번 기아팬이었던 사람을 따라 야구장에 갔었는데 4회 초인가,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천취소 됐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야구장 방문이다.)
음악은 듣지 않는대서 음악 얘기를 할 수도 없었고 함께 영화를 본 일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고보니 영화쪽 일 하는 사람을 만나서 영화를 함께 본 적이 거의 없다.
요리사는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건가...)
인디포럼에선 나는 졸고 친구는 종일 영화만 봤다.
좋아하는 책도 달랐고, 나고 자란 곳도 달랐다.

근데, 그래도 그냥 재밌었다.
다른 건 다른가보다, 인정하고 존중해줬다.
나는 다른 게 좀 재밌엇다.
곰살맞은 말로 잦은 애정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맞잡은 손으로, 눈길로 살뜰한 마음을 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떨어져 있어도 멀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 이후로 만난 사람들에게선 그런 애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가능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만나는 사람마다 사랑의 모양도 다르니 당연할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같은 연애를 기대하거나 소원하지 않는다.


그때만 가능한 일이었다면, 그렇기에 의미있는 일이겠지.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수 밖에. 구로니까 슬포하지마, 나의 여러분.






댓글 2개:

  1. 많이 그리워하시는 것 같은데
    왜 헤어지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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