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1.
내가 가는 병원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으론 대기실 쇼파와 커피 테이블이,
왼쪽으론 바닥부터 천장까지 솟은 책꽂이와 하얀 6인용 테이블이 서 있다.
처음 간 날은 어쩔 줄 몰라 대기실 중앙에 오도카니 서서 "저... 3시 반 예약한 김나연인데요..." 라고 인사했다. 데스크에 계시는 분이 잠시 앉아계시라고 하시기에 오른쪽으로 돌아 쇼파에 앉았다. 통유리창 앞에 놓인 푹신한 쇼파에 앉았더니 바로 맞은편 벽에 가지런히 꽂힌 책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쇼파에 얌전히 앉아 진료시간을 기다려야지, 하다가도 금세 두 눈으로 서가의 책등을 훑고 있는다. 결국 쇼파에 가방과 외투만 벗어두고 곧장 맞은편 벽으로 걸어간다.
2.
매번 예약 시간보다 5-10분 정도 일찍 가는데, 보통은 대기실엔 나 혼자다.
한 번은 한 환자분이 서가 앞 테이블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내 앞 세션 환자인 것 같았다.
눈을 마주친다거나 얼굴을 보는 것 혹은 보여드리는 것이 실례인 것 같아 그날은 서가 근처에 가지 않고 조용히 쇼파에 앉아만 있었다.
3.
첫 날은 입을 뗀 지 5분만에 울었다. 진료 도중 운 건 아직까지 그 날이 유일하다.
4.
선생님은 어떻게 오셨냐고 하거나 이번 주에 이야기 하고 싶은 주제는 없냐는 질문을 하신다. 아마 모든 진료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질문인 것 같다.
매번 당하는 질문인 걸 아는데도 32년 인생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5.
정신과는 처방전이 없다. 데스크에 계시는 간호사님께서 직접 조제해서 약을 주신다.
치료비에는 약값과 조제비가 포함된다. 처음 상담 간 날은 그게 가장 신기했다.
6.
이 병원에 가기 전에 심리상담소를 한 곳 갔었다.
지난 생일, 정말 더는 못하겠다 싶었고, 그렇다고 자살충동이 인 건 아니라 어디든 가서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하자는 절박함에 다다랐다.
심리상담소 선생님은 상담이 처음이라는 나에게 이런 저런 기본 정보를 알려주셨는데, 상담 마지막엔 아무래도 처음이니 병원이든 상담소든 자신에게 맞는 곳을 찾을 때까지 두세 곳을 둘러보기를 권하셨다.
여긴 그래서 오게된 두번째 병원.
병원을 바꾸는 것은 미용실을 바꾸는 일 만큼 쉽지 않다.
남에게 잘 맞는다고 나에게도 잘 맞는 곳이란 보장이 없고,
한 군데 뚫어 놓으면 어쩐지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
마음이 게을러지는 것도 있고.
7.
생각보다 치료비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병원이나 상담소 나름이겠지만 내가 갔던 상담소와 병원을 비교하자면 상담소 진료 비용이 높았다.
8.
생각보다 주변에 약을 먹는 친구들이 많다.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내가 먼저 묻지 않는다. 다만 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거나 심리적으로 위태로워지면 친구들이 먼저 병원 얘기를 꺼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선입견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친구들 덕분에 약물 치료에 대해 현실적인 기대와 염려를 품게 되었다.
9.
그 외 특이사항들이 생각나거나 혹은 새로운 사실을 배우게 되면 리스트를 수정해 나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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