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가 길다 못해 지리멸렬하기까지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하루 일과와 tmi를 늘어놔야 속이 편하겠다 싶어 블로그를 열었다.
요새 블로그 또 자주 오네. 이거 별로 좋은 신호가 아닌데.
1.
스타트야 좋았지. 여기를 방이라고 해야할지 그냥 거실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지금 침실로 쓰고 있는 공간은 베란다로 나가는 창이 무지무지 크다. 4쪽자리 문이 3중으로 서 있는데, 거의 통창이라, 채광이 정말 끝내준다. 사실 이 집을 선택한 이유기도 했다. 곰팡이가 발을 들일 엄두조차 낼 수 없을 만큼 햇빛이 통째로 들이닥치는 집.
아니 근데, 잠을 잘 수가 없자네...
이전 방은 북향이었고, 사는 내내 암막거튼을 치고 살아서 (여름에도 추운 방이었거든) 나는 아침햇살이 핸드폰 알람보다 강력한 모닝콜인 줄은 평생 몰랐네.
커튼을 달아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집에 올 때까지도 커튼 레일은 오지 않았고, 커튼도 다 고르지 못해서, 그 사람이 집에 또 와줄지 어쩔지 알 수 없는 일이고, 하이고 모르겠다, 나는 망했구나, 그냥 이대로 살까, 했는데
이번 주 내내 날씨 짱 좋았던 거 알지? 그래서 내가 아침마다 어땠겠어?
오늘은 심지어 아침 8시도 안 돼서 깼다. 일요일에!!!!!!
그래도 오늘은 목공가는 날이니까, 트롤리 조립하는 날이니까, 잘됐다, 일찍 깬 김에 어제 산 바이닐 틀어놓고 청소하고,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신나게 공방에 갔다. 유월이의 격한 뽀뽀와 환영 인사를 받고 바로 조립을 시작했고 (담주는 추석이라 못 가니까) 담엔 대패 밀고 바퀴만 달면 끝날 수 있게 최대한 마무리를 짓고 나왔다.
시계를 보니 5시 10분 전.
2.
어제 김밥레코드에 갔는데 찾는 음반이 없었다. 대단한 걸 찾는 건 아니고 맥밀러랑 her, sza, electric guest, daniel caeser를 찾는 것뿐인데 시발 다 없어. 다 없대!!!!! (김밥레코드는 짱입니다. 사실 HAIM 앨범은 살라고 그랬거든? 진짜 김밥레코드엔 원래 없는 게 없어요 여러분. 싸고, 여튼 짱이야)
그래서 한남동 현대카드 거기에 전화를 했더니 sza는 있다더라? 근데 자기네 6시면 닫는다고 (전화한 건 토요일 오후 5시 58분) 내일 오시래. 그래서 갔지.
갔더니 또 QR코드 찍고 대기 번호를 받으래요. 나는 263번, 대기인원 42명. 거기 도착한 게 5시 20분이었나? 하아... 왜 이르냐... 하면서 조용히 기다리고 15분만에 입장해서 빛의 속도로 디깅을 시작했는데, 어라 없네?
결국 직원분께 가서 찾는 앨범 5장, 근데 그거 다 없다니까 또 생각난 거 추가 2장 문의를 드렸더니 sza는 방금 나간 것 같대. 나머진 들어올 예정이 없고. 하아..................
3.
빈손으로 터덜터덜 앤트러사이트를 향해 걸었다. 이솝 들러서 바디로션 좀 사야지 했는데, 아니 이게 모람???? 9/1-10/7까지 내부 수리라고!??
건너편 논픽션까지 갔는데, 거긴 또 바디로션에서 향이 안 나. 아오.
비이커에선 진짜 너무 맘에 드는 디자인과 향과 발림성의 바디로션을 발견했지만 108000원. 나는 내가 0을 하나 더 붙여서 읽은 건가? 하고 봤는데, 아니야 십만 팔천 원 맞아. 음. FRAMA. 기억만해둘게.
4.
종일 목공하고, 대기하고, 뒤적이고, 오르내리며 허탕치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혼자 밥 먹긴 또 죽어도 싫어서 대충 도너츠나 먹고 집에 갈까 싶어 올드페리까지 꾸역꾸역 갔더니 솔드아웃이래. 음 오늘 우주가 나에게 아무것도 가질 수 없음의 고난을 주는 날인가... 다시 앤트러사이트까지 빠꾸. 결국 마들렌이랑 진저밀크 미친 사람처럼 흡입하고 집에 왔다.
5.
내가 tmi를 적고 싶다고 생각한 건 사실 올드 페리에 가던 길이었는데, 왜냐면 도넛이랑 우유가 들어간 아무 음료를 테이크 아웃해서 지하철 가는 길에 냠냠 야무지게 먹으면 시간이 딱 맞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거든.
유교걸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나는 길에서 먹는 걸 좋아한다. 길거리 음식을 좋아한다거나 길에 가만히 서서 먹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고, on the go 상태로, 걸으면서 무언가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한다. 언제부터였는지, 왜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신이 나. 어딘가 향해 가는 것도 신이 나고, 그 길에 맛난 걸 먹으며 걷는 데 소비되는 에너지를 바로바로 보충할 수 있다는 것도 신이 나. 그리고 걸으며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정도라면 날씨가 대체로 좋다는 얘기거든. 그럼 뭐 말 다했지. 왼손에는 도너츠나 까눌레 같은 걸 들고, 오른손에는 차가운 우유를 쥐고 양손 번갈아가며 먹고 마시면, 아이고 행복이 별거냐.
그게 아니라면 식당이 아닌 어딘가의 바닥에 주저앉아 먹는 것도 좋다. 잔디밭, 공원 벤치, 남산과학관 올라가는 계단참, 그런 곳. 주변으로 행인도 없고, 식당도 없지만 어딘가로 가는 길목에 퍼져 앉아서 별 생각 없이 무언가 우걱거리며 거리나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게 좋다. 이럴 땐 누가 같이 있어야 좋다. 혼자 그러는 건 좀 별로. 걸으면서 먹는 건 혼자해야 신이 나는데 (둘이 같이 그러면 상대방한테 미안하다. 뭔가... 내가 막 보채는 느낌이랄까) 걷다 말고 주저앉아 먹는 건 둘이 해야 신난다. 어디 야외 간다고 하면 바로 돗자리부터 챙기는 이유.
6.
집에 와선 손톱과 발톱을 잘랐다. 나는 그래도 여유를 좀 두고 자른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내 손이나 발을 본 사람들이 그러더라. 손발톱을 굉장히 바짝 깎네요? 라고. 그런가? 근데 손톱이 3mm이상만 자라도 거슬리기 시작한다. 5mm다, 그럼 뭐 바로 손톱깎기 대령이지. 손톱에 뭐 칠하는 것도 안 좋아한다. 발톱은 여름에만 한두 번 정도. 그냥 맨손이 좋다. 조약돌처럼 동그랗게 잘 정돈된 손끝이 좋다. 매트하게 광이 도는 살구색 손톱이 좋다.
7.
오늘의 tmi는 여기까지. 바이닐은 아무래도 직구해야겠다. 스위밍은 죽어도 안 들어올라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