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1.

한 학기를 (진짜 진짜) 마치며




방금 정철자 교수님께 메일 쓰다가 눈물 콧물 질질 짜서
혼자 괜히 민망하고 부끄러워졌다.

교수님 수업은 수요일 1-3시였는데 (교수님 수업 뿐 아니라 오후 수업이 있는 날은 어떻게 해서든 학교에 1시까지 도착해야 했다),
오전 근무하는 날은 퇴근이 12:10.
학교까지는 1호선을 타고 쭈욱 올라가서 미친듯이 달려도 55분 거리.
늘 지각생이었다. 점심 못 먹는 거야 당연한 거고.

첫 수업 때 자기소개를 하며 퇴근하자마자 달려왔다고 했더니
교수님은 다음 시간부터 수업을 5분씩 늦게 시작하셨다.
수업 시간엔 허기 질테니 먹을 것도 꼭 챙겨오라 하시고.

회사에도, 수업에도,
지난 세 달 동안 늘 지각했고 늘 눈치를 봤다.
괜찮다 해주셔도 눈치가 보였고,
왜 늦었냐 물어보시면 그 순간부턴 가시방석 같았다.

아무리 달려도 등교 시간은 줄지 않았고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그와중에 지각해도 괜찮다고 웃어주시던 교수님들이 생각나서
갑자기 또 폭풍눈물.
힝.


실력이 많이 늘었느냐고 물으면 솔직히 모르겠다.
좀 나아지긴 했는데, 좋아졌어야 하는 수준만큼 늘진 않았다.
내가 개인 공부를 안 했으니까.

책 판매를 우습게 본 죄기도 하고, 그냥, 평범한 대학원 생활을 할 수 없는 형편인게 문제이기도 하고.
그래도 어떻게 끝내긴 했네.


학교는 어떤가 하면,
사실 좀 아쉽다.
나름 국내 최고(高), 최고(古) 통대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커리큘럼이 (수업의 질을 떠나 수업 구성 방식이) 최고인지는 모르겠다.
듣고 싶은 수업을 들을 수 없고, 해당 강사 및 교수들의 이전 학기 강의가 어땠는지 사전정보도 하나도 없고, 통대는 이론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고 하실지 모르겠으나 언어학이나 통역학에 관한 이론 수업이 너무도 부족하고.
1학년 1학기에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이나 자질, 기술 같은 게 무엇이었을지 감이 잘 안 온다.

그래도 빼어난 동기들이 큰 자극이 되었다. 훌륭한 교수님들도 많고. 특히 타과 교수님들 수업 듣는 입문 시간은 생각보다 유익했다.


대학원이 고작 2년이라니, 하는 생각에 착잡하기도 하고.
그와중에 자꾸 뭐 딴짓 하려는 내가 너무 사리분별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욕심 좀 내면 안 되나 싶기도 하고.

이제사 내가 하려는 일에, 가려는 길에 탄력이 붙는 느낌인데, 체력 때문에,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조건들 때문에 자꾸 덜미 잡히는 기분. 



여튼 그래서 기말고사 리뷰 보내면서 감사하다 적는데 갑자기 폭풍 눈물 나서...
정철자 쌤 수업 또 듣고 싶다 엉엉.




2018. 6. 18.





나는 사람 많은 장소를 잘 못 견딘다.
그게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숨이 막히고 진이 빠진다.
기가 쇠해져서 그런 건가?

여튼, 그래서 콘서트나 파티 같은 행사는 (속으로는 흥에 겨울 지언정) 내 돈 내고,
혹은 초대 받더라도,
거의 가지 않는다.
좋아하는 해외 뮤지션이 내한해도 별 감흥은 없다.
아, 오는구나. 아, 가는구나.

주말에 책방 오혜에 다녀왔다.
그것도 공연을 보러 (!)
나름 큰 결심이었는데, 좌석이 딱 15개라길래 냅다 예약했다.
안 그래도 한 번 가야지, 했던 서점이기도 했고 (입고처 중에 사장님들이 먼저 너무 좋았다고 말씀해주신 곳들이 몇 군데 있는데, 그런 데는 아무래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승은 님 공연이라기에 '읍!' 하고 결제했지.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런 소규모 공연은 좀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결심을 안고 돌아왔다.
열 분 남짓 모인 공간에서 서로 통성명을 하고, 시를 읊고, 좋아하는 시를 읽어드리고,
책 쓸 때 방실이의 서울 탱고 빼고 그 다음으로 많이 들었던 노래를 1m 앞에서 듣고,
눈물이 차오르는 걸 꾸역꾸역 참으면서 박수 치고, 핫챠, 추임새 넣고,

재미있더라고.
크으.

오장동 함흥냉면을 좋아하시는 나연 씨, 를 어필하고 왔다.
아, 책도 드렸다. 책 내서 좋은 것 중에 하나는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만나서 수줍게 뭐라도 내밀 수 있다는 점.

승은 님 다음 공연에도 가야지.




여자들을 만나야만 글을 쓰는 작가 얘기




너는 네가 특별할 것 없는 범인이라고 말하면서도
특별하지 않음을 어필하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너는 너의 우울감이, 현기증이, 하룻밤짜리 연인들에게 등 돌리며 느낀 공허함이
고통의 근원이자 영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며 펜대를 굴리지만,
너의 유별나게 섬세한 감수성 때문이라고 한숨쉬지만,
그 외로움을 트로피인 양 전시하지만,
결코 네가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
네가 손만 뻗으면 구원할 수 있는 거리에 납작하게 누운 외로움은 끝끝내 외면하지.

순진한 누군가가 그런 네게 기꺼이 손 내밀면
다시 한 번 네 상처를 내보이며 마른 눈물 짓지만
네 옹졸한 세계를 지키는 데 급급해서
네 특별할 것 없는 이름을 지키는 데 몰두해서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하고, 또 하고, 

네가 만든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 대며

그 끈끈한 진창으로 다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다시 고요한 늪인 척 점잔을 빼고.




여자들을 만나야만 곡을 쓰는 비운의 뮤지션이 있어.

하지만 그는 잘생기지도, 키가 크지도, 돈이 많지도 않아.
그런 그는 어떻게 여자들을 꼬시나.
그럼 그는 새로운 노래들을 쓰나.

우선 첫사랑을 만난 뒤 그녀를 위한 노래를 짓고

그 노래로 두 번째 여자를 꼬시는 거야
그렇게 꼬신 세 여자에게 받은 영감으로
또 다른 꼬실 노랠 짓는 거야.

여자들을 만나야만 곡을 쓰는 비운의 뮤지션이 있어.

그런 그가 당신을 위한 선물이라며 노래를 불러주는 바로 그 날,
그는 떠나간다네.

그는 이런 얘길 자랑처럼 떠들고 다닐까?

그녀들도 그냥 외로워서 만난 것 뿐인데
뮤지션이라는 말에 혹해 만난 것 뿐인데
아무도 그를 사랑하진 않은 거야.


신승은, 여자들을 만나야만 곡을 쓰는 뮤지션 얘기





2018. 6. 8.

책을 또




다음 책을 궁리하는 중입니다.
아마 인터뷰집이 될 것 같습니다.
르포까지는 오바고...

참고할만한 좋은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인터뷰집이나 르포 추천해주실 수 있으면 댓글 부탁드릴게요.
(언제나처럼... 아무도 답 안 할 것 같지만...)



근데 글이 쓰고 싶어서 책을 만드는지 책을 만드는 고생(?)이 좋아서 또 뭘 쓰려는 건지 잘 모르겠네 ㅋㅋㅋㅋ
일을 안 하면 못 견디는 일의 노예...









2018. 6. 3.

통대에서의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고,




어쩌다 보니 제 블로그 조회수 1위 글은 통대 입시 게시물이네요.
지난주였나, 지지난주였나, 저희 학교 석사 입학 설명회가 있었습니다.
전보다 참석하신 분들이 적었던 것 같은데, 제가 설명회 시작 전에 잠시 들러서 그런 거였겠죠?

수험생 여러분에게 6월은 슬슬 손톱을 물어 뜯고 싶어지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제가 6월을 어떻게 보냈던가 기억이 나질 않네요.
(블로그 어딘가에 써놨겠지만)

한편 저희 기수는 곧 첫 학기가 끝납니다.
약간의 허탈함? 실망감? 의외의 수확? 불안? 초조함? 여러 가지가 혼재하네요.


우선 합격 후 게시물에도 적었지만
저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죽을 것 같습니다. ^^

정신적으로 괴롭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제가 몸이 너무 안 좋아졌어요.
체력이 강한 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 정도는 해낼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현재 두 미취학 아동의 엄마로 넘나 대단한 실력까지 겸비하신 동기분도 있습니다)

건강한 분이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 체력이 30%만 더 좋았어도 밀려드는 일을 쳐내는 데 급급해 하기 보다 정말 '잘' 할 수 있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학업에는 70점, 일에는, 음, 일에 대한 평가는 잠시 보류하겠습니다.

학업이 70점인 이유는 제가 한 번 대차게 쓰러진 뒤로 과제를 괴발개발 해서 내기 시작했거든요. 반성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은 최선을 다 했어요. 여기서의 최선은 '나를 갈아넣지 않기'였습니다. 이 공부/일의 특성상 파고 들면 한도 끝도 없는 거라서요. 중간에 멈춰야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제한을 두기로 한 거죠.
그래서 성적이 잘 안 나온다면,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물론 졸라 자존심 상해하겠지요. ㅋㅋㅋㅋ 하지만, 1학년 1학기니까요. 앞으로 나아지는 것을 목표로 공부해야지요.

그리고 스터디를 많이 못 했어요. 한다고 했는데, 아파서 빠지고, 뭐한다고 빠지고...
자습도 거의 안 했고.

방학 때는 한영 통역 연습을 좀 많이*10000 해야 겠습니다.



일은, 직장과 개인 사업(?)으로 나누어 보면,
직장은 70점 (as always), 개인 사업은 90점쯤 되겠네요.

회사는 민폐 끼치지 않고 돈 받은 만큼은 하고 나오자, 가 모토이기 때문에
그 모토에 맞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자동차 부품은... 저를 넘나 괴롭히지만... 그래서 때로는 너무 졸립고 배고프고 머리도 아프지만... 그래도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된 걸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다양한 군상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커리어 상에도 좋은 경력이고요.
제가 군상 얘길 왜 하나 궁금하시면 소설 <누운 배>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개인 사업은 생각보다 제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습니다.
잡아먹었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할애 해야 할 시간과 에너지가 제 예상을 초월했기 때문입죠. 
책이 많이 팔려서 싫다는 얘기냐, 라고 물으신다면 싫다기보다 당황했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지만 성격상 도와달라는 얘기를 잘 못하고, 것보다 실제로 이 분야에 이런 경험이 있는 '친구'가 없어서 혼자 발을 동동 구르다가 진이 빠졌다고 답하겠습니다.

근데, 열기가 한풀 꺾이고 나니(?) ㅋㅋㅋㅋㅋ 이젠 좀 할 만 해요. 그리고 누가 책을 만들겠다고 하면 발 벗고 나서 도와줄 의향이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은 말이지말입니다? 출판은 최소한 말입니다? 최소한 4명은 필요한 작업입니다.
기획, 원고 작성, 마케팅 및 대외협력, 총무. 마케팅팀에서 디자인까지 맡아주시면 감사하겠지만 그게 안 될 테니 그럼 다섯 명. 아니다, 디자인은 외주 요청이 나으려나.
여튼, 2~3월 동안 저걸 다 하고 나면 땡! 인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었다는 얘기.
본격적인 일은 입고에서부터 시작이더라고요.

원고를 진심 열 번도 더 뒤엎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는 4번 엎었고...



아, 근데 이거 지금 통대 포스팅이지?



갠적으로 책을 내면서 글쓰기에 대한 애정과 관심과 책임감을 절감하게 된 것은 번역의 영역에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하게도 연락 주신 출판사들이 있어... 네, 그 이후의 일은 그 이후에 알려드립죠.



통대에서 어마어마한 걸 배울 거라고 기대하고 온 건 아니지만
이론공부가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져 그건 좀 아쉽습니다.
두 언어에 대한 이해와 통역과 번역에 대한 이론을 더 배울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게 정말 많이 아쉬워요. 

근데 그건 어느 통번역 대학원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커리큘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언어학을 전공하시거나 번역과가 아닌 번역'학'과를 가시지 않는 이상은 공부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플러스 법학전문대학원 수업을 꼭 듣고 싶었는데, 시간과 체력의 한계로 듣지 못했습니다 ㅠ
2학기때는 어떻게 해서든 진짜 기필고 한 개 수강 하고 싶습니다.
도진기 변호사 겸 작가까진 못 되더라도, 뭔가 법의 세계를 더 잘 알고 싶어요.
내 지적 허영의 종착점인 것 같ㅎr...



마켓에서도 통대 준비하신다는 독자분을 만났거든요.
굉장히, 기분이 묘했습니다.

입학 설명회에서도 공부 방법과 자료 구하는 법, 입시 전략 같은 걸 많이 물어보셨다고 들었어요.
임 교수님 왈, "Just give me English!!!" 라십니다.

솔직히 말하면, 자료는 신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뭘 하나를 되게 많이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뭐든 다양하게 아는 게 중요한 일이니까요.
국내신문 1부, 국내영자신문 1부, 영미권 신문 1부를 끼고 보세요.
곽 쌤은 인터넷 기사 말고 인쇄물로 보라시는데, NYT는 그냥 모바일 구독 하셔도 똑같으니... 통근길, 등하교길, 이동 시에 보시고요. ㅎㅎㅎ

그리고 영어다운 영어가 무엇인지를 고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여전히 그것 때문에 괴롭거든요.

스터디는 되도록 내가 못하는 걸 잘하는 파트너랑 하시고요.
파트너 바꾸는 일을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요.
새 스터디 파트너랑 첫 통역할 때 그 결과물이 본인의 현재 위치라고 생각하시는 게 제일 좋은 것 같고요.
녹음 꼭 해서 꼭 다시 들어보시고, 본인만의 모범 답안이 생길 때까지 반복해서 해보시고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꼭 다시 한 번 읊어보시고요. (이건 저의 자습방법)

글로 안 나오는 표현은 입으로도 안 나오고요
입으로 안 나오는 표현은 내 말이 아닌 것이니 계속 큰 소리로 읽고 외우시고요.

이건 사실 나자식에게 하는 말이고요...

내가 국내파다, 생각하시는 분들은 입학 전까지(시험 한 번 떨어졌다고 통번역 포기하실 건가요? 아니죠? 대학원 못 가면 통번역 영원히 못 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마시고요) 영어 공부 많이 하세요. 특히 원서, 종류 상관마시고 많이 보시고요(이건 임 교수님 조언). 어떻게든 원어민 친구를 꼭 사귀어...... 남자친구면 더 좋고...

주짓수 좋아하시면 주짓수도 좀 하시고요 (이건... 외대 들어오시면 압니닼ㅋㅋㅋㅋㅋㅋㅋ)

이상 제가 지난 한 학기 동안 못 해서 한이 된 공부 얘기였습니다.




내가 오키나와 갓다오면
진짜 공부 열심히 할게...





2018. 6. 2.




왜 자꾸 계속 보고 싶을까요.
누굴 만나면 만날수록 비교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