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2.

What to write




한여름 밤 유람선 아빠 초콜렛

독자에 따라 달라지는 문학의 깊이 - 풍부

컴플렉스가 없는 노래
힘이 넘치고 강하지만 공격적이거나 도전적이지 않은 음악

상상력이 궁핍하여 고통에 으깨지지 않으면 단 한 단어도 짜낼 수가 없는 사람
고통을 쫓아다니며 절교하지 못하는 인간

40대 커플, 각자 이혼 후 우연히 재회하게 된 동창들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상상해내는 일

이해한다는 자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는 오만

인스타 가상 계정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는 복수.
자신을 파괴하지 않는 복수란 가능한가? 
내 눈을 빼앗은 자의 눈을 도려낸다고 해서 나는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가 과연 내 고통과 절망을 '똑같은 강도'로 느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내가 받은 것을 '되갚아' 줄 수 있는가? 
복수는 셀프 서비스.
킬링 디어, 슬픈 짐승과 집착.
십 수년에 걸쳐 사랑 고백을 계획하는 사람은 없어도 일생을 바쳐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있다. 자신을 훼손한 사람을 향해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분노의 지속력이란 그토록 집요하고 끈질기다.

처음보다 어려운 것이 '다음'





2018. 11. 21.




요즘 너무 자주 아파서 자진 입원하고 싶을 지경이다.
도대체 어쩜 좋지.
학교 아직 끝나려면 최소 3주 남앗는데...
하나가 나으면 다른 하나가 아프기 시작한다.
너무 속상하고 화나고 짜증나고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되고...







디폴트로 꺼져있겠다던 사람을 오늘 인스타에 뜬 광고 속에서 마주쳤다.
아침부터 기분이 상하는 게, 역시나 이젠 안 되겠다 싶다.



2018. 11. 3.




출장 D-5 
출간 D-12



What it is like to speak two languages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의사표현이 가능한 정도로 구사하게 되면
어느 순간 특정 상황엔 어떤 언어가 더 적합하다는 느낌이 든다.
일종의 언어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인 것 같다.
내가 한국어로 아무리 자세하고 촘촘하게 묘사한다고 해도 미국 대도시 외각의 적막하고 쓸쓸한 풍광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할 자신은 없다. 
아리조나주를 달릴 때 눈 앞에 펼쳐지는 광활한 고독은 바람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새벽, 시동을 멈추고, 차에서 내려, 도로 한복판에 서서 자신이 달려온 길을 돌아보고, 그 반대로 끝도 없이 이어진 도로를 내다보다, 방위감각을 완전하게 잃어볼 때에야 알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건 영어로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회화적인 풍경 말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어떤 순간에 일어난 감정을 묘사할 때도 영어가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내 뇌 속을 설명해보자면, 
평상시에는 '한국어' 세계에서 모든 사고를 처리하다
특정 순간, 특정 트리거로 인해서 내 우주의 위 아래가 뒤집힌다. 그리고 순식간에 '영어' 세계가 내 우주를 dominate 한다. 이런 식으로 '우위가 바뀐다'거나, '점령한다', '독점한다'는 단순한 한국어 정의가 아니라 dominate이 가지고 있는 단어의 존재감이 필요할 때는 영어로 적는 것 밖엔 별 다른 도리가 없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꼭 함께 미국 일주를 떠나고 싶은 것도 비슷한 이유.

내 빈곤한 언어로는 내가 사랑에 빠진 것들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설명해낼 자신이 없다.
직접 보고 느끼게 해주는 수 밖에.


Motel Poolside



































Come to Motel Poolside.
Whether it has a pool or not, it's a place to fall for.


Pic by Jeff Brou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