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인스타에 올릴 예정이...었으나 올리지 않음.
인스타에서도 덜 피로한 방법으로 글을 읽을 수 있는 법이 없을까?
(다른 플랫폼을 하시면 되지요, 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한테 가장 많은 사람에게 글을 노출할 수 있는 채널은 인스타뿐이라, 게다가 이 블로그는 앱으로 볼 수가 없고, 딱히 다른 채널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카드 뉴스 형식은 너무... 별론데...)
좋은 아이디어 있으신 분?
1.
회사와 학교를 병행할 때, 지각할 수밖에 없는 시간표 때문에 사무실과 역 사이를, 역과 강의실 사이를 삐그덕 거리는 도가니를 문지르며 뛰어다녀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것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1호선의 냄새였다. 그건 낡은 차량에 벤 세월의 냄새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왜냐면 승객의 밀도와 연령대에 따라 냄새의 종류나 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1호선엔 어르신들이 참 많다. 처음엔 어르신들이 들고 탄 짐에서 나는 냄새겠거니 했다. 1호선을 타고 등하교/출퇴근을 한 지 2주쯤 되었을 땐 알았다. 그건 온갖 체취와 사람들 옷에 묻어 온 시장 냄새였다.
점심시간 즈음에 1호선 열차를 타고 시청에서 회기 사이를 지나본 사람은 알 것이라 믿는다. 몇호차에 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시간의 1호선은 모든 차량에 승객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회기에서 노량진으로 내려갈 때는 지하철에 타자마자, 노량진에서 회기로 올라올 때는 서울역 이후부턴 숨을 쉴 수 없는 것은 물론이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멀미가 나거나 지하철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경미한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적는 와중에도 냄새가 떠올라 머리가 아프면서 이따위로 반응하는 내 자신이 너무 비정하고 잔인하고 오만한 인간 같아서 죄책감이 든다.
2.
8살인가 9살 때까지 외할머니 손에서 큰 것은 맞지만 하원 후 대부분의 시간은 할머니네 집 앞 골목 혹은 쌀집 할머니(외할머니의 둘째 여동생)네 가게에서 보냈다. 아들만 넷을 둔 쌀집 할머니는 조카 손녀인 나를 몹시도 예뻐하셨고, 당신 가시는 곳마다 데리고 다니며 자랑하셨다. 물론 가는 곳마다 다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도 손꼽아 기다리는 외출이 있었다. 바로 백화점. 쌀집 할머니와 백화점에 가는 날엔 할머니가 가끔 공주 드레스도 사주셨기 때문이다. 드레스를 얻어 입지 못한 날에는 할머니가 자주 가는 여성복 매장에 얌전히 앉아 있다 백화점 꼭대기층에서 오무라이스를, 지하 식품관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것이 일종의 백화점 코스였다. 다섯 살배기 일때부터 퉁실이 어린이였던 나는 예쁘고 맛난 것만 골라 사주시는 쌀집 할머니를 안 좋아할래야 안 좋아할 수가 없었다.
어김없이 쌀집에서 쌀포대를 타고 놀던 나에게 “쌀포대 터진다”며 나를 끌어내린 할머니는 나를 당신 무릎 위에 앉히시더니 가게 밖을 내다보며 그러셨다.
“이 기집애, 이것도 나중에 나이 먹으면 할머니한테 노인네 냄새난다고 싫다고 그러겠지.”
냄새 난다고 사람을 싫어하는 건, 정확한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착한 어린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아니야. 난 안 그럴 거야” 고개를 힘차게 가로저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이런 저런 이유로 쌀집 할머니를 예전 같이 좋아하기가 힘들다. 가족사라는 게 그렇지 뭐. 금이야 옥이야, 예뻐해주신 할머니를 원망해서 죄송한 맘이 들지만, 마음이 멀어지게 된 이유 역시 잊을 수는 없는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거리에서 서 있다.
3.
지금 내 나이의 두 배쯤 되는 인생을 살고 나면 나도 몸에서 ‘노인네 냄새’라는 게 나겠지. 그럼 슬금슬금 나를 피하는 젊은이들, 나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들 눈치를 보며 서러워하겠지.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1호선의 냄새가 사라지거나 내가 좋아하는 머스크 향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괴로운 건 괴로운 것. 오래 괴로워하다 보면 원인제공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
오늘 오랜만에 점심시간 1호선을 탔더니 쌀집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이 먹는 일, 함께 사는 일, 너무 어렵다.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