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처음으로 글쓰기 모임을 이끌 때(여기서 이끈다는 표현이 중요한데, 모임 관리사 측에서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내가 글쓰기 강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쓰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을 '이끈다'는 점을 강조해달라고 거듭 당부했기 때문) 드물게 여기 왜 오셨지는지 되묻고 싶은 글을 마주칠 수 있었다. 물론 모두 열과 성을 다 해 써주셨지만, 개중에서도 고개를 숙이게 만들거나, 두 손 꼭 잡아드리며 앞으로도 무조건, 계속, 써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어지는 글들이 있었다.
합평이 아니라 다 같이 쓰는 '모임'이기 때문에 내용 밖의 요소들, 예컨데 문장 구성, 어휘, 논리, 리듬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었다. 하지만 말하고 싶어지는 걸! 어떻게 그런 단어들을 골라내실 수 있었느냐고! (탐나는 lexicon!)
그런 분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다들 어떤 식으로든 글을 줄곧 써 오셨다는 것.
내가 굳이 손 맞잡고 호들갑 떨지 않아도 이미 쓰고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쓸 사람들이었다.
글은 신내림 같은 게 아닐까. 써야 하는 사람은 언젠가 쓰고야 마는 것.
2.
첫 책을 만들면서도 느꼈지만, 나는 글을 쓸 때조차 조급병에 시달린다.
일단 하고 싶은 말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끊임 없이 생겨나는데 사고의 속도를 문장력이 따라가지 못한다. 아이디어가 널을 뛰며 글을 앞서 가니 글은 천연수세미 마냥 성기고 개연성은 떨어지고 온통 구멍 투성이다. 한참 다듬어도 모자라다.
설령 생각을 잘 정돈한 뒤라 해도 하려던 말을 다 하려면 나는 대하서사시를 써야 할 노릇이다. 그런데 아직 그렇게 쓸 힘이 없다. 근력 운동을 해보지도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120kg짜리 역기를 들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지금 근육을 키워야 하는 시기다. 거기에 드는 시간을 기다리기가 힘들다. 근육이 커지려면 몇 번이나 찢어지고 재생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품과 시간이 드는 일이다. 잘 아는 데도 답답하다. 속상하다. 시계바늘을 달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아인슈타인도 못 해낸 일이잖아.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공통으로 싫어하는 상사 유형이 있다. 무능한데 계획만 거창한 사람. 그런 사람이 의사 결정권자 자리에 앉으면 실무자는 결실을 보지 못할 게 뻔한 일에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내 안에는 딱 그런 타입의 상사형 자아가 버티고 있다. 고집은 세가지고 휘는 법도 모르고, 능력은 없으면서 깐깐하고 콧대만 높은 상사. 나. 일을 체계적으로 기획하는 법도, 관리하는 법도 모르니 터무늬 없는 데드라인과 목표치를 정해놓고 실무자들을 닥달한다. 그것도 나.
하아- 정말 피곤한 사람이야...
3.
겨울에 가능하다면 번역 수업을 열어보고 싶다. 독립출판물 번역도 해보고 싶고.
근데 일단 번역서부터 탈고하고...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