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4.

 



1.

오래전부터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좀 더 탄탄한 문장으로 짜임새가 견고한 글을 쓰고 싶은데, 그것은 책만 읽어서도, 혼자 쓰고 혼자 읽는 것만으로도 될 일이 아니었다. 


나연 씨, 합평을 다니는 건 어때요?


라고 했을 때 주저했던 것은 내가 누군가의 피드백을 곱게 소화할 정신력이, 혹은 맷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런데 그것보다도 내가 가 닿으려는 곳이 내 생각보다 험준하고 위태로운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셰르파가 간절해졌다. 내 부족함을 상세히 고지하고, 그것을 고려하여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셰르파.


몇 해째 마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단행본 원고에는 내가 아주 친한 친구들 앞에서도 차마 고백하지 못한 나의 가장 추한 일면을 드러내야 아다리가 맞아 떨어지는 구간이 있다. 그 고개를 넘지 못해 자꾸 포기하고 그저 지면만 채우는 부실한 글로 눙치고 싶어진다. 나의 체면을 지키고 싶어서 바람에 흩어질 소리로도 내뱉지 못했던 이야기를 글로 적어내려니 낭떠러지로 내가 나 자신을 밀쳐내는 행위같아서 너무 무섭다. 잘못된 선택일 것 같아서. 설령 그것이 수치의 낭떠러지가 아니라 아주 약간의 기술만 있다면 무사히 넘길 수 있는 장애물이라 할지라도 그 구간을 훌륭하게 건널 재간도 없다. 내가 이렇게나 속물적이고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는 걸 내보여도 될,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고 다시 또 넘어지는 수치를 기꺼이 내보이겠다 마음의 준비가 된, 셰르파의 도움이 필요하다. 


언젠가 글쓰기를 배운다면 진선의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과외를 받고 싶다. 진선이라면 믿고 따를 수 있다. 진선에게는 찐득한 피를 뚝뚝 떨구며 끈적하게 서로 얽힌 내 내장을 꺼내보여도 나를 역겨워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날 것의 나를 다시 잘 정돈하여 알맞은 자리에 넣어주고, 여며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진선 앞에서라면 용기를 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제대로 나를 단련시키려면 내 위선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내보이고, 또 그들의 반응을 소화시키는 일을 연습해야 하는 게 아닐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셰르파에게만 기댈 것이 아니라 랜덤하게 정해진 면접장 토론조 조원들처럼 냉철한 눈으로 나의 글을 단어와 조사 단위까지 해부하고 반박할 투지를 불태우는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지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




2.

휴직 1일. 오늘은 죄책감을 갖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의 시간을 가져보려 노력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챙기고, 잠시 낮잠을 잤다 운동을 갔고, 돌아와 책을 읽다 저녁을 먹고 물걸레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집앞 마트에서 장을 보고 퀴노아를 안친 다음 책상에 앉아 이 일기를 쓰고 있다. 오늘 본 인상깊었던 장면 따위를 적을 때에도 일기를 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꼭지만큼은 일기로 느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연습이라고 하기에는 자잘한 집안일들이나 운동을 하긴 했지만 오늘 하지 않으려고 가장 노력한 것은 sns 보기, 유투브나 영상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 있기, 요 두 가지다. 친구들의 DM에 답한 것 외에는 아직까지(저녁 8시가 조금 안 되었다) 잘 참고 있다. 

약속도 일정도 없는 휴일이면 침대에 누워 종일 피드를 새로고침 하고 있던 날들이 있었다. 창밖이 어둑해질 때까지 딱히 나를 찾는 사람도, 나의 흥미를 끌 일도 없는 피드를 훑고나면 종일 뭘 한 건가 한심해서 우울해지기만 했다. 휴직 기간 내내 무얼할 지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상태라 또 그짓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아서 우선 sns부터 멀리하기로 했다. 

그다음은 영상 스트리밍. 집에 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소리가 나지 않아서 불안하다기보다는 적막이나 무자극의 상태를 못 견뎠던 것 같다. 그게 초조해서 뭐라도 틀어두고 살았다. 그러다보면 화면에 정신이 팔려 넋을 놓기 일쑤였고. 오늘도 종일 음악을 틀기는 했지만 그래도 식사시간에도 묵묵히 밥만 먹었다. 그래서 맛이 더 잘 느껴지거나 음식을 더 감사하게 되는 일 따위 없었지만 스스로에게 주는 자극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는 작은 성취감은 얻었다. 

그렇다고 휴직기간 내내 이렇게 지내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콘센트에 꽂아두기만 하면 작동하지 않아도 전력을 소모하는 전자기기처럼 나도 모르게 내 정신적 에너지를 야금야금 방전시키는 행동들을 좀 줄이고 나를 심심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회복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 심심함의 알을 버틸 힘을, 깰 힘을 길러주고 싶다. 필요성을 실감하고 싶다.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음" 보다는 "무엇이든 하려는 강박"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근데 그것도 "제어하기"를 통해서 해야 하는데, 이게 선생님이 말한 "아무것도 하지 않음" 맞나 모르겠네. 통제강박 되면 어떡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