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6.

근황

 



1.

동생에게 일이 생겼다.

엄마에게는 또 다른 장애가 생겼다.

나는 가족이 점점 힘들다.




2.

혀지가 드디어 척척석사가 되었고, 연락이 뜸했던 사이에 팟캐스트도 시작하였다.

서로를 모르고 살던 시간보다 친구로 지낸 시간이 더 길어진 우리는 1년에 한 번, 많아야 두세 번쯤 만나지만 여전히 두 개의 몸에 담긴 하나의 영혼같다 느껴진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여튼 그렇다.

혀지의 팟캐에 한 번은 출연해보고 싶다. 




3.

웅이를 보면 아빠 생각이 난다. 왜 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웅이를 보면 아빠가 떠오른다. 




Daddy issue

 



1.

요즘 다음 집을 찾아 house hunt 중이다. 벌써 세 달 째인데, 맘에 드는 집이 없다.

집이 마음에 들면 위치나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고, 위치가 좋으면 가격이나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본주의사회가 다 그렇지 뭐.


그나마도 맘에 드는 집은 보증보험을 들 수 없는 곳이었는데, 전세권 설정이라도 가능할지 궁금해 하던 차에 아빠가 집을 같이 봐주겠다고 제안해줘서 주말에 아빠를 만나 부동산 투어를 돌았다. 단 엄마에게는 비밀로 하고. 


20 여년만에 아빠를 다시 만나라고 한 것은 엄마였지만, 그 제안을 가장 후회하고 있는 것 또한 엄마다. 엄마는 기댈 언덕이 필요했던 것 같다. 말로는 우리를 위한 일이었다고, 우리에게 지워질 부양의 짐을 나눌 사람을 찾아주고 싶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인 느낌이다. 아빠가 매일 전화를 해주지 않는다고, 일정 시간을 본인을 돌보는 데 쓰지 않는다고, 부부이던 시절 자신을 얼마나 비참하고 서럽게 만들었는지 아느냐고, 자식에게 할 이야기가 맞는지 되묻고 싶은 하소연을 틈틈이 하다가 언젠가 한 번은 이혼을 결심한 양육자가 미취학 자녀에게 한 번쯤은 저지르는 아주 전형적으로 폭력적인 질문을 내게 물어왔다.  


- 너 엄마가 아빠 보지 않는다고 하면 너도 안 만날 거니?


나 어릴 적에는 누구랑 살 거냐 묻던 엄마는 당신의 자식이 더 이상 부, 모 어느 쪽과도 살고 싶지 않고 살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지만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나는 이런 엄마가 너무 지겹다. 피곤하다. 나는 엄마의 부부관계 카운슬러가 아니다. 자식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이런 것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엄마가 싫어서 귀를 닫고, 입을 닫고, 마음을 닫게 된다.

그런데 20년 간 소식조차 모르고 살던 아빠와는 전화 한 번 할 때면 한 시간 씩이고 대화를 할 때도 있다. 물론 내가 먼저 아빠를 찾는 일은 드물고, 아빠의 다정한 안부 문자를 읽씹하기 일쑤지만, 그래도 한 번 타이밍이 맞으면 무슨 얘기고 끝도 없이 하게 된다. 이사 관련 문제도 그랬다. 보고왔던 집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테리어 비용이며 따져봐야 할 건축 요건 등을 물어보다 핸드폰을 잠시 확인해보니 통화시간이 5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엄마와 통화할 때와는 다른 이유로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를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키워낸 엄마와는 단 1분 간의 통화로도 화가 치밀기 십상인데, 아빠와는 어떻게 이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를 하게 될까. 이래도 되는 걸까. 왜 이렇게 되는 걸까. 


엄마가 싫어서 엄마가 불쌍하다. 자식에게도, 전 남편에게도, 누구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불쌍한 여인. 이제 가난 속에 저물 일만 남은 여인. 엄마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일 텐데, 나는 도저히 그런 모습이 상상되지 않아 엄마가 너무나 측은하다. 이런 마음도 사랑일 수 있을까? 하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즐겁거나 행복한 기억 같은 건 떠오르지 않는 걸. 최대한 같이 있는 시간을 줄이고, 그의 삶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사랑일 수 있을까?


그럼 아빠에 대한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어려서부터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고, 아빠를 명시적으로 편애했다. 누가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좋으냐 물으면 엄마가 서운할 정도로 망설임 없이 아빠라고 답하는 어린이였다. 소극적이고 소심한 탓에 별명이 부처였던 7살 나요니도 그 순간만큼은 냉정하리만치 단호했다. 나는 아빠가 좋아. 


그게 40년 가깝도록 이어지나보다. 아빠와 함께 살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아빠가 엄마에게 준 상처를 모두 알 수는 없기에(사실 거의 다 아는 것 같은데)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엄마가 나에게 준 상처에 비할 바는 아닌가보다.


아빠를 좋아한 건 어쩌면 엄마를 좋아할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부모 너무 어렵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