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29.
Tango
늦가을부터 내년 새해가 될 때까진,
매일 밤마다 연인의 품에 안겨서 땅고와 캐롤이나 실컷 들었으면 좋겠다.
남자친구 말고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연인.
흐앙-
1. Payadora, La ventana
2. Valse primavera, La ventana
3. Tango por cuatro, Tango Manjar
4. Vive le vent, MIKA, Michel Legrand
5. Jolis sapins, Carla Bruni
2015. 9. 21.
적산가옥. 세상 부러울 것 없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이곳을 사람들은 적산가옥이라 부릅니다. 인력거를 흉내낸 자전거가 관광객을 싣고 와 대문 앞에 서고, 대문 안 정원에선 싸구려 치마 저고리를 입은 소녀와 황토색 차이나 카라 교복을 입은 소년이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장대 끝에 달린 카메라로 기념 사진을 찍는 곳. 마른 연못, 텅빈 집안, 새로 고쳐 단 목재 비늘 판자. 네, 아버지, 햇병아리의 온기를 지닌 연노란색 햇살이 큰 창을 통해 스며 들어와 온 집안을 가득 채우던 곳. 그 시절의 생기가 가신 채 껍데기만 남은 이곳, 저와 동생이 태어나고 또 아버지가 눈 감으셨던 우리집에 왔습니다.
이 집 창틀마다 아로새겨있는 추억같은 것이 보일 리 없는 관광객들 틈바구니에 섞여 2층 제 방을 올려다 봅니다. 기억하세요? 소학교 입학하던 날. 학교에서 돌아온 저를 한쪽 팔로 번쩍 안아 올리시곤 반대손으로 제 눈을 가리셨었습니다. "2층 방에 마츠코의 선물을 가져다 놓았다" 하시며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마다 저보다 더 설레하셨었죠. 제가 등교한 사이 당신의 포목점에서 가장 고운 순백색의 명주천을 떼어다 커튼도 달아두시고 배나무로 직접 짜신 침대도 들여놓으시고는 큰 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셨던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에는 그 방 창틀에 기대어 손수 달아주신 커튼 위로 듬성듬성 내려앉은 새하얀 꽃송이들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세월에 절어 누렇게 바랜 그 커튼이 아직도 걸려있는 것을 보니 뽀얗게 쌓인 먼지 아래로 숨죽인 모든 세월이 되살아날 것만 같은데, 저는 이제 이 집 밖을 돌며 소원합니다. 무엇이 저를 이리도 멀리 떠밀어냈는지, 어떻게하면 돌아갈 수 있는지 일러달라고.
낯 뜨거우리 만치 바짝 마른 연못 가운데에 서서 사진을 찍는 학생들도 보입니다. 그 연못에는 아버지가 아끼시던 주황색 잉어들이 있었지요. 집안에 있는 동안은 정원의 분재와 수국을 보살피며 연못을 유영하는 잉어들을 구경하는 것이 아버지의 유일한 취미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집안에 낯선이가 드나드는 일을 늘 경계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우리집에는 찾아오는 이가 드물었었지요. 손님이라곤 모퉁이 돌아 하얀 담장 안 단층집에 살던 제 동무 쿄코가 아니면 아버지에게 돈을 꾸러 온 소작농들이 전부였습니다. 그 오랜 시간동안 아버님 앞에서 허리조차 제대로 펴지 못하던 그네들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던 패망소식보다 먼저 우리집으로 달려올 적에도 아버지는 연못 속 비단잉어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아까(赤), 히(緋), 키(黄), 고멘네." 피난하려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오느라 변변한 살림살이 하나 챙기지 못했죠. 그 급박한 순간에 어찌하여 잉어들에게 미안하다 하셨던 것인지 저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미안해야 했던 것은 잉어들이 아니었건만.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응당 부끄러워야 할 일에 대하여 자괴감을 느끼는 것이 부덕으로 여겨지던 때. 악의가 대의였고 그래서 선의였던 때.
돌아온지 채 한 해도 안 돼 아버님 돌아가시고, 저와 동생 역시 터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못할 집은 저와 사치코 둘이서 지키기엔 너무나 황량했습니다. 우리가 떠난 우리집에 이리 많은 사람들이 오가게 되리란 것을 아셨나요, 아버지? 반세기동안 주인이 여럿 바뀌며 낯선 이들은 한 겹 한 겹, 우리집을 발가벗겨 내었네요. 아버님이 열 다섯 생일날 사주셨던 자개무늬 경대며, 유난히 매섭던 그곳 겨울에도 정원을 내다볼 수 있도록 문가에 두셨던 고타츠며, 집안 세간살이들을 모두 들어내고 여기, 헐벗은 집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아버지의 서재가 이리도 어두웠던가요? 다다미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던 거실이 이리도 휑하였던가요? 너무 많이 누렸던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전쟁이나 역사와 같은 말들은 너무 거대하고 추상적이라 제 작은 세상은 그저 휘몰려가기 바빴습니다. 우리가 누렸던 세월은 다 무엇이었나, 그 시절은 어디에 있나, 아버지, 소녀는 예순이 넘은 나이가 되어서야 생이란 그저 꿈이었음을 깨닫습니다.
2015. 9. 20.
히로쓰 가옥
오늘 졸려서 사진은 다 못올리겠어요.
게다가 죄다 필카로 찍어서, 뭘 찍었고 뭘 안 찍은 건지 모르겠네요.
다만, 정말 묘한 동네였어요. 적산가옥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개발, 진보, 창조경제(...)같은 단어가 꼭 그 자리만 비켜간 것처럼
수 십 년전에 머물러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주는 인스타에 끄적거려놓은 마츠코 이야기를 마저 써야겠네요.
필름도 스캔하면 곧 업로드 할게요 :)
(그래놓고 또 한 한 달 걸리겠죠...)
2015. 9. 14.
최근 구매 도서 목록
1.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크리스토퍼 히친스: 현재 30쪽. 그런데, 내가 좋아하게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2. 시녀 이야기, 마가렛 앹우드: 아직 안 읽음. 영국 페미니즘 문학의 정수라는데, SF 소설
3. 화씨 451, 레이 브래드버리: 서적을 불태우는 게 직업인 미래의 방화수 이야기, SF 소설이고 아직 이것도 도입부
4. 사랑에 관한 연구, 호세 오르테가 이 가제트: 뭐랄까, 굉장히, 낡은 관점 같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그래도 일단 다 읽어봐야 뭐라고 할 수 있겠다 싶음. 근데 이미 "그래서? 그럼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라는 포스트잇 세 장 쯤 붙임
5.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 사드: 강력 비추... 객관화와 타자화에 능통한 독자가 아니라면 절대 비추. 하지만 새디스트에겐 강추. 왜냠, 사드는 어쨋든 새디즘의 자웅동체부모니까.
6.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르네 지라르: 무서워서 아직 도입부도 다 못읽음
7.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혀지에게 빌려 읽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결국 구매
8. Go, 가네시로 카즈키: 이 책은 한 서 너권 사서 선물하고 내가 가진 책까지 선물했을만큼 각별한 책. 그래서 결국 (내가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던 판본으로) 재구매. 내게 이상적 연애의 지침서가 되어주었고 소년과 청년이란 무엇인지 알려주었던 책. 내가 가지고 있던 자아와 정체성, 국적, 소속감 등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주었던 책. 기특한 성장(?) 도서. 나는 사쿠라이가 되고 싶었고 미도리로 살아왔다. 뭐 대충.
9. 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유: 이 책이 주는 여운을 말로 적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며 되려 감정을 훼손하는 일 같다. 적지 않겠음.
10.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무질서!!!!!!!! 혼돈!!!!!!!!!! 종말!!!!!! 예!!!!!!!!!!!! 에코백이랑 텀블러 좀 제발 그만 사 모아라. 소비 행위가 제일 eco-unfriendly 하다는 걸 자각해주기를.
2015. 9. 12.
"나연이는 시간이 지나서 지금보다 더 성숙해지면 보라색이 될 것 같네요. 지금은 연보라색이에요.
사람이 계속 모자이크 같은 색으로 살면 팔십 평생을 살 수 없을 거예요. 한 가지 색으로 합쳐진다는 건 나쁜 게 아닙니다."
5월 8일 어버이날, 졸업 후 처음으로 사회인 대 사회인으로서 선생님을 뵀다.
나도 더는 학생이 아니었고 선생님도 나의 모교를 떠나 새로운 둥지를 찾으셨던 시기.
그래서 술을 마셨다. 그래도 될 것 같았으니까.
스파클링 와인으로 시작해 복분자로 넘어갔다.
문득 "선생님 전에 저랑 소라한테 학생들마다 색으로 기억한다고 하셨던거 기억나세요?" 라고 물었고 선생님은 옅게 미소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때 저한테 모자이크 같다고 하셨거든요. 근데 그때 그게 진짜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 같아요. 좀 모난 것 같고 어딘가 이상한 것 같아도 그래서 그게 저 같았는데, 지금은 그 독기라고 할까, 그런 기가 다 빠졌어요.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아요." 하니 복분자가 담긴 술잔의 입술을 매만지시다 저렇게 답해주셨다.
모자이크라는 말을 들었을 때와 다른 의미로, 또 울 뻔했다.
생각난 김에 또 메일 써야지.
뭐 이런 생각한 건 좀 오래됐지만,
요즘 부쩍 미류에게 "나는 그만 살고 싶은데" 라는 소릴 자주 한다.
그만 살고 싶다 = 죽고 싶다, 는 아닌데, 어려서부터 도돌이표로 돌아오듯 찾게 되는 심적 상태, 혹은 근원적인 생에 대한 회의감을 딱히 어떤 쉬운 단어로 풀어서 말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종종 내 말을 곡해해서 듣는 것 같다. 그니까, 내가 곡해하기 쉽게 말을 한다. 말을 좀 이상하게 한다는거지.
여하튼, 그냥 사는 게 너무 피곤하다.
오늘도 미류에게 일장 연설을 하듯 설명했지만 사반세기 넘게 살면서
격렬하게 불행해보았고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해보았으며
설렘도, 절망도, 어지간한 것들은 다 해 본 것 같다.
인간이 경험하여 느낄 수 있는 것들에 얼마나 더 큰 variation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만하면 됐다 싶다. 그리고 너무 빨랐다 싶다.
앞으로도 결국 흥망성쇠의 반복일 것이 뻔하고, 거기서 느끼고 배울 점이 많다손 치더라도 결국 변하지 않는 내 육신과 정신으로 살아갈 앞날에 뭐 대단하고 기대할 것이 있다고 더 사나 싶다.
정말 열심히 살았고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겪으며 살았다.
남들이 평생 혹은 반평생에 겪어도 벅찰 일을 나는 너무 빨리, 많이, 호되게 앓아가며 해쳐왔다. 생의 정중앙, 적도와 핵을 지나 저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고지식하고 무식하게 관통해 이 곳에 섰다. 그래서 솔직히 피곤하다. 피곤하고, 더 사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회의감이 든다. 그렇다고 이 생을 지금 당장 마감하겠다는 건 또 아니고.
늘 너무 피곤하다.
내게 순정을 요구하기엔 삶은 이미 나에게서 너무 많은 것들을 앗아갔다.
넌 자격 없다.
2015. 9. 11.
2015. 9. 6.
1.
사랑과 욕망을 구분할 수 있는 더 멋진 논리가 있다. 무엇인가를 욕망하는 것은 그것을 소유하려는 것이다. 소유란 우리의 궤도를 돌던 어떤 대상이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의 일부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논리에 의하면, 욕망은 그 대상을 얻는 순간 없어진다. ... 이때 나는 중력의 한가운데에 서서 그 대상들이 내게로 빨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반대로, 사랑에 있어 모든 것은 움직임 자체이다. ... 사랑을 하면 우리는 사랑의 대상이 내게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그 대상에게 가서 그 안에 존재하려 한다. ...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타인을 향한 여정을 떠나야 한다. 그 대상이 나를 중심으로 내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대상이 만든 궤도를 탄다.
- 사랑에 관한 연구, 호세 오르테가 이 가제트
자기애와 자의식의 벽으로 저를 둘러쌓은 인간은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 여행.
2.
"연애란 상대의 내면을 알아가는 길고 깊은 관계잖아요."
너에게 따져 물으려고 적어둔 메모 속에 있던 구절. 내가 이런 말을 다 했었다니. 절박함이야 말로 창조의 어머니.
3.
사랑이라는 단어만 빼고 무슨 말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심을 다한 사랑 고백은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나를 참수형에 쳐해달라는 말처럼
공포보다 공포스럽다.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마음이 자라고 있음이 벅차다가다도 이대로 감정에 수몰되는 건 아닐까, 무섭다. 아마 그래서 그런건가보다. 이게 날 잡아먹을까봐.
4.
관같이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 죽음같이 깊은 잠을 잤으면 좋겠다.
파도도 걸어 잠그고 관 속에 눕는다.
관 속에서 눈을 감고 오른쪽 벽을 더듬거리다 손에 걸리는 작은 스위치를 조용히 내렸을 때,
세상도 함께 내렸으면 좋겠다.
물에 파뭍히고 싶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무엇이든 다 자연스러웠다. 나와의 만남을 어색해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행동들이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그만의 궤도로 보였다. 상대가 지루하지 않도록 개연성 없는 질문들을 던져대는 그 산만함마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쾌활한 성격과 맞물려 당연스레 느껴졌다. 부끄럽다며 고개를 기울여 제 볼을 어깻죽지에 비벼댔지만 첫 인사 뒤로 이어지는 모든 대화와 침묵에서 부자연스럽다거나 억지라고 느껴지는 행동은 없었다. 나는 도리어 낯선이 앞에서 보이는 그의 계산 없는 행동들과 무방비함이 조금 당황스럽다가 이내 또 자연스러워졌다. 초등학생 조카가 스무 살의 말괄량이 소녀로 자란다면 이런 모습이리라, 상상하게 되는 천진난만함이 있었다. 그래, 꼭 비오는 날 우연히 처마 밑 이웃이 된 어린아이처럼 경계심이 없었다. 하기사, 요새 아이들은 되려 우리 때보다 훨씬 영악해서, 나쁜 의미라기보단 그럴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 길러지고 있으니까, 이 사람처럼 낯선 이에게 고해성사같은 비밀이야기는 털어놓지 않으리라.
"저는 이자까야를 좋아해요. 그때나 지금이나 이자까야만 보면 괜히 들어가고 싶어져요. 어차피 도쿠리 한 병이면 온몸이 붉게 달아오를텐데 말이에요.
사실은 이렇게 누가 듣는지도 모를 허공에 떠드는 대신, 아직 서로를 잘 몰라 예의를 차릴 수 밖에 없는 사이의 사람이랑 다찌에 앉아 심야스시에 맥주나 마시면 좋겠어요. 그 사람이 묵묵히 들어줄 수만 있다면 에다마메 껍질이 수북하게 쌓일 때까지 한 얘기 또하고 한 얘기 또 하면서 신세한탄이나 했으면 좋겠는데, 그걸 못하고 있어서 그래요. 여기다 이러지 말고 컴퓨터 켜고 혼자 일기나 쓰면 되는데, 집까지 와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건 너무 버겁네요."
혼자 재잘재잘 잘도 떠드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왜 연락은 하면 안 되는 사람한테만 하고 싶을까요? 왜 쓰지 말아달라던 이야기만 적고 싶을까요? 왜 나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는데 시간은 기다려주질 않고 흘러만 갈까요? 왜 내 순정이란 건 이리도 성급하고 천박할까요?"
대화의 주제는 우리 앞에 놓인 사와 잔 속 기포처럼 불규칙하게 한 방울씩 솟아 올랐다 공중으로 흩어졌다.
"왜 아무 말이 없나요? 왜요?"
그는 나를 간절하게 쳐다보며 다그쳤다. 분하고 서글픈 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연락해서는 안 된다던 그 대신 답을 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글쎄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영리하고 명석한 여자잖아요."
그는 '역시 어리광은 안 통하네요' 하는 표정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두 모금 쯤 남은 사와 잔을 시원하게 꺾었다. 늘 이 테이블 만큼의 거리를 두고 볼 수만 있다면 지루하지 않을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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