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0.

근황 업데이트

 



1.

독립한 지 곧 반 년이 된다(오 생일날 딱 6개월 되네). 세상 시간 진짜 빠르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간 많은 친구들이 다녀갔다. 예상치도 못했던 손님들도 있었고, 남자를 보는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간 사람도 있었다. 아무나 집에서 재우지 말아야겠다 결심했지만 예외도 있었다. 가장 고대했던 네 발 달린 친구는 일주일 가까이 자고 갔다.

아직 못 온 친구들도 몇몇 있지만, 친구들 덕분에 덜 외로웠다. 덜 춥게 지냈다. 




1-2.

글자 그대로 덜 춥게 지냈는데, 우리집에 채광이 어느 정도로 잘 드냐면 나는 12월이 될 때까지도 우리집 보일러 밸브가 잠겨 있는 것도 몰라서 1월까지 도시가스비가 0원이었다. 관리사무소 선생님이 오셔서 확인 안 해주셨으면 겨울내 보일러도 못 틀고 ‘이 집은 원래 이렇게 틀어도 쌀쌀하고 안 틀어도 뜻뜻하고 그런가?’ 하며 지냈을 거다. 하이고.




2.

클럽하우스라는 새로운 sns가 생겼다. iOS에서만 사용가능한데다, 영어 UI, 인비테이션 기반 가입방식 등 여러 진입장벽이 존재하는 폐쇄적인 서비스임에도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사용자 중 아주 높은 비율이 테크 산업 종사자들이나 마케터, 홍보 전문가들. 이 기회를 노려 여러 (중견)스타트업에서 기업 설명회 같은 취업 설명회 같은 묘한 세션들을 열고 있고,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쟉은 채널에 옹기종기 모여 내부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도 당연히(?) 채용 설명회 비스무레한 세션을 진행했고,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팀원들이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책 얘기까지 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아주 소수의 회사 동료분들께 인스타 계정까지 알려드리게 되었다.(알려드린 것보다는 클하 프로필에 인스타 계정을 연동시켜둔 탓에 실제로 클하에서 만난 다양한 분들이 인스타까지 팔로우해주셨다. 인클루딩 정재승 교수님. 아 대박 가슴 설렛찌 모야...)


고로...

이제 토비즈 계정에는 좆이네 엿이네 씨발이네 같은 소리는 못할 것 같다...




2-2.

우리 회사에 글 쓰는 분들 많더라. 블로그든 브런치든 시든 뭐든.




3.

사내 북클럽에서 장애학 도서를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각자 할 얘기가 너무 많았다. 이런 분들과 일 하고 있어서 천운이다. 일복과 직장복은 타고 났다 증말.




4.

안 마시던 커피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마신다고 표현하기 머쓱할 정도로 일주일에 연하게 탄 라떼 한 잔 정도 마실까 말까 하지만, 그래도 카페인 수혈이 아니라 맛이 그리워 커피를 마신 건 진짜 오랜만이다. 물론 커피 맛 뭣도 몰라서 서교동 앤트러사이트에서 모카포트로 내려준 라떼가 내 기준에선 젤 맛있다. 혀지네 오빠네 txt 커피 라떼도 진짜 존맛이었는데.




5.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려 한다. (아마도 내일이나 모레.) 

친구도 별로 없는데, 그 중에 차 가진 친구는 더 드물고, 그 사람들(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거리감이 있는 사이)에게는 차마 어딜 같이 가달라 부탁할 염치가 없어서, 그냥 내가 해야겠다. 하아... 어바인에서 면허 시험 세 번 떨어진 순간 평생 운전따윈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는데 될까.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섭네 ㅠ


근데 뭐 걔도 하고 쟤도 하는데 나도 딸 수 있겠지, 면허...


그리고 회사 언제까지 다닐지 모를 일이므로(회사에서 학원비 지원해줌) 일단 학원은 등록해야 한다.




5-2.

아, 회사에서 아이패드도 사줬고, 책도 개 마니 사주고, 러닝화도 사주고, 1:1 pt도 끊어줬다. 이거랑 재택근무때문에 진짜 이직 엄두도 안 난다. 넘 좋다.

사랑해요 순두부두...




PS.

아까 앤트러사이트 입구에서 토스트랑 비슷한 친구와 함께 광합성 하고 있는 커플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 눈물이 찔끔 났다. 나한테는 왜 저런 일이 도무지 주어지지 않는 걸까. 내 삶에 유일하게 없는 행복. 내가 애타게 그리는 행복은 볕 좋은 주말, 강아지와 사랑하는사람과의 산책을 곁들인 라떼의 맛. 






카메라를 든 남자들

 



1.

첫 남자친구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그 사람이 올린 사진 몇 장 때문이었다. 이런 사진을 찍는 사람은 누군지 궁금했다. 그 눈이 보는 세상이 궁금했다. 그 눈에 예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로지 그 생각으로 만났다. 




2.

영화 감독, 감독 지망생, 카메라 상점 주인, 사진 작가 등등.

첫 남자친구 이후로도 카메라를 든 남자를 오지게도 만났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나서는 사람이거나 못해도 카메라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이고 사물이고, 장삼이사 발에 채이는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이나 추함을 찾아내 세상에 다양한 시선이 있음을, 시선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아직 많음을 몸소 증명해주는 사람들이 좋았다. 숱하게 당하고 뒷통수 맞아놓고도 여전히 좋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에 보면 주인공인 ‘심시선’이 남편이란 존재의 무용함에 대해 설파하면서 “그네들은 렌즈가 하나 빠졌”다고 평한다. 그래요, 그럴 수 있죠. 제가 그래서 렌즈 하나 더 달고 다니는 남자에게 끌리나봅니다요.




3.

좋아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상냥하게, 다정하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려고 한 게 죄인가. 

취향이든 뭐든, 왜 늘 ‘대가’를 치뤄야 하는 걸까. 왜 늘 이런 취급 당해야 하는 걸까.




4.

아니 씨발, 그런 새끼들도 옆에 멀쩡하게 애인은 끼고 있자나. 나는 왜 아니냐고. 시발 진짜.






Not a big fan of regret and boredom

 



1.

믄재가 비비 좋아한다고 할 때 좀 들어둘 걸 그랬다 싶을 정도로 비비 노래를 열청하고 있다.

얼굴은 낯선데 목소리가 익숙해서(낯익었다고 썼다고 목소리에 낯이 있나? 싶어서 다르게 적는다) 유투브를 뒤졌더니 예전에 타이거 JK랑 윤미래랑 다 같이 어디 나온 걸 본 적이 있더라고(내가). 그때 ‘안 맞는 옷을 입혀 나왔네. 저런 거 아님 더 잘 놀겠구만’ 이라고 생각했던 것까지 기억났다.



2.

가장 많이 돌려 듣고 있는 건 쉬가릿과 비누. 어떤 분 인스타 들어갔다가 쉬가릿 라이브를 보그랑 찍은 동영상을 보고 치여서 듣고 또 듣는데, 드디어 20대 여성 뮤지션이 담배와 콘돔 얘기를 자유롭게 해도 되는 날이 온 것인가!!! 좋아서 들었다. 내 책 너무 보내드리고 싶더라.

하지만 가슴에 가장 진하게 박힌 가사는 비누의 한 대목이었다. 


오늘 했던 거짓말들

어제 했던 bad decision

Do you know how to keep myself clear

다 비누로 씻어내는 거지


이 부분 최고야. 



3.

영상을 보고, 인터뷰를 뒤지고, 노래를 종일 듣다 내가 이 뮤지션을 굉장히 부러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예쁘고 재능있는 거야 당연히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부러운 건 다른 면이었다.

나쁜 선택에게 내어줄 시간이 있다는 점. 그리고 오늘 다시 거짓말을 해도 내일 비누로 씻어내면 그만인 그 여유, 나에게는 이제 사치인 일을 맘껏, 양껏 낭비 할 수 있다는 점. 그게 눈도 못 뗄 정도로 부럽더라.


더 실수하면서 살 걸, 

더 엉망진창인 선택들을 하며 살 걸,

그때 가진 거라곤 시간과 감정뿐이었는데, 더 무모하게 쓰면서 살 걸,

더 저지르면서 살 걸.(물론 충분히 그러고 산 것 같지만, 그래도.)


이젠 체력이 안 돼서, 잃을 것이 많아서, 다시 쌓는 일이 두려워서 선택은커녕 생각도 맘대로 하질 못한다.

요새 ‘더 열심히 살 걸’하는 아쉬움이 꼭 연못 아래로 가라앉았던 낙엽 떠오르듯 슬쩍 슬쩍 올라온다. 절대 그 보다 더 열심히 살 수는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종류의 열심일까. 뭐가 아쉬운거지. 그렇다고 지금 삶이 부족하거나 모자란 것도 아닌데.



4.

BIBI님 더 내키는대로 맘껏 살아주세요. 그리고 그거 꼭 노래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