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28.

from Insta




1.
비밀이란 누군가에게 말 할 때에야 비로소 비밀이 됩니다. 어느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는 이야기는 그냥 그렇게 내 안에서 사장될 뿐입니다.



2.
사도를 본 날, 사실 극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꽤 서럽게 울었습니다. 사도보다 내 신세가 더 불쌍하다고 느끼는 내 인간다움에 조소가 나오기까지 했는데 벌써 까먹었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지나가면 좋겠습니다.



3.
(작년 겨울에 적었던 노트에 대해)
작년 내내 적었던 그 어떤 문장들보다 이 문장이 좋았다. 생생하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들도 마감을 30분 앞둔 동부이촌동의 작은 단팥집과 가게 안 노오-란 불빛 아래 마주 앉아 어색하게 단팥죽과 팥빙수를 노나먹는 두 사람을 이 단어들 틈바구니에서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또 귀신도 물러갈 만큼 붉은 팥을 잔뜩 올려놓고 얼음동굴을 만들면 좋겠다. 하지만 겨울엔 역시 쫀득한 옹심이를 품은 단팥죽.



3-1.
김연수는 작가 생활을 그만두거들랑 단팥죽과 팥빙수를 파는 가게를 열고 이름은 빈 숲 (Bean soup) 으로 짓겠다고 했다. 우연치곤- 말을 삼가겠다.



4.
올해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런 식으로 읽다 보니 나는 취향이라곤 전혀 없는 독자인가 싶어 한심해졌다. 그래도 독서와 작문의 관계에 대해 육감적으로 깨닫고 있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마치 아주 긴 실로 연결된 종이컵 전화기와 같다. 우선 실이 팽팽해지도록 아주 멀리까지 달려가야 하고, 그 다음에는 정말 전하고 싶은 단어들을 추려 크고 또렷하게 한 자 한 자 외치면 엄선된 내 기호는 그 가는 실을 따라 겨우 다른 끝에 가닿는다. 조금만 더 뛰어야겠다. 조금만 더 뛰어보고 싶다.



5.
다른이의 말을 훔치는 사람들이 있다. ... 기분 나빴다기 보단 우선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어 어처구니가 없었고 측은지심이 들었다. 시뮬라르크도 나발도 아니고 그냥 단어 동냥질.



6.
(한 책의 저자가 사람은 원래 착하다는 주장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는 딸아이의 질문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정답은 42입니다" 라고 댓글이 달렸다. 저자와 독자 사이의 라포형성을 위하여 주석이 친절하게 그 댓글의 맥락(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에서 슈퍼컴퓨터가 생명과 우주에 대한 진리를 42라고 답한 것)을 설명해주었다.)
위 본문에서 읽어야 할 부분은 성선설이 아니라 저 괄호 안에 적힌 주석이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와 "정답은 42입니다" 에 대한 상관관계를 설명한 것인데, 우리는 자신만의 언어유희나 개그를 부연설명 없이 이해하고 받아쳐주는 대상에게 끌린다. 나와 비슷한 사고체계 및 언어처리방식을 가진 사람과 만나게 될 기회는 윤달 생일처럼 아주 드물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내가 유머랍시고 윤동주 시인의 시구를 패러디하여 읊어대거나 나만 안다고 생각했던 영화 대사를 옮겨 적으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맞장구 쳐주는 사람. 나와 같은 세계, 즉 universe에 살며 내 세계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 난파선에서 이 무인도까지 표류된 생존자는 나 하나뿐인 줄 알았는데 백사장을 하릴없이 걷다보니 Jack이 피아노 뚜껑 타고 내려와 음음~, 모래사장 위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한 기분.



6-1.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무인도에서 서로를 발견한 난민들이 모두 연인으로 발전한다거나 백년해로하진 않는다.
관계란 본디 우주 삼라만상이 응축된 형태로, 우주의 원리만큼이나 복잡다단한 요인들에 의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취향, 그 얄궂은 환상.



7.
예전만한 통찰력이 없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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