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차통역을 할 때,
그러니까 발화자의 발언을 다 듣고 난 후 영어로 혹은 한국어로 옮기려고 할 때,
들으면서 외우다 중간에 '주옥같은' 표현이 생각날 수 있다.
'아, 이 표현은 이따 통역할 때 꼭 써야지.'
라고 하는 순간 통역은 망한 것과 다름없다.
들었던 말을 꼭 쥐고 놓치지 않는 힘, 즉 기억력을 뇌의 손이 가진 악력이라고 치자면 기억의 손으로 그 기막힌 단어를 붙들고 있는 동안 정작 들어야 할 내용은 죄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글쓰기도 비슷한 것 같다.
어느날 문득 엄청 은유적인 것 같고, 라임도 있고, 재치도 있는 표현이 떠오른다.
이 단어를, 표현을 어떻게든 써먹어야 할 것 같아서 일단 막 적고 몇번 들여다보고 짠, 하고 내놓는 글들이 있다.
그런 건 나중에 한심스러워서 지운다.
1년 버티면 오래 버틴 거다.
주제에 영감을 받아서 쓰는 것과는 다르다.
corpus, 단어를 자랑하느라 급급해서 고심없이 써댄 글은 향락가의 화려한 네온사인처럼 단어와 수식이 화려하고, 화려할수록 초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