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6.





그 사람은 처음부터 무엇이든 다 자연스러웠다. 나와의 만남을 어색해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행동들이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그만의 궤도로 보였다. 상대가 지루하지 않도록 개연성 없는 질문들을 던져대는 그 산만함마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쾌활한 성격과 맞물려 당연스레 느껴졌다. 부끄럽다며 고개를 기울여 제 볼을 어깻죽지에 비벼댔지만 첫 인사 뒤로 이어지는 모든 대화와 침묵에서 부자연스럽다거나 억지라고 느껴지는 행동은 없었다. 나는 도리어 낯선이 앞에서 보이는 그의 계산 없는 행동들과 무방비함이 조금 당황스럽다가 이내 또 자연스러워졌다. 초등학생 조카가 스무 살의 말괄량이 소녀로 자란다면 이런 모습이리라, 상상하게 되는 천진난만함이 있었다. 그래, 꼭 비오는 날 우연히 처마 밑 이웃이 된 어린아이처럼 경계심이 없었다. 하기사, 요새 아이들은 되려 우리 때보다 훨씬 영악해서, 나쁜 의미라기보단 그럴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 길러지고 있으니까, 이 사람처럼 낯선 이에게 고해성사같은 비밀이야기는 털어놓지 않으리라. 

"저는 이자까야를 좋아해요. 그때나 지금이나 이자까야만 보면 괜히 들어가고 싶어져요. 어차피 도쿠리 한 병이면 온몸이 붉게 달아오를텐데 말이에요.
사실은 이렇게 누가 듣는지도 모를 허공에 떠드는 대신, 아직 서로를 잘 몰라 예의를 차릴 수 밖에 없는 사이의 사람이랑 다찌에 앉아 심야스시에 맥주나 마시면 좋겠어요. 그 사람이 묵묵히 들어줄 수만 있다면 에다마메 껍질이 수북하게 쌓일 때까지 한 얘기 또하고 한 얘기 또 하면서 신세한탄이나 했으면 좋겠는데, 그걸 못하고 있어서 그래요. 여기다 이러지 말고 컴퓨터 켜고 혼자 일기나 쓰면 되는데, 집까지 와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건 너무 버겁네요."

혼자 재잘재잘 잘도 떠드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왜 연락은 하면 안 되는 사람한테만 하고 싶을까요? 왜 쓰지 말아달라던 이야기만 적고 싶을까요? 왜 나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는데 시간은 기다려주질 않고 흘러만 갈까요? 왜 내 순정이란 건 이리도 성급하고 천박할까요?"

대화의 주제는 우리 앞에 놓인 사와 잔 속 기포처럼 불규칙하게 한 방울씩 솟아 올랐다 공중으로 흩어졌다. 

"왜 아무 말이 없나요? 왜요?"

그는 나를 간절하게 쳐다보며 다그쳤다. 분하고 서글픈 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연락해서는 안 된다던 그 대신 답을 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글쎄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영리하고 명석한 여자잖아요."

그는 '역시 어리광은 안 통하네요' 하는 표정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두 모금 쯤 남은 사와 잔을 시원하게 꺾었다. 늘 이 테이블 만큼의 거리를 두고 볼 수만 있다면 지루하지 않을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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