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죄에 물들고 싶은 밤
무화과를 먹는다
심장 같은 무화과
자궁 같은 무화과
발정 난 들고양이 집요하게 울어 대는 여름밤
달빛, 흰 허벅지
죄에 물들고 싶은 밤
물컹거리는
무화과를 먹는다
농익은 무화과의
찐득한 살
피 흘리는 살
강기원, 무화과를 먹는 밤
2.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무화과 숲
3.
무화과가 먹고 싶어
당신이
그때 내게 말했네
때는
한겨울이었는데
밤거리를
헤맨 끝에
나는
말린 무화과를 사왔네
그대는
말했네
호호호, 수고했어
호호호, 말린 무화과도 무화과는 무화과
그대는
말린 무화과를 맛있게 먹었네
나는
말했네
나는
무화과 알레르기
무화과
한입만 씹어도 숨이 가빠져
그대는
말했네
호호호, 당신은 정말 바보 같아
그리고
그대는 고이 잠들었네
그대의
늙은 개를 끌어안고
나는
가끔 생각하네
그대의
늙은 개는 지금쯤 늙어 죽었을까
나는
가끔 그대 소식을 듣네
그대는
유명인사 장례식에 참석하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대는
더 아름다워졌다고 하네
나는
가끔 궁금해지네
그대는
몇 살까지 아름다울까
그대는
몇 살에 죽을까
나는
어젯밤 그대 꿈을 꿨네
우리는
무화과를 나눠 먹었네
그리고
그대는 고이 잠들었네
그대의
늙은 개를 끌어안고
나는
그대 옆에 누워 숨이 가빠졌네
나는
눈을 감고 눈물을 흘렸네
그리고
결국 나는 죽었네
심보선, 무화과 꿈
+
무화과를 주제로 한 현대시가 이렇게나 (김지하 시인의 '무화과'까지 네 편) 많을 줄이야!
무화과는 꿈 꾸게 하는 과일.
무화과는 지나간 사랑을 그리게 하는 과일.
무화과는 꿈결같았으나 지나가 버린 사랑이나 떠올리며 반복해서 죄를 짓는 우리를 위한 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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