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야.
평상시엔 반말을 한 적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인사인가,
갸우뚱 했다면, 아니야, 네 얘기야.
내가 오늘 아침부터 일이 많았어.
약속도 두 개나 있었고.
그래도 중간에 운동도 다녀와서 하루가 참 길고 보람차네, 그러고 있었거든.
친구랑 저녁 먹고 나오는 길에 이름만 들어본 동네 서점이 있길래
무심코 들어가서 무심코 눈에 띄는 책을 한 권 집어들었어.
그게 무슨 책이었게?
네 여자친구가 쓴 책이더라.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ㅇㅇ아 이거 박 파란 색도 있겠지? 다음 인쇄 때 내 표지도 후가공 박 두 가지 색 넣어서 하면 되겠다, 이렇게, 라고 친구한테 책 표지를 보여주고 있었어.
그리고 누가 쓴 무슨 책인가 보려고 책을 열었더니 네 여자친구가 있더라.
내려놓을까, 그래도 한 페이지라도 볼까, 하다가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 이상한 표현이지? 자신이 없다니. 뭐가 자신이 없었을까? - 그냥 맨 뒷 페이지를 열었어.
나보다 먼저 냈네.
그리고 만나는 줄곧 지지와 응원을 보내준 애인에게 고맙고 사랑한대.
지지, 응원, 애인, 사랑.
나는 종종 궁금했거든. 너도 사랑이라는 말을 할까. 너도 여자친구 곁에 누워, 사랑해, 하고 눈웃음을 지을까. 네가 하는 그건 사랑일까.
사람이 속독할 때는, 그러니까 한국어로 쓰여진 글을 속독할 때는 대각선으로 읽어 내려간대. 그러면서 키워드만 눈에 담는거야.
내 눈엔 저 네 단어만 들어왔어. 사실 숫자도 같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건 생략할게.
너에게 책을 주던 날이 생각나더라.
나는 대단하다고, 잘했다고, 기특하다고, 민망하고 좋더라고, 네가 뱉은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태어나 처음 들어본 단어인양 차곡 차곡 담아뒀는데, 고마워서 나도 모르게 목 놓아 울었는데,
넌 이미 한 번 해본 얘기겠다 싶어졌어.
네 여자친구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겠지.
대단하다, 고생했다, 민망하고 좋더라.
나한테 한 말은 다 재활용품이었겠구나, 나는 재활용품인줄도 모르고 혼자서도 쏟지 못한 눈물을 네 앞에서 그렇게, 병신같이, 그 생각이 들어서
너무 서럽고 비참하네.
너에게 뭐 어쩌란 건 아니야. 그냥 내 기분이 좆같아서.
나는 홍길동이 왜 세상을 뒤엎겠다고 집을 뛰쳐나왔는지 이제 정말 잘 알 것 같아.
호부호형 하지 못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울며 세상을 원망했던 홍길동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그게 아니라고 설명도 변명도 하지 않아도 돼.
기든 아니든 그게 지금와서 나한테 무슨 소용이야?
나는 네가 너무 싫다 지금.
너무 싫고 너무 끔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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