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21.

From Insta from the last 2 weeks





니가 내 이름을 인스타에서 검색해봤다길래,
나는 화들짝 놀랬지 뭐니.
안 돼, 안 돼. 니가 보면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넘나 많단말이얌.



#1
1. 내가 너의 상태가 아니라 너의 성정을, 너의 기질을 좋아하는 거라고, 난 네가 글을 쓰다 망해도, 더는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좋다고 했더니 네가 그랬지? 그게 너라고. "글을 쓰는 게 나고 내가 글을 그만 쓰면 분명 네 생각은 달라질거"라고.
나는 아니라고 정색했지만, 폐부를 찔려서 그랬던 것 같아. 나는 네가 아무것도 읽지 않고 쓰지 않았다면 널 좋아하지 않았겠지.

2. 어제 샛노란 태권도 학원 봉고차에서 내리는 젊은 남자를 봤어. 나보다 조금 어려보였는데, 운전석에서 내리더니 옆문을 열어서 어떤 여자를 내려주더라. 여자가 차에서 내려도 그 둘은 잡았던 손을 놓지 않았어. 아직 아이들이 하교하지 않은 시간에 샛노란 학원 셔틀버스를 함께 타고, 차 안에서는 떨어져 앉더라도 내려서는 손을 잡고 걷는 20대 후반의 남자와 여자구나. 그러다 말고 나는 너를 그 자리에 옮겨봤어.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 옳은 소리만 골라하는 승객을 집어다 놀이공원 호수에 빠트리는 것처럼. 그리곤 자신이 없어졌어.

3. 그런데, 과연 너같은 사람이 책도 없이, 글쓰는 시간 없이,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을까? 나는 그게 기질이라고 생각해. 네가 암컷 조류로 태어났다면 어쩔 수 없이 알을 낳아야 하는 것처럼, 네가 낳는 알이 병아리인지 독수리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이번 생엔 새로 태어난 널 좋아한거지.



#2
1. 사는 거 너무 어려운 게, 돈도 벌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책도 봐야 하고, 잠도 자야 하는데 그 틈틈이 음식물 쓰레기도 버려야 하고 날짜 맞춰 분리수거도 해야 돼.

2. 스켑틱 읽는데 그런 기사가 있었어. 사진을 많이 찍을수록 기억에 남는 건 더 적어진다고. 우리는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반대인거지.
한 가지 분명한 건 기억을 아웃소싱 하면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른대.
그러니까 사진 그만 찍고 우리 차라리 글을 쓰든지 서로를 보자.



#3
1. 13년 전에 돌아가신 큰외삼촌은 젊은 시절(이래봤자 70년대 후반이겠지) 명동에서 양장점을 하셨다고 했다. 당시만해도 마른 44사이즈였던 엄마를 종종 가봉모델로 썼다고. 

2.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일본식 교육기관명칭을 바로잡는 일이었다는 건 고등학교 때에서야 알았다. 학교 이름이 바뀐 건 아마 2, 3학년때. 그때까지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외할머니네는 작은 마당이 있는 양옥집이었는데, 문이며 창문 모두 격자무늬 미닫이문이라 계절마다 한지를 사다 풀을 쒀서 창호지를 새로 발라야 했다. 연탄을 쓰는 집이었고, 집 찬장엔 c레이션이라고 하는 군용식품이 나뒹굴었다. 주로 큰외삼촌이 어디선가 가지고 와서 나에게 아주 희귀한 선물을 주는 양 내미셨다. 미제를 따지시던 할머니의 취향이 대물림된 것이리라. 짙은 카키색의 납작한 포장지는 그닥 구미가 당기는 비주얼은 아니었다. 키가 작은 부엌문 위엔 아주 조그마한 수납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역시 물 건너온 오트밀 통이 있었다. 아팠을 때 그 오트밀을 먹고 토한 기억이 있어 스물이 다 되도록 오트밀은 입에도 안 댔다.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되게 노인네같겠지만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런 집이 있었다. 80년대 생을 주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세대라고 부르는데, 그런 시대에 태어나서 참 다행이다.

3. 저번에 본 '아파트 글자'에서 73년생인 저자가 자신의 성장과정을 묘사하며 비슷한 주거환경에서 자랐을 또래들을 '아파트 키즈'라고 표현한 걸 봤다. 할리우드 키즈도 아파트 키즈도 나는 살짝 이질감이 들어서, 나와 비슷한 사회경제적 성장환경을 공유한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궁금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