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29.

인중을 긁적거리며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배 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네가 거쳐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 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태어난 이래 나는 줄곧 잊고 있었다.
뱃사람의 울음, 이방인의 탄식,
내가 나인 이유, 내가 그들에게 끌리는 이유
무엇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
그 모든 것을 잊고서
어쩌다보니 나는 나이고,
그들은 나의 친구이고,
그녀는 나의 여인일뿐이라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라고 믿어왔다.


태어난 이래 줄곧
어쩌다보니, 로 시작해서 어쩌다보니, 로 이어지는
보잘것 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
태어날 때 나는 이미 망각에 한 번 굴복한 채 태어났다는
사실을, 영혼 위에 생긴 주름이
자신의 늙음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 탓이라는
사실을, 가끔 인중이 간지러운 것은
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태어난 이상 그 강철같은 법칙들과
죽을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추락하는 나의 친구들 :
옛 연인이 살던 집 담장을 뛰어넘다 다친 친구.
옛 동지와 함께 첨탑에 올랐다 떨어져 다친 친구.
그들의 붉은 피가 내 손에 닿으면 검은 물이 되고
그 검은 물은 내 손톱 끝을 적시고
그때 나는 불현듯 영감이 떠올랐다는듯
인중을 긁적거리며
그들의 슬픔을 손가락의 삶-쓰기로 옮겨 온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 :
3, 5, 6, 9...
달력에 사랑의 날짜를 빼곡히 채우는 여인.
오전을 서둘러 끝내고 정오를 넘어 오후를 향해
내 그림자를 길게 끌어당기는 여인. 그녀를 사랑하기에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죽음,
기억 없는 죽음, 무의미한 죽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일랑 잊고서
인중을 긁적거리며
제발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요,
전생에서 후생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뿐인 청혼을 한다.



* 탈무드에 따르면 천사들은 자궁 속의 아기를 방문해 지혜를 가르치고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에 그 모든 것을 잊게 하기 위해 천사는 쉿, 하고 손가락을 아기의 윗입술과 코 사이에 얹는데, 그로 인해 인중이 생겨난다고 한다.




심보선, 인중을 긁적거리며



2016. 7. 18.





아 닥치는 대로 걍 쓰기.


1.
금요일에는 오전 수업에 어김없이 지각했다.
정말 그러기 싫은데, 아침 10시 수업조차 정시에 도착하지 못하는 나의 잠만보 기질이 너무 화딱지가 나는데, 그래도 졸린 건 졸린 거다.

순차통역 수업이라 수업의 절반은 실습으로 이루어진다.
1분 가량의 음성파일을 듣고 나면 (듣다 보니 선생님이 직접 읽고 녹음한 파일들이더라) 기억나는 내용을 바탕으로 통역을 한다.
첫 시간은 영어에서 한국어, 그 다음 시간은 한국어에서 영어로. 파일을 듣기 전에 무작위로 한 명씩 호명해 발표를 시키는데, 선생님은 금요일 수업 때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셨다. 한두 문장 까먹고 통역해서 속으론 아이고야, 했는데 선생님은 이정도면 최상위 그룹에 들겠다며 공부한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으셨다.

조용히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고, 두 달이냐고 물으시길래, 2주라고 대답했다.

솔직히 시험에서 떨어질 거라 생각했던 적은 없다.
혹시나 그러면 어떻게 하지, 고민한 적은 있지만 대학 입시 때처럼 알 수 없는 예감이 있었다. 하지만 예감은 예감(혹은 근자감)이고, 내 실력은 도대체 어디쯤에서 멈춰있나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다들 얼마나 공부를 하고 오나. 어느 정도 실력으로 시험을 보나. 
그런 걱정이 선생님 피드백 한 마디에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나서길 잘했다 안심도 됐고 다음 번에도 잘한다 칭찬 들어야지, 동기가 생겼다.

이 뭣도 아닌 것 같은 일화를 칭찬 듣고 싶은 누군가에게 상소하고 싶었지만
말 할 사람이 없었다. 
친구가 없다는 게 아니라, 이 이야기를 듣고 다시 "아휴 장하네" 하고 두 배로 칭찬받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아니. 그짓말이다. 사실 그런 사람이 있긴 있는데, 그 사람에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밀린 이야기만 자꾸 늘어가고 우리는 아무 대화도 하지 않는다.

니가 이 글을 꼭 보면 좋겠다. 그리고 그냥 "장하다 우리 나연이" 하고 문자 한 통 해줬으면 좋겠다. 
ㅆㄴㅁㅅㅋ.



2.
얼마전에 레트로 마니아라는 책을 추천받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내가 유일하게 책 추천을 요청하고 수긍하는 독서 스승님께서 일러주신 책. (보고 있는 거 다 안다. 메롱)
책을 추천할 때면 늘 "나연씨는 좋아할 거예요" 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역시나 나를 간파하고 있다는 생각에 괜히 자존심이 상해서 "뭐, 쫌, 재밌네요" 하고 틱틱거린다. 그럼 또 내 어설픈 서평을 다 들어준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많이 보고 배운다.
이야기를 경청하는 법,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바르고 곧게 전달하는 법, 문자 중간에 시간이 뜰 때 사과하는 법, 상대방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꼭 필요한 때에 필요 이상의 감정은 제하고 설명하는 법.
그리고 좋은 것을 나누는 법.



3.
그 분은 레트로 마니아를 정지돈 작가에게서 추천받았다기에 교보에 들른 김에 그의 책을 찾아봤다. 건축이란 단어는 어디다 갖다 붙여도 핵 멋찌므로 뭔가 구조적이거나 산술적으로 쓴 소설일 줄 알았는데, 이게 왠 걸? 이구의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 역사 소설 별룬데, 하면서 이미 책을 집어들었다. 책은 대개 만화책이나 잡지를 포장하는 얇은 비닐에 싸여 있었는데, 뒷편에 눈먼 부엉이라는 제목의 단편을 습자지만큼 얇은 종이에 인쇄, 네번 접어 부록으로 함께 주고 있었다. 여자는 디테일에 약하다지? 바로드림으로 결제.

같이 간 지혜가 황인찬 시인의 종로사가를 읽어주기에 나는 심보선 시인의 눈앞에 없는 사람을 꺼내 맨 앞 시구절 중 맘에 드는 부분을 펼쳐 보여주었다.



4.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단 하나, 말을 섞는 거였다. 시시껄렁한 얘기여도 좋으니 니 얘기를 듣고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 지금 니 인생엔 어떤 것들이 피고 지는지, 그리고 내 인생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터놓고 말할 수 있었음 했다. 
나는 그저 영화를 보고 서점을 가는 다소 시시한 주말 동선이 어떻게 내 세계를 구축했는지 아주 작은 벽돌에서부터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너는 늘 말이 없다. 
니가 하루만큼 또 싫어졌다.



5.
오늘은 내 일기 반, 남의 일기 반.
물론 내가 니 얘기를 해봤자 넌 니 얘긴 줄도 모를테지만.






요새 시간이 많아져서, 물론 많으면 안 되는데 공부를 불성실하게 하고 있어서,
블로그에 자주 들어오는데, 여기다 뭐만 쓰려고 하면 자꾸 까먹는다.
아니,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하루에도 한 서너 꼭지씩 생각나서 아 이따 이거 확장시켜서 써야지, 하는데 이 모니터만 켜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말도 안 돼.

인스타나 메모장에 타이핑하는 거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걸까?

아 속상해. 짜중나.

앞으론 메모장엔 진짜 prompt만 적어놓고 무조건 긴 글 쓰기 연습해야겠다.


아ㅏㅏㅏㅏㅏㅏ 방금 뭐 쓰려던건지 생각남.
칭찬받았다고 칭찬해달라고 쓰려고 그랬다. 히히



2016. 7. 17.

I ♥ NY, almost 2





사실 필카로 사진을 잔뜩 찍어오려고 필름을 다섯 통이나 가져갔다.
세 통 정도 쓰고 돌아왔으니 약 108개의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꽤나 성공적인 여행이었다. 맘에 드는 사진이 너무도 많다.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Met 박물관은 시대와 지역별로 전시실을 구분해두었다. 역사 공부한다 생각하고 고대 이집트부터 열심히 봐야지, 마음 먹고 이집트, 그리스, 로마, 그리고 중세 서양 미술로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게 되어있는데 반드시 아프리카 전시실을 들르라. 정말 턱이 바닥에 떨어지도록 (jaw-dropping) 입을 벌리고 구경했다. 자로 잰듯한 수학적인 도형미와 균형미를 추구한 그리스 조각들, 회화들도 매우 아름답다. 하지만 너무 딱딱하고 차갑다. 동적인 조각상조차 경직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록펠러가 (아마도 그리 정당하거나 깨끗하지 않은 방식으로) 수집한 뒤 기증했다는 목재 조각상들은 하나같이 제멋대로 생겼다. 서양미술에서 강조하는 황금비율이라든지 섬세한 표면 처리 기술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힘이 넘친다. 생동감이 요동친다. 낮고 웅장한 울림을 끊임없이 뿜어낸다. 고대 아프리카 부족이 거대한 조각상으로 재현해낸 상상력의 범위와 규모는 결코 그 어떤 예술 사조에도 뒤지지 않는다. 아 진짜, 정말, 존나 멋있었다. 아 특히 천장에 저 배 갑판같은 거, 아 진짜 개 짱!!!!!!!!!!

































Man Ray의 작품을 실제로 보다니. 예술론 시간에 진짜 이름만 잠깐 듣고 뭐야 뒤샹같은 거잖아, 했는데. Met를 돌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 그거였다. '아 이 작가들도, 작가들이 만든 작품들도 진짜 실존하는 것이었구나. 교과서 속 사진으로만 남은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었구나. 그리고 그것들이 전부 여기에 있었구나. 진심 부럽다.' 짜증나는 것들. 
Met는 유난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 피카소가 대표적이고 Italian 화가들도 그렇다. 물론 어마무지한 소장목록으로 미루어 볼 땐 아마 같은 규모의 박물관이 세 채정도는 더 필요하겠지만, 피카소의 작품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그리고 1층과 지하에서 패션, 손과 기계로 펼치는 예술 Manus X Machina 라는 기획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디올의 bar suit나 샤넬, 발렌시아가, 발렌티노 하우스의 Haute-couture 드레스들을 코 30cm 앞에서 봤다. 말하고 있으니까 또 가고 싶다. 진짜 그냥 다 너무 좋았다.



























4시간을 돌고도 다 못보고 Met 박물관을 나왔다. 한 10블럭쯤 아래에 위치한 Met Breuer에 꼭 보고 싶던 전시가 있었기때문. Met 소속 박물관인 Met Museum, Met Breuer, Met Cloister는 1개 티켓으로 3곳 모두 입장이 가능하다. 게다가 티켓 가격이 따로 책정되어있지 않아 원하는만큼 기부하고 들어가면 된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Met Museum과 Met Breuer를 하루 안에 다 돌겠다고 눈물을 머금고 Met 박물관을 나선 것. 

내려가는 길에 센트럴파크에서 여유롭게 frisbee를 하거나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 하고 있는 사람들을 봤다. 사실 별로 신기하진 않았고 음, 진짜 하긴 하는군, 내일 수영복 입고 나와야지, 라고 다짐하며 사진을 찍었다. 호호호호 



순서상으론 아마 아래 Met Cloister가 먼저일거다. 이번 뉴욕여행은 2014년 12월부터 계획하고 있던 일이었다. 음, 돈을 모으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고 나에게 뉴욕-정확하게 미국-은  평생 다시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나와 미국 사이의 장벽-다시 정확하게 미국이 친 장벽-을 넘어가려면 아주 큰 돈과 긴 시간이 필요했다. 반 년이면 된다던 것이 1년이 지났고 결국 1년 반이 지나서야 미국은 나에게 아주 좁은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니까 이번 뉴욕행은 여행이란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 그러기에 '여행'은 채도와 명도가 너무 높다. 

여튼 그 과정에서 뉴욕에 가면 꼭 들를 곳으로 두 장소를 정했는데 하나는 코니 아일랜드였고 나머지 한 곳이 Met Cloister였다. 다른 건 아니고 한번은 욱이가 자전거를 타고 어딜 간다면서 초록다리와 나무다리, 다시 나무다리를 지나서 가면 된다는 이상한 구글 디렉션을 전화로 읊어준 적이 있다. 무슨 유치원생이 스케치북에 그린 보물지도도 아니고. 읽는 욱이도, 듣는 나도 "엥? 뭐라고???" 했는데 내가 잠든 사이 욱이는 "아아, 야 정말 초록다리랑 나무다리가 있었어" 라는 음성메세지를 녹음해 보내주었다. 그래서 정말 내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욱이가 건넜다던 그 초록다리와 나무다리, 그리고 고즈넉한 곳에 자리잡았다는 Cloister 라는 이름의 성당을.
   









Cloister는 C라인을 타고 190st에서 내리면 바로 나온다, 는 좀 오바고,
사실 지하철 역에서 나온 뒤 엄청 길고 굽이치는 산책로를 따라 약 15분 정도 숲 속으로 걸어가야한다. 그럼 허드슨강을 내려다 보고 있는 박물관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하절기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연장 개장을 하기에 일부러 해질녘에 들렀다. 사실 윤성욱이 덥다고 늦게 가재서 늦게 갔다. 하여간. 그리고 나는 도착한 뒤론 단 1분도 쉬지 않고 "아, 어떡해. 아, 야, 나 진짜 너무 좋아. 아, 어떡해." 하고 울먹거렸다.
미국에서 힘들어서 그만 살고 싶어질 때마다 유일하게 삶에 추진력을 불어 넣어 준 것이 (그게 비록 신기루로 끝났을지언정) RISD 카탈로그였다면, 반대로 Cloister는 변호사 사무실에 수속 중단 선언을 하고 싶은 날들을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도와준 진통제였다. 정말 꼭 보고 싶었고 꼭 보아야 할 곳이었다. 열흘 중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다. 단언한다. 



여행지를 결정한 뒤 아주 말도 안 되는 세부 일정(30분 간격)까지 미리 엑셀로 정리하고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행지 선정에서부터 일정까지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순도 100% 후자다. 삘 받으면 당장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2박 3일 짐은 30분이면 꾸릴 수 있다. 아휴, 열흘 출장 봇짐도 한 시간이면 됩니다요. 도착해서 들릴 곳은 가는 동안 고민해보면 된다.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낯선 언어를 쓰는 이국에 갈 때는 사전 조사를 좀 한다. 우선 가고 싶은 곳 3-4개를 적어본다. 그래도 하루에 한 가지 이상의 활동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의, 식, 주 모두 하나의 개별적인 활동으로 보기때문에 가보고 싶었던 식당에 들리기로 한 날은 그 일정 이외의 시간을 자유여행으로 채운다. 아무데고 아무거고 내키는 대로 한다. 이번에도 역시나 친구들이 무념무상인 내 대신 온갖 걱정을 해주었다. 하지만 뉴욕에 있는 나의 유일한 친구, 욱이 덕분에 아주 편히 잘 돌아다녔다. 욱이는 여느때처럼 "나는 이렇구 저런게 궁금하다"고 부연설명 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할만한 곳을 미리 일러주거나 함께 가주었다.
코니 아일랜드 얘기를 처음에 듣곤 핵 멀다며 질색해놓고도 막상 부탁했을 땐 군말 없이, 당연히 가야 하는 곳 아니었냐는 듯이 동행해주었다. 아는 사람 없는 나를 위해 욱이는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가이드를 자처했다.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온 게 맘에 걸린다. 고마웠어, 욱아.

욱이는 '뉴욕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친구, 나의 메이트, 나의 코워커.
만나서 "딥 톡"을 가장 하고 싶었다던 욱이는 코니아일랜드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사후세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의 대화가 늘 그렇듯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는 사실만 중요할 뿐, 세세한 다이얼로그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만 남은 지하철 맨 앞 칸에서 웃고 떠들다보니 코니아일랜드의 놀이기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와!! 롤러코스터다!!" 라고 소리지르자마자 열차 머리로 달려가 유리창에 렌즈를 들이댔다.
  












어제 밤 시작해서 오늘 새벽까지 쓰다 다시 오늘 밤(제헌절 밤)에 쓰는 포스팅인데,
그 사이에 영화 데몰리션을 봤다. 영화에선 생전 아내와의 플래시백으로, 또 평안이나 위로, 화해의 장소로 거듭해서 코니아일랜드가 등장했다. 꼭 막 귀국했던 8년 전처럼 노스탈지아 이상의 충동을 느꼈다. 얼마 전까지 내가 있던 곳을 스크린에서 마주치면 기시감과 이질감이 동시에 일어 견디기 힘들다. 이젠 그렇다고 울진 않는다. 영화 얘긴 따로 해야지.

뉴욕에 가기 전부터 반드시 코니아일랜드에 가자고 조른 건 나였고, 막상 바닷가에 닿자 노을이 "장난 아니"라고 연속해서 감탄했던 건 욱이였다. 거기서도 욱이는 계속 로또에 당첨되면 3330억으로 무얼 할 건지 고민했다. 
"정말 1등이 되면  내일 밤에 아무 말 없이 Saint Lauren 링크를 보낼게. 거기서 신발을 하나 골라. 이별 선물이야."
그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Nathan's의 직원들은 세월아 네월아, 반나절 전에 튀겨진 메뉴 하나를 포장하는 데 15분씩 걸리는 경이를 보여주었다. 
한참 산책하고나서도 기어코 관람차를 타겠다던 나에게 "저거 영업 끝났다고 멍충아!!!!" 윽박 지르며 지하철 역으로 앞서 걷던 욱이가 야속했다. 그래도 Barbes에 가야 하니까, 흥, 하면서 삐치고 싶던 걸 꾹꾹 참았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간 Barbes는 정말 구렸다. 진짜 구렸다. 구리다는 단어를 제하면 형언할 수 조차 없다. 

그리고 화요일 밤 카톡창에선 Saint Lauren의 S자도 구경할 수 없었다고 한다. 





Donna Summer 그리고 윤복희



이 언니, 연기 잘 하시겠네. 쿠쿠
Donna Summer, Love to Love You Baby, 1976




그리고 끝장나시는 우리 윤복희 여사님.
The Korean Kittens, What I'd say, 196?


2016. 7. 14.

I ♥ NY, almost



아아, 애증의 뉴욕.
이 블로그의 첫 글도 뉴욕이고, 제가 지난 2년을 버틸 수 있게 해준 원동력도 뉴욕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역시나 별 게 없네요.

아이러니하게도 가보고 싶단 생각조차 한 적 없던 인도가 아마 올해 가장 인상적인 장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3국이나 낯선 땅으로 출장 보내주는 것 하나는 참 맘에 드는 회사였는데.


여행을 다녀오면 뉴욕 이야기 많이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무슨 이야기를 들려 드려야 하나, 일기라도 써야 하나, 고민했었는데요.
뉴욕 여행기보단 굳이 뉴욕이어야 했던 이유, 뉴욕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전부라,
그거라도 궁금하시다면 귀띔 해주세요.


언제 어디를 갔는지 가물가물 해서, 사진은 그냥 장소별로 묶었어요.
하도 여의도공원에 익숙해서 그런지 도심공원이라고 해봤자 센트럴 파크가 아니면 넘나 아가아가해서. 그래도 서너 번은 들렸던 곳이 Bryant Park. 실제로 여기서 동남아계 혼혈같았던 아주 작은 꼬마 아가씨가 저를 하도 빤히 보고 좋아라 하길래 잠시 잠깐 놀아주기도 했네요. Jamie 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예쁘지만 사진은 찍지 않았습니다. 이번 뉴욕에서 진짜 어려웠던 게 사람 사진 찍는 거였는데, 괜히 실례인 것 같은 거예요. 내가 그 사람들 입장이면 낯선 관광객이 묻지도 않고 내 사진을 찍어가는 게 과연 기분 좋은 일일까? 싶어서 되도록이면 사람들 사진은 아주 멀리서, 공간을 기록할 때만 한두 장씩 찍었습니다.
(이건 인도에서도 그랬던 것 같네. 뭐라고 해야 하지. 사람들을 객체화 하기 싫다고 해야 하려나... 그 사람들의 삶을 꼭 구경거리로 취급한다고 생각할까봐 최대한 자제했다)
음, 사실 Jamie 는 필름에만 담아 두는 게 싫었어요. 진짜 너무 앙증맞아서 렌즈 초점 맞출 시간에 차라리 아가 웃는 얼굴을 한 번 더 보는 게 좋았거든요.

























여기는 Whitney Museum.
얼마 전 west village 쪽으로 이사한 미술관인데, 욱이도 "너는 브룩클린이나 웨스트 빌리지를 더 좋아할거"라고 추천하길래 아침 일찍 나왔다. 말투 막 바뀌네? 
west village는 미술관 바로 옆에서 시작되는 하이라인이나 첼시마켓이 강가를 끼고 길게 이어져있다. 사실 그래서 아침 일찍 나온 건 아니고, 시차 적응에 실패한데다 비행기를 장시간 타고 이동하면 jet lag이 꼭 병처럼 오래 남는다. 밥을 잘 못먹고 새벽에 깨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외롭고 우울해한다. 그래서 새벽같이 나가 걷는다. 미국으로 처음 넘어올 때 생긴 트라우마 같은 거. 그땐 꼬박 일주일을 앓아 누웠었다. 낯선 가족, 낯선 집, 낯선 공기에 잔뜩 얼어붙어 해동 된 뒤로도 결국 그 이전의 내 결은 되찾지 못했다. 여전히 비행기는 싫고 미국에서의 시간은 악몽같이 느껴진다. 
고하고, 현대미술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Whitney 전시는 좋았다. 시기를 잘 맞춰 간 것 같다. 아, 근데, 전시보다 미술관 꼭대기에서 보는 뷰가 정말 장관이더라.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낮에도 그렇게 예쁜데, 아마 밤에 가면 더 예뻤겠지. 욱이가 노을 질 때 다시 데려가줬다. 그 때 High line을 다시 갈 껄 그랬어.



































Edward Hopper는 자신의 그림 속 대부분의 여성상을 아내를 모델로 그렸다고 한다. 아래 작품을 그릴 당시의 아내는 예순이 넘은 나이였기에 그림 속 나신의 여성은 아내의 실제 모습이 아닌 작가가 아내를 바라볼 때의 느낌, 분위기, 인상을 기반으로 그려낸 인물.
그러니까 아내인 동시에 아내가 아닌 여자. 육체란 껍데기가 시간과 함께 녹아내려도 언제나 매혹적인 자태로 살아있을 껍데기 속 Ms. Hopper.























아래 사진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오브제.
A Woman with a Dog by Duane Hanson






















뙤약볕 아래 벌겋게 익어 한참 돌아다니고 나서 기력보충하러 숙소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워서 정호오빠가 선물로 준 모노클 뉴욕 투어가이드를 펴보니 west village에 괜찮은 peking duck 식당이 있대서 욱이를 끌고 다시 서쪽으로. 아래가 그 식당, Red Farm. 가격대가 좀 높아서 진짜 그냥 눈 딱 감고 함 먹어야지, 했는데 어휴 먹는 내내 "아 존나 비싸. 야 이게 말이 돼? 와 개 비싸"하며 초치는 앞자리 대표님때문에... 다시는 북경 오리 따위 내 돈 주고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마무리 ^^^^^^ 아 난 저 반쯤 탄 첫 커트 사진들이 그렇게 좋더라. 몰라, 걍 좋아.
















































여기서 찍은건 Madison Square랑 Union Square 근처 풍경들.
참새 방앗간마냥 들어가서 돈을 퍼드리고 나온 Strand 서점 가는 길에 있던 양덕의 성지 같은 Forbidden Planet. 





















Strand에 가면 에코백을 꼭 하나 사서 나온다던 지웅오빠와 지웅오빠의 카메라.





































오늘은 여기까지.
아직 Met, Met Breuer, Central Park, Coney Island, Cloister 사진이 남아있다.
사실 편두통때문에 종일 아팠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핸드폰으로 찍은 것도 한 80여장 될텐데, 우선은 필름만 올려둔다.
아, 여기 있는 건 Kodak Pro Image 100, Agfa Vista 200.
Pro Image는 빈티지한 느낌이 있다. 난 근데 그냥 코닥이랑 제일 잘 맞나벼. :(



2016. 7. 6.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블로그 주인입니다.
뭔가 되게 건방져보이네요 ㅋㅋㅋㅋ

꽤나 오래 아무 글도 쓰지 않아서, 근황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6월 중순쯤에 퇴사를 하고 뉴욕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에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구요.
온 우주가 나를 잘근잘근 씹어 죽이려나보다, 생각하며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잠깐 아팠다가 시차 부적응과 근심걱정으로 잠을 설치다 병간호로 시달리다보니 저녁 9시면 기절하는 패턴으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원래 공부를 하려고 퇴사를 했던 거라, 고민이 좀 많았습니다.
공부를 하긴 할 수 있나, 그 무엇보다, 내가 지금 공부를 해도 되는 것인가.
겨우 용기낸 일이었는데, 지금 놓아버리면 정말 영영 페이스를 놓칠 것만 같아서 그분 조언대로 조금 섣부르게 살기로 했습니다.


음, 엄마는 한동안 병원에 계셔야 해요. 혼자서는 거동이 어려우셔서.
그래도 재활도 열심히 하시고, 제 급한 성격은 다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금방 걷지 않으실까, 합니다.
학원에 가지 않는 오전엔 병원에 가고, 오후엔 생계유지를 위해 (...) 퇴사한 회사에 다시 알바를 갑니다. 저녁엔 병원에 갈 때도 있고 개인적인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편치 않은 이야기였는데, 그래도 이제는 괜찮아요. 동생에게 고마운 하루 하루네요.
덕분에 일상의 영역으로 잘 융화시키는 중입니다.

심적으로 극도로 불안정하고 스트레스가 역치에 달한 일주일이었어서, 사실 평상시면 하지도 않았을 바보같은 짓도 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화도 내고, 길에서 울기도 하고, 뭐 그랬어요.
소식을 알리지 않은 건 저 자신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변 사람들에게 서운해 하고 버림 받은 것 같단 생각에 괜히 지난 대화창만 들여다 보고.

회사 오고, 타의적으로 병원 밖 공간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정신도 조금씩 돌아오나 봅니다.
예전처럼 책도 읽고 메모도 하고 공부도 해요. 사람들 만나서 웃고 떠들기도 하고요.
여전히 술, 담배 없이 잘 살고 있는 게 용합니다.

인스타에 올리지 못한 뉴욕 사진들도 정리해서 올릴게요.

곧 봐요, 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