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6.




내가 영재였으면, 영재도 아마 얼른 혼자 합법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만 기다렸을거야. 내가 그랬거든. 다 연 끊고 정말 나 혼자, 나만 책임져도 되는, 내가 나만이라도 책임질 수 있을 나이가 됐으면 좋겠다. 사는 게 정말 너무 버거워서, 사는 게 죽는 것보다 힘든 시간이 있었는데 그걸 까먹고 살았어. 그게 까먹어지더라. 
내가 많이 행복해졌나봐요, 하니 태용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만난지 5년 됐잖아요? 근데 이 바닥도 진짜 버티는 싸움인거같더라.
지금까지 버티다 보니 뭐라도 하긴 하네.
그래도 내가 맨날 내 얘기를 천 명한테 팔고 다니는데 내가 지금 기분이 좋겠니, 이 기지배야.
GV때, "그랬던 영재가 이렇게 커서 영화감독이 되었습니다~" 하니까 관객석이 막 엉엉, 눈물바다가 되가지고, 나는 농담이었는데, 어머님을 울고 불고 그러신다니까. 이제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어요~ 그런 말이었는데, 하길래

그게 우리한테만 농담인거야. 우리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데, 그게 이제 아무렇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사실 별로 없는 거 같아, 하면서 그래도 우습다고 큭큭거렸다.


"누구든 니 나이 때 그런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통속적인 드라마 대사 읊는 담임에게 영재가 "선생님, 그거 상처 아니에요." 할 때, 
"왜 이렇게 다들 책임감이 없어? 민재가 여기 오면, 나는? 나는 어디로 돌아가?" 라고 할 때,
보호소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바짓단을 붙잡고 눈물로 삶을 구걸할 때,
사람들이 정말 이렇게 사는 아이들이 있다면 믿어줄까? 싶었는데. 
세상에 슬픈 아이들이 너무 많구나. 

우리는 사실 지금 무지 행복한거야, 그렇지? 많이 왔다, 하면서 맥주를 꼴깍꼴깍.


그렇게 많은 영화를 보고 감독들을 만나 서비스 미소 팔아놓고 이제와서 이런 말을 하기가 너무 부끄럽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영화가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

내 대신 나를 기억해줘서 고마워.



2.
내가 사실은,
마음 속으로는 여섯 명이나 죽인 살인자라고 하면,
그래도 내 얘기를 더 들어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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