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필카로 사진을 잔뜩 찍어오려고 필름을 다섯 통이나 가져갔다.
세 통 정도 쓰고 돌아왔으니 약 108개의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꽤나 성공적인 여행이었다. 맘에 드는 사진이 너무도 많다.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Met 박물관은 시대와 지역별로 전시실을 구분해두었다. 역사 공부한다 생각하고 고대 이집트부터 열심히 봐야지, 마음 먹고 이집트, 그리스, 로마, 그리고 중세 서양 미술로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게 되어있는데 반드시 아프리카 전시실을 들르라. 정말 턱이 바닥에 떨어지도록 (jaw-dropping) 입을 벌리고 구경했다. 자로 잰듯한 수학적인 도형미와 균형미를 추구한 그리스 조각들, 회화들도 매우 아름답다. 하지만 너무 딱딱하고 차갑다. 동적인 조각상조차 경직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록펠러가 (아마도 그리 정당하거나 깨끗하지 않은 방식으로) 수집한 뒤 기증했다는 목재 조각상들은 하나같이 제멋대로 생겼다. 서양미술에서 강조하는 황금비율이라든지 섬세한 표면 처리 기술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힘이 넘친다. 생동감이 요동친다. 낮고 웅장한 울림을 끊임없이 뿜어낸다. 고대 아프리카 부족이 거대한 조각상으로 재현해낸 상상력의 범위와 규모는 결코 그 어떤 예술 사조에도 뒤지지 않는다. 아 진짜, 정말, 존나 멋있었다. 아 특히 천장에 저 배 갑판같은 거, 아 진짜 개 짱!!!!!!!!!!
Man Ray의 작품을 실제로 보다니. 예술론 시간에 진짜 이름만 잠깐 듣고 뭐야 뒤샹같은 거잖아, 했는데. Met를 돌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 그거였다. '아 이 작가들도, 작가들이 만든 작품들도 진짜 실존하는 것이었구나. 교과서 속 사진으로만 남은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었구나. 그리고 그것들이 전부 여기에 있었구나. 진심 부럽다.' 짜증나는 것들.
Met는 유난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 피카소가 대표적이고 Italian 화가들도 그렇다. 물론 어마무지한 소장목록으로 미루어 볼 땐 아마 같은 규모의 박물관이 세 채정도는 더 필요하겠지만, 피카소의 작품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그리고 1층과 지하에서 패션, 손과 기계로 펼치는 예술 Manus X Machina 라는 기획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디올의 bar suit나 샤넬, 발렌시아가, 발렌티노 하우스의 Haute-couture 드레스들을 코 30cm 앞에서 봤다. 말하고 있으니까 또 가고 싶다. 진짜 그냥 다 너무 좋았다.
4시간을 돌고도 다 못보고 Met 박물관을 나왔다. 한 10블럭쯤 아래에 위치한 Met Breuer에 꼭 보고 싶던 전시가 있었기때문. Met 소속 박물관인 Met Museum, Met Breuer, Met Cloister는 1개 티켓으로 3곳 모두 입장이 가능하다. 게다가 티켓 가격이 따로 책정되어있지 않아 원하는만큼 기부하고 들어가면 된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Met Museum과 Met Breuer를 하루 안에 다 돌겠다고 눈물을 머금고 Met 박물관을 나선 것.
내려가는 길에 센트럴파크에서 여유롭게 frisbee를 하거나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 하고 있는 사람들을 봤다. 사실 별로 신기하진 않았고 음, 진짜 하긴 하는군, 내일 수영복 입고 나와야지, 라고 다짐하며 사진을 찍었다. 호호호호
순서상으론 아마 아래 Met Cloister가 먼저일거다. 이번 뉴욕여행은 2014년 12월부터 계획하고 있던 일이었다. 음, 돈을 모으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고 나에게 뉴욕-정확하게 미국-은 평생 다시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나와 미국 사이의 장벽-다시 정확하게 미국이 친 장벽-을 넘어가려면 아주 큰 돈과 긴 시간이 필요했다. 반 년이면 된다던 것이 1년이 지났고 결국 1년 반이 지나서야 미국은 나에게 아주 좁은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니까 이번 뉴욕행은 여행이란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 그러기에 '여행'은 채도와 명도가 너무 높다.
여튼 그 과정에서 뉴욕에 가면 꼭 들를 곳으로 두 장소를 정했는데 하나는 코니 아일랜드였고 나머지 한 곳이 Met Cloister였다. 다른 건 아니고 한번은 욱이가 자전거를 타고 어딜 간다면서 초록다리와 나무다리, 다시 나무다리를 지나서 가면 된다는 이상한 구글 디렉션을 전화로 읊어준 적이 있다. 무슨 유치원생이 스케치북에 그린 보물지도도 아니고. 읽는 욱이도, 듣는 나도 "엥? 뭐라고???" 했는데 내가 잠든 사이 욱이는 "아아, 야 정말 초록다리랑 나무다리가 있었어" 라는 음성메세지를 녹음해 보내주었다. 그래서 정말 내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욱이가 건넜다던 그 초록다리와 나무다리, 그리고 고즈넉한 곳에 자리잡았다는 Cloister 라는 이름의 성당을.
Cloister는 C라인을 타고 190st에서 내리면 바로 나온다, 는 좀 오바고,
사실 지하철 역에서 나온 뒤 엄청 길고 굽이치는 산책로를 따라 약 15분 정도 숲 속으로 걸어가야한다. 그럼 허드슨강을 내려다 보고 있는 박물관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하절기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연장 개장을 하기에 일부러 해질녘에 들렀다. 사실 윤성욱이 덥다고 늦게 가재서 늦게 갔다. 하여간. 그리고 나는 도착한 뒤론 단 1분도 쉬지 않고 "아, 어떡해. 아, 야, 나 진짜 너무 좋아. 아, 어떡해." 하고 울먹거렸다.
미국에서 힘들어서 그만 살고 싶어질 때마다 유일하게 삶에 추진력을 불어 넣어 준 것이 (그게 비록 신기루로 끝났을지언정) RISD 카탈로그였다면, 반대로 Cloister는 변호사 사무실에 수속 중단 선언을 하고 싶은 날들을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도와준 진통제였다. 정말 꼭 보고 싶었고 꼭 보아야 할 곳이었다. 열흘 중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다. 단언한다.
여행지를 결정한 뒤 아주 말도 안 되는 세부 일정(30분 간격)까지 미리 엑셀로 정리하고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행지 선정에서부터 일정까지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순도 100% 후자다. 삘 받으면 당장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2박 3일 짐은 30분이면 꾸릴 수 있다. 아휴, 열흘 출장 봇짐도 한 시간이면 됩니다요. 도착해서 들릴 곳은 가는 동안 고민해보면 된다.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낯선 언어를 쓰는 이국에 갈 때는 사전 조사를 좀 한다. 우선 가고 싶은 곳 3-4개를 적어본다. 그래도 하루에 한 가지 이상의 활동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의, 식, 주 모두 하나의 개별적인 활동으로 보기때문에 가보고 싶었던 식당에 들리기로 한 날은 그 일정 이외의 시간을 자유여행으로 채운다. 아무데고 아무거고 내키는 대로 한다. 이번에도 역시나 친구들이 무념무상인 내 대신 온갖 걱정을 해주었다. 하지만 뉴욕에 있는 나의 유일한 친구, 욱이 덕분에 아주 편히 잘 돌아다녔다. 욱이는 여느때처럼 "나는 이렇구 저런게 궁금하다"고 부연설명 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할만한 곳을 미리 일러주거나 함께 가주었다.
코니 아일랜드 얘기를 처음에 듣곤 핵 멀다며 질색해놓고도 막상 부탁했을 땐 군말 없이, 당연히 가야 하는 곳 아니었냐는 듯이 동행해주었다. 아는 사람 없는 나를 위해 욱이는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가이드를 자처했다.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온 게 맘에 걸린다. 고마웠어, 욱아.
욱이는 '뉴욕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친구, 나의 메이트, 나의 코워커.
만나서 "딥 톡"을 가장 하고 싶었다던 욱이는 코니아일랜드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사후세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의 대화가 늘 그렇듯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는 사실만 중요할 뿐, 세세한 다이얼로그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만 남은 지하철 맨 앞 칸에서 웃고 떠들다보니 코니아일랜드의 놀이기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와!! 롤러코스터다!!" 라고 소리지르자마자 열차 머리로 달려가 유리창에 렌즈를 들이댔다.
어제 밤 시작해서 오늘 새벽까지 쓰다 다시 오늘 밤(제헌절 밤)에 쓰는 포스팅인데,
그 사이에 영화 데몰리션을 봤다. 영화에선 생전 아내와의 플래시백으로, 또 평안이나 위로, 화해의 장소로 거듭해서 코니아일랜드가 등장했다. 꼭 막 귀국했던 8년 전처럼 노스탈지아 이상의 충동을 느꼈다. 얼마 전까지 내가 있던 곳을 스크린에서 마주치면 기시감과 이질감이 동시에 일어 견디기 힘들다. 이젠 그렇다고 울진 않는다. 영화 얘긴 따로 해야지.
뉴욕에 가기 전부터 반드시 코니아일랜드에 가자고 조른 건 나였고, 막상 바닷가에 닿자 노을이 "장난 아니"라고 연속해서 감탄했던 건 욱이였다. 거기서도 욱이는 계속 로또에 당첨되면 3330억으로 무얼 할 건지 고민했다.
"정말 1등이 되면 내일 밤에 아무 말 없이 Saint Lauren 링크를 보낼게. 거기서 신발을 하나 골라. 이별 선물이야."
그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Nathan's의 직원들은 세월아 네월아, 반나절 전에 튀겨진 메뉴 하나를 포장하는 데 15분씩 걸리는 경이를 보여주었다.
한참 산책하고나서도 기어코 관람차를 타겠다던 나에게 "저거 영업 끝났다고 멍충아!!!!" 윽박 지르며 지하철 역으로 앞서 걷던 욱이가 야속했다. 그래도 Barbes에 가야 하니까, 흥, 하면서 삐치고 싶던 걸 꾹꾹 참았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간 Barbes는 정말 구렸다. 진짜 구렸다. 구리다는 단어를 제하면 형언할 수 조차 없다.
그리고 화요일 밤 카톡창에선 Saint Lauren의 S자도 구경할 수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