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15.

편지




어제, 승은님 책 드리려고 공연 가기 전에 짬을 내서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면서 짬을 낸다고 하는 거 굉장히 성의 없는 사람같지만 
약간 반성의 마음을 담은 단어 선택이라 그냥 짬을 냈다고 하겠다.

공연을 보는데 셋 리스트에 내가 첨 듣는 곡이 좀 많았고, 그럼에도 나는 또 노래 듣다 쳐울었다. 양 옆으로 커플이 앉았는데 남자친구인 분들이 승은님을 여자분들보다 좋아하는 것 같았고 나도 저런 남자친구 데리고 공연 오고 싶다 (데리고임, 내가 티켓 사줄 거고 승은님을 전도할거니까)는 생각 때문에 부러워서 운 건 절대 아니고 진짜 가사 듣다가 또 개슴에 넘 맺혀서 눈물 다섯 방울 또르르.

그렇게 또 쳐울고 나니 편지에 쓴 말이 다 가식적이고 거짓말 같고 지어낸 소리 같아서 당장이라도 편지 찢고 새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메모지도 없었음) 결국 여기다 공연 후기 겸 승은님께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다시 적는다.


승은님,
박복한 인생이지만 승은님 음악을 들으면, 아주 조금이라도, 불행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그냥 또 하루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겨우 살아 넘긴 하루가 모여 이렇게 다시 승은님 공연도 보고, 비루한 책도 건넬 수 있다니. 승은님, 오래오래 음악 해주세요. 좋아하시는 것들 전부 오래오래 건강히.




2018. 12. 10.

곧 잘 울고 싶어지는 사람




벌써 지난주네. 이번주라고 글을 시작하려 했더니.

지난주엔 별 게 참 많았다.
토요일 휴강으로 학교는 고작 나흘 나갔지만
화요일엔 사진도 찍히는 인터뷰를 했고, 수요일에는 서면 인터뷰를 했고,
목요일에는 1년도 더 전에 번역한 태용의 단편영화를 보러 서독제에 갔고,
금요일에는 북토크를 하느라 서른일곱 명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투머치 토커가 되었고,
토요일에는 동윤이 쇼케이스를 보았고, 일요일인 약 1시간 20분 전까지는 자연 씨 부탁으로 어라운드 서면 인터뷰? 비스무레한 것의 원고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내일 오전 11시 due인 과제를 한다.

중간에 조 선생님께 "저는 이제 몰까요" 했더니 "지금은 김작가님이죠" 했다.
맨날 뭘 물어보면 세상 별걸 다 묻는다는 듯 간결한 대답을 내놓는 사람.
나는 이렇게 직선적이고 단편적인 대답을 하는 재주가 없다.
그런 게 때로는 되게 필요한 데 말이지.

그래서 또 "저는 뭘 하고 싶은 걸까요" 했더니 "전업작가 하고 싶다더니" 했다.
가끔 약간 얄미울 정도로 '어, 맞네' 하는 대답을 내놓는데, 아니 대답 자판기냐구.

근데 전업작가는 못 될 거 같다. 오늘 어라운드 답변지 쓰다가 정말 눈물이 다 날 뻔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리 정돈된 글을 못 쓰는가. 번역때도 들은 피드백인데, 간결하게 축약하여 핵심만 말하기를 왜 이리 못하느냔 말이지.

방학 동안 가능하면 글쓰기 수업을 들어야겠다. 정말 속상해서 아주 그냥 눈물이 다 날 지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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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를 안 보려고 노력하는데, 오늘 네이버 리뷰를 보다가 "자기 SNS에나 올려놔야 할 얘기를 책이랍시고" 라는 글을 봤다.
제가... 들어가는 말에도 제 SNS에 있던 글을 모아서 정리한 것이라고 적어놓았는데... 어... 움... 
하긴, 그게 책 소개에는 안 적혀 있던가?
그래도 리뷰 1000개 중에 그거 하나 아주 약한 수준(?)의 부정적 반응이면 성공했찌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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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내 글이 싫고 원망스럽고 한심해서 죽겠는 날이 너무 많았다.
너무 많았다고 비교하는 것도 불가능 할 정도로 대부분의 날에, 싫었다.
요따위로밖에 못 써서 도대체 어쩌자고 책을 낸 거니, 싶어서 쥐구멍에 숨고 싶었지만
책을 낸 사람이 그러면 못쓰니까.
어뜩하지. 학교 다시 다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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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스물일곱? 여섯? 이후로도 매해 새로운 친구를 제법 사귀었는데, 올해는 진짜 무슨, 아니, 누굴 만나기는 했니?
따로 만나 밥 먹고 차 마시고 술 마신 사람만 생각해 보니 진선이와 윤모쓰 정도려나?
아아 슬아 동윤이도 밥 먹고 술 마신 건 1월 1일이니까, 그래 슬윤도. 그러고보니 수아 언니도 3월에 왔다 갔구나. 그게 다네. 아니, 그래도 뭐 알차게 만날 사람은 다 만났네.

아쉬운 게 있다면 독립출판물 작가들하고 교류를 못한 것...
30대 김나연은 20대 김나연과는 아주 딴판이어서 이젠 누구한테든 먼저 사부작 거리기를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했고, 학교에서도 친구를 못 만드는 마당에 뭐. 할 말 다 했지 모..

내년에는 또 어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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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 그 고민? 염려? 불안? 기대?로 맘이 갈팡질팡이다.
이제 여기서부터 어떻게 되는 건가. 어디로 가는 건가. 어디로 가야하나.

윤모즈는 이미 충분히 열심히 하시니 자책 그만 하라는데 ㅠ

근데 뭐 올해 초에 내가 올해 이렇게 책에 매여 살 줄 알았나 모.
내가 막 시사지 인터뷰에 나가고 그럴 줄 알았느냐구.
근데 이렇게 나를, 막, 구름 위까지 띄워놨는데, 이 요망한 책이,
내가 어뜨케 응, 기대가 안 되느냐구.

근데 뭐가 또 딱 정해진 것도 없구 나는 내년이면 이제 통대 졸업 준비생인데.

아오 걱정해서 뭐하냐. 공부나 해라, 이 인간아.
기말 때 진짜 어쩌려고 이러니.



2018. 12. 2.

What to write




한여름 밤 유람선 아빠 초콜렛

독자에 따라 달라지는 문학의 깊이 - 풍부

컴플렉스가 없는 노래
힘이 넘치고 강하지만 공격적이거나 도전적이지 않은 음악

상상력이 궁핍하여 고통에 으깨지지 않으면 단 한 단어도 짜낼 수가 없는 사람
고통을 쫓아다니며 절교하지 못하는 인간

40대 커플, 각자 이혼 후 우연히 재회하게 된 동창들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상상해내는 일

이해한다는 자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는 오만

인스타 가상 계정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는 복수.
자신을 파괴하지 않는 복수란 가능한가? 
내 눈을 빼앗은 자의 눈을 도려낸다고 해서 나는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가 과연 내 고통과 절망을 '똑같은 강도'로 느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내가 받은 것을 '되갚아' 줄 수 있는가? 
복수는 셀프 서비스.
킬링 디어, 슬픈 짐승과 집착.
십 수년에 걸쳐 사랑 고백을 계획하는 사람은 없어도 일생을 바쳐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있다. 자신을 훼손한 사람을 향해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분노의 지속력이란 그토록 집요하고 끈질기다.

처음보다 어려운 것이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