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28.
모든 합리화는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다.
내 행동도, 니 행동도 백 번 천 번 이해해줄 수 있을 것만 같고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결국은 다 개똥같은 소리.
1.
지연이가 파리로 떠나기 전에도 나는 여의도에 있었다.
언니, 저 가기 전에 꼭 한 번 봐요. 라는 이야기를 한 달 전부터 했던 것 같은데,
코 앞에서 근무하면서도 우리는 결국 밥 한 끼도 먹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게 늘 지연이에게 미안했다.
마지막일지도 몰랐을 식사.
아직도 두고두고 미안하다.
3.
우리집은 큰 도로에서 조금 덜 큰 골목으로 약 50m쯤 올라가야 보인다.
그 50m를 오르는 길에 가로등이라고는 달랑 두 개 뿐이라 밤 10시가 지나면 아무래도 혼자 걸어가긴 조금 무섭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내 뒤로 달려와 칼을 들이민다던가 거즈로 입을 틀어막을 것만 같은 공포가 등 뒤로 스멀스멀 올라와 목덜미에 닿을때 쯤, 우리집 현관이 보인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참았던 숨이 쏟아진다.
마지막 귀가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우리집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안도.
숨 고르고, 눈 감고,
그러다 가로등 밑에 서 있던 네 모습이 떠오른다.
2014. 5. 22.
2014. 5. 19.
1.
헤어지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도 헤어진다. 사람의 연이라는 게 종종 너무 가혹하고 슬프다.
2013.07
2.
인간 실격을 쓴 다자이 오사무는 서른
아홉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자살했다. 내가 가진 인생의 공포를 모두 기록으로 남겨놓고.
오늘은 다자이 오사무 65주기.
오늘은 다자이 오사무 65주기.
2013.06.13
3.
거부당하는 일에 익숙한 인간은 없다.
2013.05
4.
내가 덕수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저
적당한 시간에 돌아보기 좋은 크기라는 것도 있지만 맘 비우고 걷다보면 늘 원통함을 품은 채 잠 들고 눈 떴을 고종의 쓸쓸함이나 자괴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고종은 정관헌에 앉아 양탕국(지금의 커피)을 즐겨마셨다고 한다.
나는 덕수궁에 가면 유자차를 마신다.
고종은 정관헌에 앉아 양탕국(지금의 커피)을 즐겨마셨다고 한다.
나는 덕수궁에 가면 유자차를 마신다.
2013.05
5.
나의 강함이 아닌 약함을 보아주는 사람.
나의 끝이 아닌 시작을 헤아리는 사람.
5-1.
요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그게 가장 괴롭다.
자책 망상 공포- 그런 것들이 잠자리에 나와 함께 누워 텅 빈 눈으로 나를 한참이나 바라본다. 온몸을 짓누른다.
2013.05
all from my facebook wall.
6.
간질간질,
잘한다아. ;p
6.
간질간질,
잘한다아. ;p
2014. 5. 11.
2014. 5. 10.
2014. 5. 9.
2014. 5. 5.
내가 미국에 건너가서야 서로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나의 둘째 삼촌은 다운증후군 환자였다.
지능은 5세에서 7세정도의 수준이었고 어려서 받은 심장수술이 간에도 영향을 미쳐 몸마저 좋지 않았다.
나는 아침마다 삼촌의 맹장 어디께쯤 될 것 같은 곳에 간경화 치료 주사를 놔주었다.
그러고 나면 녹즙을 짰고, 아픈 주사에 맛 없는 풀떼기 주스, 한 움큼의 약을 매일같이 먹이는 못된 마녀라서, 한바탕 욕지거리를 들어야 했다.
욕지거리를 대충 끝내고나면 삼촌은 게임기 앞에 자리를 잡았다.
성질대로 되지 않으면 컨트롤러를 집어던지기 일수였고 내동댕이쳐진 게임기를 집어오는 건 내 몫이었다.
그러다 그 마저도 재미가 없어지면 삼촌은 방에 올라가 앨범을 꺼내 본다.
그리고 집을 비운 할머니를 대신 해, 식탁에 있는 나에게 달려와 어수룩한 영어로 사진 속 사람들과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삼촌에게 그 사진들은 마치 어제 있었던 일들마냥 생생하고 또 아름다워서 시간의 흐름이 무색했다.
과거와 추억 속에 사는 사람이,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일 또한 얼마나 애처로운지,
나는 삼촌을 보며 깨달았다.
삼촌에게는 '지금'이 없었다.
오로지 어느 시점까지의 과거만 머리 속에 남아있어 삼촌은 평생 그 시간만을 되풀이하며 살아 간다. 같은 공간에서 웃고 울고 분노하지만, 삼촌의 세상에 나는 없다.
종일 씨름하던 게임의 스코어도, 집어던진 게임기를 도로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며 보낸 경멸의 눈빛도, 아무것도 아무것이 되지 않는다.
과거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시공간에 사는 사람들이다.
함께 있더라도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
물론 그 세상 안에서도 충분히 희노애락을 느끼며 산다.
그저 함께 느낄 수 없을 뿐인데, 그럼 그걸로 행복해라, 그러면 그만인데,
그게 왜 그렇게 마음이 아팠을까?
단순히 아픈 환자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인간적 연민.
삼촌은 아직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올해도 건강히,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조금은 떠올리면서.
1.
어미새와 함께 쉬던 둥지는 포근했다.
어미새는 많은 먹이를 물어다 주었고 따뜻한 품을 내주었다.
나는 어미새의 사랑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때때로 꼬투리를 잡기도, 먹이를 뱉어내기도 했다.
몸집이 커가며 나뭇가지가 하나, 둘, 둥지에서 떨어져 나갔고
나도 푸드득.
제대로 날지도 못하면서 왜 주는 사랑을 제대로 받아주지도 않았을까.
다리를 절뚝거리며 부러진 날개를 부둥켜 안아야 할지언정
떨어진 건 떨어진 것.
살아야 한다.
2.
아무렇지 않을 수야 없어도
너무 오래, 자주, 모질게,
그랬으니 다 떨어져 나간 줄 알았다.
하지만 슬픔은 문어같다 했지.
It will ease its grip and you feel less, but it is still there. You just feel less.
전주에서는 영화를 보고도 이상하리만치 잘 버텼다.
역시나 돌아오니, 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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