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8.




밀린 글을 쏟아내는 밤.
오늘은 8월 8일.
나는 88년생.



1.
늘 떨어져 걸었고 늘 뒤에서 걸었다.
우리는 남인 척 해야 해서 남보다도 못한 사이였다.
그래도 행복하다는 개소리를 해댔다.

까먹으면 안된다. 그때 얼마나 개같았는지.
서로 떡밥 던지듯 던져놓은 먹이를 물고 나면 서로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 마냥 호들갑을 떨었다.
바보같은 일인 줄 알면서도 아무도 그 고리를 깨지 못했다.
개같았던 그 시간을 잊으면 안 돼.



2.
더 테러 라이브는 엔딩이 맘에 들었다.
성욱 오빠는 "딱 우리나라식 엔딩이네. 미국 영화였으면 하정우가 다 구했지"하는데,
그건 그래. 하정우가 딱 영웅처럼 들춰 업고 나오면서 쨘 포옹 씨게 하면서, 그러고 끝났겠지?

그래도 서연이랑 혜민이 이름이 엔딩에 좌르르 올라가는 거 보면서
뿌듯했다. 

영화는, 그렇다.



3.
출근하는데 뜬금없이 부산 생각이 났다.
날이 좋아 그랬나.
가만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는데 영화를 등지겠다 맘먹던 때가 생각났다.
영화 전공생이 아니라 늘 남 모를 위화감도 느꼈고 껍데기만 뒤집어 쓰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아주 자주. 
그런데 자꾸 좋아지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는 나연씨가 여기 계속 있어서 언제고 꼭 같이 작품 다시 하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어떻게든 남고 싶어졌다.
늘 잊지 않고 다시 찾아주실 때마다 존재의 가치를 느낀다고 하면 좀 우습나.

감독님들이 가끔 연락 해 "나연씨는 요새 뭐해요?" 하시면
이상하게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말꼬리가 줄어든다.

부산에서 버틸 걸. 무슨 자리라도 하나 꿰찰걸.
이렇게 뒤돌아보고 그립다 그럴거면 그냥 그 길 그대로 갈 걸.

갑자기 서럽고 갑자기 부산 식구들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그렁그렁 핑그르르, 그랬다.

남의 속도 모르면서.



4.
모든 창작의 과정이나 그 과정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지만
녹록지 않다.
빚을 져서 만들고 다시 그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지고.
마음도 주머니도 자꾸 자꾸 가난해진다.

그래서 영화가 그냥 영화로만 보이지 않는다.

더 테러 라이브의 김병우 감독은 필모그라피를 보니 5년에 한번씩 영화를 만들었나보다.
그 5년동안 뭘 하며 지내셨을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5.
남들보다 세심한 눈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눈치도 많이 보고.
그래서 남들 몰라주는 것도 보이고, 남들이 모를거라 생각한 것도 본다.
상처받고 맘아프고 배신감 들어도 나는 정 떼는 건 죽어도 못해서
그냥 베실베실 웃는다.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 이해를 해주려고 죽을만큼 노력한다.
말 하기 전에 미리 알아버려서 상대가 불편해 할 때도 있고 좋아할 때도 있다.
관찰이라기보단 그냥 보인다.
보이는 걸 어떻게 해. 
너도 내가 나로 사는 게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지, 상상도 못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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