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24.
가나다라
예상과 달리,
생긴 것과 달리,
하고 다니는 짓과 달리,
혼자 있는 시간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책도 읽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회상도 하고 싶고,
그리움에도 젖고 싶고, 그러다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고도 싶으니까요.
(부끄럽지만 베갯잇은 사전 검색했습니다. 아, 근데 뭐, 부끄러워마세요. 얼토당토 않게 틀리는 것보다야 낫죠. 사전찾기의 생활화는 훨씬 유용하고 자랑스러워 할 일입니다.)
"쓴 걸 자꾸 고치지 말고 그냥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아야죠."
하루키 말고 작가가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글이나 책을 읽은 적이 없어
하루키의 말을 인용합니다.
"(영감을 잃지 않고 글을 쓰기 위해서) 매일 같은 시각에 약 한 시간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면 어떨까요? 글이 쓰기 싫다면 그냥 앉아 있음 됩니다. 대신 책을 읽거나 SNS 금지. 지속성, 일관성이 영감의 비결이죠."
감흥이 일지 않으면 글을 잘 못쓰는 타입이라,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한 것 같은데,
어쨋든 그래서 오래 전부터 가나다라, 순으로 아무 단어나 생각나는대로 정해서 ㄱ부터 ㅎ까지, a부터 z까지 써보고 싶었어요.
거창하게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못하겠고, 그냥 초단편이라고 하면 좋겠네요.
지금까지 온통 다 저에 대한 혹은 제 주변 사람들에 대한 글이었다면
가나다라는 제 자신과 자의식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글쓰기의 일환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집에오다 말고 문득 (또) 마르크스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물질을 기반으로 사회 변동과 역사의 전환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던 마르크스는 모든 체제 혹은 존재는 그 안에 자기부정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 했습니다. (음, 뭔가 다른 용어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헤겔의 변증법에서 발전시킨 이야기인데, 언뜻 복잡하고 철학적이고, 무엇보다도 겁나 지루하게 들리겠지만 인간이란 본디 태생부터 죽음을 안고 태어난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 단순하지만 강렬한 사상입니다. 강한 설득력을 가진 이론이나 사상이란 원래 단순하지만 심오한 법이죠. 여튼, 자기부정에서 출발하지만 나를 포기하지는 않는 길을 좀 찾아봐야 겠습니다.
학교 갈 준비를 해야지요.
:)
외면당해 외롭고 버려진 밤 같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냥 좀 울죠, 뭐.
오야스미나사이 ;)
2015. 8. 23.
On the course of a literary sub-genre pilgrimage,
1.
"책 재고 확인 좀 하려고 하는데요."
"네, 제목 말씀해주세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예요."
"......네?"
"...쏘...쏘프트웨허 객체희 생헤 주기..."
"컴퓨터 서적인가요?..."
"아... 아니요. 소설...인데..."
"......아... 제목 다시 한번만?..."
15 weeks ago
2.
아까 저녁 먹고 나서 정호오빠랑 아페쎄에 들려 샌들 한 켤레를 봤다. 아마 한 3개월은 눈독 들였던 것 같다. 버스를 탈 때까지만 해도 '그래, 열심히 번 돈으로 신발 한 켤레 산다는데, 뭐' 하면서 혼자 들떠있었다. 작년에 시작한 어린이 후원 금액을 만 원 늘리는 일을 두고는 그렇게 망설여놓고 50만원짜리 샌들은 살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버스에서 김운하씨 기사를 읽었다.
어려서는 막연하게 예술인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재능이 아닌 환경때문에 좌절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후원인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야망같은 건 어려서도, 한창 크고 있는 지금도 없지만 내가 구상해 놓은 일을 하려면 일단 돈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러면 큰 기업에 들어가야지, 그런 생각이었다. 이상주의자의 순진한 꿈같겠지만 영화제는 나에게 이상실현의 단초가 되었다. 지금은 먼 이야기. 언젠가 태용에게 우스개 소리로 이제 영화쪽 일은 그만 할거라고, 대신 돈 많이 벌어서 한국영화 두 번, 세 번씩 보겠다고 농담 같은 진담을 건낸 적도 있다. 물론 후원이라는 건 부유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케익 한 조각,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보다 연극 한 편, 책 한 권을 사서 보는 것이 더 즐겁거나 가치있다고 생각되면 그냥 그것부터 하면 된다.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이윤'이 아니라 장기적인 효용을 생각한다면 아이들 교육에 작은 보탬을 주어도 된다.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일에 자기가 가진 것을 조금만 나누면 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더 큰 단위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어떤 사건이 지속해서 발생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이건 구조의 문제고, 사회가,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이걸 적고 있는 지금도 사실 아페쎄 샌들은 사고 싶다. 기사를 읽고 어쭙잖은 양심의 가책과 책임감, 무능력함을 느끼다가도 내일이면 또 신발 생각이 날 것 같다. 잘 살고 싶은데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여전히 모르겠다. 근데 이 ㅆ, 나는 신발 한 켤레를 두고도 마음이 천근 만근인데 이 나라는 마른 논바닥이든 국민이든 다 죽어가는 데다 물대포로 속 후벼 파낸 것 말고 한 게 뭐야 도대체.
8 weeks ago
And, all on my instagram acct.
Captivated
a few things that captivated me for the last few months
1. Summer in real life: just a poor girl who has to reply to emails even after work with her iPhone. Poor thing.
2.
엔트로피와 오르테가 이 가제트: 이 책은 스페인의 유명(한줄도 몰랐었지만)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제트라면 역사를 "카리스마를 가진 소수의 엄청난 창조력이 대중에 의해 흡수되면서 무뎌지고 생명을 잃는 평준화 과정"으로 해석할 거라 추측했다. 인간의 창조력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인지 그 창의력의 가장 큰 원천인 사랑에 관한 연구를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제목도 글자 그대로 "사랑에 관한 연구"다. 참고로 오르테가 이 가제트가 모두 given name.
3.
무라카미 하루키의 질의응답: 올해 초였나, 한 일본 출판사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페이지를 운영했다. 영어를 잘 하는 작가의 외국어 실력 덕분에 꽤나 다양한 질의응답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라카미를 어마어마하게 좋아하는 국내 작가(라고 해도 되나) 임경선이 친절히 모든 응답들의 번역본을 트윗 해주었다.
임경선이 번역해놓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질의응답들. 이렇게 담백하게 사고하는 사람이라 그런 글을 쓰는거지.
(비문이나 번역체로 글 쓰는 걸 혹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임경선의 번역은 번역투 같지 않아 좋다. 원문을 다 해석할 순 없지만 좋은 번역같다.)
암요 암요. 그래서 제가 식물을 못 키웁...(?)
2015. 8. 18.
오늘은 감귤초콜렛 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
1.
제주도를 처음 가 본 건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이었다.
그땐 이토록 긴 인연이 될 줄 몰랐던 첫사랑 옆반 남학생을 막 알아가던 시기기도 했다.
짧은 곱슬머리에 꾸밀 줄도 몰랐지만 그래도 딴엔 예뻐보이고 싶어 새 옷에, 새 운동화에, 렌즈까지 끼고 갔던 수학여행. 하지만 그 남자아이가 같은 반 여자아이와 단체 활동에서 이탈 했다는 소리만 2박 3일 내내 듣고 있어야 했다.
그 와중에 제주도 친가 식구들은 3년 만에 조카를 만난다며 숙소까지 찾아왔다. 사는 곳도 멀기만한 그쪽 식구들과 나 사이에 공통분모라곤 아빠뿐인데, 그 공통분모가 증발해버리고 나니 딱히 서로 볼 일이 없었다. 특히나 이제 한창 사춘기 짝사랑의 열병을 앓는 여고생이 얼굴 마주할 기회도 없는 고모들에게 시간내어 연락한다한들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그래도 친할머니, 고모, 고모부는 서귀포에서부터 제주시 숙소까지 달려와 한라봉 한 박스와 도톰한 돈 봉투를 손에 쥐어주고 가셨다. 한라봉도 돈 봉투도, 그리고 그 물건들 위에 잔뜩 올려진 그들의 미안함도 나에게는 다 너무 무거웠다. 고마우면서 싫고 궁색해서 슬펐다.
다음 날, 나는 낮술 한 취객처럼 전날 받은 돈을 아무데나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관광코스 초입길에 쪼그려 앉아 한라봉을 파시던 아주머니한테 한라봉 한 박스를 사고, 그 다음엔 관광버스 대절 업체의 친척뻘이 운영하는 곳이 분명하리만큼 후질구레한 기념품 가게에서 감귤초콜렛과 백년초 초콜렛 네 박스를 샀다. 내 짐이 작은 캐리어 하나에다 한라봉 두 박스와 초콜렛 네 박스로 늘어났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는 아니었지만 집에 도착하니 감귤초콜렛은 절반 정도가 녹았다 다시 굳어 포장지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에게 수학여행 후 남은 돈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밝히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그러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콜렛도 나 혼자 모두 먹었다. 얼려두고 조금씩, 다 먹어치웠다.
2.
그는 반 년간 두 번이나 제주도에 다녀왔다. 처음엔 혼자 다녀온다했고 두번째는 가족들과 함께라고 했다. 그럼 올 때 감귤초콜렛 한 박스만요, 하고 부탁했다.
여행가는 사람에게 자질구레한 선물을 잘 부탁하지 않는 편이지만 친구들이 굳이 물어오면 보통은 그 나라의 영수증이나 얇은 동화책, 자석을 사다달라고 한다. 물론 그건 언어가 다른 국가에 가는 친구들에게 하는 이야기. 제주도에 가는 사람들에겐 그저 '감귤초콜렛'을 사다달라 한다. 여행 선물 중 최악으로 꼽히는 것이 초콜렛이라지만 나는 좋다. 받는 사람이 좋다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뭐 몇 만원 씩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감귤초콜렛'이 먹고 싶다 했다. 여행하는 동안 도처에 널린 감귤초콜렛을 보며 나를 생각하시란 의미로 사다달란 것도 아니었고 여기서 못사먹을 희귀한 음식이라 사다달란 말도 아니었다. 그저 여행을 간다기에 진농처럼 건낸 말이었는데, 그는 두 번 다 초콜렛을 사오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나의 작은 부탁들을 꾸준히 까-먹었다. 자신이 한 약속들도 까-먹었다. 입과 손이 심심하고 궁금하니 그냥 다 까먹고 싶었던 모양이지.
별것 아닌 부탁이었는데 정말 별것도 아닌 취급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 감귤초콜렛이 도대체 무어라고. 궁색하고 슬프기만 한 까만 설탕덩어리.
3.
너는 모른다.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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