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생,
작업실 내주겠다고 했을 때, 딱 한 가지 조건만 지켜달라고 했잖아.
니 작업실 쓰는 거 아무데도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네 친구들이 알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러나보다 했어. 알면 안 될 이유가 뭔지 묻고 싶었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호의를 베푸는데 내가 따질 입장은 아닌 것 같아서 알겠다고 했지.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나서 도와준다는 허튼 소리를 한 작가를 나는 좋아하지 않아.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게 우주니까.
그래도 그때는 잠시 그 말을 믿어볼까 싶었어.
작업실이 필요한데 이렇게나 천사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다니!
사람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는 게 이렇게 단단한 족쇄인 줄 알면서
도대체 그런 조건은 왜 듣겠다고 했을까.
그때도 말했지만 사실 나는 너를 무척 만나보고 싶었거든.
이유는 모르겠어. 그냥 그런 사람이 있지 않니?
실존한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사람. 내가 바라보는 풍경 안에 존재할 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은 사람. 사진 너머, 사진 밖의 삶이 궁금해지는 사람.
하지만 막상 만나 보니 완전 깰 수도 있잖아. 생각보다 얘기가 잘 안 통한다거나, 가치관이 엄청 다르다거나, 취향에 접점이라곤 하나도 없다거나.
게다가 그런 개인적 호기심을 채우고 싶다는 욕망보다 중요한 건 생계였어.
작업실이 정말 너무 필요했거든. 책을 만들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니가 무슨 조건을 내걸었더라도 아마 나는 덥썩 물었을 거야.
그리고 장담했을 거야. 별 일 없을 거라고.
그때는 자신있었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사고 치지 않을 수 있다.
먹고사는 일은 낭만 같은 걸 허락하지 않으니까 프로페셔널하게 선 지킬 수 있다.
나는 6개월째 병원에 다니고 있어. 3월부터니까 7개월이 넘었네.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처음 떠올렸던 게 언제인지 기억 안 나. 그 정도로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거야.
네가 잠적한 게 트리거 역할을 한 건 맞지만, one way or another, 언젠가는 가야 했을 거야.
약을 먹은 지 한 달 쯤 되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던 잡념의 고리가 끊어진 걸 느꼈어. 언제나 머릿속에 사는 누군가가 끊임없이 떠들고, 나는 그 얘기의 출처를 혹은 끝을 쫓느라 끝도 없는 징검다리를 달리는 기분이었거든. 그게 사라졌어. 한 두 다리쯤 건너면 멈춰. 징검다리가 사라져. 내가 좇던 이야기도 사라져.
추적이 멈췄다는 걸 인지하게 됐을 때, 그런 생각을 했어.
보통 사람들은 평상시에 늘 이런 상태였던 거구나. 이렇게 평온한 상태로 일상을 보냈구나.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것도 지겨워하지 않고, 아무것도 시기하지 않으면서 사는 사람의 삶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것도 같아.
그러고 나선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선회했어.
그때, 작업실 다닐 때, 불안해서 못견디겠다고 칭얼거릴 게 아니라 진작 병원을 갈 걸. 그랬으면 널 덜 괴롭혔을 텐데, 좀 더 나은 상태의 나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럼 네가 나를 질려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렇게 생면부지 남만도 못한 사람 취급까진 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나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늘 나를 탓해.
남을 탓하는 건 나쁜 짓이라고 배워서이기도 하고, 타인을 공격하는 것보다 자해하는 편이 더 쉬우니까.
하지만 살려면, 사람이 멀쩡하게 제 정신으로 일상을 유지하려면, 그 고리도 끊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매번 일이 꼬일 때마다 자책하지 않는 사람의 삶도 궁금해.
내가 뭘 어쨋기에 이런 일을 당하면서 살아야 하나, 나는 이런 취급을 당해도 싼 사람인가, 내가 얼마나 무가치한 사람이기에 일이 이렇게 됐을까,
상대가 아니면 아무도 답할 수 없는 질문으로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 사람의 삶도 알고 싶어.
그럼 너는 나한테 "먼저 연락하지 그랬느냐"고 태연하게 물을 수도 있겠다.
안 그러고 싶었겠니. 정말 그러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어.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네가 날 끊어냈잖니.
아는 체 보다 어려운 게 모르는 체더라.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말을 내뱉지 않도록 혀를 꽁꽁 묶어두는 게
근거 없는 허풍을 떠는 것보다 어렵더라고.
이미 알고 있는 세계를 모르던 때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해.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좀 더 최근 레퍼런스를 대고 싶은데, 나도 Latte is a horse 인가보다.
연락하고 싶을 때마다 네가 했던 얘기들이 하나씩 떠올랐어.
그리고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네 말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어.
네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잘 지내기를 바란다는 말.
네가 너무 이기적으로 굴어 힘들게 했었다는 말.
작업실을 찾아왔던 손님까지.
딱 작년 이맘때쯤이었지?
참 희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대단하다고도 생각했어. 독하다고도 생각했고, 무섭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한편으로는 우월감도 느꼈어. 그 사람은 외부인이니까. 나는 문 뒤로, 안으로 숨을 수 있는 내부인이니까.
황급하게 짐을 챙겨 나오는 길에도, 그리고도 한참을, 그날 일을 떠올리면 모자이크처럼 말도 안 되는 감정들이 뒤섞이는데, 그 와중에도 공감은 안 됐다? 그러니까 I didn’t feel ya.
일 년이 지난 지금은 너무 알겠어.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얼마나 많은 상념이 오갔을까. 그 문 앞에서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었을까.
며칠 전 꿈 속의 내가 그랬거든. 한 계단, 한 층을 오를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는 그리움과 따져 묻고 화를 내고야 말겠다는 악이 복잡하게 엉켜 올가미처럼 목을 조여왔어. 그렇게 용기 내 가봤자 아무 말도 못 들을 게 뻔한데.
그날, 그 문을 열어주던 그 밤,
그때는 내가 그 자리에 서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못 했어. 나는 언제나 문고리를 잡은 쪽, 문 안에 서서 인상 찌푸리는 쪽일 거라고 믿었어. 이대로 쭉, 문 뒤에 숨은 너와 한 편일 줄 알았어.
인간이 이렇게 근시안이다.
나는 사람을 미워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배우고 자랐어.
시기, 질투, 증오가 나쁜 일이라거나 감정 소모라는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한 게 아니라 내가 미움받을까 무서워서 그러지 못해.
너도 마찬가지야.
내가 어떻게 그러겠니. after all, 내 생애 받아 본 호의 중 가장 큰 호의를 베풀어 준 사람인데.
너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아. 해야 할 얘기도 많아. 이유를 알고 싶다는 갈증보다 너와 대화할 수 없다는 게 가장 괴로워.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궁금해할 거야.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학하겠지.
내가 또 사람을 몰아냈다고.
예전엔 글을 쓸 때 그런 소망을 품었어.
적어도 내 글을 읽고 재미있다고 해준 사람은 글에 나왔던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나에게 상처주지는 않을 거라고.
다 헛짓거리야. 이거.
서문에 잘 지내느냐 묻지 않았으니 잘 지내란 인사도 하지 않을게.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