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27.

가난한 사랑 노래




하루는 네가 술에 취해서,
이번달 카드값을 막느라 월세를 동생에게 빌렸다면서 씁쓸하게 웃었어.
차마 울지 못해 웃었겠지. 

가난한 얘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하기 힘든데, 네가 네 한달치 가난을 나에게 알려줘서 사실 기분이 좋았다고 하면 난 못된 애야?
그런 네 바닥을 얼마든 더 보고 싶다고 하면 난 모자란 앤가?



2.
나는말이야, 연애든 뭐든, 돈 걱정은 별로 안 해. 내가 지금 경제력이 200%라는 건 아닌데 돈은 필요한 만큼은 벌 수 있을 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어. 여태 그렇게 모진 삶을 살면서도 굶은 적은 없거든.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말이 통하는지, 예의 바른지, 생각이 예쁜지, 그런 걸 더 보게 되더라고. 돈이야 잘 벌면 좋지만, 그건 언제든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잖아.

역시나 몸에 걸친 것보다 몸에 밴 게 더 탐나는 사람이 좋아.



3.
나는 사실 네가 나만큼은 벌었으면 좋겠어.
사실 조금 더 벌면 더 좋겠어.
그래서 내가 너랑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너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네가 하고 싶은 게 생겨도 내 눈치 보지 않고 말할 수 있게.
우리가 하고 싶은 게 늘 검소하고 순수할 순 없으니까.

나는 이제 이런 내가 속물이라고 생각 안 해.
이 세상 누구도 손가락만 빨며 살고 싶어하지 않잖아.
그렇다고 내가 크루즈를 타고 세계여행을 가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선택지 앞에서, 고민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어. 그것뿐.



4.
네 소소한 습관들이 궁금해.
책을 읽을 때 맘에 드는 문장마다 밑줄을 긋는지, 책장을 덮기 전에 모서리를 접는지, 가름끈을 끼워두는지,
음악을 들을 땐 눈을 감는지, 스피커와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이 다른지,
샤워를 할 땐 어디서부터 거품을 묻히는지, 치약은 얼마나 짜는지.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는 벽을 마주하고 모로 눕는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언제를 가장 많이 회상하는지,
그 틈에 내가 끼어들기도 하는지.



5.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랑 되게 친해지고 싶었어.
그 얘길 했을 때 왜 먼저 말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잖아.
그때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

사실은 네가 술을 너무 자주 마셔서요, 그게 사실 너무 무서워서요, 라고 했어야 했는데.

심통 부리려고 연락했더니
술 취하지 않은 내가 세련된 것 같다고 했던 너.
술 취하지 않으면 나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 너.

둘 다 꽝이야.



5-2.
그래도 난 너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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