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래서 그때 많이 도와줬어?"
"엉?"
"그때, 처음 만났을 때, 그 친구 작업 많이 도와줬냐고."
"아, 도와주고 말고 할 것도 없었어. 이미 다 끝나고 만났는데 뭘. 번역 필요하다는 것만 좀 해줬지."
"가난한 예술가를 대표해서 너한테 표창장이라도 줘야 하니?..."
"필요 없거등?????"
2.
"나한테 굳이 그 얘기는 왜 하는지. 괜히 맘쓰이게."
"원래 남자는 다 그래. 여자친구든 뭐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제일 좋은 것만 해주고 제일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지."
"ㅎㅎㅎ 그런가."
"나는 여자친구 만날 때, 여자친구 집이 잠실인데, 우리집까지 걸어서 3시간 반이거든.
늦게까지 같이 있다가 헤어지면서 여자친구가 택시 탈거냐고 묻길래 그럴거라고 하고 여자친구 집에 데려다주고 난 걸어갔어. 집까지. 여자친구가 도착하면 전화하라고 해서 중간에 한시간쯤 걷다가 어디 건물에 들어가. 괜히 밖에 차 소리 나면 걱정할테니까. 들어가서 나 집에 왔다, 이제 씻을거다, 옷 갈아입고 전화하겠다, 하고 또 한 한시간 걸어가. 그렇게 전화하면서 집에 걸어갔어."
"나 울어도 돼?"
3.
"우리 둘 다 가난했거든. 둘 다 학생인데 무슨 돈이 있어. 그래서 ktx 대신 고속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우등도 못탔어. 그 돈도 아끼려고. 그럼 일반을 타고 한 4시간 꼼짝않고 가는 거야. 갔다오면 병나고. 근데, 그래도 둘 다 기차 타란 말을 못했어. 둘 다 만나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데도 아무 말도 못했어. 그 얘길 어떻게 꺼내. 나도 걔도 기차표 한 장 못끊어주는데."
"크. 여기 소주 한 병이요."
4.
전에 영봉이 오빠가 도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해줬거든.
나는 그게 그렇게 고맙고 눈물나더라.
도현이는, 도현이는 아직 있어요.
아직 그때의 마음을, 그런 순간의 존재를 믿고 있어요.
5.
솔직히 대궐같이 큰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는 제 나이 또래의 부부를 보면 부러워요. 거실 창 밖으로 마천루가 보이고 세명은 족히 들어갈 것 같이 큰 욕조를 두고 사는 젊은 부부. 그런데 그렇지 않은 시작일 확률이 더 크거든요. 그냥 감이죠. 비관주의가 아니라. 그래도 아주 어렵지만 않으면 됐지, 오늘은 어땠어, 하면서 손을 조물락거리다 잠 들고 눈 뜨는 그런 삶이면 될 것 같아요.
인생이란 애도 양심이 있으면 저한테 그것도 어렵다곤 못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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