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2.

 



1.

어제도 결국 양질의 잠을 자진 못했다. 꿈에는 건태가 나왔다. 정확하게는 건태와 통화를 하는 꿈이었다. 건태는 전화를 받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며 너무 미안하다고 울었고, 나는 정색하며 냉랭한 목소리로 단답을 해 건태에게 비수를 꽂았다. (하지만 그럴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괜히 건태에게 미안해서 이따 문자 한 통 하려고. 우리 소중한 건태, 내 자존감 지킴이인데.




2.

건태는 내가 건태를 건태라고 부르는 게 내내 웃기다고 했다 (건태는 나보다 네 살 위다). 그렇담 오빠라 불러주랴 물으면 그건 또 아니란다. 

서른이 넘기 전까지는 줄곧 연상만 만났지만 단 한 명도 오빠라 부르지 않았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만나도 나를 누나라 부르기 바라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나연 씨라 불리기를 좋아하고, 애정의 대상은 꼬박꼬박 이름으로 부른다.

보고 싶다는 마음도, 염려도, 감사도, 모두 이름에 담는다.



2-2.

내가 그래서 아직 너의 이름을 잘 부르지 못 해.




3.

서래 씨,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하는 경우가 잦지만

저는 그런 사람은 못 되었던 것 같아요. 사랑이란 관계의 이름은 아니니까요.

늦었지만 서래 씨의 통찰력과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4.

생각이 많으니 역시 블로그만한 게 없네.




5.

나의 사랑 넷플릭스 시리즈 <<마인드 헌터>>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Love is violence; sex is violence. Every interaction is violence. It's just a matter of scale. ... does it feel good when your lover takes your hand and you didn't expect it? Does it feel better when he grabs your nipples? (or) twist them?"

SM 플레이 후 상대를 살해한 범죄자의 대사이나, 그의 말에 일부 동의하는 바이다. 나에게는 이것이 SM의 정의이다. 합의된 복종과 통제, 자유의지와 존엄성을 타인의 손에 넘겨주는 일은 사랑의 표현, 그 영역의 확장이자 도구일 때에만 성립가능하다. 가학과 피학의 관계에서 신뢰와 애정은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 걸린 것이 목숨만큼 크거든.



6.

첫 책에는 이스터 에그처럼 나의 성향에 대한 글귀를 남겨놓았다. 누군가 발견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를 들키(어 얼굴 붉히)고 싶다는 욕망은 왜 이 영역으로까지 나대는 것인지.

안타깝게도 아직 그런 후기는 듣지 못했다.



7.

내 것을 쓰지 않았다고 병이 나는걸 보면 나도 천성 창작자의 피가 흐르나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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