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4.

취향의 역사

 



1.

얼마 전에 빈티지 오디오를 보고 왔다. 회사에서 이제 오디오도 사준다길래 (이미 에어팟도 사줬고 나이키도 사줫고 체스도 사줫지...) 스피커나 앰프를 좀 바꾸려고 레몬서울에 예약까지 해서 부랴부랴 달려갔지.

예약제인 탓에 넘나 주인 두 분과 나만의 사적인 시간처럼 느껴져서... 어정쩡하게 쭈뼛거리고 있자하니 남자 사장님이 스피커 들어보고 싶은 게 있으시면 틀어드려요, 라고 상냥하게 안내해주셨다. 대강 내가 찾는 게 무엇인지 설명하니 집에서 주로 무슨 음악을 듣느냐고 물으셨다.


어, 아, 그게... 인디 힙합이랑 포크요호호ㅗㅎ흫흐흫ㅎ.ㅎ...


하면서 민망함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음악 장르에 인디라고 말을 붙인 것도 너무 멍청한 것 같았고, 켄드릭 라마 듣다가 갑자기 천용성 꺼내 듣는 내 취향을 떠올리니 그또한 마구잡이인 거 같아서 어쩐지 좀 부끄러웠던 것. 사장님도 조금 따라 웃으셨다.

한 10초 정도,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 표정을 좀 가다듬고 그냥 좋은 음악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사장님이 그럼요, 다양하게 듣는 거 좋은 거죠, 하면서 공기공단의 코토모를 꺼내 틀어주셨지! 맙소사!!!

너무 오랜만이라 "으아! 싸이월드 감성!!" 이라고 육성으로 소리질렀다. 근데 그게 또 금방 기억이 나서 (속으로만) 따라 부르게 되더라?


어마어마하게 사고 싶은 물건은 없어 공손히 인사하고 나왔지만 오길 잘했다고 뿌듯해 했다. 

이런 얼렁뚱땅 중구난방을 긍정해주는 사람과 대화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필요하고 말고.



2.

문득 블로그 아카이브를 보는데, 이 블로그를 7년째 하고 있더라. 와. 

그리고 그때 글이 훨씬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말까진 진짜 두 번째 책 원고 끝내야지 (번역서도...). 이젠 진짜 책 내고 싶다. 새 책으로 사람들 만나고 싶다. 책 대충 보고 날 무슨 얘기든 다 해도 되는 사람 취급하거나 자기 일탈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 그만 찾아왔으면 좋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