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나의 오지랖이었다.
인스타에서 알고 지낸지는 꽤 된 (왜냠 무화과를 사먹기도 전부터 알고 있었니까) 분이 어딘지 모르는 그 어딘가에서 소도 키우고 무화과도 키우고 있었다. 아주 아주 어릴 적 할머니가 주신 말린 무화과를 먹어본 기억만 어렴풋이 있을 뿐, 무화과가 어떤 과일인지 사실 잘 몰랐다. 하지만 작년 여름에 그 분이 판매하시던 무화과를 사먹곤 난생 처음 먹어보는 과일맛에 반해 여기 저기 홍보하고 다녔다. 실제로 내 주변인들이 한 10박스는 산 것으로 안다. 친구들은 언니 혹시 브로커냐며, 무화과 다단계 사업같은 거 하냐며, 의심하기도 했다. 첫 택배에는 무화과는 껍질을 벗겨먹어도 맛있다는 손편지를 동봉해 보내주셨다. 그 엽서를 아직도 갖고 있다.
또 지난겨울에는 농장 식구가 늘었다. 보더콜리 강아지. 이름은 폭설이. 주둥이가 뾰쪽한 게 꼭 우리 꼬맹이같았는데 꼬맹이보다 훨씬 순하고 똑똑해보였다... 후...
매일 초록이 넘실거리는 논이나 거대한 축사,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앉은 설이 사진만 보다보니 문득 뭐하는 분인지 궁금해졌다. 나랑 비슷한 또래였던 것 같은데, (얼마 전에 알았지만) 은재 과 선배라고 하던데, 용희오빠 보면 농장이 예삿일이 아니던데.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 친인척 모두 5분 거리에 살고 있다. 귀향길, 귀경길이란 단어는 늘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꽉 막힌 톨게이트 사진정도로 알고 살았다. '시골,' '고향'이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그래서 어려서부터 도시를 벗어난 곳에 적을 둔 친구들을 늘 부러워했는데 논과 산으로 둘러 쌓인 농장을 보니 실제로는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농장에 계시는 그 분도.
한 두어달 전엔가, 진담 반 농담 반, 사실 진심 90%, 농장에 놀러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오빠는 흔쾌히 강제 초대(?)를 수락해주었다. 혼자 가는 건 오지라퍼인 나로서도 좀 오바인가 싶어 괜히 은재를 끌어들였는데 은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다고 단번에 응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영암 한길농장 투어 1기가 모집되었다.
(여담인데, 우리 팀 과장님이 내 무화과 다단계 열차의 막차를 타시고 뒤늦게 주문했는데, 그때 마침 오빠가 자리를 비운 시기였던 것 같다. 과장님께 전화가 한 통 왔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배송이 조금 늦어질 것 같다, 죄송하다, 근데 저희 무화과는 어떻게 알고 주문하신거냐 물었다고 한다. 과장님은 내 얘길 하자니 너무 장황한 것 같아 그냥 인터넷으로 보고 주문한다고 둘러대셨단다. 내 무화과 다단계 사업이 이렇게나 효과가 좋다(?))
내려가는 길에 은재에게 목포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고 물었다.
"목포는 항구다"
10년도 더 된 영화인데 생각하는 게 역시 거기서 거기구나 싶어 둘 다 웃었다.
근데 정말 목포는 항구다. 목포역에 내리자마자 빵집에 들러 오빠네 아버님과 할머님께 드릴 주전부리를 사고 바로 목포항으로 갔다. 뭘 기대하고 간 건 아니고 목포는 항구라니까, 도대체 뭐가 있길래 항구라나 싶어서 갔다. 항구는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장소였다. 시상이 잔뜩 떠다니는 곳이라고 해야 하나.
이미 저녁시간이라 항구는 적막했다. 배들은 잠들어 있었고 밤낚시를 나설 배들만 드문드문 눈을 밝히고 있었다. 서울 촌년이라 바다라곤 부산과 경포대로 이어지는 동해밖엔 모르다 처음 서해바다를 본 것이다. 동해와는 확연히 다르다. 더 투박하고 녹슬었다. 그게 너무 좋다.
농장까지 신세 안 끼치고 혼자 가보려했지만 그건 무리였나보다. 오빠는 목포역으로 오면 데리러 오겠다 했다. 괜찮아요!!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는 절대 못갔을 것 같다...
만나서 어색하진 않을지 걱정했지만 우리는 1도 어색해하지 않았고 저녁을 먹고 농장으로 가는 길엔 오빠에게 무화과 재배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오빠는 중간 중간 얘기가 지루하지 않느냐, 나 좀 진지충 기질이 있다며 걱정했는데, 나 역시 설명충 진지충이라... 무화과 얘기 재미있었다. 뭔가 적산가옥처럼 무화과에겐 단편소설 같은 역사가 있었다.
오빠는 레몬캡과 무화과를 준비해두었다고 했다. 레몬캡이라 함은 잎새주를 만드는 소주 회사에서 만드는 과일맛 소주로, 처음처럼 유자맛이 전국을 강타하기도 훨씬 전부터 전남지역에서만 판매하는 술이었다고 한다. 체리캡도 있었다는데 이젠 동네 작은 슈퍼마켓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품(...)이라고. 올해 첫 무화과, 생애 첫 레몬캡, 나의 첫 영암 독사진.
레몬캡 두 병을 비웠을쯤엔 천장에 걸린 스크린을 내려 오빠의 단편영화를 보고 짧게 GV도 했다.
영화를 보기 전이었나, 보고 나서였나. 취향이 같지 않더라도 삶의 방향성이나 가치가 비슷한 사람이 좋은 것 같다고 했는데, 우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오빠네 집엔 엔트로피와 통섭, 종의 기원이 있었다. 살짝 감동받았다. 인간 대 인간의 만남에 대한 대서사시를 읊을 수도 있었지만 밤이 너무 짧아 아쉬운 여름이다.
아침이 밝았고 오빠의 사무실에는 볕이 잘 들었다.
해가 떨구는 밝은 그림자를 좋아한다. 해가 사물을 만나 드리우는 그림자 말고 빛이 표면에 떨어질 때 공간을 채우는 하얀 그림자.
그리고
아아, 설이, 나의 설이.
아, 내 설이는 아니지, 참.
설이는 이제 8개월 된 아가 보더콜리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유치원생이려나.
두말 할 필요 없이, 그냥 순딩이 아가다. 이 사진을 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설이가 오빠 곁을 맴돌던 게 생각난다.
데려오던 날 폭설이 내려 이름이 폭설이라 했다. 친화력이 좋다고 했는데 나를 처음 보고도 짖지 않았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다는 것이... ㅋㅋㅋㅋㅋ 단점일 수 있겠지만 덕분에 나는 편했다. 큰 개를 정말 너무 너무 너무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소녀떼처럼 꺅꺅 거리면서 호들갑 떨면서 예뻐하는 건 잘 못해서 처음엔 그냥 본다. 개들은 낯선 사람을 우선 후각으로 알아챈다고 했다. 그래서 내 냄새에 익숙해질 때까진 가만히 있는다. 뭐 손 정도는 내밀어준다. 하지만 설이는 일단 영봉오빠를 많이 좋아한다. ㅋㅋㅋ 귀여워. 내가 뭘 해도 큰 관심 없음 ㅋㅋㅋㅋ 설이는 축사에서 지내는데, 멀리서 인기척이 나면 혹시 형아인가? 하며 문 앞을 서성인다. 짖지도 않는다. 그저 투명문에 코를 대고 서 있는다. 그게 멀리서도 아롱져 보인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듯 까맣고 하얀 설이의 (내 기준에서) 아담한 몸집이 문 뒤에서 기웃거리고 있다. 그 대상이 동물이든 사람이든 관계의 온도, 색, 결이란 유난떨지 않아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 보인다. 무엇보다 설이가 오빠를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너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은재가 왔다!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한 은재를 데리고 바지락 비빔밥을 먹었고 오는 길엔 일본식 목조건물을 개조한 카페에 들러 마치 점심을 먹지 않은 사람처럼 빵을 해치웠다. 돌아오던 길엔 오빠 친구분이 일하시는 하나로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내 혼신의 힘을 다 해 저녁상을 차렸다. 메뉴는 은죠미가 사온 어묵을 넣은 어묵탕, 내 피클과 먹으면 맛있는 호박 부침개, 그리고 회심의 가지튀김.
오빠와 은재, 그리고 잠시 들렸다 가신 아버님까지 가지튀김을 제일 맛있게 드셨다.
엄마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혼자 넘나 뿌듯해하며 저녁을 먹었다.
물론 서울로 돌아온 지금은 아무것도 해먹지 않는다. 같이 먹을 사람이 없으면 주로 굶는다. 인스턴트 음식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나 혼자 해먹으면 세상 그보다 맛없는 음식이 없다. 결론은 굶기.
일요일엔 20년째 폐허로 남겨진 아파트 단지에 들렀다.
은재는 공사장이나 난개발지처럼 디스토피아를 연상시키는 장소들을 좋아한다. 가끔 그런 걸 보면 사진을 찍어 은재에게 제보하기도 한다. (은재는 그런 사진들만 모아두는 인스타 계정이 있다 @04marnay04 ) 그래서 이번에도 내려오자마자 목포의 다 스러져가는 가옥들을 보면 꼭 사진을 찍어 은재에게 보여줬다. 너 오면 여기도 가고 저것도 보자. 은재는 매의 눈으로 이 아파트를 발견했고 우리는 단체복 = 무화과T를 입고 냉면을 먹었고, 돌아오는 길엔 폐가 체험을 했다.
실제로 아파트는 90년대 초반 지어진 도시의 아파트들과 비슷한 입구와 공간구성을 갖고 있었는데 저 많은 집들중 딱 한 채에만 샤시와 현관문, 그리고 전기 배선이 깔려있었다. 그 집엔 커튼까지 달려있었다. 현관문을 열어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정말 누군가 살고 있는 듯 해서 차마 열 수는 없었다. 밤에 생각하면 정말 섬뜩하다.
아, 첫날 집에 오던 길에 오빠가 우리를 위해 준비했다던 게 또 있었다.
바로 무화과T. 영암에 내려오기 전 농담처럼 "그래서 투어 프로그램엔 무슨 무슨 활동이 있죠?" 라고 물었는데, 오빠가 진짜 이것 저것 준비해두었던 것. 너무 고맙고 내 입방정이 너무 미안했는데, 티셔츠가 너무 귀여워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걸 깜빡했다. (진짜르.)
주말에는 셋이 저 티셔츠를 입고 다육이를 사러 갔다. 이것도 오빠가 사줬다. 정말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니 겁나 철면피같네. 집에 돌아가서 분갈이 체험을 하자고 해서 축사 그늘에 앉아 셋이서 각자 고른 선인장과 다육이 분갈이를 했다. 나는 알바라고, 동글동글한 알맹이가 달린 선인장을 골랐다. 지금 내 책상 위에 나와 함께 있다. 오빠에게 고맙다는 말은 했던가.
사실 이 외에도 핸드폰에 저장되어있거나 은재가 찍어서 보내준 것, 오빠가 보내준 것들이 잔뜩 있는데 여기엔 필름 카메라 사진들만 올린다.
인스타에 폭풍 업데이트를 본 친구들이 하나같이 "재미있어 보이더라"고 했다. 내 주변인들은 나처럼 말을 꾸며할 줄 모르는 까닭으로, 진짜 재미있어 보였나보다. 실제론 그것보다 한 3배 더 재미있었다.
설이 목욕도 직접 시켜주고, 간식도 주고, 송아지 순찰도 하고, 오빠 친구들 얘기, 은재 동기들 이야기, 송송대란 같은 이야기도 들었다. 매월 1일에는 다같이 무화과T를 입고 선인장에 물을 주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자고 했다. 10월엔 부산 영화제에서 만나자는 얘기도 했다. 은재와 돌아오던 기차에선 오빠가 준 선물들과 마이훼이보릿 픽쳐에 대해 얘기했다.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영암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했다.
오빠 냉장고엔 양조절에 실패한 호박 부침개와 우리가 거의 다 먹어버린 피클병이 남아있을 거다. 설이에게 페이스타임 하는 법도 알려줘야 하는데.
휴, 오빠는 송아지들 돌보느라 바쁘니까 아무래도 내가 조만간 또 가야겠지? 크크크
근데 정말로,
아직도 몸에서 강아지 냄새가 나던 설이가 너무 보고 싶다.
저도 농장에 가보고 싶네요! 농장에 대한 판타지를 심어주는 글입니다.
답글삭제아까 제 불찰로 3개나 댓글을 지운 분이 남기신 댓글 같은데, 정말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삭제게츠비 댓글이 지워진 게 몹시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