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

Four Seasons


계절은 돌고 도는데도
단 한 번도, 어느 누구도, 매해 같은 계절을 보내지 않는다.

역시나 인생은 타이밍, 선택은 순간이다.
카르마. 


1.




2.
수평선도 사라질듯 어두운 쪽빛 하늘과 바다를 말 없이 바라보고 있을 수 있던 그 조그마한 시간들.
그리고 그 곳에 앉아 당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당신과 만난 여름.

그러다 당신의 사진 속에서 본 야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당신이 그 야상을 입은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겠지, 생각하다 문득 


바람이 불고 쌀쌀해질 때
당신이 어떤 옷을 어떻게 입는지 결국 보지 못해서,

어느 다른 계절에 우연히 당신을 마주쳤을 때 
내가 당신의 옷을 알아 보지 못한다면 

참 슬프겠다.

해운대 고고한 밤 바다를 바라보며 그 생각을 했어요.
계절이 변하는 것도 같이 보지 못한 채 헤어지는 사람들은 
참 안됐구나, 
계절이 변했다는 것을 나는 사람들의 옷에서 발견한 적이 많으니까, 

이런 잡다한 생각들.



3.
부산에 있을 적 나의 옆자리엔 수정언니가 늘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같이 위태로운 모습으로 타자를 두드리고 전화를 했다. 

영화제가 끝나고 어느 날, 단 둘이 점심시간에 웨스틴 조선까지 택시를 타고 가 

진한 치즈케익에 커피 한 잔하고 들어오며 "우리 참 호사부리네요," 하고 웃었다.
웨스틴 조선은 사무실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수정언니는 
"전에 나연씨가 그랬잖아요, 어려서부터 좋은 데 가고 좋은 걸 먹고, 보고, 부모님 덕에 너무 많이 해봐서, 나는 내 스스로 누릴 형편도 안 되는데 막 생각난다고. 나 그 말 뭔지 알아요. 그럼 막 자신한테 화 나지 않아요?" 하며 슬픈 얼굴로 웃었다.


센텀 신세계에 갈 때마다 시간이 없어 쇼윈도 앞만 서성이던 패이야드의 나폴레옹을 먹고나니 
부산 유명 빵집 Ops도 생각나고 화창한 부산의 여름,  
그리고 수정언니와 "우린 입맛만 고급"이라고 스스로를 비웃으며 걸었던 말간 가을 오후가 떠올랐다.


4.
그러고보니 그 친구는 새해가 오면 나와 손 잡고 일본여행 갈 날을 기대하고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름도 낯선, 하얀 눈 덮힌 유바리. 
누구에겐지, 혹은 무엇에게인지도 모르면서 괜시리 미안해져 어느 언저리가 콕콕 찔러댄다.

나는 그, 
오지 않을 미래를 대신해 찾아오는 가슴 저릿함을 아직 온몸으로 기억한다.


4-1.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줌 넣고
글씨도 쓰지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편지, 윤동주



epilogue

저 위의 '당신'이 야상 입는 것까지 보고 헤어졌다.
그런데 그 다음 해, 지난 여름에 입었던 것과 똑같은 옷과 가방을 매고 있는 그 사람을 보니

생각보다 기분이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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