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14.



1.
샤워하고 나와서 물기를 닦다 거울을 봤는데,
거울을 등 지고 선 내 어깨선이 너무 예뻐서 우쭐했다.
그 와중에 '그날, 어깨 너머로 대화할 걸'하며 당신을 생각했다.


2.
그 생각한지 5분이 채 안되었을 때,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나는 물기를 다 닦고 머리를 말리는 중이었고 그 아이는 샤워장에 들어가려고 옷을 벗고 있었다.
그냥 거울 보며 머리를 말리다 힐끔 봤는데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아이가 나보다 가슴이 컸다.

여자들도 목욕탕에서 자존심이 상한다.


3.
딱히 내가 빈하다는 건 아니고...
뭐, 그렇다고 걔가 엄청 글래머였다는 것도 아닌데.
걔는 어쨋건 더 클거잖아...


4.
속옷을 입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013. 6. 11.

Honestly,



- 아, 자전거 타세요?
- 네, 음, 자전거 종류 얘기하면 알려나? 자전거 중에 기어가 고정된게 있어요. 픽스드 기어라고.
- 아, 픽시요?
- 그쵸, 픽시라고 하는 거. 그거 타면서 알게 된 친구들이에요, 얘랑 여기 친구도. 
- 아아. 
- 자전거 타요?
- 아니요. 한 번 타다가 크게 넘어진 적 있어서 무서워서 못타요. ㅎㅎ 근데 픽시는 어떻게 다른 거예요?
- 아, 이게 기어가 고정돼있다보니까 사실 타기 좀 힘들어요. 자전거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자전거 프레임이나 이런 거 보고 그 룩을 원하는데 막상 타보면 자기가 발을 굴려야 가고 아니면 바로 서버리니까. 이걸 어떻게 생각하면 되냐면, 왜 뒤로 가는 자전거 있잖아요. 그런 식이에요. 앞으로 밟으면 앞으로 가고, 뒤로 하면 뒤로 가고. 그래서 사실 타기는 힘든데 그 재미를 알기 시작하면 되게 재미있어요. 
- 오, 되게 정직한 자전거네요.
- 흠, 그런 셈이죠?




2013. 6. 4.



 Moonrise Kingdom, 2012, Wes Anderson





- Can you french-kiss?
- I think so. Is there any secret to it?
- The tongues touch each other.
- Okay, let's try it.

- It feels hard.
- Do you mind?
- I like it.


A record player, chanson, beach, undressed, dancing, and you.

모든 영화의 결론을 you로 결부시키는
이 엿같은 (짝)사랑!!!!




+


From head to toe,
할배 넘 귀여우심. 저 신발 신으면 물 위에서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2013. 6. 3.



-언니, 언니는 언니가 태어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음, 어떤거?
-그러니까, 종교적으로 말하면 소명이라고 하거든요.
-아, 천명 같은거?
-
-너는 뭔거 같은데?
-저는, 그러니까 뭘 하던간에, 베이스에는 그런게 깔려있거든요,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 그게 어떤 방식이 되건간에 다름을 만들고 싶은거? 그래서 로이터에서 기자활동을 막 하고 싶다, 세상에 이런 것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려서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그런 거요.
-나는, 흠. 지키고 싶어. 내가 마라톤을 막 뛰면서 깨달은건데, 막 사람들 자기 등판에 문구같은거 새겨주는 이벤트 같은 거 했었단 말이야. 그래서 티셔츠 뒤에 막 응원 문구같은게 적혀있는데, 그 마라톤이 여자만 10000명 참가하는 거였거든. 문득 아 진짜 대단한다, 이 여자들은 다 어디서 뭐하다가 이걸 뛰겠다고 이렇게 나왔지? 싶은거야. 아 여자는 강하구나. 아름답다.
그래서 그런걸 지켜주고 싶어. 지켜주고 싶은게 뭔지 모르겠는데, 꿈이나 이상, 순수, 막 남들 비웃는 그런 거 있잖아,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믿음이나, 그런 아름다운 것들. 그런 걸 다 지켜주고 싶어. 그게 막 내 과거를 다 까발려가면서, 남들이 차마 못하는 말을 내가 막 다 해서 내가 다 발가벗겨져도. 요즘 글 쓰면서 그 생각 하거든. 그리고 위로가 되고 싶어.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어.



-고해성사 할 때요, 거기 들어가면 클리넥스가 있거든요. 막 시작도 하기 전에 그냥 그 분위기에 압도되서 막 눈물이 나요. 그럼 "엉엉, 신부님 엉엉" 그러면서 말하는거죠.
-아 근데, 그 고백을 한다는 게 정말 힘든거거든. 그럼 이게 인정을 해야 하는 거잖아. 내가 무슨 짓을 했건 그냥 내 기억 속에서 지우고 모르는 척 하면 내 세상엔 없던일이야, 그러고 살 수 있는데 고백을 한다는 거 자체는 내가 인정한다는 거잖아. 그게 진짜 대단한 건데.
-그래서 그게 되게 어려워요.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하는데 뭘 잘못했는지부터 다 생각을 해야하니까.
-나는 그런 생각 한 적 있거든. 내가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한 게 있는데, 그러니까 나는 약간 그걸 내 인생에서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말았는데, 그래도 나 답지 않은 무언가를 했다는 '기억'이 있으니까. 그런걸 언젠가 누구한테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런 생각. 



-상처 안 받는다는 거 되게 자랑인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 있잖아.
-맞아, 맞아. 그런 사람들 보면 좀 안쓰럽지 않아요?
-그게, 그니까, 그런 사람들은 막 사람들한테 기대 안하고, 쉽게 쉽게, 그래서 상처 안받는다, 그래서 좀 아쉽긴 하지만 이게 되게 편하다. 넌 상처받았다고 징징거리기만 하고 왜 고치질 않느냐, 이런 식으로 말한단 말이야? 나는 '상처받았으니까 날 어떻게 해줘봐,' 이게 아닌데.
-맞아요. 그냥 아프다, 아픈 감정을 말하는 건데.
-그러니까! 근데 너무 웃긴 건 반대로 생각해보면 자기도 막 설레고 상처받고 그런게 그립다, 그러면서 자긴 안 바꾸잖아. 이게 편해, 난 이대로 살래. 아니 자기도 그렇게 무덤덤해지는 게 씁쓸하다면서 자기도 그럼 그런 말만 하지 말고 바꾸면 되잖아. 근데 난 그런 얘기 들으면 아, 그게 그 사람 성격이고 삶의 방식인가보구나, 그걸로 행복하다니까 됐지 뭐.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이렇게 반대편에 서서 안 봐줘. 그렇다고 내가 거기서 "아닌데요? 전 이대로도 행복한데요? 이게 뭐 어때서요?" 할 수도 없는게, 그럼 또 나만 옹고집 된다? 나만 이상한 애 된다니까 또?
-ㅋㅋㅋㅋㅋ 맞아 이렇게 좀 다양하게 봐주면 좋은데.


-근데 언니, 그 사람도 그런게 아닐까요? 자기가 너무 자기답지 않은 일을 한거 같아서 담날 생각해보니까 막 적응 안되고, 어쩔 줄 모르겠고 생각 안하고 싶고.
-그럴 수 있지. 그런 거면 차라리 다행인게 그럼 진짜 나쁜 사람인건 아니잖아. 그런 일이 늘 있던 일인게 아니라는거니까.
-그죠. 안해본 일이었다는거니까.
-근데 내가 바라는 건 그런거지.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진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주 조금만 용기? 여튼 좀. 아무렇지 않게 해주면 좋을텐데. 나한테 편하게 얘기해도 들어줄 수 있는데, 그 사람은 그걸 모르니까. 한 번은 더 만나서, 아 그냥 나는 친해지고 싶어. 뭘 어떻게 하자는게 아니라.






1.
사람을 처음 만나면 잊지 않고 
"꿈이 뭐예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런거요"를 물어봤다.
내가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꿈, 사랑, 행복이었으니까.

요즘은 이 찰나의 질문이 온종일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정신나간 사람처럼 밖으로 나돌고 사람들을 만나 쉰소리를 해댄다.
그러면 잊혀지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나 집으로 돌아와 밤이 되면 또 온전히 나만의 시간.
잠이 오질 않는다. 잃어버린 USB/열쇠/핸드폰/지갑/반지가 도대체 어디로 간걸까, 마지막으로 손에 쥐고 있던 순간과 위치를 기억해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밤들이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 

문제는 열쇠나 핸드폰, 지갑같은 건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다는 거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

그 잃어버린 스피릿이, 결국 이거였던걸까.


2.
날이 좋다.
좋은 걸 좋다고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인간으로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역시 인생의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2013. 6. 2.

Four Seasons


계절은 돌고 도는데도
단 한 번도, 어느 누구도, 매해 같은 계절을 보내지 않는다.

역시나 인생은 타이밍, 선택은 순간이다.
카르마. 


1.




2.
수평선도 사라질듯 어두운 쪽빛 하늘과 바다를 말 없이 바라보고 있을 수 있던 그 조그마한 시간들.
그리고 그 곳에 앉아 당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당신과 만난 여름.

그러다 당신의 사진 속에서 본 야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당신이 그 야상을 입은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겠지, 생각하다 문득 


바람이 불고 쌀쌀해질 때
당신이 어떤 옷을 어떻게 입는지 결국 보지 못해서,

어느 다른 계절에 우연히 당신을 마주쳤을 때 
내가 당신의 옷을 알아 보지 못한다면 

참 슬프겠다.

해운대 고고한 밤 바다를 바라보며 그 생각을 했어요.
계절이 변하는 것도 같이 보지 못한 채 헤어지는 사람들은 
참 안됐구나, 
계절이 변했다는 것을 나는 사람들의 옷에서 발견한 적이 많으니까, 

이런 잡다한 생각들.



3.
부산에 있을 적 나의 옆자리엔 수정언니가 늘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같이 위태로운 모습으로 타자를 두드리고 전화를 했다. 

영화제가 끝나고 어느 날, 단 둘이 점심시간에 웨스틴 조선까지 택시를 타고 가 

진한 치즈케익에 커피 한 잔하고 들어오며 "우리 참 호사부리네요," 하고 웃었다.
웨스틴 조선은 사무실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수정언니는 
"전에 나연씨가 그랬잖아요, 어려서부터 좋은 데 가고 좋은 걸 먹고, 보고, 부모님 덕에 너무 많이 해봐서, 나는 내 스스로 누릴 형편도 안 되는데 막 생각난다고. 나 그 말 뭔지 알아요. 그럼 막 자신한테 화 나지 않아요?" 하며 슬픈 얼굴로 웃었다.


센텀 신세계에 갈 때마다 시간이 없어 쇼윈도 앞만 서성이던 패이야드의 나폴레옹을 먹고나니 
부산 유명 빵집 Ops도 생각나고 화창한 부산의 여름,  
그리고 수정언니와 "우린 입맛만 고급"이라고 스스로를 비웃으며 걸었던 말간 가을 오후가 떠올랐다.


4.
그러고보니 그 친구는 새해가 오면 나와 손 잡고 일본여행 갈 날을 기대하고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름도 낯선, 하얀 눈 덮힌 유바리. 
누구에겐지, 혹은 무엇에게인지도 모르면서 괜시리 미안해져 어느 언저리가 콕콕 찔러댄다.

나는 그, 
오지 않을 미래를 대신해 찾아오는 가슴 저릿함을 아직 온몸으로 기억한다.


4-1.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줌 넣고
글씨도 쓰지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편지, 윤동주



epilogue

저 위의 '당신'이 야상 입는 것까지 보고 헤어졌다.
그런데 그 다음 해, 지난 여름에 입었던 것과 똑같은 옷과 가방을 매고 있는 그 사람을 보니

생각보다 기분이 별로였다.


2013. 6. 1.

When you say you miss someone, most of the time,
you miss the times that you and the person spent together, not the person.
Do not ruin your past by trying to bring things back to life. You cannot duplicate your past.

부정하고 싶겠지만 부정도 결국은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갖는 반감일 뿐이다.
그는, 그녀는, 
서로에게서 튕겨져 나간 그날 이후로 이미 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만나기만 한다면, 다시 만나기만 한다면,
그랬던 사람이 있었지. 암요.
다 다시, 더 잘, 그러니 그저 돌아오기만 하라고.

냉동고에 곱게 얼려둔 기억이고 사랑이라 해도 되살릴 수는 없어요.
아무리 유리에 서린 성에를 닦고 품을 쓸어보고 추억을 뒤져보고 눈동자를 바라본다고 해도
우리는 이미 다른 시공에 사는 사람들이더라구요.
우리에게 남은 건 우리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와 그녀라는 표상, "이러저러한 사람이었지"라는 미화된 이미지뿐.


하지만, 
더 모른척 해도 좋아요. 더 그리워 해도 좋아요.
나는 당신 그대로도 좋아요.

외로울 땐, 또 생각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