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니가 만든 영화가 드디어 멀티플렉스 극장 스크린 위에 걸렸다.
내가 좋아하는 단편에서 시작된 영화,
니가 그 해 가을과 겨울을 쏟은 영화,
우리를 조금씩 밀어낸 영화.
지인분이 영화 개봉도 전에 보고 싶다며 소식 올려주셔서
네 이름이 큰 스크린에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구나.
니가 뭔 영화냐며 등짝을 후려치셨다던 부모님께 자랑스레 보여드릴 수 있겠구나.
다른 사람들은 정말 모르겠지만,
넌 잘 지냈으면 좋겠다.
네 뜻대로, 성공한 상업영화 감독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3/05
단.
사실 마주치면 어쩌나, 지하철 안에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없는 것을 확인하고 리플렛을 집어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리플렛에 적힌 네 영화의 영문제목에 눈 가득, 그렁그렁, 어쩔 줄 몰라 웃음이 났다.
헤어진 후 처음인 것 같았다.
이미 세상엔 없는 사진 속 강아지들을 나는 늘 보고 싶다 했고
너는 이름만 들어도 맘이 아프다 했다.
그 날, 친구에게 네 소식을 들었고,
오늘 잡지에서 네 인터뷰를 읽었다.
영문자막은 내가 해주기로 되어있었지.
너에게 듣던 이야기를 지면으로 보며
나는 뿌듯했고, 미안했고, 알 수 없는 마음이 되었다.
너와 수도 없이 나누었던 말들인데
낯선 사람의 손에 정리되어 인쇄된 글자로 보니, 꼭 먼 옛날 얘기 같았다.
이제 와 청승맞게 돌아 앉아 옛날 얘기를 들춰본다.
2012/07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