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28.




들숨과 날숨처럼
감정이라는 무형의 존재가 나의 시간에 서서히 들어차다
또 일정한 속도로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더 이상 산소가 들어올 틈이 없을만큼 폐를 부풀렸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숨을 내뱉을 때 느끼는 찰나의 황홀경처럼
아찔하고 벅차다.
달뜬다.

요새 그런다.

쪽팔리고 자존심 상해 인정하기 싫었던건 아니냐는 물음











"나연이 글에는 신나하는 나연이의 모습이 잘 드러나 좋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의 무게가 심히 느껴지면 한 번 찾아오세요. 제가 술 한 잔 사지요 :)

언제나 멋진 나연이가 되되, 그 모습에 너무 얽매이지 않길 바랍니다."







나의 ㅅㅈㅆ




선생님을 처음 뵀던 게 언제였더라.
2012년인가, 학교에 아주 젊고 하얀 (ㅋㅋ) 연구 교수님이 새로 오셨었다.
사회학 전공자라고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남루했던 전공지식을 
그나마 꾹꾹 눌어 담아주신, 나의 영원한 우상, 선재쌤.

외모도, 첫인상도, 말투도, 교수법도,
교수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학창시절도, 개인의 철학까지
그냥 무어 하나 우러러보지 않을 것이 없어서 너무도 좋아하고 따랐던 나의 선재쌤.
당신은 색으로 학생들을 하나하나 기억하신다고 하시며 "나연씨는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무지개 색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사람같아요" 라고 표현하셨던 선재쌤.



졸업하던 해에 중앙대로 옮기셨다는 이야기만 들었던 것 같은데
오며 가며 '메일 한 번 드려야지' 생각만 하다 방금 구구절절한 이메일 한 통을 보냈다.
쓰다가 혼자 북받쳐서 훌쩍거린 건 우리만의 비밀.

예전에 선생님 커피사주세요, 선생님 너무 죠화요, 하며 쫄래쫄래 쫓아다니던 시절 메일을 보니 정말 벽 차고 싶다...
단연 선재쌤에게만 보인 추태가 아닌 것 같아 정말 벽을 진짜 아주 세게 차고 싶다...
수치스러워 ;_ ;



2015. 4. 23.

글 털기




속 시끄럽다. 필라테스 할 때 한 번도 한눈 판 적 없었는데, 어젠 아무동작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머리 속을 탈탈 털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1.
초등학교 고학년, 우리 옆집엔 청각장애인 부부와 어린 두 딸이 살고 있었다. 그 집 초인종을 누르면 조악하게 삑삑 전류 흐르는 소리가 나는 대신 현관문 위의 작은 알전구가 반짝였다. 처음 그 등을 보았을 때 느꼈던 생경함과 지혜로움, 배려, 소리없는 세상의 소박함 같은 것들이 불현듯이 떠오르는 밤.



2.
옷을 벗어야만 드러내는 이야기라는 것도 있는 거다.



3.
나는 반드시 찾아낼거다. 너도 나도, 빼도 박도 못할 수를.
나는, 영리하니까.



4.
너는 내가 그동안 네 앞에서 얼마나 불편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제목은 꼭 진중권이 만나본 예술가들에 대한 비평이라도 될 것 같은데,
실은 인터뷰집이다.
책이 나오기 전에 아마 어디서 광고를 본 것 같고, 심난한 마음에 들른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보곤 (역시나) 안상수 인터뷰부터 매의 눈으로 읽기 시작했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월요일 퇴근 후 부리나케 서점으로 달려가 데려왔다.

이제 임옥상 작가와 강헌 평론가만 남았는데,
내가 읽은 순서는 안상수, 박찬경, 이외수, 구본창, 승효상, 임옥상 (읽는 중)이다.

우선 안상수는 
아주 예전에 적었던 글을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한 두 해 전인가? 카페에서 잡지를 보다 알게 되었다. 물론 산돌광수체라던가 안상수체는 워드나 파워포인트 메뉴 상단에 늘 떠있는 이름이지만 한 번도 그걸 만든 사람이 누굴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그 잡지를 보고서야 글자의 모양, 짜임새를 연구하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었겠다, 각성한 것이다. 그 후로는 글씨를 예쁘게 쓰는 작업인 캘리그라피보다는 글꼴을 만들어내는 타이포그라피에 더 관심이 갔다. 그저 개별적인 자음과 모음뿐만 아니라 이 천 개가 넘는 한글 음절을 '그려' 보고, 조합해 본 후에야 하나의 글씨체가 만들어진다는데 가히 경이로운 작업이 아닌가. 글자를 워낙 좋아하니 "오 신기해"하며 읽기 시작한 글은 타이포그라피의 정의와 제작과정, 서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진 글자에 대한 철학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돌담을 쌓듯 성글게 글자들을 모아놓고 보면 그 글꼴을 기획한 사람의 철학이 글자의 배경을 조밀하게 매꿔주고 있는 듯 하다. 
혹 기회가 된다면 '공간체'의 디자이너와 그 글씨체를 직접 찾아보기 바란다. 

안상수 (공공 디자인이란) 중요한 것은 가독성입니다. 도시의 가독성이 높을수록 시민들은 많은 혜택을 보게 돼요. ... 옛날 무위당 선생이 길거리에 조악하게 쓰인 '군고구마' 간판을 최고의 글씨라고 한 일화도 있듯이, 치기 어린 글씨가 외려 사람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기도 하거든요. 그러니 양단을 조율해야 해요. 작은 뒷골목 간판들은 자유를 주고, 대로변 간판들은 질서와 절제를 향하고... 무엇이든 과하면 공해가 됩니다. 

안상수 (문자도의 배경) 사실 저는 글자꼴에 관심을 집중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글자를 볼 때 주로 의미를 봅니다. 그래서 저는 글자가 뜻에 종속된 것이 이니라는 의미에서 독립된 상태, 곧 뜻이 배제된 상태의 글자에 주목하는 버릇이 있어요. 마리네띠는 그것을 글자의 해방이라고도 얘기하기도 했어요. 글자를 글자로만 보는 겁니다. ... 글자가 유희하는 지점이라고 할까요? 


박찬경은
박찬욱때문에 알게 되었다. 두 형제는 팕킹찬스라는 영상제작팀(?)으로 활동하며 스마트폰 영화나 파란만장이란 단편영화를 찍었다(지만 그 이후로는 잘 모름). 형제가 참 다재다능하구만, 그러고 말았는데 그 후 만신의 감독으로 박찬경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버스를 타고 지나칠 때마다 도대체 무슨 소린가 궁금해하던 그 포스터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무엇인고 하면 '귀신, 간첩, 할머니.' 궁금하면 이 포스터도 함 찾아보시기를!

박찬경 굿을 보면 무속신앙의 바탕에 깔린 신앙은 거의 범신론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귀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보다는, '조상신을 중시하고, 사물 곳곳에 다 신령님이 깃들어 있다고 본다'라는 것이 무속신앙의 정의로 더 적절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진중권 그런 것을 말하자면 애니미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근대화 과정에서 애니미즘은 미신이라고 배척당하지 않습니까 ... 제 지도교수였던 알브레히트 벨머같은 분은 아도르노*의 말을 인용해 이런 말을 해요. '예전에는 생명이 없는 사물에까지도 영혼을 부여했는데, 요즘은 영혼을 가진 생명까지도 사물화한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그깟 돈 몇푼 때문에 생명을 그렇게 취급하는 걸 보면, 문명화됐다는 우리가 거꾸로 애니미즘에서 배워야 할 게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 아마 제일 자주 나오는 사회학자 둘이 떼오도르 아도르노(내가 Her가 왜 그렇게 익숙한가 했더니 이게 다 Theodore랑 Samantha라는 이름 때문이었어)와 발터 벤야민일거다. 미학자인 진중권이 어찌하야 프랑크프루트 학파 학자들을 그토록 자주 인용하나 했는데, 생각해보니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대중문화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학자라고 배웠던 것 같다. 문화와 예술, 예술의 정치화, 사진복제기술과 아우라 등 학부때 엄청 열심히 공부했던 부분이라 괜히 방가방가. 물론, 이젠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둘 다 몹시 흥미로운 이론가라 좋아함) 

박찬경 미술은 더러 규모가 큰 작업을 할 때를 제외하곤 대개는 혼자 작업실에 틀어박혀 꼼지락꼼지락 만들어내는 재미로 하는 것이지만, 영화는 사람들하고 부딪치며 교섭해야 하고, 소위 그 프로덕션이라는 것이 있어 제 생각을 접고 그쪽 의견을 들어줘야 하는 경우도 있죠. ... 특히 이번 영화로 처음 개봉이라는 것을 해봤는데, ... 영화가 산업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개봉 이후인 것 같아요.

박찬경 한국에서 냉전이라는 것은 굉장히 특이한 현상이자, 연구할 게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주제인 것 같아요. 대학 다닐 때 프락찌 사건 같은 것도 많았잖아요. 저도 한번은 감옥에 잠깐 들어갔다 나왔는데, 주위에서 자꾸 저를 프락찌로 몰더군요. 그런 일을 겪으면서 이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죠. ... 홉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했는데, 제가 보기엔 한국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의심'인것 같아요. 

진중권 전시장 벽에 미신과 종교에 대한 생각을 남기셨죠. ... "현대 과학기술의 반대편에 종교가 있다면, 종교의 반대편에는 미신이 있다. 나는 현대 과학기술도 싫고 제도종교도 싫다. 그렇다고 '미신'을 따를 수도 없다. 유물론자의 차가운 머리도 내 몫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현대 과학기술의 위험을 경고할 때의 종교는 좋다. 종교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미신은 좋다. 미신을 거부할 때의 합리적 사고는 좋다.
... 신학자 하비 콕스가 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지요. ... 왜 한국에서 기독교가 그토록 성공을 거두었는가 하는 물음에 ... 그 바탕에 샤머니즘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박찬경 저 역시 개신교 자체가 무속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오히려 자신을 더욱 더 강하게 미신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싶었겠지요. 바로 그 콤플렉스 때문에 다른 종교, 특히 무속을 굉장히 천시하고 악마화하는 폐쇄성과 편협성으로 흐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외수는
뭐랄까, 딱히 할 말이 없다. 그의 작품도 읽은 적이 없고, 심지어 우리나라 트위터 계정 3개중 하나는 팔로잉 중이라는 그의 계정도 들어가본 적이 없기때문인데, 그래도 기억에 남는 문장은 있다. 최근 서린언니와 함께 얘기했던 부분.

이외수 ... 저는 책을 읽고 감동받은 후에 글을 쓰고 싶어지면 안 씁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림에서 얻어온 일종의 지혜인데, 좋은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그리면 반드시 그 그림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한 것이 나오지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이 나오지는 않아요. 따로 쓰거나 그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때 해야지, ... 그때는 조심합니다. 그냥 좋아하는 것으로 끝내야 해요.


승효상의 이름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듣게 된 건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주 과거(래봤자 중학교 2학년)에 건축가가 꿈이었던 적도 있다. 그러니까 내 꿈이란 건 늘 '그림' 주변을 맴돌았는데, 뭔가 그려내고 싶다는 욕구가 늘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붓대신 펜이나 마우스를 쥐고 있지만.

승효상 인터뷰가 이 안에선 가장 좋은데, 이건 너무 졸린 관계로 내일 마저 적기로 한다.
다들 평안한 밤 되시기를.





2015. 4. 14.





원망 안 하면서 살기로 
한 열 셋쯤에 결심한 것 같은데,
연을 다 끊지 않고서야, 이건 너무 지키기 어렵다.




2015. 4. 7.




1.
제 취미이자 특기는
사람.



2.
만나서 식사 한 끼,
그러니까 주말 늦은 점심 같이 하면 딱 좋겠다, 싶은 사람이 있는데,
아무것도 묻지 말고, 주말에 밥 같이 드실래요? 그래줬음 좋겟따아-







박애주의는 짝사랑보다 비참하다.
박애주의는 결국 자기위로 밖엔 안 된다.






너와 나의 관계는 이러하다.



1.
너는 먼저 연락한다. 사실 순서랄 것도 없다.
누가 묻지 않아도 일어나면 일어났다, 밥을 먹으면 밥을 먹을거다,
다 먹고 나면 화장실에 갈거다, 샤워한다, 양치한다,
알몸으로 자고 일어나 옷을 입는 과정부터 발가벗기까지 그 모든 걸 나와 공유한다.
처음엔 뭐하는 자식인가 싶었고, 조금 뒤엔 뭐하는 자식인지 궁금해졌고, 결국에는 뭐하는 자식이든 알게 뭐야, 좋으면 그만이지, 그렇게 되었다.
언젠 뭐 안 그랬나. 
나는 네가 아들같고, 남편같고, 애인같고, 친구같고, 오빠같고, 나 같다. 이런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에게 내 인생을 맡기고 싶다는 탈출구로써의 연애나 결혼이 아니라 정말 너와는 동등하고도 다른 이성으로 엮여있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그래도 이따금 한번씩 우리도 언젠간 서로를 잊을거라고 너에게 말하며 나에게도 우리 관계의 취약점을 상기시켰다.
그래도 너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나도 아주 잠시 슬펐다 또 좋다고 헤헤거렸다.

우리는 그 오랜동안 단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다.



2.
너는 간간이 연락해왔다.
바다 근처에 사는 너는 밤바다를 보다 말고 "너에게 달무리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놓곤 사나흘씩 연락을 받지 않았다.
나 역시 잠잠하다 서문부터 "외롭다, 우울하다, 슬프다, 보고프다" 칭얼거리면 너는 내가 잠들때까지 조근조근 어르고 달래주고 만나면 꼭 안아주겠다고 약속해준다.

너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3.
너는 죽어라 연락하는 일이 없다.
내가 참다 참다 한 마디 하면, 부처님 손바닥 내려보듯 나를 귀여워한다. 
얄밉다. 디지게 밉다.

그래서 자꾸 떡을 주게 된다.




2015. 4. 6.




사실 쓰고 싶은 글이 몇개가 밀려 있는데,
요새 피곤해서 자꾸 못들어온다.

임시보관함만 자꾸 쌓이고.

'니'들 얘기가 쓰고 싶은데, 이번 주엔 쓸 수 있겠지?
하루 휴가 낼까.


기왕 늦은 김에, 오늘 짧은 거 몇개만 올리고 자야겠다.
오야스미-








1.
사람에게
사람만큼 잔인하고,
사람만큼 흥미로운 존재는 없다.



2.
아웃사이더를 자초하는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기보다 정치적 동물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개인이 둘 이상 모이는 집단에선 늘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가를 두고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또래집단도, 동급생도, 연인도, 회사도, 그 어디에서나.
그 긴장상태에 염증을 느끼거나 힘싸움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경우 정치적 망명, 이탈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게 아싸.



2-1.
마르크스는 이러한 망명자들에 대해 예견하지 못했겠지?



3.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아이디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이름의 이니셜이나 생년월일, 좋아하는 캐릭터. 그런 것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아이디로 주인의 성향이나 성격 또한 어림짐작 해볼 수 있다. 
그리고 SNS의 팔로잉 리스트는 그 사람의 관심사나 취향에 대해 생각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온리인이란 공간에 얼마나 많은 빵가루를 흘리고 다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4.
뭐든 너무 열심히 하면 
(보는 사람도) 재미없어진다.



5.
우리는 목전에 두고도 놓치는 것이 얼마나 많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