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31.




1.
생애 처음으로 글쓰기 모임을 이끌 때(여기서 이끈다는 표현이 중요한데, 모임 관리사 측에서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내가 글쓰기 강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쓰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을 '이끈다'는 점을 강조해달라고 거듭 당부했기 때문) 드물게 여기 왜 오셨지는지 되묻고 싶은 글을 마주칠 수 있었다. 물론 모두 열과 성을 다 해 써주셨지만, 개중에서도 고개를 숙이게 만들거나, 두 손 꼭 잡아드리며 앞으로도 무조건, 계속, 써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어지는 글들이 있었다.

합평이 아니라 다 같이 쓰는 '모임'이기 때문에 내용 밖의 요소들, 예컨데 문장 구성, 어휘, 논리, 리듬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었다. 하지만 말하고 싶어지는 걸! 어떻게 그런 단어들을 골라내실 수 있었느냐고! (탐나는 lexicon!) 

그런 분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다들 어떤 식으로든 글을 줄곧 써 오셨다는 것.
내가 굳이 손 맞잡고 호들갑 떨지 않아도 이미 쓰고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쓸 사람들이었다.

글은 신내림 같은 게 아닐까. 써야 하는 사람은 언젠가 쓰고야 마는 것.



2.
첫 책을 만들면서도 느꼈지만, 나는 글을 쓸 때조차 조급병에 시달린다. 

일단 하고 싶은 말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끊임 없이 생겨나는데 사고의 속도를 문장력이 따라가지 못한다. 아이디어가 널을 뛰며 글을 앞서 가니 글은 천연수세미 마냥 성기고 개연성은 떨어지고 온통 구멍 투성이다. 한참 다듬어도 모자라다. 

설령 생각을 잘 정돈한 뒤라 해도 하려던 말을 다 하려면 나는 대하서사시를 써야 할 노릇이다. 그런데 아직 그렇게 쓸 힘이 없다. 근력 운동을 해보지도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120kg짜리 역기를 들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지금 근육을 키워야 하는 시기다. 거기에 드는 시간을 기다리기가 힘들다. 근육이 커지려면 몇 번이나 찢어지고 재생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품과 시간이 드는 일이다. 잘 아는 데도 답답하다. 속상하다. 시계바늘을 달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아인슈타인도 못 해낸 일이잖아.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공통으로 싫어하는 상사 유형이 있다. 무능한데 계획만 거창한 사람. 그런 사람이 의사 결정권자 자리에 앉으면 실무자는 결실을 보지 못할 게 뻔한 일에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내 안에는 딱 그런 타입의 상사형 자아가 버티고 있다. 고집은 세가지고 휘는 법도 모르고, 능력은 없으면서 깐깐하고 콧대만 높은 상사. 나. 일을 체계적으로 기획하는 법도, 관리하는 법도 모르니 터무늬 없는 데드라인과 목표치를 정해놓고 실무자들을 닥달한다. 그것도 나.

하아- 정말 피곤한 사람이야...



3.
겨울에 가능하다면 번역 수업을 열어보고 싶다. 독립출판물 번역도 해보고 싶고.
근데 일단 번역서부터 탈고하고... 흑흑...







1.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어째 하나 같이 다 돈이 안 되는 것들일까?
돈이 안 되는 이유가 뭘까?
자본의 눈에 가치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이라 그렇지 뭐. 

글쓰기 대신 코딩에 그정도 재능이 있었으면 좋았으려나.
코딩도 하면서 글도 쓸 줄 아는 사람이거나.

근데 뭐, 대학원 졸업 앞두고 이 생각해서 뭐하겠니.
대학원 졸업하고 뭐 할지 막막하다.

블로그를 진짜 일기처럼 쓰고 있네.



2.
지지난주와 지난주는 굉장히 건강하게, 무력감에 시달리지 않고 잘 보냈는데
면접 결과 기다리면서, 개강 압박이 현실화 되면서 또 함정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렸다.
병원가서 선생님께 많이 좋아진 줄 알았는데, 아닌가봐요. 아직 건강해진 게 아닌가봐요. 요거 조금 잘 안 풀렸다고 이렇게 휘청거리는 걸 보면요. 했더니 화날 만 했다고, 속상할 만 했다고 해주셔서 좀 안심하고 나왔다.

화도 남한테 확인을 받아야 낼 수 있는 걸까.
자기확신이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어서야...




2019. 8. 26.




면접 본지 2주가 지났고, 여태 회사에서 별 소식이 없단다.
(헤드헌팅 에이전시가 중간에서 관리하는 면접이라... 오늘 연락했더니 담당자분은 휴가중)
다른 사람을 본단다 안 본단다 말이라도 제대로 해주면 좋을 텐데.

휴.



2019. 8. 15.




1.
집안 살림을 왕창 버렸다. 주로 그릇과 컵.
못해도 20kg은 나올 것 같은 무게.

엄마의 호더스러움을 참지 못하는 탓에 (그러기엔 지금 내 의자 뒤로 정리 덜 된 짐이 너무 많네...) 엄마한테 제발 일회용 플라스틱 숟가락 모으지 마라, 제발 옷, 신발 1년 이상 안 입어본 거 버려라, 쓰레기 좀 그만 만들어라, 매일 ㅈㄹㅈㄹ하는데

내 ㅈㄹ은 별 영양가가 없으므로
그냥 내가 나서서 다 버렸다.

아직 프라이팬, 양념통 정리가 남았다. 
맘 같아서는 다 가져다 쓸어버리고 싶은데... 많이 참는 중.
엄마 옷과 신발도 2/3는 버려야 맞다. 

이 좁은 집에 저게 말이 되느냐고.



하지만 마음 한 편에서 나에게 반문한다.
니가 치우고 싶은 게 엄마의 짐이니 엄마가 네게 지우는 짐이니?



2.
블로그 주소를 어느 곳에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긴 진정으로 은밀한 공간이 되었다.
너무 은밀한 나머지 나조차도 잊고 지내는 곳.

그래도 들어올 때마다 트래픽 통계를 확인하는데, 어떤 연유로인지 이 누추한 블로그에 찾아들어오시는 분들이 있다. 아주 적지만 꾸준하게.
세희쓰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또, 마음 한 편으로 바란다.
그 사람이면 좋겠다. 내 희노애락을 염탐해주면 좋겠다.




2019. 8. 12.




게임 회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게임 회사에서 면접 볼 기회가 생겼다.

지난 주에 1차를 봤고, 이번주에 2차를 봤다.

화기애애하긴 했는데, 면접은 분위기가 너무 좋아도 또 불안한거라.

원래 가고 싶었던 로컬라이제이션 파트는 아니지만, 온라인 플랫폼 관련해서 배울 게 많은 팀 같아서 그것은 또 그것 나름대로 탐이 난다.

그나저나 도대체 블*자드 어케 된 것인지...
연락 언제 줄 것인지... 나는 서류 탈락인 것인지...
나를 만나보시라고...



으아 여튼, 결과 좋았으면 좋겠다.
나 그 회사 사무실 보고 반했단 말이야 ㅠㅜㅠㅜ
(면접 끝나고 엘레베이터 앞에서도 이 얘기함 ㅋㅋㅋㅋㅋ 사무실 너무 좋아요 ㅠㅜㅠ 라고)





2019. 8. 1.




먹고사는 일이 빡세서 블로그를 너무 홀대했네.

저는 잘 지냅니다.
제 안부를 이제 누가 궁금해할지는 모르겠지만요.

공부는 점점 소홀해지고,
글도 전만큼은 못 쓰고,
살도 찌고, 얼굴도 변했고,
이제 끼부리는 일도 당최 생기질 않지만 - 물론 감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음 - 

처음 약을 먹었을 때 그 기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은 사람들, 생각이 멈출 줄 모르는 하강나선을 타지 않는 사람들은
평상시에 이렇게 지냈겠구나.

예전 같으면 여기서 또 어쩌구 저쩌구 구구절절 했을 텐데,
스스로 멈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스스로는 아닌가?

뭐 어쨋든.



여기다 뭘 좀 적고 싶어도 글 쓸 에너지 다 소진될 것 같아서
오늘도 요기까지만 써야겠다.



그럼 바이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