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애증의 뉴욕.
이 블로그의 첫 글도 뉴욕이고, 제가 지난 2년을 버틸 수 있게 해준 원동력도 뉴욕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역시나 별 게 없네요.
아이러니하게도 가보고 싶단 생각조차 한 적 없던 인도가 아마 올해 가장 인상적인 장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3국이나 낯선 땅으로 출장 보내주는 것 하나는 참 맘에 드는 회사였는데.
여행을 다녀오면 뉴욕 이야기 많이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
무슨 이야기를 들려 드려야 하나, 일기라도 써야 하나, 고민했었는데요.
뉴욕 여행기보단 굳이 뉴욕이어야 했던 이유, 뉴욕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전부라,
그거라도 궁금하시다면 귀띔 해주세요.
언제 어디를 갔는지 가물가물 해서, 사진은 그냥 장소별로 묶었어요.
하도 여의도공원에 익숙해서 그런지 도심공원이라고 해봤자 센트럴 파크가 아니면 넘나 아가아가해서. 그래도 서너 번은 들렸던 곳이 Bryant Park. 실제로 여기서 동남아계 혼혈같았던 아주 작은 꼬마 아가씨가 저를 하도 빤히 보고 좋아라 하길래 잠시 잠깐 놀아주기도 했네요. Jamie 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예쁘지만 사진은 찍지 않았습니다. 이번 뉴욕에서 진짜 어려웠던 게 사람 사진 찍는 거였는데, 괜히 실례인 것 같은 거예요. 내가 그 사람들 입장이면 낯선 관광객이 묻지도 않고 내 사진을 찍어가는 게 과연 기분 좋은 일일까? 싶어서 되도록이면 사람들 사진은 아주 멀리서, 공간을 기록할 때만 한두 장씩 찍었습니다.
(이건 인도에서도 그랬던 것 같네. 뭐라고 해야 하지. 사람들을 객체화 하기 싫다고 해야 하려나... 그 사람들의 삶을 꼭 구경거리로 취급한다고 생각할까봐 최대한 자제했다)
음, 사실 Jamie 는 필름에만 담아 두는 게 싫었어요. 진짜 너무 앙증맞아서 렌즈 초점 맞출 시간에 차라리 아가 웃는 얼굴을 한 번 더 보는 게 좋았거든요.
여기는 Whitney Museum.
얼마 전 west village 쪽으로 이사한 미술관인데, 욱이도 "너는 브룩클린이나 웨스트 빌리지를 더 좋아할거"라고 추천하길래 아침 일찍 나왔다. 말투 막 바뀌네?
west village는 미술관 바로 옆에서 시작되는 하이라인이나 첼시마켓이 강가를 끼고 길게 이어져있다. 사실 그래서 아침 일찍 나온 건 아니고, 시차 적응에 실패한데다 비행기를 장시간 타고 이동하면 jet lag이 꼭 병처럼 오래 남는다. 밥을 잘 못먹고 새벽에 깨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외롭고 우울해한다. 그래서 새벽같이 나가 걷는다. 미국으로 처음 넘어올 때 생긴 트라우마 같은 거. 그땐 꼬박 일주일을 앓아 누웠었다. 낯선 가족, 낯선 집, 낯선 공기에 잔뜩 얼어붙어 해동 된 뒤로도 결국 그 이전의 내 결은 되찾지 못했다. 여전히 비행기는 싫고 미국에서의 시간은 악몽같이 느껴진다.
고하고, 현대미술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Whitney 전시는 좋았다. 시기를 잘 맞춰 간 것 같다. 아, 근데, 전시보다 미술관 꼭대기에서 보는 뷰가 정말 장관이더라. 태양이 이글거리는 한낮에도 그렇게 예쁜데, 아마 밤에 가면 더 예뻤겠지. 욱이가 노을 질 때 다시 데려가줬다. 그 때 High line을 다시 갈 껄 그랬어.
Edward Hopper는 자신의 그림 속 대부분의 여성상을 아내를 모델로 그렸다고 한다. 아래 작품을 그릴 당시의 아내는 예순이 넘은 나이였기에 그림 속 나신의 여성은 아내의 실제 모습이 아닌 작가가 아내를 바라볼 때의 느낌, 분위기, 인상을 기반으로 그려낸 인물.
그러니까 아내인 동시에 아내가 아닌 여자. 육체란 껍데기가 시간과 함께 녹아내려도 언제나 매혹적인 자태로 살아있을 껍데기 속 Ms. Hopper.
아래 사진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오브제.
A Woman with a Dog by Duane Hanson
뙤약볕 아래 벌겋게 익어 한참 돌아다니고 나서 기력보충하러 숙소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워서 정호오빠가 선물로 준 모노클 뉴욕 투어가이드를 펴보니 west village에 괜찮은 peking duck 식당이 있대서 욱이를 끌고 다시 서쪽으로. 아래가 그 식당, Red Farm. 가격대가 좀 높아서 진짜 그냥 눈 딱 감고 함 먹어야지, 했는데 어휴 먹는 내내 "아 존나 비싸. 야 이게 말이 돼? 와 개 비싸"하며 초치는 앞자리 대표님때문에... 다시는 북경 오리 따위 내 돈 주고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는 마무리 ^^^^^^ 아 난 저 반쯤 탄 첫 커트 사진들이 그렇게 좋더라. 몰라, 걍 좋아.
여기서 찍은건 Madison Square랑 Union Square 근처 풍경들.
참새 방앗간마냥 들어가서 돈을 퍼드리고 나온 Strand 서점 가는 길에 있던 양덕의 성지 같은 Forbidden Planet.
Strand에 가면 에코백을 꼭 하나 사서 나온다던 지웅오빠와 지웅오빠의 카메라.
오늘은 여기까지.
아직 Met, Met Breuer, Central Park, Coney Island, Cloister 사진이 남아있다.
사실 편두통때문에 종일 아팠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핸드폰으로 찍은 것도 한 80여장 될텐데, 우선은 필름만 올려둔다.
아, 여기 있는 건 Kodak Pro Image 100, Agfa Vista 200.
Pro Image는 빈티지한 느낌이 있다. 난 근데 그냥 코닥이랑 제일 잘 맞나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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