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5.

 



내가 주는 건 뭐든 거절하는 사람과 오래 만난 적이 있다.

내가 밥을 산다고 해도 괜찮다며 꼭 자기가 내거나 각자 내는 쪽을 택했고, 무얼 선물해주고 싶다고 말해도 한사코 거절했다. 정 뭘 사주고 싶어질 땐 일단은 사고, 제발 좀 그냥 가져가라고 떠밀어야 어쩔 수 없이 알겠다며 조용히 가방에 넣는 사람이었다. 

내 애정이야 말할 것도 없지. 4년이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마음은 받고 말고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 같다. 마음이란 언제나 일방적이다. 주면 끝. 상대가 무턱대고 들이대면 내가 거절할래야 거절할 수가 없다. 이미 봐 버렸으니까. 예고도 없이 찾아와 두고 간 마음에 대해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란 보고도 무시하거나, 나 역시 마음을 주러 가는 것뿐. 그는 그 중간쯤이었다. 내가 두고 간 마음을 그 자리에 그대로 놓고, 감상했다. 


나연씨가 저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가끔은 진심을 다해 안쓰럽고 안타까워 해줬다. 제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좋아해요. 그런 거.



받는 일에 대해 그렇게 철벽을 쳤던 것 치고 그 사람은 나에게 너무도 많은 걸 남겨주고 갔다. 갔나? 내가 떠난 건가?

여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뽑아 먹을 수 있는 건 다 뽑아먹었다. 정기든 온기든 지식이든,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부.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면 머릿속이 깜지가 되도록 그가 썼던 단어, 그가 언급했던 책, 영화, 다큐, 만화, 기사 전부 되새겼다. 그리고 기약없는 다음 만남을 기다리며 그가 알려준 건 몽땅 공부해갔다. 


3차 성징기처럼 그를 만나는 동안 엄청나게 자랐다. 그를 양분 삼아.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정말 뭘 주긴 했나 싶다. 그 사람은 날 만나는 동안 나로인해 자극 받거나 영감, 하다 못해 글감이라도 얻어갔을까? 나는 기꺼이 그의 글이 되고 싶었는데. 그보다 더 영광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중한 거절과 받는 시늉 중에 뭐가 더 쓰린가 생각하다, 네.



2020. 11. 4.

취향의 역사

 



1.

얼마 전에 빈티지 오디오를 보고 왔다. 회사에서 이제 오디오도 사준다길래 (이미 에어팟도 사줬고 나이키도 사줫고 체스도 사줫지...) 스피커나 앰프를 좀 바꾸려고 레몬서울에 예약까지 해서 부랴부랴 달려갔지.

예약제인 탓에 넘나 주인 두 분과 나만의 사적인 시간처럼 느껴져서... 어정쩡하게 쭈뼛거리고 있자하니 남자 사장님이 스피커 들어보고 싶은 게 있으시면 틀어드려요, 라고 상냥하게 안내해주셨다. 대강 내가 찾는 게 무엇인지 설명하니 집에서 주로 무슨 음악을 듣느냐고 물으셨다.


어, 아, 그게... 인디 힙합이랑 포크요호호ㅗㅎ흫흐흫ㅎ.ㅎ...


하면서 민망함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음악 장르에 인디라고 말을 붙인 것도 너무 멍청한 것 같았고, 켄드릭 라마 듣다가 갑자기 천용성 꺼내 듣는 내 취향을 떠올리니 그또한 마구잡이인 거 같아서 어쩐지 좀 부끄러웠던 것. 사장님도 조금 따라 웃으셨다.

한 10초 정도,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 표정을 좀 가다듬고 그냥 좋은 음악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사장님이 그럼요, 다양하게 듣는 거 좋은 거죠, 하면서 공기공단의 코토모를 꺼내 틀어주셨지! 맙소사!!!

너무 오랜만이라 "으아! 싸이월드 감성!!" 이라고 육성으로 소리질렀다. 근데 그게 또 금방 기억이 나서 (속으로만) 따라 부르게 되더라?


어마어마하게 사고 싶은 물건은 없어 공손히 인사하고 나왔지만 오길 잘했다고 뿌듯해 했다. 

이런 얼렁뚱땅 중구난방을 긍정해주는 사람과 대화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필요하고 말고.



2.

문득 블로그 아카이브를 보는데, 이 블로그를 7년째 하고 있더라. 와. 

그리고 그때 글이 훨씬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말까진 진짜 두 번째 책 원고 끝내야지 (번역서도...). 이젠 진짜 책 내고 싶다. 새 책으로 사람들 만나고 싶다. 책 대충 보고 날 무슨 얘기든 다 해도 되는 사람 취급하거나 자기 일탈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 그만 찾아왔으면 좋겠다.




CANs and CANNOTs

 



1.

지금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커리어에 있어서는 특히.

30대에 접어들고 나선 더 확신하게 됐다. 성인이 되고나선 해보고 싶은 일은 거의 다 해보고 살았다. 그 과정이 거칠고 험난했기로서니, 결국 하긴 했다. 


어제 대학원 동기들이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 이직 제안이 왔다. 링크드인으로 일자리 제안은 심심치 않게 오는지라 호들갑 떨 일도 아니지만 내심 통번역이 아니라 다른 업무로 동기들과 같은 회사에 일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들떴다. 대우는 좋을까, 연봉은 더 주나, 잠깐 단꿈에 젖었다. 

영어를 쓸 수 없는 업무였지만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도 마음이 동했다. 포트폴리오도 까지꺼 준비하면 되지.

그런데 이직을 할 이유가 마땅히 생각나지 않는다. 


내달이면 입사 1주년이다. 입사하고 첫 달부터 지금까지 회사에 대한 만족도는 90%에 달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 친구도 있었는데, 글쎄올시다. 이 회사가 그래. 그런 회사가 있더라고. 



1-2.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데에는 분명한 장단이 있다. 나쁜 소식부터 전하자면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뗏목에 올라탄 걸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늘 무의식 저편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고 기쁜 소식이라함은 빼어난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조직이 급성장 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 회사(들)에 다닐 때는 "동료가 최고의 복지"라는 직장인의 격언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여기 와선 한 달에 한 번씩은 각성한다. 서로의 사적인 정보에 대해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 사내 문화 덕분에 다들 어떤 일을 하다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 알 기회가 없는데, 간혹 링크드인이나 외부 자료를 통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이력을 발견한다. 카카오나 다음, 네이버는 물론이거니와 애플이나 구글, 페이스북에서 넘어온 사람들도 있다. 회사 이름 한 방으로 단말마의 감탄사가 나오는 그들의 이력을 보자면 나의 일관성 없는 경력이 쟉고 소듕하게 느껴지는 게 우선이지만 그래도 대단한 사람들의 동료로 일한다는 사실에 고무된다.


사실 이 회사에 와서 가장 신기했던 것이 실천되는 자율성이었다. 거창한 말만 늘어놓을 뿐 실제로 직원의 역량과 태도를 100% 신뢰하는 회사는 내 알기엔 0에 가까운데, 이 회사는 그래도 80%는 실천하고 있다. 회사가 실천하고 있다기 보다는 직원들이 일구어내는 쪽에 가깝다. 서로 끊임없이 싱크를 맞추고, 문제가 발견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해결방안을 만들어내고(이건 엔지니어들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에 대해 공적으로 치하한다. 근태를 체크하는 시스템이 없어도 다들 어련히 알아서 나와 해야 할 몫을 다 하고 집에 간다. 언제 오냐 다그치지도, 벌써 가냐 눈치주지도 않는다. 뭐 개중에는 설렁설렁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여러 동료들과 일해본 바로는 내가 가장 게으른 게 아닐까 반성하게 되는 분위기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아직도 의문이지만 그냥 그런 업무 윤리 의식을 가진 사람들만 뽑아 놓은 거겠지, 혹은 그런 업무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니 업계 탑이라는 곳에서도 일할 수 있었던 거겠지, 혼자 자문자답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런데 여길 오다니? 라는 질문으로 귀결되지만). 그러곤 다시 비쥬얼 스튜디오를 켜지.


물론 이 회사도 조직이다. 행정처리가 일관성이 없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팀끼리 감정 상할 일도 벌어진다. 아무리 훌륭한 개인이 모였다해도 조직은 조직이기에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에러가 있다. 다 좋은 건 아니라는 말씀. 게다가 이번 연말 연봉협상 때 연봉을 얼마나 올려줄지에 따라 내년 1월에 내가 블로그에 남길 직업 만족도도 달라지겠지 ㅋㅋㅋㅋ




2.

어떻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았느냐.

우선 열심은 답이 아니다. 나는 죽기를 각오하고 열심히 한 적은 없다. 이거 아니면 죽을 것 같아서 뭘 시작한 적은 많지만.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이루고자 하는 걸 잘 해내는 건 또 전혀 다른 문제고. 나는 그저 멍청한 자신을 견딜 수 없어 공부할 뿐이지 무언가의 끝을 보겠다고 필사즉생의 결의로 임한 적은 없었다. 물론 자랑할 일은 아니다. 잠을 아껴가며 결과를 낸 사람들 앞에 서면 대단히 부끄럽다. 

내가 일단 배포가 작다. 원대한 꿈은 없고 아주 쟉고, 구체적이면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계획만 세운다. 먼 미래도 내다볼 줄 모른다. 대충 2-3년 뒤쯤만 생각한다 (요즘 든 생각인데 마흔에 집을 사고 싶다는 건 원대한 꿈 같긴 하다). 그럼 어떻게든 또 다 하더라고. 

그리고 안 된 건 금방 잊는다. 포기가 좀 빨라, 내가. 다음 거 잘 하면 되지, 이번에 망친 거 담엔 안 그러면 되지, 그러는 편 (물론 날 떨어뜨린 회사는 두고 두고 기억한다).


그러면 결국 "저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는데요"라고 예쁘고 편리하게 편집된 커리어 서사를 가진 사람이 된다.




3.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원하는 걸 이룰 수 없는 영역이 있는데, 그건 바로 연애.

최선을 다 해도, 대충 저질러도, 뭣도 안 된다. 


지지난주였나, 선생님이 "나연씨는 이런 말 들을 때마다 오히려 화가 난다고 했지만..." 이라고 운을 띄우시며 나연씨는 너무도 매력적이고 대단한 사람이니 다시금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겨주라는 당부를 하셨다. 주변에서 그런 말을 해줄 때마다 나는 "그럼 도대체 왜 나의 매력과 대단함을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고 눈물이 날 정도로 분한 맘을 쏟아낸다. 그 말의 진실성을 믿지 못한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그걸 증명해 줄 근거가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선생님한테도 정색하고 반문한 적이 있지...

이쯤이면 포기할만도 한데, 또 포기는 안 된다.

 나도 다정하고 야한 사람의 다정하고 야한 애인이고 싶다. 규칙적이고 근사한 섹스를 하고 싶다고!!! 시바!!!

그냥, 이젠 분하다. 분만 남았다.



2020. 11. 3.

 



1.

나가 살 거란 소리를 열다섯 될 즈음부터 했으니 나는 머리가 큰 이후로는 엄마랑 살고 싶은 맘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 엄마는 나에게 은근하지만 확실한 협박을 했다.


니가 혼자 나가 살아봐라. 넌 너 혼자 잘난 줄 알지? 집안일도 제대로 안하는 년이.


어제는 토 선생님과 토 선생님 아버님이 다녀가셨고, 스테이크를 구웠다.

언제나처럼 너무 많이 해서 가니쉬로 구운 채소가 잔뜩 남았고, 고기가 남은 것도 아닌데 이걸 어찌 먹지 고민하다 카레를 끓여 구운 채소로 야무지게 그릇 바닥까지 긁어 먹었다.

곧 있으면 독립한지 두 달이 된다. 약 50일간 굶지 않고, 청소 게을리 하지 않고, 물자국 하나 없는 수전을 유지하면서 산다. 우리 엄만 청소를 할 때 단 한번도 화장실 수전을 닦은 적이 없었지. 오늘 문득 카레를 먹다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나 코웃음을 쳤다. 


가족이 가족을 제일 모른다.



1-2.

어릴 적 엄마는 나와 동생을 먹여살리느라 자녀 교육에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학부모 상담 같은 행사 역시 참석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동생보단 나 초등학교 다닐 때는 처지가 나아서 세 번 정도는 학교에 왔다. 

그때마다 엄마가 담임 선생님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제대로 들은 적은 없지만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말이 있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우리 엄마에게 안타까움을 담아 전했다는 말.


어머님은 나연이를 386 컴퓨터쯤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나연이는 그것보다 훨씬 잘 하는 아이예요.


486, 586 컴퓨터 같은 것들이 나오던 시기였다. 나는 이 말이 두고 두고 생각난다. 엄마와 나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anology같은 걸로.



2.

아까 세탁기를 치우다 말고 무슨 문장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래서 블로그를 켰던 건데,

10분째 기억이 안 난다. 하 시바.




3.

여전히 사랑은 상대방의 tmi를 모두 알고 싶어지면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능동보단 피동형으로.




4.

아 몰겟다 죽어도 생각이 안 나네. 

오늘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