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즈 야스지로의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아마 2009년.
난생 처음 영화제라는 데에서 대외활동을 하면서 영화를 취미 삼아 특기 삼아 사는 사람들을 알게 됐고, 그 덕분에 외계어 같은 이름을 가진 영화 감독들도 알게 됐다.
2.
오즈 야스지로는 전해오는 얘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는 감독이었다.
"남녀가 단 둘이 저녁 식사를 세 번 하고도 아무 일이 없었다면
그 둘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암요 암요 하고 무릎을 탁 쳤지.
3.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오즈 야스지로 특별전을 한다길래 꼭꼭 기억해뒀다.
저번 에릭 로메르처럼 놓치면 안되니까.
노년의 상실, 이별, 헤어짐 같은 걸 다룬 작품보단 좀 더 밝은 걸 보고 싶어서
컬러이면서 명랑한(?) 작품만 골랐다. 그리고 기왕이면 토크가 있는 걸로.
지난주엔 "꽁치의 맛"을 봤고 이번주엔 "안녕하세요"를 봤다.
꽁치의 맛 끝난 뒤 토크는 솔직히 1도 못알아 듣고 계속 졸았는데,
이번주 윤가은 감독의 토크는 박수 짝짝 하며 들었다.
윤가은 감독은 몇년째 새해 첫날엔 이 영화를 본다는데, 어느 해에는 색감에 꽂혔다가 또 어느 해에는 '아, 이 영화 사랑영화였구나' 한단다.
나는 그 '사랑 영화'에서 좀 더 가서 '관계에 대한 영화'구나, 라면서 봤다.
어른들도 쓸데없는 말 하잖아요! 하면서 소리지르던 이사무(사진 속 귀요미) 형의 대사나 영어 과외 선생님과 그의 누나가 "그렇지. 어른들은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지. 그게 삶의 윤활유 역할을 하니까. 정작 해야 할 말은 못하면서." 하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때도
'나는 왜 자꾸 필요한 말만, 쓸모있는 말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자문했다.
날씨가 좋네요, 하고 말을 걸 수도 있는 일이고
2주 전에 연락한 사이었어도 나연 씨, 잘 지냈어요? 할 수도 있는 일인데.
정작 해야 할 말이, 듣고 싶었던 문장이 새빨간 전구처럼 반짝거릴 수 있었던 건 전부 그 불필요해보이는 윤활유들 덕분이었을텐데.
4.
그래도 꼭 필요한 말만, 꼭 필요한 양의 윤활유만,
친절하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5.
남녀 삼석식론만으로 표현하기엔 너무 아까운 감독, 오즈 야스지로
6.
그리고 속이 텅 빈 초콜렛을 집어들기엔 너무 아까운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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