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23.

고백

 



1.

성인이 되고나서 누군가에게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고 명확하게 고백해 본 일이 거의 없는데, 내가 먼저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관계들은 대체로 끝이 좋지 않았고, 그 고백에 대한 구두로든 글로든 답을 들은 일이 드물었다. 보통은 잠수를 타거나 연락을 끊었으니까.


짝사랑에 대한 거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답은 역시나 박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박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고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퍼즐처럼 나는 그 말을 손에 꼭 쥐고 매일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었다. 무슨 의미일까. 어떤 박자를 말하는 걸까. 

수년이 지난 지금은 그저 어렴풋이 감정의 속도, 표현의 속도, 기대의 속도의 문제였지 않을까 눙치고 말지만 박자는 단순히 속도 이상의 문제이겠지. 빠르기뿐 아니라 방향, 높낮이, 강도 그 모든 것의 조화로움.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우리는 좋은 합이 될 수도 있었다고 믿는다. 서로에게 숨을 맞추면 심박수가 동일해지는 것처럼, 얼마든지 가능했다고 믿는다. 본인도 조금은 느꼈겠지만.




2.

용감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사랑을 받는 일에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을 지킬 신념, 상처를 주고 받을 각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음 더 적어보고 싶은데, 사랑고백을 받았던 경우도 별로 없어서 사실 더 할 말이 없네 ^^




3.

쓸모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꽈리를 틀고 앉을 때에는 철학서나 사회학 서적을 본다. 좁고 황량한 내 내면에 골몰해있지 않고 거시적 세계로 눈을 돌리는 좋은 방법. 더 넓고, 크고, 오래된 눈을 빌려 써본다. 나의 고민이 얼마나 하잘 것 없었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으므로. 


어빙 고프만 책과 기든스 현대 사회학(아마 전세계 모든 사회학과에서 쓰는 교재일 듯)을 빌려왔다.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도. 착실히 읽어야지.




4.

아무도 묻지 않지만 떠들고 싶은 나의 독서 방법.

재미난 책을 발견하면 그 작가가 원고를 집필하는 동안 읽은 논문이나 서적, 참고했다는 사상가들의 책을 찾아본다. 책에 여러 유명인사의 추천사가 붙은 경우, 가장 맘에 드는 추천사를 써준 사람(대게는 작가)들의 대표작도 한 번씩 살펴본다. 마인드맵을 그리는 방식으로.


대니 샤피로는 내가 번역했던 작품에 추천사를 써준 훌륭한 작가 중 하나였고, 현아의 책에서도 이야기가 나와서 아 이젠 정말 읽어볼 때다 싶었다. 번역은 한유주 작가가 했다. 첫 페이지부터 재밌다.



+

원래도 책 사기 전에 작가 소개나 판권 페이지를 꼭 들춰보는데, 이젠 역자 프로필도 꼼꼼하게 본다. 당사자성이란 게 참 웃기단 말이지.




2022. 9. 21.

이름

 



1.

나는 모든 이름을 알고 싶다.

모든 것의 모든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2.

테크니컬 라이터 겸 UX 라이터.

지난 33개월간 라이터라는 이름하에 다양한 용도의 텍스트를 썼다. 버튼명을 정하기도 하고, 코드를 인간의 언어에 가깝게 풀어써보기도 하고, 마크다운이라는 새 문법도 배웠다. 대체로 낯설고도 흥미로웠다. 이제는 익숙하고 친근하다. 능숙이라고 적으려다 역시나 거짓말 같아서 지웠는데, 안타깝게도 3년간 내 일에 있어 탁월하게 능숙해지지 않았고, 흥미로움 역시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처음처럼 모든 프로젝트가 깨달음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여전히 고된 일도 몇 가지 있다. 가장 적응이 안 되고 골머리를 앓는 일은 이름 짓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제작할 때, 그 제품을 부를 이름을 짓듯이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들 역시 이름이 필요하다. 내가 하는 일은 그 모든 부품에 최대한 기술적(descriptive)이며, 외부인(제작자가 아닌 모든 사람)이 봐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적확한(concise and precise) 이름을 붙어주는 것이다. 


언어의 본질인 사회성, 자의성, 창의성의 개념을 빌려오자면, 프로그래밍 언어같은 경우 창의성 혹은 자유도가 높다. 가상의 언어 vava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장조사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vava라는 언어(혹은 외국어)로 설문지(코드)를 짠다고 하면, vava 언어권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사용되는 일반적 설문지 템플릿(라이브러리)을 이용해서 호다닥 설문지를 생성할 수 있다. 만약 내가 만들려는 설문지의 내용과 구조가 복잡하다면 vava의 문법은 따르되 디폴트로 제공되는 옵션이름(코드명) 대신 내 설문지에 특화된 단어를 얼마든지 새롭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이지 않은 설문 답안(이를테면 “질문 두 개 건너뛰기”나 “여기서 설문 종료”)을 “뚜뚜뚜”나 “#$%%%” 라는 식으로 적으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해도 되는데, 기본적으로 모든 코드는 영어를 이해하는 사람 기준으로 작성된다. 어처구니 없는 서구중심, 특히 미국중심환경 아니냐고 따지겠지만, 맞는 말이고, 컴퓨터가 이미 이렇게 개발되어버린 이상, 이 상황을 뒤집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신 “용건만간단히”이라든가 “이쯤에서그만” 같은 단어를 만들어서 쓰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기능이 출시될 때마다 그 기능을 구현하는 모든 레벨의 코드명을 검수한다. 고객사의 엔지니어가 코드만 봐도 이 함수가 혹은 파라미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넘어가는 것인지 유추할 수 있는가, 해당 언어의 컨벤션에 어긋나지 않는가, 이런 것들을 확인하고 수정이 필요하다면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 우리 회사 엔지니어들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이름 짓기가 어째서 어렵냐면, 각 언어(우리 회사는 현재 8개의 언어를 지원한다)의 특성을 이해하고 코드의 확장성을 고려하여 지어야하는데, 내가 8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고, 코드가 어느 쪽으로 확장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전자의 경우, 프로그래밍 언어 별 컨벤션을 모조리 알기 어렵고, 게다가 특정 함수 하나가 수행하는 복잡한 행위를 한두 개의 단어로 정확하게 묘사하는 일은, 특히 영어로, 아름다운 코드를 짜는 일만큼 명쾌한 답이 없다. 한편 코드 확장성(외부)의 문제는 사실 코어(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어설픈 이름을 지어준 함수가 먼 미래에 여기 저기서 수도 없이 호출되어야 하는 제품의 핵심 코드였다? 함수 이름을 이렇게 개떡같이 지어놓은 게 누구냐며 후세의 모든 엔지니어들이 분노로 찍어대는 청축 기계식 키보드 소리가 벌써부터 환청처럼 들린다. 괴상한 이름의 함수는 제품에게도, 사용자에게도, 앞으로 올 관리자에게도, 모두에게 고통이다.


여기서 아쉬워지는 것은 언어의 자의성. 사람의 이름처럼 코드 이름과 코드가 실제로 수행하는 일에 사실은 아무런 연관이 없으면 좋으련만.




3.

에스키모가 설질에 따라 십여가지가 넘는 이름으로 눈을 구별한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아는 이야기. 비단 특수문화권에서만 존재하는 언어활용형태는 아니다. 요리를 하다보면 세상에 기름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하며 제조방식이나 발효기간에 따라 수십가지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향신료는 또 어떻고. 우리나라엔 강산에가 명태의 50가지 그림자마냥 건조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생선의 이름으로 만든 노래도 있지 않은가. 어떤 분야에서 아주 드물게 불리는,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이름을 캐치했을 때, 나는 한 뼘 더 우쭐해진다. 세상의 비밀을 한 어절만큼 더 알게 된다. 내 단어 주머니에 잽싸게 넣고 입구를 꽉 조여맨다. 그 이름을 꺼낼 수 있는 최적의 순간만을 기다리며. 


영어에는 걷는 행위를 묘사하는 동사가 대여섯 개는 될 것이다. Roam, walk, lurk, stroll, stride 등등. 한국어라면 부사+동사의 형태로 표현했을 행동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준다. 고급(advanced) 영어로 갈수록 어휘가 중요해진다. 슬픈 얘기지만, 어휘력이 발화자의 지적 수준, 사회경제적 지위 따위에 대한 가늠자가 된다. 




4.

언어란 결국 이름의 집합. 부르고 싶은 대상이 관념이든, 물질이든 무언가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호가 이름이니 언어란 이름들의 가계도. 계보.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늘 거리가 존재한다. 결국 이름과 이름의 주인 사이에는 늘 거리가 존재한다. 언어의 자의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름은 피부처럼 가깝게 달라붙어있고, 어떤 이름은 이름의 대상으로부터 몇 광년 거리에 존재하는 듯 하다. 

우주에서 우주를 건너는 이름도 있고, 속삭이자마자 혀끝에서 녹아버리는 이름도 있겠지.

그 거리를 재는 단위도 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름을 가능한 촘촘하게 알고 싶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그 이름들을 소리내어 부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이름을 잘 짓는 사람보다는 역시 이름을 잘 부르는 사람이 되는 편이 빠르지 싶다.




5.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의 이름을 아주 자주 부른다. 혼잣말로도 부르고, 코를 맞대고 있을 때에도 굳이 소리내어 부른다. 좋아서 부르던 것이 부를수록 좋아지기도 한다. 주문이 된다. 


부를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름을 부르고 싶다. 기표로서의 이름은 휘발하고 기의로 남을 때까지, 알맹이가 되도록 부르고 또 부르고.





2022. 6. 2.

감독님,

 


감독님,


잘 지내세요?

저도 제 블로그를 잘 안 들어오지만 이렇게 적어놓으면 언젠가는 이 편지를 보시겠죠. 

감독님의 근황은 언제나처럼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접하게 됩니다. ㅎㅎ 그래도 모니터 속에서나마 감독님 얘기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드디어 번역서가 나왔어요. 전해드리고 싶은데 방법으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사서 보셔야겠어요 ㅎㅎㅎ

번역서지만 책 나왔다고 행사로 사람들 만나고 왔더니 제가 주목 받고 내 얘기 떠드는 걸 정말 좋아하는구나 다시금 깨달아서 조금 웃겼습니다. 이렇게나 사람을 귀찮아하면서 타인의 관심에 대한 갈증은 어디서 기원한 걸까요.


이 편지도 그런 갈증의 연장선인 것일까.

그냥 감독님, 이라고 불러보고 싶었어요. 그때 같은 긴장감이나 설렘보다는 안타까움을 담아서. 아무에게서도 아무 자극을 느낄 수 없고 아무런 감상도 전할 수 없는 일상에 대한 안타까움이요. 감독님과 나누었던 대화가, 그런 이야기를 들여주는 존재가 몹시도 필요한데, 어디에도 없네요.

감독님은 이제 삶이 충만하신가요? 차고 넘치는 것은 없지만 부족함이 모자람이 없는 삶인가요? 



안 그래도 좁고 마른 우물 같던 제 세계가 점점 희끄무레해지는 것 같아요. 나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고요. 잘 살고 있는데 이제는 무엇을 더 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어요. 왜 해야 하는 지도.


요즘은 무얼 보고 읽고 듣고 지내세요? 감독님 안위보다 감독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만 궁금해하는 제가 좀 괘씸하실까요? ㅎㅎㅎ


여기서 이렇게 혼잣말을 하는 제가 바싹 마른 무덤가에 앉아 소주 기울이면서 건조하게 푸념하는 성묘객 같기도 하고요. 


더 궁상맞아지기 전에 그만 쓸게요.

또 오세요 :)


나연.






2021. 11. 11.

이사




사슴의 집에 온 지 1년이 갓 넘었는데 같은 평수 전세 보증금이 6000-7000만원 가량 올랐다.

월세도 적당하고, 관리비도 엄청 저렴하게 나와서 이 집엔 아무 불만이 없었다. 작은 방이 고시원 같아서 옷 갈아 입을 때 말곤 안 들어간다는 점 빼고.

겸사겸사 결국 전세로 옮기기로 했다. 

계약서에 싸인하는 날 보증금의 10%를 계약금으로 임대인에게 송금해야 하는데 1일 이체한도를 한참 넘는 금액이었다는 걸 송금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서야 알았다. 사는 동안 한 번도 천만원이 넘는 크기의 돈을 어디로 보내거나 받아본 일이 없었으니까.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니 집주인 내외분들이 괜찮다고, 내일 마저 넣고 전세 대출금 이체하기 전에는 은행 내방해서 억 단위로 늘려놓으라고 조언해주셨다.

그리고 지난 주말, 카카오뱅크에서 (개 tmi네) 전월세보증금대출 상품을 신청하고, 화요일즈음 승인 연락을 받았다. 2억에 가까운 돈이 내 이름으로 (나를 스쳐)왔다, 간다. 

에어콘을 설치하던 날엔 조금 벅차고 뿌듯한 어른의 기분이이었다면 이번주는 좀 서러운 어른이다.
은행 곳간에 잠들어 있던 돈이 내 이름을 달고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간다. 나는 만져본 적도 없는 돈인데. 고래 잔치에 낀 새우라, 등이 터지지 않기 위해 꼬박꼬박 몇 십만원의 이자를 은행에 낸다. 돌려받을 수 없는 돈. 신용은 내가 빌려주는데 왜 그 대가도 내가 치러야 하는 거지. 

그래도 갖고 싶었던 소파를 사서, 놓고 살 약 6평의 공간이 더 생겼으니 좋아하고 뿌듯해 해야겠지?
근데 왤케 다 버겁다는 느낌인지 모르겠네.


여튼 첫 집은 이렇게 이별. 근데 벌써 그립다, 이 집.


(서울시내에 이만한 조건의 투룸 아파트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집 구하시는 분들 연락주세요.(?))




2021. 2. 20.

근황 업데이트

 



1.

독립한 지 곧 반 년이 된다(오 생일날 딱 6개월 되네). 세상 시간 진짜 빠르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간 많은 친구들이 다녀갔다. 예상치도 못했던 손님들도 있었고, 남자를 보는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간 사람도 있었다. 아무나 집에서 재우지 말아야겠다 결심했지만 예외도 있었다. 가장 고대했던 네 발 달린 친구는 일주일 가까이 자고 갔다.

아직 못 온 친구들도 몇몇 있지만, 친구들 덕분에 덜 외로웠다. 덜 춥게 지냈다. 




1-2.

글자 그대로 덜 춥게 지냈는데, 우리집에 채광이 어느 정도로 잘 드냐면 나는 12월이 될 때까지도 우리집 보일러 밸브가 잠겨 있는 것도 몰라서 1월까지 도시가스비가 0원이었다. 관리사무소 선생님이 오셔서 확인 안 해주셨으면 겨울내 보일러도 못 틀고 ‘이 집은 원래 이렇게 틀어도 쌀쌀하고 안 틀어도 뜻뜻하고 그런가?’ 하며 지냈을 거다. 하이고.




2.

클럽하우스라는 새로운 sns가 생겼다. iOS에서만 사용가능한데다, 영어 UI, 인비테이션 기반 가입방식 등 여러 진입장벽이 존재하는 폐쇄적인 서비스임에도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사용자 중 아주 높은 비율이 테크 산업 종사자들이나 마케터, 홍보 전문가들. 이 기회를 노려 여러 (중견)스타트업에서 기업 설명회 같은 취업 설명회 같은 묘한 세션들을 열고 있고,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쟉은 채널에 옹기종기 모여 내부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도 당연히(?) 채용 설명회 비스무레한 세션을 진행했고,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팀원들이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책 얘기까지 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아주 소수의 회사 동료분들께 인스타 계정까지 알려드리게 되었다.(알려드린 것보다는 클하 프로필에 인스타 계정을 연동시켜둔 탓에 실제로 클하에서 만난 다양한 분들이 인스타까지 팔로우해주셨다. 인클루딩 정재승 교수님. 아 대박 가슴 설렛찌 모야...)


고로...

이제 토비즈 계정에는 좆이네 엿이네 씨발이네 같은 소리는 못할 것 같다...




2-2.

우리 회사에 글 쓰는 분들 많더라. 블로그든 브런치든 시든 뭐든.




3.

사내 북클럽에서 장애학 도서를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각자 할 얘기가 너무 많았다. 이런 분들과 일 하고 있어서 천운이다. 일복과 직장복은 타고 났다 증말.




4.

안 마시던 커피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마신다고 표현하기 머쓱할 정도로 일주일에 연하게 탄 라떼 한 잔 정도 마실까 말까 하지만, 그래도 카페인 수혈이 아니라 맛이 그리워 커피를 마신 건 진짜 오랜만이다. 물론 커피 맛 뭣도 몰라서 서교동 앤트러사이트에서 모카포트로 내려준 라떼가 내 기준에선 젤 맛있다. 혀지네 오빠네 txt 커피 라떼도 진짜 존맛이었는데.




5.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려 한다. (아마도 내일이나 모레.) 

친구도 별로 없는데, 그 중에 차 가진 친구는 더 드물고, 그 사람들(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거리감이 있는 사이)에게는 차마 어딜 같이 가달라 부탁할 염치가 없어서, 그냥 내가 해야겠다. 하아... 어바인에서 면허 시험 세 번 떨어진 순간 평생 운전따윈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는데 될까.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섭네 ㅠ


근데 뭐 걔도 하고 쟤도 하는데 나도 딸 수 있겠지, 면허...


그리고 회사 언제까지 다닐지 모를 일이므로(회사에서 학원비 지원해줌) 일단 학원은 등록해야 한다.




5-2.

아, 회사에서 아이패드도 사줬고, 책도 개 마니 사주고, 러닝화도 사주고, 1:1 pt도 끊어줬다. 이거랑 재택근무때문에 진짜 이직 엄두도 안 난다. 넘 좋다.

사랑해요 순두부두...




PS.

아까 앤트러사이트 입구에서 토스트랑 비슷한 친구와 함께 광합성 하고 있는 커플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 눈물이 찔끔 났다. 나한테는 왜 저런 일이 도무지 주어지지 않는 걸까. 내 삶에 유일하게 없는 행복. 내가 애타게 그리는 행복은 볕 좋은 주말, 강아지와 사랑하는사람과의 산책을 곁들인 라떼의 맛. 






카메라를 든 남자들

 



1.

첫 남자친구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그 사람이 올린 사진 몇 장 때문이었다. 이런 사진을 찍는 사람은 누군지 궁금했다. 그 눈이 보는 세상이 궁금했다. 그 눈에 예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로지 그 생각으로 만났다. 




2.

영화 감독, 감독 지망생, 카메라 상점 주인, 사진 작가 등등.

첫 남자친구 이후로도 카메라를 든 남자를 오지게도 만났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나서는 사람이거나 못해도 카메라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이고 사물이고, 장삼이사 발에 채이는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이나 추함을 찾아내 세상에 다양한 시선이 있음을,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아직 많음을 몸소 증명해주는 사람들이 좋았다. 숱하게 당하고 뒷통수 맞아놓고도 여전히 좋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에 보면 주인공인 ‘심시선’이 남편이란 존재의 무용함에 대해 설파하면서 “그네들은 렌즈가 하나 빠졌”다고 평한다. 그래요, 그럴 수 있죠. 제가 그래서 렌즈 하나 더 달고 다니는 남자에게 끌리나봅니다요.




3.

좋아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상냥하게, 다정하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려고 한 게 죄인가. 

취향이든 뭐든, 왜 늘 ‘대가’를 치뤄야 하는 걸까. 왜 늘 이런 취급 당해야 하는 걸까.




4.

아니 씨발, 그런 새끼들도 옆에 멀쩡하게 애인은 끼고 있자나. 나는 왜 아니냐고. 시발 진짜.






Not a big fan of regret and boredom

 



1.

믄재가 비비 좋아한다고 할 때 좀 들어둘 걸 그랬다 싶을 정도로 비비 노래를 열청하고 있다.

얼굴은 낯선데 목소리가 익숙해서(낯익었다고 썼다고 목소리에 낯이 있나? 싶어서 다르게 적는다) 유투브를 뒤졌더니 예전에 타이거 JK랑 윤미래랑 다 같이 어디 나온 걸 본 적이 있더라고(내가). 그때 ‘안 맞는 옷을 입혀 나왔네. 저런 거 아님 더 잘 놀겠구만’ 이라고 생각했던 것까지 기억났다.



2.

가장 많이 돌려 듣고 있는 건 쉬가릿과 비누. 어떤 분 인스타 들어갔다가 쉬가릿 라이브를 보그랑 찍은 동영상을 보고 치여서 듣고 또 듣는데, 드디어 20대 여성 뮤지션이 담배와 콘돔 얘기를 자유롭게 해도 되는 날이 온 것인가!!! 좋아서 들었다. 내 책 너무 보내드리고 싶더라.

하지만 가슴에 가장 진하게 박힌 가사는 비누의 한 대목이었다. 


오늘 했던 거짓말들

어제 했던 bad decision

Do you know how to keep myself clear

다 비누로 씻어내는 거지


이 부분 최고야. 



3.

영상을 보고, 인터뷰를 뒤지고, 노래를 종일 듣다 내가 이 뮤지션을 굉장히 부러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예쁘고 재능있는 거야 당연히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부러운 건 다른 면이었다.

나쁜 선택에게 내어줄 시간이 있다는 점. 그리고 오늘 다시 거짓말을 해도 내일 비누로 씻어내면 그만인 그 여유, 나에게는 이제 사치인 일을 맘껏, 양껏 낭비 할 수 있다는 점. 그게 눈도 못 뗄 정도로 부럽더라.


더 실수하면서 살 걸, 

더 엉망진창인 선택들을 하며 살 걸,

그때 가진 거라곤 시간과 감정뿐이었는데, 더 무모하게 쓰면서 살 걸,

더 저지르면서 살 걸.(물론 충분히 그러고 산 것 같지만, 그래도.)


이젠 체력이 안 돼서, 잃을 것이 많아서, 다시 쌓는 일이 두려워서 선택은커녕 생각도 맘대로 하질 못한다.

요새 ‘더 열심히 살 걸’하는 아쉬움이 꼭 연못 아래로 가라앉았던 낙엽 떠오르듯 슬쩍 슬쩍 올라온다. 절대 그 보다 더 열심히 살 수는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종류의 열심일까. 뭐가 아쉬운거지. 그렇다고 지금 삶이 부족하거나 모자란 것도 아닌데.



4.

BIBI님 더 내키는대로 맘껏 살아주세요. 그리고 그거 꼭 노래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