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가 준수하며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텔리 변태.
2016. 8. 25.
메일 제목에 대하여
원래 쓰던 글은 저장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생겼다.
메일 제목을 정하는 나만의 기준과 방식에 대해 적고 있었다.
실제로 내가 사적인 메일에 뭐라고 적었는지 확인해보려고 보낸 편지함을 열었다가 기함할 뻔 했다. 와, 예전 남자친구한테 썼던 메일이 진짜 심각할 정도로 진정성도 없고, 내가 쓴 것 같지도 않고, 콧소리 범벅에, 못봐주겠다.
바로 인터넷 창을 닫았다.
인터넷 정보들도 퇴화, 부식, 침식되면 좋겠다. 검색어로 걸리지 않는 정보들은 서서히 화석화 된다거나 아예 bit by bit로 분리되어 두 번 다시 조합할 수 없는 데이터 파편으로 정보의 바다를 둥둥 떠다니다 사장되면 좋겠다. 으 끔찍해.
2.
연일이와 대화하다 외래어 표기법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 얘기를 왜 하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세상에는 그런 걸 재밌다고 느끼는 나와 연일이 같은 사람도 있다. 그리고 분명 더 있다. (아직 못만나서 그렇지.)
여튼 그러면서 맑스 이름이 나왔는데, Carl Marx 의 이름을 한국어로는 마르크스와 맑스, 두 가지 방식으로 적는다. 뭐 무슨 학문적 성향에 따라 다르게 적는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내용까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후자 표기법을 선호한다. 한 음절 안에 인지할 수 있는 모든 소리 기호를 다 때려넣은 첫 글자 '맑'이 특히나 좋다. 외래어 이름 표기 시 잘 쓰지 않는 겹받침이라는 것도 좋고 그 글자가 특히나 맑다는 동사의 첫 음절과 같다는 점도 좋다.
얼마나 명료한 이름인가. 맑스.
2016. 8. 22.
2016. 8. 18.
와 찾았다!
얼마 전에 어디서 "이랑이 좋아하는 동영상" 이란 제목의 글을 봤는데 도대체 어디서봤는지 기억도 안나고 그냥 태양계만 생각나서 YouTube에 냅다 solar system size 라고 쳤더니 나왔다.
종종 우리는 우주의 먼지같은 존재라고 하는데, 내 보기엔 우린 먼지조차도 안된다.
우주의 체세포 내 미토콘드리아 DNA의 한 염기 정도??
참고로 동영상은 독어로 되어있다. 독어 아님 뭐 유럽언어.
Erde 는 당연히 Earth겠고
Mond - Lundi - Monday - Moon 달이 되겠지?
그리고 목성이 저렇게 큰 줄 몰랐음...
Juno 힘내.
2016. 8. 14.
도현이의 오즈
1.
도현이는 ㅅ를 어리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둘은 대외활동을 통해 서로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저 서로의 카카오톡 연락망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 별다른 대화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다.
때때로 명절을 핑계삼아 안부를 묻곤 했지만 둘의 대화는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낯선이와 대화를 할 때에도 주도적인 도현이는 이상하게 ㅅ과 문자를 할 때면 항상 맥이 빠졌다. 어딘가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대화의 핀트가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도현이는 왜 주변 사람들이 어떤 농담에도 감정의 동요가 없고 달변가도 아닌 ㅅ를 어눌한 오타쿠 같다며 귀여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2.
그러던 도현이는 ㅅ를 좋아하게 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눈길이 갔는데 자꾸 주변 친구들이 좋다고 야단법석을 떠니까, 그 무리 중에 하나로 섞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도현이는 콧잔등을 찌푸렸다. 도현이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를 이야기 할 때면 꼭 입술을 꽉 다물고 콧잔등과 미간에 힘을 줬다. 그럼 그 짧은 콧등이 도현이의 자존심처럼 구겨졌다. 확실하진 않다. 원래 돌이켜 생각해본다는 건 가장자리가 닳은 기억의 조각들 중 얼추 비슷해 보이는 모서리를 가진 조각끼리 이어붙여 피카소의 그림같은 이야기를 완성하는 과정일 뿐이니까.
도현이는 ㅅ와 일 년에 한두 번 카톡으로 안부만 묻고 지내는 건 뭔가 우습다고 생각했다. 둘 다 비슷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3년만에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날 이후 도현이와 ㅅ은 한 달에 두어 번 저녁을 같이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꼭 저녁에 만나 아침에 헤어졌다.
3.
"사실 가까운 사이는 아니야."
도현이는 말을 골랐다. 자주 본다고 혹은 틈만 날 때마다 생각난다고 해서 그 둘이 필연적으로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순 없다고 입술을 잘근거렸다.
"인과관계도, 상관관계도, 비례관계도, 그냥 뭣도 아닌 것 같아. 방정식이나 함수같은 산술적 논리에 비산술적 기호를 대입시키면 그 시스템은 마비되잖아? 그런거야. 감정이란 변수가 생겨나면 남+녀=?라는 식은 깨질 수 밖에 없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수학적인 식으로 측정하거나 논리로 일반화 시킬 수가 없는거야. 인풋과 아웃풋의 등가가 성립할 수 없더라고."
4.
"걜 만나려면 침대로 가는 수 밖에 없어.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만나기엔 너무 비겁하고 비참한 장소란 걸 알면서도 자꾸 침대로 돌아가."
5.
도현이는 이전의 자신이라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괴롭다고 했다. 하지만 잠자리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내가 두려운 건 섹스가 아니라 그 앞 뒤로 이어지는 관계 유지야. 얘도 나를 한 번 어떻게 해볼 생각뿐이었을까? 이 관계는 여기서 종료인가? 다음날 아침에 헤어지면서 연락할게요, 담에 또 봐요, 하고 두 번 다시 못보는걸까? 그런 것들 말이야. 나는 그 사람이 좋아서 함께 있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제 나는 용도폐기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해야 하는 게 너무 싫어."
6.
다행인지 불행인지 ㅅ은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와 도현이는 그 후 2개월간 급속도로 친밀해졌다. 그러는 내내 그는 도현이를 최대한 이성적이며 인격적으로 대해주었다. 그는 그가 도현이와 사귈 수 없는 이유, 앞으로 유지하고 싶은 관계의 형태, 그에 대한 도현이의 예상답변까지 일목요연하게 그리고 어이가 없을 만큼 공손한 어투로 설명해주었다. 도현이는 크게 반박하지 않았다. 그 내용이 논리정연한 탓도 있었으나 그는 인간적 예의를 져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늘 정갈한 숙소에서 만났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의 태도가 돌변하는 일도 없었으며 항상 도현이의 귀가길을 챙겼다고 한다. 약속을 정하거나 거절할 때에도 간결하고 정확했으며 다시 연락을 주겠다 말하면 반드시 날짜를 지켜 연락을 해왔다. 관계를 정리할 때에나 도현이의 심기가 불편할 때에는 반드시 만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현이는 개새끼라고 욕을 할 수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수도 없었다. 뭐하는 짓거리냐는 친구들의 비아냥에도 도현이는 그 사람의 비정상적인 냉철함이 고마웠다고 한다. 최소한의 인간적 도의도 하지 않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게 얼마나 자신의 연애관을 기형적으로 비틀어 놓았는지 일일이 다 일러주고 싶었지만 도현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의 힐난을 조용히 들으며 콧잔등만 찡그릴 뿐이었다.
7.
그래도 도현이 우리 중에 가장 용감했다. 도현이는 '다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관심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꼭 한 번은 자리를 만들었고,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었다. 우리는 도현이의 헤픈 정이 한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도현이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다렸다.
대부분은 "야, 망했어"로 시작했다. 도현이는 늘 "그래도 사람이 삼 세 번은 봐야 하는 거 아니니? 오즈 야스지로 말 몰라?" 라고 씩씩거렸다.
도현이가 알려준 오즈의 말은 통찰력이 뛰어난 연애론이었지만 도현이가 왜 오즈의 말을 그토록 신봉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도현이가 언젠간, 도현이만의 오즈를 만날 수 있기를.
2016. 8. 13.
내가 책 내면 사줄꺼야? 라고 물을 게 아니라
사고 싶은 책을 만들어야 할텐데!
꺄!
2.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라곤 윤경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윤경이는 단짝친구(라고 말하면서 서로 츤데레 하기 바쁜 사이) 슬아씨와 함께 24와 1/2이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해오고 있다. 윤경이가 이제 스물하고도 일곱이니 벌써 3년 전 일이네. 와, 쵬갱 늙은이.
여튼, 슬아씨는 일러스트레이터고 윤경이는 제작, 판매, 유통 등의 사업적(?)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데, 매년 제작하는 달력은 매우, 음, 고퀄이다. 당연히 인기도 좋고.
(감성적이라고 쓰려다가 뭔가 이상한 표현같아서 단어를 재고해봄)
작년에는 하나 사서 욱이 부쳐주고 하나는 내가 썼다(고 적고 5월 이후로 달력을 넘기지 못했다고 읽는다).
그 이외에 엽서도 만들고 포스터도 찍고 해서, 일단 윤경이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3.
책자를 내려면 표지를 만들어야 한댔다.
"포토샵이나 일러 할 줄 알면 금방 만들어요"
그러니까 나는 금방 못만들거라는 얘기 ^^
하지만 이 마저도 윤경이가 맛난거 사주면 자기가 해준댔다.
나는 인복이 많다. 그리고 조금 뻔뻔하다.
4.
윤경이가 성원애드피아라는 곳을 알려주었다.
간단한 포스터에서부터 브로셔, 책자까지 만들어주는 업체다.
이미지만 넣으면 바로 주문이 가능하고 3-4일 안에 제작이 완료된다.
나는 시집처럼 가볍고 작아서 어디에도 들고 다닐 수 있는 사이즈를 원했다.
스테이플로 고정해도 좋으니 작고 저렴해서 컵라면 뚜껑으로 올려두기 좋은 정도면 괜찮다고 했다.
윤경이가 책이 부담스러우면 접지는 어떻느냐고 했다.
한 면은 글을 싣고 뒷면에는 언니가 찍은 사진 같은 걸로 포스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럼 뒷면엔 내 사진을 넣자 ^^
고 했다가 크게 까였다. 그래서 일단 접지를 보고 있다.
너무 꼬깃꼬깃 주머니 속에 쪽지~ 같은 건 싫어서 4단병풍후반접지(이름 겁나 거창하다)를 생각하고 있다.
테마별로 엮어서 3가지 혹은 5가지 종류로 나누고 싶다.
그중에 한 권은 반드시 19금으로 낼 거다. 사실 요즘 청소년들의 성지식 수준을 생각하면 14금이어도 될 것 같긴 한데, 어쨋든 그 책자에는 블로그에서 조차 쓰지 못했던 걸 쓸거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4단병풍후반접지는 사이즈나 접는 형태는 맘에 드는데 글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6면 밖엔 되지 않는다. 아무리 테마별로 나누어 뽑는다고 해도, 너무 적지 않나 싶다.
사실 얼마나 많은 글을 넣을 것인지도 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실을만한 글을 선별하지도 않았다. 글을 아예 새로 쓸 것인지 내가 좋아했던 블로그 글들을 엮을 것인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 적절하게 섞을 것 같다.
그렇다면 결국 얇은 리플렛 형태를 해야 할텐데, 그건 그럼 포스터는 포기해야 한다.
근데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한 비주얼리스트라고 포스터까지?
그리고 앞, 뒤 표지 작업만 하는 것이 윤갬이에게도 덜 무리가 되지 않을까?
공부를 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그래도 나름 활력이 생길 것 같다.
5.
근데 30살 전에 신춘문예 단편 공모의 꿈은 어디로?... ^^^^^^^^^^^^^^
6.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내 글을 재미있어하(면서 동시에 일러를 잘 하)는 누군가와 함께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6. 8. 11.
아주 이상한 이야기라는 걸 알지만,
그 사람을 몇번이나 만져보고 싶었어.
아 약간 위험하다는 생각도 잠시 했고.
진짜 이상하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그냥 조용히 가서 옆에 누워보고 싶었는데.
급작스러운 성욕이랑 좀 미묘하게 다른거야. 예전부터 그래보고 싶었던 것 같아. 아닌가? 만지고 싶다는 건 결국 같은 건가?
그래도 안아보고 싶다거나, 체온이 전달될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서 이야기 해보고 싶다는 건 스스로 해결하거나 다른 이로 대체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성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근데, 정말 이상한 걸까?
그녀는 계속 되묻기만 할 뿐 답을 찾지 못했다.
이런 뫼비우스의 띠는 위험한 걸 우리 둘 다 잘 알지?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형체가 없었으므로 나는 그럴 수 없었다.
2.
타인이 남긴 사랑의 흔적들을 본다.
노출증이 있는 사람들은 관음증도 있는 걸까?
S와 M이 맞닿아있다는 말처럼 극은 결국 극과 통하는 걸까?
3.
월요일이 공휴일인 줄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길농장 투어 1기 체험
시작은 나의 오지랖이었다.
인스타에서 알고 지낸지는 꽤 된 (왜냠 무화과를 사먹기도 전부터 알고 있었니까) 분이 어딘지 모르는 그 어딘가에서 소도 키우고 무화과도 키우고 있었다. 아주 아주 어릴 적 할머니가 주신 말린 무화과를 먹어본 기억만 어렴풋이 있을 뿐, 무화과가 어떤 과일인지 사실 잘 몰랐다. 하지만 작년 여름에 그 분이 판매하시던 무화과를 사먹곤 난생 처음 먹어보는 과일맛에 반해 여기 저기 홍보하고 다녔다. 실제로 내 주변인들이 한 10박스는 산 것으로 안다. 친구들은 언니 혹시 브로커냐며, 무화과 다단계 사업같은 거 하냐며, 의심하기도 했다. 첫 택배에는 무화과는 껍질을 벗겨먹어도 맛있다는 손편지를 동봉해 보내주셨다. 그 엽서를 아직도 갖고 있다.
또 지난겨울에는 농장 식구가 늘었다. 보더콜리 강아지. 이름은 폭설이. 주둥이가 뾰쪽한 게 꼭 우리 꼬맹이같았는데 꼬맹이보다 훨씬 순하고 똑똑해보였다... 후...
매일 초록이 넘실거리는 논이나 거대한 축사,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앉은 설이 사진만 보다보니 문득 뭐하는 분인지 궁금해졌다. 나랑 비슷한 또래였던 것 같은데, (얼마 전에 알았지만) 은재 과 선배라고 하던데, 용희오빠 보면 농장이 예삿일이 아니던데.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 친인척 모두 5분 거리에 살고 있다. 귀향길, 귀경길이란 단어는 늘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꽉 막힌 톨게이트 사진정도로 알고 살았다. '시골,' '고향'이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그래서 어려서부터 도시를 벗어난 곳에 적을 둔 친구들을 늘 부러워했는데 논과 산으로 둘러 쌓인 농장을 보니 실제로는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농장에 계시는 그 분도.
한 두어달 전엔가, 진담 반 농담 반, 사실 진심 90%, 농장에 놀러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오빠는 흔쾌히 강제 초대(?)를 수락해주었다. 혼자 가는 건 오지라퍼인 나로서도 좀 오바인가 싶어 괜히 은재를 끌어들였는데 은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다고 단번에 응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영암 한길농장 투어 1기가 모집되었다.
(여담인데, 우리 팀 과장님이 내 무화과 다단계 열차의 막차를 타시고 뒤늦게 주문했는데, 그때 마침 오빠가 자리를 비운 시기였던 것 같다. 과장님께 전화가 한 통 왔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배송이 조금 늦어질 것 같다, 죄송하다, 근데 저희 무화과는 어떻게 알고 주문하신거냐 물었다고 한다. 과장님은 내 얘길 하자니 너무 장황한 것 같아 그냥 인터넷으로 보고 주문한다고 둘러대셨단다. 내 무화과 다단계 사업이 이렇게나 효과가 좋다(?))
내려가는 길에 은재에게 목포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고 물었다.
"목포는 항구다"
10년도 더 된 영화인데 생각하는 게 역시 거기서 거기구나 싶어 둘 다 웃었다.
근데 정말 목포는 항구다. 목포역에 내리자마자 빵집에 들러 오빠네 아버님과 할머님께 드릴 주전부리를 사고 바로 목포항으로 갔다. 뭘 기대하고 간 건 아니고 목포는 항구라니까, 도대체 뭐가 있길래 항구라나 싶어서 갔다. 항구는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장소였다. 시상이 잔뜩 떠다니는 곳이라고 해야 하나.
이미 저녁시간이라 항구는 적막했다. 배들은 잠들어 있었고 밤낚시를 나설 배들만 드문드문 눈을 밝히고 있었다. 서울 촌년이라 바다라곤 부산과 경포대로 이어지는 동해밖엔 모르다 처음 서해바다를 본 것이다. 동해와는 확연히 다르다. 더 투박하고 녹슬었다. 그게 너무 좋다.
농장까지 신세 안 끼치고 혼자 가보려했지만 그건 무리였나보다. 오빠는 목포역으로 오면 데리러 오겠다 했다. 괜찮아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는 절대 못갔을 것 같다...
만나서 어색하진 않을지 걱정했지만 우리는 1도 어색해하지 않았고 저녁을 먹고 농장으로 가는 길엔 오빠에게 무화과 재배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오빠는 중간 중간 얘기가 지루하지 않느냐, 나 좀 진지충 기질이 있다며 걱정했는데, 나 역시 설명충 진지충이라... 무화과 얘기 재미있었다. 뭔가 적산가옥처럼 무화과에겐 단편소설 같은 역사가 있었다.
오빠는 레몬캡과 무화과를 준비해두었다고 했다. 레몬캡이라 함은 잎새주를 만드는 소주 회사에서 만드는 과일맛 소주로, 처음처럼 유자맛이 전국을 강타하기도 훨씬 전부터 전남지역에서만 판매하는 술이었다고 한다. 체리캡도 있었다는데 이젠 동네 작은 슈퍼마켓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품(...)이라고. 올해 첫 무화과, 생애 첫 레몬캡, 나의 첫 영암 독사진.
레몬캡 두 병을 비웠을쯤엔 천장에 걸린 스크린을 내려 오빠의 단편영화를 보고 짧게 GV도 했다.
영화를 보기 전이었나, 보고 나서였나. 취향이 같지 않더라도 삶의 방향성이나 가치가 비슷한 사람이 좋은 것 같다고 했는데, 우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오빠네 집엔 엔트로피와 통섭, 종의 기원이 있었다. 살짝 감동받았다. 인간 대 인간의 만남에 대한 대서사시를 읊을 수도 있었지만 밤이 너무 짧아 아쉬운 여름이다.
아침이 밝았고 오빠의 사무실에는 볕이 잘 들었다.
해가 떨구는 밝은 그림자를 좋아한다. 해가 사물을 만나 드리우는 그림자 말고 빛이 표면에 떨어질 때 공간을 채우는 하얀 그림자.
그리고
아아, 설이, 나의 설이.
아, 내 설이는 아니지, 참.
설이는 이제 8개월 된 아가 보더콜리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유치원생이려나.
두말 할 필요 없이, 그냥 순딩이 아가다. 이 사진을 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설이가 오빠 곁을 맴돌던 게 생각난다.
데려오던 날 폭설이 내려 이름이 폭설이라 했다. 친화력이 좋다고 했는데 나를 처음 보고도 짖지 않았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다는 것이... ㅋㅋㅋㅋㅋ 단점일 수 있겠지만 덕분에 나는 편했다. 큰 개를 정말 너무 너무 너무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소녀떼처럼 꺅꺅 거리면서 호들갑 떨면서 예뻐하는 건 잘 못해서 처음엔 그냥 본다. 개들은 낯선 사람을 우선 후각으로 알아챈다고 했다. 그래서 내 냄새에 익숙해질 때까진 가만히 있는다. 뭐 손 정도는 내밀어준다. 하지만 설이는 일단 영봉오빠를 많이 좋아한다. ㅋㅋㅋ 귀여워. 내가 뭘 해도 큰 관심 없음 ㅋㅋㅋㅋ 설이는 축사에서 지내는데, 멀리서 인기척이 나면 혹시 형아인가? 하며 문 앞을 서성인다. 짖지도 않는다. 그저 투명문에 코를 대고 서 있는다. 그게 멀리서도 아롱져 보인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듯 까맣고 하얀 설이의 (내 기준에서) 아담한 몸집이 문 뒤에서 기웃거리고 있다. 그 대상이 동물이든 사람이든 관계의 온도, 색, 결이란 유난떨지 않아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 보인다. 무엇보다 설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너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은재가 왔다!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한 은재를 데리고 바지락 비빔밥을 먹었고 오는 길엔 일본식 목조건물을 개조한 카페에 들러 마치 점심을 먹지 않은 사람처럼 빵을 해치웠다. 돌아오던 길엔 오빠 친구분이 일하시는 하나로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내 혼신의 힘을 다 해 저녁상을 차렸다. 메뉴는 은죠미가 사온 어묵을 넣은 어묵탕, 내 피클과 먹으면 맛있는 호박 부침개, 그리고 회심의 가지튀김.
오빠와 은재, 그리고 잠시 들렸다 가신 아버님까지 가지튀김을 제일 맛있게 드셨다.
엄마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혼자 넘나 뿌듯해하며 저녁을 먹었다.
물론 서울로 돌아온 지금은 아무것도 해먹지 않는다. 같이 먹을 사람이 없으면 주로 굶는다. 인스턴트 음식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나 혼자 해먹으면 세상 그보다 맛없는 음식이 없다. 결론은 굶기.
일요일엔 20년째 폐허로 남겨진 아파트 단지에 들렀다.
은재는 공사장이나 난개발지처럼 디스토피아를 연상시키는 장소들을 좋아한다. 가끔 그런 걸 보면 사진을 찍어 은재에게 제보하기도 한다. (은재는 그런 사진들만 모아두는 인스타 계정이 있다 @04marnay04 ) 그래서 이번에도 내려오자마자 목포의 다 스러져가는 가옥들을 보면 꼭 사진을 찍어 은재에게 보여줬다. 너 오면 여기도 가고 저것도 보자. 은재는 매의 눈으로 이 아파트를 발견했고 우리는 단체복 = 무화과T를 입고 냉면을 먹었고, 돌아오는 길엔 폐가 체험을 했다.
실제로 아파트는 90년대 초반 지어진 도시의 아파트들과 비슷한 입구와 공간구성을 갖고 있었는데 저 많은 집들중 딱 한 채에만 샤시와 현관문, 그리고 전기 배선이 깔려있었다. 그 집엔 커튼까지 달려있었다. 현관문을 열어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정말 누군가 살고 있는 듯 해서 차마 열 수는 없었다. 밤에 생각하면 정말 섬뜩하다.
아, 첫날 집에 오던 길에 오빠가 우리를 위해 준비했다던 게 또 있었다.
바로 무화과T. 영암에 내려오기 전 농담처럼 "그래서 투어 프로그램엔 무슨 무슨 활동이 있죠?" 라고 물었는데, 오빠가 진짜 이것 저것 준비해두었던 것. 너무 고맙고 내 입방정이 너무 미안했는데, 티셔츠가 너무 귀여워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걸 깜빡했다. (진짜르.)
주말에는 셋이 저 티셔츠를 입고 다육이를 사러 갔다. 이것도 오빠가 사줬다. 정말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니 겁나 철면피같네. 집에 돌아가서 분갈이 체험을 하자고 해서 축사 그늘에 앉아 셋이서 각자 고른 선인장과 다육이 분갈이를 했다. 나는 알바라고, 동글동글한 알맹이가 달린 선인장을 골랐다. 지금 내 책상 위에 나와 함께 있다. 오빠에게 고맙다는 말은 했던가.
사실 이 외에도 핸드폰에 저장되어있거나 은재가 찍어서 보내준 것, 오빠가 보내준 것들이 잔뜩 있는데 여기엔 필름 카메라 사진들만 올린다.
인스타에 폭풍 업데이트를 본 친구들이 하나같이 "재미있어 보이더라"고 했다. 내 주변인들은 나처럼 말을 꾸며할 줄 모르는 까닭으로, 진짜 재미있어 보였나보다. 실제론 그것보다 한 3배 더 재미있었다.
설이 목욕도 직접 시켜주고, 간식도 주고, 송아지 순찰도 하고, 오빠 친구들 얘기, 은재 동기들 이야기, 송송대란 같은 이야기도 들었다. 매월 1일에는 다같이 무화과T를 입고 선인장에 물을 주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자고 했다. 10월엔 부산 영화제에서 만나자는 얘기도 했다. 은재와 돌아오던 기차에선 오빠가 준 선물들과 마이훼이보릿 픽쳐에 대해 얘기했다.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영암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했다.
오빠 냉장고엔 양조절에 실패한 호박 부침개와 우리가 거의 다 먹어버린 피클병이 남아있을 거다. 설이에게 페이스타임 하는 법도 알려줘야 하는데.
휴, 오빠는 송아지들 돌보느라 바쁘니까 아무래도 내가 조만간 또 가야겠지? 크크크
근데 정말로,
아직도 몸에서 강아지 냄새가 나던 설이가 너무 보고 싶다.
2016. 8. 10.
무화과와 시들
1.
죄에 물들고 싶은 밤
무화과를 먹는다
심장 같은 무화과
자궁 같은 무화과
발정 난 들고양이 집요하게 울어 대는 여름밤
달빛, 흰 허벅지
죄에 물들고 싶은 밤
물컹거리는
무화과를 먹는다
농익은 무화과의
찐득한 살
피 흘리는 살
강기원, 무화과를 먹는 밤
2.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무화과 숲
3.
무화과가 먹고 싶어
당신이
그때 내게 말했네
때는
한겨울이었는데
밤거리를
헤맨 끝에
나는
말린 무화과를 사왔네
그대는
말했네
호호호, 수고했어
호호호, 말린 무화과도 무화과는 무화과
그대는
말린 무화과를 맛있게 먹었네
나는
말했네
나는
무화과 알레르기
무화과
한입만 씹어도 숨이 가빠져
그대는
말했네
호호호, 당신은 정말 바보 같아
그리고
그대는 고이 잠들었네
그대의
늙은 개를 끌어안고
나는
가끔 생각하네
그대의
늙은 개는 지금쯤 늙어 죽었을까
나는
가끔 그대 소식을 듣네
그대는
유명인사 장례식에 참석하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대는
더 아름다워졌다고 하네
나는
가끔 궁금해지네
그대는
몇 살까지 아름다울까
그대는
몇 살에 죽을까
나는
어젯밤 그대 꿈을 꿨네
우리는
무화과를 나눠 먹었네
그리고
그대는 고이 잠들었네
그대의
늙은 개를 끌어안고
나는
그대 옆에 누워 숨이 가빠졌네
나는
눈을 감고 눈물을 흘렸네
그리고
결국 나는 죽었네
심보선, 무화과 꿈
+
무화과를 주제로 한 현대시가 이렇게나 (김지하 시인의 '무화과'까지 네 편) 많을 줄이야!
무화과는 꿈 꾸게 하는 과일.
무화과는 지나간 사랑을 그리게 하는 과일.
무화과는 꿈결같았으나 지나가 버린 사랑이나 떠올리며 반복해서 죄를 짓는 우리를 위한 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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