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자 산 지 이제 꼬박 3주가 되었다. 심리적 시간으로 따지면 한 두 달은 지나간 것 같은데 오늘이 이사 후 맞는 고작 세 번째 주말이라니. 하루하루가 정말 너무 길었네.
간간이 연락하는 친구들에게도 독립 소식을 전하는데, 문득 현재 내 생활양식이 독립인지 자취인지 출가인지 아리까리 해졌다. 경제적측면에서 보면 독립에 가깝다. 부모 도움 없이 내 돈으로 나와 내가 세 내며 살고 있으니까. 근데 그건 본가에서 살 때도 그랬다. 엄마 쓰러지고 나서부턴 생활비의 70~80% 정도를 내가 책임졌으니까. 집안일을 게을리했다뿐이지 내가 꾸려야 하는 살림이었다.
정서적 독립이야 애저녁에 했지. 아마 미국 가면서부터였을 거다. 비빌 언덕이나 믿을 어른 하나 없는 팔자라는 것을 진즉 깨달았고, 열아홉 이후로는 엄마가 서운하다며 화를 낼 정도로 엄마에게 무엇 하나 구한 적 없다. 엄마가 당신을 못 믿는 것이냐며 화를 내면 나는 그게 말이 되느냐, 내가 엄마를 왜 못 믿겠느냐며 엄마를 달랬지만, 엄마 말이 맞다. 엄마 말은 항상 맞았다. 나는 엄마를 믿지 않고, 정확하게는 엄마의 판단력을 전적으로 불신하고, 엄마를 사랑한다고 느껴본 적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정서적 독립이 굳이 그 정도로 극단적인 감정고리의 단절이어야 한다고 볼 순 없겠지만, 어쨋든 의지하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 벌써 몇 년이야 그럼.
근데 엄마는 내가 "엄마를 불신하는 것이 아니며 엄마에 대한 애정이 정말 없겠느냐"고 눈을 마주치지 않고 둘러댄 말을 믿었는지, 이번 분가를 "요즘 젊은 애들은 혼자 사는 게 유행이라니까" 나도 그 유행에 편승하는 걸로 이해했나보다. 오 마이.
나는 그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지.
그 집에서는 나오고 싶었다. 볕도 들지 않는 북향 집. 창을 열면 옆집 시멘트 담벼락이 보이던 집, 바닥에 누우면 습기찬 시멘트 혹은 장판 밑 곰팡이 냄새가 훅 번지는 곳, 여름엔 아무리 더워도 제습기를 끌 수 없던 곳, 그도 모자라 물먹는 하마 열다섯 개를 방 구석 구석 밀어 넣어봐도 벽에 곰팡이가 번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던 곳, 하지만 다정다감하신 주인 노부부 덕에 10년 내내 보증금도 월세도 올리지 않고 살 수 있던 우리집 아닌 우리집.
대신 왕십리에는 평생 살고 싶었다. 대학때부터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난 독립해도 왕십리에 집을 얻을 거라고. 첫 직장에 다닐 때도 그랬다. 그때 나왔어야 했는데, 뉴타운이 생긴 뒤로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고, 내가 얻을 수 있는 전세라곤 5평짜리 오피스텔뿐이었다. 5평. 지금 얻은 아파트의 절반 크기, 그러니까 지금 침실 겸 거실로 쓰고 있는 이 방 안에 주방이며 화장실, 붙박이장까지 모두 들어차 있는 방. 원래 지내던 방보다 실사용 면적이 더 좁아보이던 그 협소 주택(도 아니고 방). 그런 곳에서 살 순 없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고향을 떠났다(고향이 뭐 별건가. 왕십리에서 나고 자랐으니 거기가 내 고향이지 뭐). 내 의지가 아니었다. 부동산 가격 때문이었고, 도저히 함께 살 틈을 주지 않는 엄마 때문이었다.
집을 나오는 데 있어, 그리고 이 집을 선택함에 있어 내 의지가 차지하는 몫은 얼마만큼일까? 한 40%?
3주간 혼자 살며 느낀 점은 그거다. 나는 혼자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적어도 향후 10년은 비슷한 마음일 것 같다. 나는 혼자 살아내기엔 외로움에 몹시 취약한 사람이다. 그럼 왜 굳이 굳이 회사에서도 한 시간, 본가에서도 40분, 심심하면 나가 놀던 성수, 을지로, 광화문과도 40분 이상 떨어진 여기 와 살고 있느냐고?
가족에게서 멀어지고 싶어서. 그런데 내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곳이 이정도라서.
갓 대학 새내기가 되었을 때, 자취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 에 대한 그리움도, 등록금도 모자라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 부쳐주시는 부조님에 대한 미안함도, 고향을 떠나온 적 없으며, 부모는커녕 편모의 도움조차 기대할 수 없었던 나는 전혀 알 수가 없는 부분이었으니까. 그냥 멍청하게 마냥 부러웠지.
분가 후 첫 주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너무 어마무지한 사고를 저지른 게 아닐까, 이 집 월세를 밀리지 않고 낼 수 있을까? 그 와중에 또 돈을 모아 다음 집은 전세로 나갈 수 있을까? 마흔 전에는 대출을 끼고서라도 서울에 내 집을 얻을 수 있을까? 다시 왕십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많은 돈을 다 어떻게 모으나?
그 염려와 불안에.
불안증 환자가 뭐 별 수 있나. 그래도 매주 친구들 부르고 모으고 목공가고 물건 사고 식물 돌보고 야근하며 피쳐 런칭하고 어쩌고 하다보니 먼 미래 걱정은 그만 해야겠다 싶었다. 월급도 무사히 들어왔구 뭐. 연말에 연봉 협상도 있으니까. 그때 되면 월 수령액 앞자리도 바뀔테니 너무 조바심 내지 말아야지.
그러면서 잔다. 맨날.
독립이든 자취든 분가든 출가든, 외로운 것만 빼면 몹시 잘 지내고 있다. 어제 다녀간 수진이와 헤임달 말로는 이젠 좀 사람 사는 집 같단다. 물건들이 얼추 제자리를 찾아서 그런 거겠지.
나도 여기가 내 자리일까. 왕십리 그 어둡고 눅눅한 그 집 말고, 눈이 부셔 8시면 자동으로 기상하게 되는 11층 사슴의 집, 여기가 내 자리일까.
2.
분가 생활의 몇 가지 단상
1) 장조림
최애 반찬 한 가지만 꼽아보라고 하면 당연코 장조림이다. 메추리알 말고 삶은 달걀을 넣은, 돼지고기 말고 소고기 장조림. 가장 익숙한 맛이면서 가장 그리운 맛이고 가장 질리지 않는 맛. 생각해보면 나는 소금간을 하는 음식보단 간장으로 맛을 맞추는 음식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간장은 소금보다 달큰하고도 깊고 복잡한 짠맛이니까 그런 것일지도.
여튼 집 나오고 거의 매일 요리중이다. 내가 입이 짧은 게 죄지만, 손님이 와서, 어제 저녁에 먹을 걸 오늘 점심으로 또 먹긴 좀 그래서, 새로운 걸 하고 또 한다. 그래도 요즘 야근이 잦아서 뭘 오래 재우고, 조리고 하는 건 잘 못했는데 추석이라 그런지 마트에 이런 저런 고기 부위가 싸게 나왔고, 사태를 보니 장조림을 해먹어야겠다 싶어진 것.
고기를 산 다음 날, 홍대에 나와있다던 종길쌤(한식 전공자)을 찾아가 장조림 만들기는 어렵냐 물어봤다. 가지런히 길이와 폭 맞추어 자르고 장식하는 구절판에 비하면 장조림은 쉽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소량의 고기와 ㅋㅋㅋㅋ 달걀 10개로 장조림에 도전했다.
중간 중간 이게 저맛이야 이맛이야? 하면서 간을 헤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 무척 맛있게 잘 먹고 있다. 늘 먹는 간보다는 살짝 짜지만, 그래도 반찬이니까 괜찮아, 하며 밥을 두 공기씩... 먹고 있다...
맛은 있지만 그래도 어려서 외할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은 안 난다. 고기가 달라서 그런가. 담엔 홍두깨나 양지로 해볼까.
2) 28cm의 웍
집 나가겠다 선언하고, 계약까지 하고 와서 집에서 거의 뭐 불효막심한 썅년 취급을 받다가도 어쩌다 한 번씩은 엄마의 걱정어린 관심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그 징표로 받은 것이 28cm짜리 웍이다.
28cm라고 하면 감이 잘 안 오겠지? 본인의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길이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2-3cm를 하면 웍의 지름이 된다. 그리고 깊이가 한 10cm? 그건 반뼘정도. 그러면 물이 한 2L 좀 더 들어가려나? 떡볶이 한 8인분은 할 수 있을 걸? 혼자 밥 해먹고 사는 사람은 닭도리탕을 끓일 게 아니면 거의 필요가 없는 사이즈의 조리도구인 셈이다.
나 먹겠다고 아무도 안 먹는 재료를 사다 지지고 볶는 건 열아홉때부터 질리도록 해서 1인분의 사이즈를 아는 나는 굳이굳이 그 웍을 손에 쥐어주는 엄마에게 살짝 짜증을 냈다.
아니, 혼자 사는데 이렇게 큰 웍이 필요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고. 집도 조그마한데.
엄마는 그래도 모르는 일,이라며 같은 크기의 프라이팬까지 싸주길래 한사코 거절하며 그럼 웍만 가져가겠다고 묵직한 쇳덩어리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you know what? 엄마가 억지로 들려보낸 그 거대한 웍은 내가 여태 가장 자주 꺼내 쓴 조리도구 중에 하나다. 내가 손이 큰 것도 아닌데 도대체 이 웍은 왜 이리 그릇장과 스토브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가 생각해보니 내가 집에 자꾸 사람을 불러들여서 그런 거다. 못해도 한 명, 보통은 두 명이 짝으로 오는 식이라 밥이든 반찬이든 최소 4인분 정도는 준비해야 하니까 결국은 본가에서 쓰던 사이즈의 조리도구들이 필요했다.
다시 한 번 엄마가 맞았다. 쫌. 쫀심 상하네.
3) 세탁기
내가 집을 나오기 일주일 전, 우리집 세탁기가 고장났다. 몇번째 고장인지 모르겠다. 수리기사님이 오실 때마다 습기 때문에 기판이 녹슬어서 그렇다는데, 아니 물로 돌아가는 가전제품이 습기때문에 고장이 이리 자주 난다고 하면 그건 그냥 기계를 잘못 만든 게 아닌가?
그렇다고 수리비가 저렴한가? 절대 아니다. 고장이 날 때마다 메인보드를 갈아야 한다고 해서 출장비까지 포함해 13만원 가량 들었다. 그건 누가 내? 내가 내. 하 씨.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은은한 꽃무늬가 몸체 사면에 수놓인 대우 세탁기는 우리가 그 눅눅한 집으로 이사가던 2010년에 이모가 사준 것이다. 당시에 한 30만원 주고 샀던 걸로 기억한다. 10년 전에 30만원이면 사실 저렴한 세탁기는 아니었어. 왜냐면 내가 이번에 분가하면서 산 12kg짜리 LG 통돌이 세탁기가 36만원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성능이 좋았느냐? 그건 또 모르겠다. 흰 셔츠를 빨면 손목이나 목깃에 때가 잘 지지 않을 때가, 잦았다고 쓰려다 생각해보니 한 번도 완벽하게 깨끗했던 적이 없었네. 일수였다. 탈수가 시작될 때는 덜덜덜 떨며 곧 화장실 문 앞까지 진격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런 세탁기를 10년 썼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세도 적어도 3번은 수리를 했으니 수리비가 세탁기 비용보다 더 나왔던 것.
하지만 이번에도 대우 세탁기를 샀더라. 이번엔 동생이 샀다. 난 어차피 분가할 거니 n빵 대상에서 제외된 것. 동생 예산에서 살 수 있는 동급 동량의 세탁기는 하이어 아니면 대우인데, 하이어를 사긴 찜찜하니 대우를 골랐겠지. 그 친구는 2010년생 친구에 비하면 좀 덜 시끄럽고 안정적인 것 같긴 하다만, 글쎄 뭐, 난 그 세탁기를 한 번 밖에 못쓰고 집을 나왔으니 제대로 된 성능이나 안정성은 알 수가 없다.
사슴의 집에는 12kg LG 세탁기가 있다. 용량도 큰데 사이즈가 앙증 맞아 뚜껑이 안 열린다는 둥, 수도꼭지가 어쨌다는 둥 하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만큼 앙증맞다.
세탁기는 10년씩도 쓰는 물건이니 꼭 삼성이나 LG를 사라던 주변의 조언대로 (처음엔 삼성 세탁기를 샀다가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설치 직전에 기사님께 반품당하고) 이틀만에 골라 사흘만에 배송받은 나의 LG 세탁기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침착하다. 세탁기란 게 소음 없이 상하좌우로 들썩거리지 않으며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낼 수 있는 기계였단 말인가, 매번 놀라면서 어디 남은 빨래가 없나 두리번 거린다. 자꾸 돌려보고 싶거든. 그리고 우리집에 있던 그 낡은 대우 세탁기를 떠올린다. 별 기능도 없으면서 뻑하면 기판이 나가고 버튼이 눌리지 않아 모든 옷감을 표준 코스로 돌려야만 했던 대우 통돌이 세탁기. 10년간 기술이 발달한 것인지, 아니면 10년 전에도 LG세탁기는 이랬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대우가 최선이었던 우리집은 앞으로도 대우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생활이 계속 되는 한 이 고요한 세계와는 분리된 채로 살아야하는 것이겠지.
난리법석 떨지 않으면서 의젓하게 제 할일을 하는(심지어 셔츠에 때도 잘 지워짐. 근데 이건 내가 산 액체세제 세탁력인건가?) 내 세탁기를 볼 때면 죄책감 비슷한 마음에 가슴 한 켠이 뻐근해진다. 이걸 나 혼자만 알아도 되는 건가. 이런 편리한 세상을 우리 가족은 모르고, 나만 누리고 살아도 되는 걸까.
세탁기가 뭐라고 이런 생각까지 드나 싶다가도, 혼자 비싼 세제 들여놓고, 워런티 10년 보장해주는 브랜드의 백색가전을 이틀에 한 번씩 돌리며 신나하니, 언제나처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양극으로 찢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내 가족의 계층과 내가 속한 계층의 괴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학력에서 조금씩 벌어졌던 간극은 이제 생활의 아주 작은 구석으로 번지고 있다. 소득은 물론이거니와 관심있게 지켜보는 분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외식할 때 고르는 식당과 메뉴, 듣는 음악, 사용하는 단어, 매일 같이 쓰는 그릇이나 가재도구, 살림살이, 가전제품까지, 교집합이 점점 줄어든다. 어떻게든 이 굴레를 벗어나려는 자의에 의해서, 그리고 변화를 구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들의 타의에 의해서.
분리되고 싶으면서도 내가 적극적으로 분리 과정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에 죄책감이 든다. 배신자 혹은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배은망덕한 년 취급을 받는 것이 억울하면서 화가 나다가도 또 속상하고.
세탁기 하나 놓고 별 잡생각을 다 한다. 이런 게 혼자 사는 일인가보다.
4) 청소
나는 내가 이렇게 부지런한 인간인 줄 몰랐다. 본가에 살 때는 넌 왜 청소기를 안 돌리냐, 빨래를 안 돌리냐, 동생한테 허구헌 날 욕을 먹었는데 혼자 사니 하루에도 두세 번씩 쓸고 닦고, 틈만 나면 또 빨 게 없나 찾아보려고 옷이나 침구에 코를 박고 킁킁 거린다.
혼자 사니 집안일을 대신 해 줄 사람이 없어 그런 것도 있지만, 이제 이 집안 모든 게 오롯이 내 것, 내가 처음부터 시작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니 되도록이면 최초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물때가 끼지 않은 싱크대, 변기, 아직 새하얀 화장실 타일의 줄눈과 부엌의 실리콘, 얼룩지지 않은 새하얀 벽지, 맨발로 돌아다닐 수 있는 베란다 타일 같은 것들. 이사 나가는 날까지 지금 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
그러려면 뭐 자주 쓸고 닦고 덜 어지르는 수밖에.
그래도 놀러온 친구들마다 이젠 좀 사람 사는 집 같다, 집이 너무 예쁘다, 깨끗하고 밝다, 좋은 말 많이 해줘서 청소할 맛이 난다. 자주자주 논노오세욤 열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