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9.
1.
오늘은 친구 결혼식이 있었다.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가장 처음 기혼의 강으로 건너가는 친구.
한 시 예식인데 다섯시에 겨우 잠든 나는 간신히 시간에 맞춰 일어났고
뭘 입을지 몰라 옷을 세 번이나 갈아입었다.
가장 나답지 않은 원피스를 주워입었다.
어제 농구하는 동안 본 만화책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5, 6권을 반납하고 7, 8권을 빌렸다.
만화책을 보다가 사당역을 지나칠 뻔 했다.
이런 오타쿠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2.
이미 주례사가 중간을 지나있었다.
주례선생님께선 색다른 주례를 하고 싶으셨다면서 신랑과 신부 이름으로 육행시를 지어오셨다. 아아-.
말도 제대로 못하던 네 살배기 재현이가 어느 새 중학생이 되어 축가를 불렀다.
거기서부터 눈물이 터졌다.
누가 보면 딱 오해하기 좋은 모습.
혼자 온듯한 과년한 처자가 식장 뒤에 서 닭똥같은 눈물을 조용히 줄줄.
늘 언니 같던 하현이.
우리는 열 셋에 만났다. 우리는 만날 때 마다 열 셋 같았다.
나는 너의, 너는 나의,
몇번의 연애를 지켜봤던가.
열 셋 같은 니가 스물 일곱 신부 화장을 하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열 셋의 나는 겁이 나기도 했고 작아지기도 했다.
수민이가 "하현이가 오늘 너랑 나는 꼭 울거라던데 역시 너랑 나만 울었어" 하며 웃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또 울었다.
오후에 만나기로 한 혜원이에게 전화로 울었다는 말을 하며 또 울었다.
미안하고 고맙고 서운하고 아쉽고 생경해서.
3.
그렇게 울다 난생 처음 야구장 구경을 갔다.
응원하는 소리에 위축이 됐다. 그래도 응원단장 아저씨는 멋있었다.
무엇이 저 사람을 저토록 열정적으로 만드는 걸까, 새삼 감동받았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자는 멋있다.
그 순간에도 백, 가지 생각을 했다.
4.
드디어 갔다, 테일러샵.
굳이 오늘 꼭 가리라,고 마음먹은 건 아니고.
치수 재고, 옷감 고르고, 재단과정 듣고, 진귀한 구경도 하고,
서양의복이란 진짜 무궁무진하구나 다시 한 번 감탄.
옷의 디테일이란 그저 장식으로 달려있는 것이 아니에요, 하셨다.
삶의 디테일에도 그저 우연이란 없지.
디테일의 남자라면서요...
5.
그러고보니 어머니도 안 우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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