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26.

편두통

 




1.

올리버 색스의 책에 딱히 큰 관심은 없지만 언젠가 찾아 읽고 말겠다고 다짐한 그의 저서가 있다.

나의 오랜 적, <편두통>. <편두통>은 심지어 그의 첫번째 책이다.




2.

편두통이 처음 시작된 건 19살 무렵이었다. 마귀할멈의 집에 살 적이었고, 100% 스트레스성으로 발현된 두통이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그 후로 15년 넘게 두통을 달고 산다.


처음엔 편두통이 뭔지 몰랐으니, 그냥 스트레스성 두통인 줄 알았고, 애드빌도 타이레놀도 듣지 않아 아침부터 온종일 앓아 눕다 토하다 또 눕다를 반복하고나면 탈진 상태로 잠들었고, 다음 날이면 통증이 흔적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무기력증이 대신했다. 멍청한데다 나의 안녕에 관심이라곤 1도 없었을 마귀할멈 덕분에 나는 두통이 찾아올 때면 마취 없이 신경치료 받는 치통 환자처럼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인내심으로 견뎌내야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고질적 두통이 불규칙하지만 전보다 훨씬 강력하게 발현되었다. 내가 겪는 두통은 두개골 전 범위에서 통증이 발생한다. 두통은 수면 상태일 때 시작된다. 통증때문에 새벽녘에 잠에서 깨면 눈 앞에 섬광이 보이다 슬슬 어지러워지고, 그러다 뒷통수부터 관자놀이 할 거 없이 특정할 수 없는 부위에서 압착기로 뇌를 조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뇌가 찌부러지는 듯한 통증이 점진적으로, 그러나 빠르게 상승하는 커브 곡선을 그리며 절정으로 향해가는 동안 구역감이 올라와 통증 초반에 먹은 진통제까지 다 토해내게 만든다. 이쯤이면 대가리(통증이 심해지면 욕이 나올 수 밖에 없다)를 총으로 날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통증이 극심해지다 서너 번 더 토하고 나면 탈수 상태가 되고, 그러면 그제사 어딘가 기대 앉아 숨이라도 쉴 여유가 생긴다. 통증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누울 수 조차 없는데, 이상하게 누운 자세가 두통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빛이나 텔레비전 소리조차 견딜 수 없는 자극으로 느껴져서 두통이 시작되면 집안에 그 누구도 전자기기를 틀지 못하게 협박 아닌 협박을 했고, 방문을 꼭꼭 닫고 암막 커튼을 치고 어둠 속에 앉아 혼자 숨을 헐떡거리며 울었다. 


이게 보통 2-3시간 안에 전개되는 증상이다. 새벽 5-6시쯤 깨면, 근처 내과가 문을 여는 9시까지 혀를 깨물며 견디다 날이 밝아오면 병원으로 기어가다시피 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일반 병원에서 처방받는 약으로는 통증이 잡히질 않았고, 응급실에 실려가 아이비와 진통제를 두 통쯤 비워야 제정신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새벽에는 경미한 근육통 정도로 느껴지다 출근을 한 후에나 학교에 가서 두통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한 번은 학교 근처 병원에서 한 번, 그걸로도 안 돼 조퇴하고 간 병원에서 또 한 번 진료를 받다 (중간에 도저히 구역감을 견딜 수 없어 두어번 화장실에 다녀왔고) 탈진해서 기절하기도 했었다. 눈 떠보니 응급실이었다.


이쯤 되니 이것은 그냥 두통은 아닌 듯 했다. 친절한 네이버 검색을 통해 편두통(두통의 한 종류겠거니, 뭔가 그래도 일반 두통보단 심각한 건 거 같아서 일단 검색부터 해봤다)을 검색해보니 전조 증상이며 통증 발현 형태가 내 증세와 비슷했다. 다만 내 두통의 경우 편두통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한쪽 “편”에서만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다소 긴가민가 했다. 그래도 내 증세와 가장 비슷한 병명이었기에, 그 후로는 증상이 없을 적에 미리 내과에 가서 편두통 약을 처방받아두었고, 여행을 가거나 중요한 행사가 있는 자리에는 꼭, 꼭, 약을 들고 갔다. 내 머리통은 약의 명령을 들을 때도, 듣지 않을 때도 있었다. 병원에 가서 똑같은 증상을 얘기해도 돌아오는 답은 "편두통인 것 같네요" 같은 소리 뿐이었고, 매번 처방해주는 약도 비슷했다. 이걸로는 안 듣는다고, 저번에도 그래서 어쩌구저쩌구 설명해봤자 그들이 차트에 뭘 적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내 고통의 토로를 정말 참고는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10년 넘게 앓고 있는 이 처참하고 끔찍한 고통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래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해결하지도 못한다는 게, 너무 화가 나고 분하고 또 아파서, 편두통이 시작되면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절로 났다.




3.

3주 전인가, 런칭 준비를 하느라 열흘 정도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이어졌는데,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병원에 가 진통제를 맞지 않으면 안 될 레벨의 두통이 가시질 않았다. 두통이 시작될 즈음에 이미 한 번 크게 토하고 탈진했다 기운을 조금 차렸던 건데, 후로 음식도 제대로 먹질 못하고 머리는 계속 아프고 와중에 질염 때문에 항생제는 계속 먹어야했어서 정말 족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제품 런칭과 함께 씻은 듯이 나아서(^^) 아, 스트레스성이었나보다~~ 하하하~~ 하고 안도했더니 오늘 오전에 또 섬광이 보이는 거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집 근처 신경과를 검색해봤다. 전에 멜멜님이 세란병원을 추천해주셨는데, 오늘 검진예약 하면 한 한 달 뒤에나 가능하겠다 싶어 그냥 집 근처 병원에 먼저 가보기로 했다. 두통 오면 또 바로 달려갈 수 있어야 하니까.


다행히 오늘 빈 진료 시간이 있었고, 전화를 끊자마자 택시타고 달려가 원장님을 만났다. 언제부터 증상이 있었는지, 주로 어떤 증세로 나타나는지, 전조 증상이 있는지, 두통이 오면 어디가 아픈지 등을 물어보시더니 뇌혈류 초음파를 보고 안진 검사를 좀 받아보는 게 좋겠다시며 일주일 내내 두통이 있으셨으면 너무 힘드셨을 거 같다며 고칠 수 있다고, 제가 낫게 해드리겠다고 웃으셨다. 의사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았던 그 말이 너무나 생경하게 들려 검사 받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병원에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몇번이나 되나? 낫게 해드릴게요. 약속같기도 하고, 예언 같기도 하고, 응원 같기도 한 묘한 말이었다.



4.

오늘 진료를 통해 동공지진이란 게 실재하는 의학용어라는 사실을 배웠다. 안진 (震): 의지와 관계 없이 안구가 제멋대로 겉도는 상태를 뜻한단다. 뇌혈류 초음파를 통해 두개 내외 혈관에 혈류량이나 속도가 어떤 상태인지 검사하고, 안진 검사를 통해 균형감각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했다. 30분 정도 검사를 받은 후 결과를 들어 진료실에 다시 들어갔더니 전형적인 혈관성 두통이고 혈류장애가 심한 상태라 2주정도 약을 먹고 경과를 다시 보자고 하셨다. 안진도 심해 현재 균형감이 완전히 깨져있고, 그로 인해 어지러움증이 심하실 거라며 그것도 같이 봐야 할 것 같다고. 15년 넘게 달고 산 통증을 두통 혹은 편두통이라는 희미한 이름으로만 부르다 혈류성 두통이라는 기술적 병명, 뇌혈관 문제라는 병인, 의학적으로 확인된 증세를 듣고 나니 (머리는 여전히 띵하지만) 속은 조금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우울증 판정을 받았을 때처럼. 



5.

오늘도 두통이 있었던지라 말초혈관 수축에 도움을 주는 뭐라고 수액 맞고 가라셔서 수액실에 누워있다 혈관성 두통을 검색해보고 싶어졌다. 나같은 사람이 많나, 학계에선 정말 이걸 질병으로 보나? 

그러다 발견한 아래 블로그.

https://blog.naver.com/cnshs99/222433830631 

뇌 과민증후군(Brain Hypersensitivity Syndrome)이라는 낯선 병명과 그에 대한 설명, 그리고 과민한 뇌를 가진 사람들이 겪는 두통에 대해 이해하기 쉽고 논리정연하게 정리한 블로그 포스팅이었다. 

디스크, 다낭성난소증후군, 흑극색세포증, 인슐린 저항성 어쩌구저쩌구등 평생 살면서 겪었던 통증이나 질환에 대해 네이버로 검색해보지 않은 적이 없었고 (나는 병에 대해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 그때마다 실망과 짜증을 감출 수 없는 병원 홍보글 혹은 홍보 알바생들이 복붙한 듯한 정보값 0에 수렴하는 스팸 포스팅 무덤 속에서 한 줄이라도 가치있는 정보를 찾아내려고 통증만큼 불쾌한 검색결과 필터링 과정을 거쳐야만 했는데, 이 블로그는 단 한 줄도 걸러낼 이유가 없는, 환자 김나연으로서의 인생에서 최초로 발견한, 유의미한 가치 100인 병원/병원장의 블로그였다. 찌라시와 광고글로 오염된 네이버 블로그 세상에도 이렇게 유익하고 논리적이며 친절한데다 전문지식이 가득한 블로거가 있구나, 진짜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수액이 혈관으로 흘러들어가는 30분간 이 블로그의 뇌 과민증후군 관련 포스팅을 처음부터 정독했고, 특히나 두 번째 포스팅인 "비특이적 증상에 적절한 진단명 붙이기"와 세 번째 포스팅인 "좋은 진단명과 치료적 진단"이란 글을 보면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이자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는 지식 노동자로서 그의 태도에 공감하고 또 감동받았다. 테크니컬 라이터가 하는 일에는 코드명 리뷰와 에러메시지 작성이 포함된다. 둘 다 "이름 짓기" 업무인데, 모두가 가장 난감해하는 작업이다. 이름을 짓는 우리는 어떻게하면 낯선 상황을 맞닥뜨린 사람(유저)이 코드의 이름 혹은 짧은 에러메시지만 보고도 기능의 핵심과 문제의 원인, 해결 방법까지 유추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의사인 그도 진단명에 있어 같은 관점을 공유하고 있어서 앞서 언급한 두 포스팅은 편두통 이야기와는 다른 이유로 흥미롭게 읽었다.


여튼, 다시 편두통 이야기로 돌아와 그의 포스팅에 기반하자면 흔히 편두통이라는 모호하고 불명확한 이름으로 불리는 혈관성 두통(이마저도 좋은 진단명은 아니라한다)은 뇌세포가 과민해져 나타나는 기능성 장애 증상의 하나일 수 있다고 한다. 뇌 과민증후군은 다양한 비특이적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인데, 그 중 하나가 두통이요, 두통 중에서도 심한 두통 에피소드를 편두통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

편두통이 시작되면 온갖 자극 - 시각, 청각, 후각, 가끔은 촉각까지 - 이 과도한 스트레서로 작용한다는 걸 몸소 겪은 사람으로 언제나 두통의 머리(...) 아니면 심장엔 뇌가 있을 것이라 추정했는데, 이런 가설(?)을 의사의 입을 통해 듣게 되니 솔깃할 수 밖에. 




6.

게다가 그가 뇌 과민증후군과 관련하여 남긴 모든 포스팅은 서문-본문-결론 요약까지 완벽하게 구성되어있고 중간 중간 논문이나 관련 진료 내용 예시 등이 삽입되어있어 거의 교수님이 써주신 강의록 혹은 수업노트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이걸 엮어다 단행본을 만들어도 좋겠다 싶을 정도.


찾아가 진료를 받아보고 싶은데 병원이 천안이시더라... 하이고야.


어쨋든 오늘 신경과 다녀온 것도, 김석재 원장의 블로그를 발견한 것도, intp 편두통인에게 너무나 큰 소득이요 기쁨이라 나도 갑자기 장문의 포스팅을 남겨본다.





2023. 3. 19.

PoF

 




1.

우리는 하나의 관점이기 이전에 무수한 감점(感點)이다.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2.

그가 나에게 남겨준 가장 큰 유산은 아니 에르노다. 그는 아니 에르노를 내 세계에 소개해주었고, 아니 에르노의 글은 내가 당신을 기록할 용기를 주었다. 


요즘 하도 소설을 안 읽은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읽은 소설이 무엇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교보에 들러 소설 섹션을 기웃거리는데, 아니 에르노의 <<사건>>이 생각났다. P와의 섹스, 임신, 낙태 그런 걸 적은 책 소개문구를 읽고 있자니 '이 P가 혹시 필립 걘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P였음), 아니 에르노 신작이 이전에 만났던 연인에 대한 글이라는 것이 떠올라 책은 내려놓고 핸드폰을 들었다. 네이버를 켠 다음 "아니 에르노 신간"이라고 검색하니 역시나 30세 연하였던 연인 어쩌구에 대한 어쩌구 저쩌구라는 소개글이 떴다 (이건 내가 생각한 P가 맞음). 


그가 처음 <<단순한 열정>>을 소개해주었을 때 "<<포옹>>을 꼭 같이 읽어요.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이라, 둘을 다 읽고 나서 알려주세요." 라고 일러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아니 에르노의 이번 신간이 영영 궁금하지 않았을 뻔 했다. <<포옹>>은 아니 에르노의 연인이었던 필립 빌랭이 두 사람 사이의 만남과 사랑, 관계, 이별에 대해 아니 에르노식 글쓰기를 차용해 쓴 에세이(?)로, 30살이나 많은 아니 에르노는 어떻게 이 칭얼거림을 다 받아주고 앉았나, 그쪽은 할 말이 없나, 어이구 답답해, 아니 에르노도 좀 이상하네,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어느 소개글이나 홍보문구에서도 필립 빌랭에 관한 이야기라고 작가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루앙이라든가 30살 연하의 연인과의 만남과 이별이라고 하니, 이번에 나온 신간 <<젊은 남자>>가 바로 그 "그쪽" 이야기가 아닐는지. 


오늘 샀으니 일단 탈고하고 확인해야지!



 

3.

아직 글이 되기에는 녹아내리는 생크림 케이크마냥 위태롭고 연약하다. 혹은 맛이 들지 않은 생열무처럼 풋내나고 민둥민둥하다든가.




4.

나는 그날 그 꽃이 사고 싶었다.

김기림이 남긴 울금향과 이여성에 관한 수필을 며칠 전에 다시 읽은 터라 조만간 튤립을 사야겠다, 하고 있었는데 인적 없는 골목의 작은 술집에 난데없이 등장한 인물로 울금향에 대한 욕구가 다시 솟아났다. 낱개로 비닐포장한 튤립이며 장미를 한 아름 들고 들어오신 어머님은 단조로운 술집 풍경에 비해 너무도 화사하고 천진난만해 그 장면이 마치 무대에 처음 등장한 연극배우처럼 보였다. 매장 안에 있던 우리나 사장님네 테이블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맞은 편에 있던 나를 향해 웃으시며 "내일이 화이트 데이인데, 내일은 사람이 조금 더 많겠죠?"라는 질문을 남기고 가게를 떠나셨다.

'아, 얼만지 물어볼 걸... 한 두어 송이만 살걸...' 

그 말이 왜 입에서 안 나왔는지, 취해서 운동 기능이 떨어졌나, 사달라고 해볼 걸 그랬나, 꽃을 사달라는 여자를 허황되다고 생각할까, 어머님은 어디로 가셨을까, 저 꽃은 오늘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남은 도쿠리잔을 비웠다.




2023. 3. 15.

열아홉의 캐서린에게,

 



0.

얼마전 생일을 맞아 아주 짧게 스무 살의 나에게 편지를 썼는데

오늘 올빼미 시절 파일을 뒤져보니 그때는 열아홉의 나에게 편지를 써놨더라. 내용은 비슷한데, 그땐 정신과 가기 전이라 그런가 애가 그, 뭐라고 해야하나, 자기연민을 되게 극적으로 썼더라고 ㅋㅋㅋㅋ

여러분(아마도 현아와 사과집)에게 잦은 업데이트를 약속한 대로, 오늘은 그 편지를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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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3

열아홉 살 캐서린에게,


1.

한 번에 붙을 줄 알았던 대학원에 떨어졌을 때, 그 사람이 그랬다.


여건이 안 된다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대로 주저 앉은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가끔 섣불러도 괜찮은 것 같아요. 응원해요, 나연씨.


섣부르라고 해줬던 사람이 곁에 있어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나아갈 수 있었다.


2.

캐서린아, 안녕?

네가 네 이름을 싫어하니 나연이라고는 부르지 않을게. 그래도 캐서린은 네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니까 괜찮지?

뭔가 내가 과거의 나를 캐서린이라고 부르려니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는 자의식 과잉 사람 같아 몹시 어색하고 거북하구나. 그래도 뭐라고 부르긴 불러야 하니까 그럼 서린이라고 부를게. 


지금은 2019년이야. 나는 네가 좋아하는 광화문 스타벅스에 와 있어. 신기하지? 출국 전, 그 입술두꺼운 자식이랑 마지막으로 만났던 스타벅스는 건재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어. 

나는 곧 만 서른하나가 되니까 그때로부터 열 해하고도 둘이 지났구나. 지금 방금 말투 되게 늙은이 같지 않았니? 너는 생각보다 빠르게 낡고 있어. 어차피 유학을 시작한 시점부터는 나이에 대해서 신경 끄기로 했으니까 늙은이가 되어간다는 게 크게 놀라운 소식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네가 이렇게 빨리 낡은 사람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단다. 어찌나 꼰대력이 강해지는지, 하루하루가 놀라워. 


우선 열아홉에 시작된 편두통이 평생 너를 괴롭힐지도 모르겠다는 슬픈 소식을 전할게. 네가 원래도 건강한 체질은 아니었잖아? 그래도 마귀할멈이랑 살 때는 애드빌 두 알 먹고 반나절만 앓아 누우면 사그라들던 통증이 이젠 한 번 시작되면 졸도해서 응급실에 실려 가야 끝이 날 정도로 심해졌단다. 재활의학과 선생님은 이게 다 거북목과 틀어진 어깨, 척추 위치와 상관없이 자기 주장하기 바쁜 골반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니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이 어떻게 코어와 기립근 세우는 일까지 신경을 쓰냐는 말이지? 

몸과 관련한 희소식이라면 이제 다시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있겠구나. 왜, Moorpark 살 때, 알바 갈 때마다 뙤약볕에 한 시간씩 걸어야 했던 걸 줄여보겠다고 자전거를 한 대 샀잖아? 분명 집에서 가게까지는 내리막 길의 연속인데도 자전거로 50분씩이나 걸려서 도대체 이걸 왜 타고 오는 거지, 스스로 너무 웃겼잖아. 브레이크에서 손을 떼지 않고는 도무지 자전거를 탈 수가 없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단 10분이라도 마귀할멈과 떨어져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신났는데 말이야. 애써 절약한 10분으로 할 수 있는 일라고는 옆 블록 쇼핑몰을 크게 한 바퀴 돌고 출근하는 거였지만. 기어는커녕 자전거 무게도 상당해서 업힐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지. 성가시기만 한 분홍색 자전거를 끌고 낑낑대며 언덕을 오르던 퇴근길은 또 얼마나 외로웠어. 산등성이 너머로 떠오르는 희푸른 보름달을 보며 오늘도 하루가 겨우 끝났다고 한숨을 내쉬었지. 요즘도 달을 보면 가끔 코끝이 매워져. 아까도 이른 저녁에 떠오른 달을 올려다 보다 갑자기 눈 앞이 흐려져서 얼마나 웃겼는지 몰라.

High Street에서 넘어졌던 날 기억하지?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날이었잖아. 여느 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풍경이었어. 그날도 열사병에 걸려 쓰러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뜨거웠지. High Street은 깡시골인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도로였는데, 어느 방향에서도 차가 오지 않았고, AmTrak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잖아. 그런데 굳이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겠다고 핸들을 꺾다 실패해서 연석에 부딪혔지. 핸들 조작도 서툴렀으면서 왜 급커브를 틀었을까? 그때 몸이 아주 잠시 붕 떠올랐던 것도 같은데, 그 다음 장면에서 너는 얼굴로 랜딩한 채 대로에 엎어져 있었지. 행인 하나 없는 거리였는데도 뭐가 그렇게 창피했는지, 쪽팔린 게 더 커서 아픈지도 모르겠더라. 그래도, 왜,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아저씨가 Honey, are you okay? 하고 물어봐줬잖아. 아프건 둘째치고 마귀할멈 아들내미라는 새끼는 에어컨 돌아가는 제 방에 늘어져 컴퓨터 게임만 하고 있는데, 왜 사돈의 팔촌의 당숙 뻘인 내가, 이 땡볕에 타지도 못하는 자전거를 끌고 나와서, 최저 시급도 챙겨주지 않는 마귀할멈 요거트 가게에 나가겠다고, 이 수모와 치욕을 겪고 있어야 하나. 그게 너무 분해서 금방이라도 대성통곡하고 싶었지. 그래도 친절한 아저씨가 무슨 죄람, 하며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I’m fine. Thank you. Really. I’m okay. 대답하고 일어나 앉아 크게 웃었잖아. 

그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탓인지 지금 셀카를 찍어보면 턱이 한 쪽으로 틀어져있어. 오른쪽 팔꿈치 상처도 흉터가 남았단다. 그때 그 시멘트 바닥에 내다 꽂혔을 때 얼굴로 전해졌던 충격과 울림, 통증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사실 그보다 더 큰 상처는 아직 오지 않았단다. 곧이야. 곧 올거야. 곧 올거고. 자전거에서 떨어지며 틀어진 턱관절보다 더 크게, 더 고통스럽게, 더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인생이 틀어질지도 몰라.


미리 사과할게. 너무 너무 미안해. 

너는 곧 네가 유학 내내 불법체류자 신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마귀할멈이 영주권을 내어주겠다며 엄마에게 매달 생활비를 받아가고, 변호사 선임비용을 받아가고, 법원 서류 처리 비용으로 돈을 받아가던 게 결국 너를 볼모로 삼은 3년짜리 사기였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최후의 동아줄이라고 생각했던 엄마는 한국 집에 유서를 남겨놓은 채 종적을 감출 거고, 너는 곧 동생과 단 둘이 마귀할멈의 집에 남겨지게 될 거야. 

엄마는 얼마 뒤 미국으로 야반도주를 와. Family reunion. 이런 이산가족 상봉을 고대하며 버틴 게아닌데, 싶어 그나마 남아 있던 생에 대한 의지를, 가족애를 잃겠지. 그리고 결국 엄마도, 동생도, 지옥 같았던 미국에 남겨둔 채 홀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될 거야. 모두 네가 이기적인 냉혈한이라고 욕할거고. 하지만 엄마 말을 따라 한인 교회에서 시민권자를 만나 결혼하는 게 네 삶은 아니야. 굶어 죽더라도 공부하겠다며 돌아온 너를, 기어이 대학원에 가는 너를, 가족들은 다 못마땅해할 거야. 공부가 다 무슨 소용이냐며 미용 기술을 배우든 동대문에 나가 옷을 팔든 하면 되지 않느냐는 엄마 말에 그럴 거면 그렇게 힘들게 영어는 뭐하러 가르쳤냐고 대꾸할 수 있는 배짱 두둑한 배은망덕한 년으로 다시 태어나. 그때까지 살아만 있으면.


요즘도 이 모든 게 미리 막을 수 있던 일은 아니었을까 종종 시뮬레이션을 돌려봐.

일면식도 없는 친척이 내게 영주권을 내어주겠다고 할 때, 조금이라도 의심했어야 했는데. 셈이 밝지 못한 엄마 대신 내가 직접 나서서 영주권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 서류인지 확인했어야 했는데. 우리 학교는 공립학교라 등록금을 내지 않는다고 친구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때, 바로 카운슬러를 찾아가야 했는데. 밖에서는 운 좋아 얻은 수양딸이라고 나를 자랑하다가 집에서는 하녀처럼, 몸종처럼 부리던 마귀할멈이 졸업 일주일 전, 급하게 영주권 신청 서류를 내밀며 학교에다 이름 변경 신청서를 접수했을 때, 네 성은 이제 김 씨가 아니라 오 씨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을 때, 그때 막았어야 했는데. 

나도, 가족이라는 사람들도, 그 누구 하나도 널 구하지 못했단다. 


하지만 너무 무서워 하지마.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건 알지만, 마귀할멈의 사기행각이 발각되는 덕분에 학대는 끝이 나니까, 그걸 위안을 삼아보면 어떨까?

아니면, 네가 11년 후엔 때때로 작가 소리를 듣는 통번역대학원생이 된다는 걸 미리 일러주면 조금 힘이 되겠니? 환불하러 간 옷가게에서 독자인 점원을 만나기도 하고, 카페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이 다가와 학교 후배라며 싸인을 요청하는 날도 생겨. 또 하루는 작업한답시고 카페에서 멍만 때리다가 지성, 갬성 넘치는 척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는데 3분 뒤에 맞은 편에 앉아있던 분이 네 앞으로 핸드폰을 살포시 내밀며 “혹시 작가님이세요?” 라고 묻는 일도 벌어진단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너는 네 몸이 쥐구멍에 비해 너무나 크다는 생각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지만, 이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친구에게 전하며 눈물이 찔끔 날 때까지 웃기도 해. 

그런 날은 와. 쉽지 않은 시간이고 그 뒤로도 여러 번, 곁에 있는 사람들이 네 발목을 낚아채 널 주저 앉히려 하지만, 그런 날은 와.


곧 졸업식이겠다. 발레딕토리안으로 단상에 서지 못해 아쉽다고 생각했던 졸업 후, 친구들이 모두 대학에 간다며 들 떠 있을 때, 너는 덫에 걸렸다는 걸 깨달아. 구덩이를 덮어 둔 풀더미를 조심스레 밟고 서 있었을 뿐, 결국 네 인생은 천길 낭떠러지 구덩이었다는 걸 깨달아. 방금까지 발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얽혀 있던 풀더미가 눈 깜짝할 새 풀어헤쳐지고, 구덩이가 드러나지. 그리고 깨어나면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일 거야. 빛 한 점 들지 않는 동굴. 너무나 요원한 동굴의 끝.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속도는 생각보다 느리다고 하잖아? 시간은 상대적이라니까, 우리에게 1광년은 지구에서 8년에 해당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자. 1광년만 나아가면 너도 빛에 도달해 (슬프게도 우린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운명을 타고 났단다. 와식 생활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일어나 움직여야만 해). 온몸이 군고구마 색으로 탈 만큼 작렬하는 캘리포니아의 태양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다시 볕을 쬘 수 있어. 동굴의 끝에 다다르는 날은 와. 

하지만 이제 동굴 입구에 선 너에게 그런 요원한 사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미래는 횃불이 되어주지 못하겠지. 그러니 사과할게. 나는 그 자전거 사고 이전에도, 그 후로도, 단 한 순간도 너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어. 청운의 꿈을 안고 오른 유학이 절망으로 쏟아지는 내리막길인 줄 알았더라면, 최소한 자전거 핸들이라도 똑바로 쥘 줄 아는 인간이었어야 했는데. 10년이 지나서야, 겨우 다시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인간이 돼있어. 미안해. 많이 미안해.

우리가 살며 겪는 모든 경험은 정신뿐 아니라 신체에도 흔적을 남긴다고 하잖아. 내가 둔했던 탓에 네 열아홉, 스물은 턱에, 팔꿈치에 상흔을 남기겠지. 네가 아닌 어느 누구도 그 상처는 보듬어주지 못할 거야. 이해해주지도 못해. 심지어 엄마조차. 하지만 “생의 근원적 외로움은 우리가 서로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온다”고 담담하게 적는 날도 와. 그걸 깨달아서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씁쓸하게 웃는 날도 오더라고.

죽거나 죽이지 않고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네 마음 백 번 이해해. 네 인생을 망쳐놓은 게 왜 하필이면 네 가족일까, 왜 하필이면 가족이어서 맘껏 욕을 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걸까, 괴로운 거 알아. 네가 네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사람들은 널 대견해 하다가도 기구한 생을 산 사람이라고 외부인 취급할거야. 때로는 네 상처에 소금을 비벼대는 사람도 생길 거야. 그게 네가 친구라 부르던 사람일 때도 있어. 이번 생은 기댈 언덕 하나 없는 회차라는 사실을 너무 일찍 깨닫게 한 것도 너무 미안해. 


그래도 가족보다 더 든든한 친구들이 있어. 아주 드물지만 이유 없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도 만나. 그 사람들 곁에 있으면 너도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가끔은 꿈을 품기도 하고, 꿈과 현실의 괴리를 견딜 수 없어 부단히 꿈을 향해 나아가 무언가 이루기도 해. 

다만 이 모든 건 네가 생을 포기하지 않아야 생기는 일이야. 잘 해내겠지만, 그래도 나를 포기하지 말아줘. 이기적으로 굴어도 돼. 가끔은 섣불러도 괜찮아. 그래도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날도 오니, 코끝이 매워질 때마다 주문처럼 외렴.


내일은 대학원 3학기 개강일이야. 아, 지금 넌 영어로 먹고사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있겠지만 인생은 뜻대로 되는 법이 없지. 몇 년 안에 단어를 만지는 일이 너의 천직이라는 걸 운명처럼 깨닫는 밤이 올 거야. 그때 느낀 희열과 벅차오름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걸 생각하니, 다시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아직까지 로또에 당첨되는 일도, 영화처럼 사랑에 빠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 영화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몇 번 생기긴 해 – 네 글이 위로가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생길 거야. 너무 근사한 일 아니니?


이 이야기를 어떻게든 열아홉의 너에게 전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2019년에도 인간은 광속을 거스를 수가 없네. 이 편지가 너에게 닿지 못하더라도 이해해줘. 

나는 너를 많이 아껴. 여전히 온전하게 인정하지도 못하고, 믿어주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격하게 아낀다. 

어서 시계바늘을 달려 오렴. 기다리고 있을게.





2023. 3. 13.




1.

오늘 정말이지 새 단행본 원고를 쓰기 시작한 지 2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원고가 3개월 묵은 음쓰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니까 읽을 만 하다는 느낌이 처음 들었다는 거다.

오늘 새 노트북 개봉해서 그런가(맥북 온 지 일주일 다 되도록 포장도 안 뜯음) 일이 너무 잘 되는거지. 집중 빡 해서. 아 이 흐름을 타야한다!!! 해가지구 집 와서도 원고 호다닥 써서 4/5정도 편집자님께 보냈다.


지난 번 메일 때는 원고 늦은 게 죄송해서 해풍에 바싹 마른 겨울 황태같은 마음이라 했는데 오늘은 낙지탕탕이엇음.

약간 해산물 테마인가봄. 눈물이 바다를 이뤄서 그런가 ㅠㅠㅠㅠ



2.

내가 너를 궁금해해도 되는 걸까.




2-2.

서른 다섯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 거다 구체적인 상을 그려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타인이 보이는 관심이 단순한 친절인지 의도가 있는 접근인지 구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못하네.




3.

안물안궁이겠지만 첫 책을 만들 때 나 혼자 (당연함) 구상한 에세이 트릴로지가 있다.

섹스-돈-몸을 소재로한 에세이 3부작. 섹스는 사실 하려던 거 1/10도 못한 거지만 일단 제목이라도 그리 나갔으니 한 셈 치고, 이번 원고는 돈. 다음은 몸과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것까지 하고 나면 사실 나 책 더 안 쓸 거 같아. 너무 고역이야… 그냥 트위터나 할래요…




4.

어제 식사를 마치고 테이블을 치우는데, 마치 군무처럼, 손이 향하는 방향과 집기 집는 순서, 그릇을 포개는 방법 따위가 합을 오래 맞춘 듀오처럼 흘러서, 그게 몹시 재미있었다. 혼자 살폿 웃음이 났는데, 헤결 봤느냐고, 방금 시마스시 씬 같았다고 말해보려다 그냥 혼자 은밀하게 즐겼다. 


나 쫌 의뭉스러워진 거 같아. 헤헷? 근데 좀만 더 닥칠 줄 알면 더어 좋겠다, 나연아.





2023. 1. 30.

어려운 것을 어렵게

 




1.

작년 초, 카카오톡으로 사주를 봤다. 언택트 시대란 그런 것이다.

애초에 운명이니 미신이니 하는 것이 인탠저블한 믿음이니 어쩌면 진즉 더 활발히 소비될 수도 있었던 서비스인가.

여튼, (카톡 프사로 미루어보아 20대 같은) 사주 선생님은 프로필에 다음과 같이 적어두셨다.


"어려운 것은 어렵게 얻겠다는 양심"


이 문구가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어려운 것은 어렵게 얻겠다는 양심. 그게 양심의 문제인지 아직 결론을 못내렸지만, 일단 양심.




2.

머릿속을 맴도는 말이 몇 가지 더 있는데 블로그에 쓰려고 했더니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네.

그럼 그정도 임팩트가 있는 말은 아니었던건가.




3.

아니 오늘 블로그를 꼭 쓰겠다고 다짐하고 내가 심지어 11시까지 야근을 하고도 이걸 열었는데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나면 어떡해.



하. 내일 다시 올게. 시발.





2022. 9. 23.

고백

 



1.

성인이 되고나서 누군가에게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고 명확하게 고백해 본 일이 거의 없는데, 내가 먼저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관계들은 대체로 끝이 좋지 않았고, 그 고백에 대한 구두로든 글로든 답을 들은 일이 드물었다. 보통은 잠수를 타거나 연락을 끊었으니까.


짝사랑에 대한 거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답은 역시나 박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박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고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퍼즐처럼 나는 그 말을 손에 꼭 쥐고 매일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었다. 무슨 의미일까. 어떤 박자를 말하는 걸까. 

수년이 지난 지금은 그저 어렴풋이 감정의 속도, 표현의 속도, 기대의 속도의 문제였지 않을까 눙치고 말지만 박자는 단순히 속도 이상의 문제이겠지. 빠르기뿐 아니라 방향, 높낮이, 강도 그 모든 것의 조화로움.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우리는 좋은 합이 될 수도 있었다고 믿는다. 서로에게 숨을 맞추면 심박수가 동일해지는 것처럼, 얼마든지 가능했다고 믿는다. 본인도 조금은 느꼈겠지만.




2.

용감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사랑을 받는 일에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을 지킬 신념, 상처를 주고 받을 각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음 더 적어보고 싶은데, 사랑고백을 받았던 경우도 별로 없어서 사실 더 할 말이 없네 ^^




3.

쓸모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꽈리를 틀고 앉을 때에는 철학서나 사회학 서적을 본다. 좁고 황량한 내 내면에 골몰해있지 않고 거시적 세계로 눈을 돌리는 좋은 방법. 더 넓고, 크고, 오래된 눈을 빌려 써본다. 나의 고민이 얼마나 하잘 것 없었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으므로. 


어빙 고프만 책과 기든스 현대 사회학(아마 전세계 모든 사회학과에서 쓰는 교재일 듯)을 빌려왔다.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도. 착실히 읽어야지.




4.

아무도 묻지 않지만 떠들고 싶은 나의 독서 방법.

재미난 책을 발견하면 그 작가가 원고를 집필하는 동안 읽은 논문이나 서적, 참고했다는 사상가들의 책을 찾아본다. 책에 여러 유명인사의 추천사가 붙은 경우, 가장 맘에 드는 추천사를 써준 사람(대게는 작가)들의 대표작도 한 번씩 살펴본다. 마인드맵을 그리는 방식으로.


대니 샤피로는 내가 번역했던 작품에 추천사를 써준 훌륭한 작가 중 하나였고, 현아의 책에서도 이야기가 나와서 아 이젠 정말 읽어볼 때다 싶었다. 번역은 한유주 작가가 했다. 첫 페이지부터 재밌다.



+

원래도 책 사기 전에 작가 소개나 판권 페이지를 꼭 들춰보는데, 이젠 역자 프로필도 꼼꼼하게 본다. 당사자성이란 게 참 웃기단 말이지.




2022. 9. 21.

이름

 



1.

나는 모든 이름을 알고 싶다.

모든 것의 모든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2.

테크니컬 라이터 겸 UX 라이터.

지난 33개월간 라이터라는 이름하에 다양한 용도의 텍스트를 썼다. 버튼명을 정하기도 하고, 코드를 인간의 언어에 가깝게 풀어써보기도 하고, 마크다운이라는 새 문법도 배웠다. 대체로 낯설고도 흥미로웠다. 이제는 익숙하고 친근하다. 능숙이라고 적으려다 역시나 거짓말 같아서 지웠는데, 안타깝게도 3년간 내 일에 있어 탁월하게 능숙해지지 않았고, 흥미로움 역시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처음처럼 모든 프로젝트가 깨달음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여전히 고된 일도 몇 가지 있다. 가장 적응이 안 되고 골머리를 앓는 일은 이름 짓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제작할 때, 그 제품을 부를 이름을 짓듯이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들 역시 이름이 필요하다. 내가 하는 일은 그 모든 부품에 최대한 기술적(descriptive)이며, 외부인(제작자가 아닌 모든 사람)이 봐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적확한(concise and precise) 이름을 붙어주는 것이다. 


언어의 본질인 사회성, 자의성, 창의성의 개념을 빌려오자면, 프로그래밍 언어같은 경우 창의성 혹은 자유도가 높다. 가상의 언어 vava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장조사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vava라는 언어(혹은 외국어)로 설문지(코드)를 짠다고 하면, vava 언어권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사용되는 일반적 설문지 템플릿(라이브러리)을 이용해서 호다닥 설문지를 생성할 수 있다. 만약 내가 만들려는 설문지의 내용과 구조가 복잡하다면 vava의 문법은 따르되 디폴트로 제공되는 옵션이름(코드명) 대신 내 설문지에 특화된 단어를 얼마든지 새롭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이지 않은 설문 답안(이를테면 “질문 두 개 건너뛰기”나 “여기서 설문 종료”)을 “뚜뚜뚜”나 “#$%%%” 라는 식으로 적으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해도 되는데, 기본적으로 모든 코드는 영어를 이해하는 사람 기준으로 작성된다. 어처구니 없는 서구중심, 특히 미국중심환경 아니냐고 따지겠지만, 맞는 말이고, 컴퓨터가 이미 이렇게 개발되어버린 이상, 이 상황을 뒤집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신 “용건만간단히”이라든가 “이쯤에서그만” 같은 단어를 만들어서 쓰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기능이 출시될 때마다 그 기능을 구현하는 모든 레벨의 코드명을 검수한다. 고객사의 엔지니어가 코드만 봐도 이 함수가 혹은 파라미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넘어가는 것인지 유추할 수 있는가, 해당 언어의 컨벤션에 어긋나지 않는가, 이런 것들을 확인하고 수정이 필요하다면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 우리 회사 엔지니어들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이름 짓기가 어째서 어렵냐면, 각 언어(우리 회사는 현재 8개의 언어를 지원한다)의 특성을 이해하고 코드의 확장성을 고려하여 지어야하는데, 내가 8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고, 코드가 어느 쪽으로 확장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전자의 경우, 프로그래밍 언어 별 컨벤션을 모조리 알기 어렵고, 게다가 특정 함수 하나가 수행하는 복잡한 행위를 한두 개의 단어로 정확하게 묘사하는 일은, 특히 영어로, 아름다운 코드를 짜는 일만큼 명쾌한 답이 없다. 한편 코드 확장성(외부)의 문제는 사실 코어(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어설픈 이름을 지어준 함수가 먼 미래에 여기 저기서 수도 없이 호출되어야 하는 제품의 핵심 코드였다? 함수 이름을 이렇게 개떡같이 지어놓은 게 누구냐며 후세의 모든 엔지니어들이 분노로 찍어대는 청축 기계식 키보드 소리가 벌써부터 환청처럼 들린다. 괴상한 이름의 함수는 제품에게도, 사용자에게도, 앞으로 올 관리자에게도, 모두에게 고통이다.


여기서 아쉬워지는 것은 언어의 자의성. 사람의 이름처럼 코드 이름과 코드가 실제로 수행하는 일에 사실은 아무런 연관이 없으면 좋으련만.




3.

에스키모가 설질에 따라 십여가지가 넘는 이름으로 눈을 구별한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아는 이야기. 비단 특수문화권에서만 존재하는 언어활용형태는 아니다. 요리를 하다보면 세상에 기름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하며 제조방식이나 발효기간에 따라 수십가지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향신료는 또 어떻고. 우리나라엔 강산에가 명태의 50가지 그림자마냥 건조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생선의 이름으로 만든 노래도 있지 않은가. 어떤 분야에서 아주 드물게 불리는,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이름을 캐치했을 때, 나는 한 뼘 더 우쭐해진다. 세상의 비밀을 한 어절만큼 더 알게 된다. 내 단어 주머니에 잽싸게 넣고 입구를 꽉 조여맨다. 그 이름을 꺼낼 수 있는 최적의 순간만을 기다리며. 


영어에는 걷는 행위를 묘사하는 동사가 대여섯 개는 될 것이다. Roam, walk, lurk, stroll, stride 등등. 한국어라면 부사+동사의 형태로 표현했을 행동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준다. 고급(advanced) 영어로 갈수록 어휘가 중요해진다. 슬픈 얘기지만, 어휘력이 발화자의 지적 수준, 사회경제적 지위 따위에 대한 가늠자가 된다. 




4.

언어란 결국 이름의 집합. 부르고 싶은 대상이 관념이든, 물질이든 무언가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호가 이름이니 언어란 이름들의 가계도. 계보.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늘 거리가 존재한다. 결국 이름과 이름의 주인 사이에는 늘 거리가 존재한다. 언어의 자의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름은 피부처럼 가깝게 달라붙어있고, 어떤 이름은 이름의 대상으로부터 몇 광년 거리에 존재하는 듯 하다. 

우주에서 우주를 건너는 이름도 있고, 속삭이자마자 혀끝에서 녹아버리는 이름도 있겠지.

그 거리를 재는 단위도 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름을 가능한 촘촘하게 알고 싶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그 이름들을 소리내어 부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이름을 잘 짓는 사람보다는 역시 이름을 잘 부르는 사람이 되는 편이 빠르지 싶다.




5.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의 이름을 아주 자주 부른다. 혼잣말로도 부르고, 코를 맞대고 있을 때에도 굳이 소리내어 부른다. 좋아서 부르던 것이 부를수록 좋아지기도 한다. 주문이 된다. 


부를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름을 부르고 싶다. 기표로서의 이름은 휘발하고 기의로 남을 때까지, 알맹이가 되도록 부르고 또 부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