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31.

명함





일이 자주 들어오는 건 아닌데,
그래도 종종 명함을 부탁하는 분들이 계셔서
12월부터 윤경이에게 명함 디자인을 부탁했다.

하지만 1) 내가 별 생각이 없고 2) 윤경이에게 자꾸 명함 이외의 일을 하자고 해서
ㅋㅋㅋㅋㅋㅋ
이제서야 마무리 단계.

고 쪼꼬만 거 하면서 윤경이한테 왜 내가 생각하는 박은 안 되냐, 왜 오로라는 없냐, 왜 내가 찾는 색은 없냐 등의 인쇄소에서도 대답 못하는 문제로 들들 볶아댔다.

오늘은 폰트를 결정했는데,
역시 디자인 중 가장 과소평가 받는 디자인은 폰트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이름에 넣을 명조체를 찾다 너무 예쁜 폰트를 발견했고,
33,000원짜리 폰트는 실제로 살까 말까 고민중.







안그라픽스에서 판매하는 안삼열체. 110,000원







같은 곳에서 판매하는 고운한글바탕체. 33,000원


전에도 안상수의 인터뷰를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특히 한글 폰트에는 일반 사용자에겐 안 보이는 고민들이 담겨있다. 자음과 모음의 조화, 받침 위로 올라가는 초성과 종성의 안정감, 글자와 글자 사이의 조화, 가로획과 세로획, 가로쓰기와 세로쓰기, 문장 내에서의 중심축까지 모두 고려하여 수십번씩 깎고, 자르고, 붙였다 떼가면서 만든다고 한다.

글자가 마무리 되면 숫자로 구현되는 폰트의 모습과 영문 폰트까지 작업한다는데,
1년에 하나라도 나온다면 참 대단한 일이겠다 싶은 디자인 작업이다.

하지만 그런 폰트를 가격을 지불해서 사야하는 상품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기사, 얼마전까진 OS를 돈 주고 사는 거란 인식도 별로 없었으니까.

안삼열체는 안정적이고 힘있다. 
고운한글바탕체는 책 만들기에 좋겠다. 다정하고 단정한 글자 같아.

크, 봐도 봐도 좋으네.





2018. 1. 30.

장필순, 어느 새







장필순, 어느새


작년 여름에 요팟시에서 듣고 꽂혀서
8월 절반은 이 노래만 들었다.

어느 순간 사라지는 능력들이 있다. 근육이라고 해야할까.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어느 순간 뒤적거려보니 주머니에 없다.
'어?...'

특히나 20대 초반에 느끼던 격정적인 감정, 여리고 민감했던 감성,
고르고 고른 예쁜 말로 포장해내던 능력.

언제부턴가 그런 게 느껴지질 않는다.
뭐라도 적기 시작하면 내 것이 아닌 감정을 흉내내고 있다는 게 내 눈에도 보인다.

원래도 물욕이 별로 없어서 뭘 잃어버려도 크게 상심하지 않는다.
언제든 빈 주머니엔 새 것이 찬다.

30대가 되고 20대엔 없던 전혀 새로운 것들이 생겼다.
자아 인식, 안정감, 절대적 시간과 노력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 그리고 목표.


선우정아의 그러려니랑 같이 들으면 좋을 노래.




2018. 1. 27.

가난한 사랑 노래




하루는 네가 술에 취해서,
이번달 카드값을 막느라 월세를 동생에게 빌렸다면서 씁쓸하게 웃었어.
차마 울지 못해 웃었겠지. 

가난한 얘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하기 힘든데, 네가 네 한달치 가난을 나에게 알려줘서 사실 기분이 좋았다고 하면 난 못된 애야?
그런 네 바닥을 얼마든 더 보고 싶다고 하면 난 모자란 앤가?



2.
나는말이야, 연애든 뭐든, 돈 걱정은 별로 안 해. 내가 지금 경제력이 200%라는 건 아닌데 돈은 필요한 만큼은 벌 수 있을 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어. 여태 그렇게 모진 삶을 살면서도 굶은 적은 없거든.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말이 통하는지, 예의 바른지, 생각이 예쁜지, 그런 걸 더 보게 되더라고. 돈이야 잘 벌면 좋지만, 그건 언제든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잖아.

역시나 몸에 걸친 것보다 몸에 밴 게 더 탐나는 사람이 좋아.



3.
나는 사실 네가 나만큼은 벌었으면 좋겠어.
사실 조금 더 벌면 더 좋겠어.
그래서 내가 너랑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너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네가 하고 싶은 게 생겨도 내 눈치 보지 않고 말할 수 있게.
우리가 하고 싶은 게 늘 검소하고 순수할 순 없으니까.

나는 이제 이런 내가 속물이라고 생각 안 해.
이 세상 누구도 손가락만 빨며 살고 싶어하지 않잖아.
그렇다고 내가 크루즈를 타고 세계여행을 가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선택지 앞에서, 고민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어. 그것뿐.



4.
네 소소한 습관들이 궁금해.
책을 읽을 때 맘에 드는 문장마다 밑줄을 긋는지, 책장을 덮기 전에 모서리를 접는지, 가름끈을 끼워두는지,
음악을 들을 땐 눈을 감는지, 스피커와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이 다른지,
샤워를 할 땐 어디서부터 거품을 묻히는지, 치약은 얼마나 짜는지.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는 벽을 마주하고 모로 눕는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언제를 가장 많이 회상하는지,
그 틈에 내가 끼어들기도 하는지.



5.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랑 되게 친해지고 싶었어.
그 얘길 했을 때 왜 먼저 말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잖아.
그때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

사실은 네가 술을 너무 자주 마셔서요, 그게 사실 너무 무서워서요, 라고 했어야 했는데.

심통 부리려고 연락했더니
술 취하지 않은 내가 세련된 것 같다고 했던 너.
술 취하지 않으면 나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 너.

둘 다 꽝이야.



5-2.
그래도 난 너 재밌어.










1.
어느날 갑자기 
어디선가 굵은 줄이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게 우리 관계라는 생각을 했다.

너와 나 사이에 몇 가닥이 놓여있는지 몰라도
가장 두껍게 꼬아놓은 그 끈이 끊어진 듯 했고
'끝이구나' 통감했다.

가슴 한 가운데에 시속 140km짜리 야구공을 맞은 기분이었다.
숨이 컥.
얕은 숨이 억.

나는 그래도 계속 쾌악일래. 인생이 아무것도 안 주더라도 그거 하나는 가질래.



2.
사랑이 필요할 때만 사람을 찾는 버릇이 있다.
나쁜 버릇 같다.
버리고 싶은데.



3.
좋아한다고 엉엉 울어놓고
일주일도 못가 대수롭지 않아졌다.
난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인간인가.



4.
내 생에서 '사랑'이라는 게 점점 '평범한 인생'과 비슷한 관념처럼 느껴진다.
분명 곁에 존재하지만 내 것은 될 수 없는 것.
평행 세계에 존재하기에 결코 만날 수는 없는 것.



5.
"끝났어요" 했을 때,
넌 늘 너한테 해야 할 말을 나한테 하더라.



2018. 1. 23.

내가 아는 오즈 야스지로





















1.
오즈 야스지로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아마 2009년.
난생 처음 영화제라는 데에서 대외활동을 하면서 영화를 취미 삼아 특기 삼아 사는 사람들을 알게 됐고, 그 덕분에 외계어 같은 이름을 가진 영화 감독들도 알게 됐다.



2.
오즈 야스지로는 전해오는 얘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는 감독이었다.

"남녀가 단 둘이 저녁 식사를 세 번 하고도 아무 일이 없었다면
그 둘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암요 암요 하고 무릎을 탁 쳤지.



3.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을 한다길래 꼭꼭 기억해뒀다.
저번 에릭 로메르처럼 놓치면 안되니까.

노년의 상실, 이별, 헤어짐 같은 걸 다룬 작품보단 좀 더 밝은 걸 보고 싶어서
컬러이면서 명랑한(?) 작품만 골랐다. 그리고 기왕이면 토크가 있는 걸로.

지난주엔 "꽁치의 맛"을 봤고 이번주엔 "안녕하세요"를 봤다.

꽁치의 맛 끝난 뒤 토크는 솔직히 1도 못알아 듣고 계속 졸았는데,
이번주 윤가은 감독의 토크는 박수 짝짝 하며 들었다.


윤가은 감독은 몇년째 새해 첫날엔 이 영화를 본다는데, 어느 해에는 색감에 꽂혔다가 또 어느 해에는 '아, 이 영화 사랑영화였구나' 한단다.


나는 그 '사랑 영화'에서 좀 더 가서 '관계에 대한 영화'구나, 라면서 봤다.
어른들도 쓸데없는 말 하잖아요! 하면서 소리지르던 이사무(사진 속 귀요미) 형의 대사나 영어 과외 선생님과 그의 누나가 "그렇지. 어른들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지. 그게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하니까. 정작 해야 할 말은 못하면서." 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때도

'나는 왜 자꾸 필요한 말만, 쓸모있는 말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자문했다.

날씨가 좋네요, 하고 말을 걸 수도 있는 일이고
2주 전에 연락한 사이었어도 나연 씨, 잘 지냈어요? 할 수도 있는 일인데.

정작 해야 할 말이, 듣고 싶었던 문장이 새빨간 전구처럼 반짝거릴 수 있었던 건 전부 그 불필요해보이는 윤활유들 덕분이었을텐데.



4.
그래도 꼭 필요한 말만, 꼭 필요한 양의 윤활유만,
친절하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5.
남녀 삼석식론만으로 표현하기엔 너무 아까운 감독, 오즈 야스지로



6.
그리고 속이 텅 빈 초콜렛을 집어들기엔 너무 아까운 내 인생.




2018. 1. 19.

작업실




계속 작업실을 찾고 있습니다.
근데 다들 작업은 왜 다 홍대에서만 하시는 겁니까?


왕십리 근처에서도 좀 해주라주...
학교 근처나...
한달에 20이하로...

흐규흐규흐규




2018. 1. 18.




너한테 얼굴 파묻고 싶어.
알지?.




근황




1.
몸이 계속 안 좋습니다.
선생님 만난 날도 사실 아침에 급체해서 오전 내내 토하고, 한의원 가서 누워있었는데
그 다음날부턴 목감기, 비염에
오늘도 또 소화가 안 되고.

저는 이게 다 겨울이라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겨울을 싫어하는 건 진짜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이라고요!!!!!!!!!1



2.
아, 선생님 만난 얘길 여기 못했네.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선재쌤을 만났습니다. 거의 2년 만인가봐요.
선생님은 여전하셨습니다.
미소년, 도련님의 모습. (심지어 선생님이랑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해 얘기하다 선생님도 약간 도련님... 했더니 순순히 인정하심. 선재쌤은 로봇보단 도련님이 더 잘 어울려.)

선생님은 똘레랑스가 모자란 나연에겐 좋은 연애가 필요하다며
그때와 똑.같.이.
어서 연애하라고 하셨지만
제 지난 얘기와 이상형에 대해 다 듣고 나선

"나연이 찾는 사람을 만나긴 힘들겠네요. 그런 사람을 만난다 해도 나연이 그 사람을 좋아할 확률도 높진 않을 겁니다."

하셨다.
이상형이 까탈스럽다거나 허무맹랑하단 얘기는 아니셨다.
정말 순수하게 '한국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남성'이라는 점에 공감하시고 고개를 주억거려주셨지.



3.
그나저나 선생님 나랑 10살 차이도 안 나는 거 실화?

선생님이 처음 '교수'의 타이틀을 달고 우리 앞에 섰을 때가 서른 둘이라셨다.
나는 서른 둘에 어떤 사람으로 누구 앞에 서 있게 될까?



4.
"선생님, 제가 그때 했던 말 기억하세요? 그러고 나서 혼자 그랬거든요. 만 서른이 되기 전에 반드시 학교로 돌아가자. 근데 이렇게 진짜 학교엘 가네요."
"그러고 보니 나연은 나연이 한 말을 지킨거네요? 대단하군요. 자랑스러워 할만한 일입니다. 정말이에요. 자랑스러워 해도 돼요, 나연."

"저는 사람을 볼 때 눈을 많이 보는 타입인데요, 눈을요. 근데 나연은 좋은 눈을 가졌습니다. 제가 아까 말한 그 총기 같은 거요. 총기가 가장 좋은 단어겠네요. 나연은 잘 해낼 겁니다."

"근데, 정말 많이 안정된 표정이에요. 많이 편안해졌네요. 지금은 약간 머리색 같은 색깔입니다. 2년 전엔 보라색 같았는데. 바디감이 묵직한 사람이 됐어요."



5.
선생님, 제가 정말 너무 많이 좋아해요. 흑흑흑
선생님과 맞먹을 뻔한 제일 늙은 제자가...




2018. 1. 3.





요즘 자꾸 그 사람이 생각나는데,
내가 지금 그리운 게 그 사람인지, 걔 몸인지 좀 헷갈려.

근데 그 둘이 굳이 다른 건지 난 잘 모르겠어.

살냄새, 살결, 몸짓, 선, 다 그 사람 건데, 
그게 그립다고 해서 굳이 그 사람이 그리운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2.
너는 자제력에 대한 강박이 있으면서도 네 몸에 대해선 무관심하더라.
집중에 방해된다며 작업 중엔 음식물 섭취도 제한하면서
몸 밖에서, 혹은 피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네 육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는 무지한 사람 같았어.

그 미지의 대륙을 발견한 건 나야. 
지도를 그리듯,
하나 하나,

내 혀가 네 몸을 외웠어.

네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3.
할머니는 고기반찬을 열심히 집어먹고 있는 나를 보며 종종 그러셨다.
남의 살이 달지?

그러게, 남의 살은 왜 달아가지고. 좀 쓰지.



4.
저도 야한 얘기 좋아요. 재밌어요.
근데 제가 여기다 쓰는 얘기가 다 '제 얘기'는 아니에요.
그러니 읽을 땐 제 얘기라 생각하지 말고 '내 얘기'처럼 읽어주세요.


그럼 이만 총총.







새해 계획은 없는데 

대학원을 졸업하고, 2년간 인하우스로 일하면서 학자금 다 갚고, 1년 돈 좀 모으고, 만 서른 다섯에는 맘 잡고 1년만 글 쓰기

가 하고 싶습니다.




2.
작년 이맘때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고 빌었는데
올해는 시험에 들어도 어쩔 수 없으니 다만 새로운 악은 만나지 않게 하시옵소서.



3.
학교, 회사, 건강.
그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