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5.
내가 미국에 건너가서야 서로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나의 둘째 삼촌은 다운증후군 환자였다.
지능은 5세에서 7세정도의 수준이었고 어려서 받은 심장수술이 간에도 영향을 미쳐 몸마저 좋지 않았다.
나는 아침마다 삼촌의 맹장 어디께쯤 될 것 같은 곳에 간경화 치료 주사를 놔주었다.
그러고 나면 녹즙을 짰고, 아픈 주사에 맛 없는 풀떼기 주스, 한 움큼의 약을 매일같이 먹이는 못된 마녀라서, 한바탕 욕지거리를 들어야 했다.
욕지거리를 대충 끝내고나면 삼촌은 게임기 앞에 자리를 잡았다.
성질대로 되지 않으면 컨트롤러를 집어던지기 일수였고 내동댕이쳐진 게임기를 집어오는 건 내 몫이었다.
그러다 그 마저도 재미가 없어지면 삼촌은 방에 올라가 앨범을 꺼내 본다.
그리고 집을 비운 할머니를 대신 해, 식탁에 있는 나에게 달려와 어수룩한 영어로 사진 속 사람들과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삼촌에게 그 사진들은 마치 어제 있었던 일들마냥 생생하고 또 아름다워서 시간의 흐름이 무색했다.
과거와 추억 속에 사는 사람이,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일 또한 얼마나 애처로운지,
나는 삼촌을 보며 깨달았다.
삼촌에게는 '지금'이 없었다.
오로지 어느 시점까지의 과거만 머리 속에 남아있어 삼촌은 평생 그 시간만을 되풀이하며 살아 간다. 같은 공간에서 웃고 울고 분노하지만, 삼촌의 세상에 나는 없다.
종일 씨름하던 게임의 스코어도, 집어던진 게임기를 도로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며 보낸 경멸의 눈빛도, 아무것도 아무것이 되지 않는다.
과거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시공간에 사는 사람들이다.
함께 있더라도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
물론 그 세상 안에서도 충분히 희노애락을 느끼며 산다.
그저 함께 느낄 수 없을 뿐인데, 그럼 그걸로 행복해라, 그러면 그만인데,
그게 왜 그렇게 마음이 아팠을까?
단순히 아픈 환자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인간적 연민.
삼촌은 아직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올해도 건강히,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조금은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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