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1.

이사




사슴의 집에 온 지 1년이 갓 넘었는데 같은 평수 전세 보증금이 6000-7000만원 가량 올랐다.

월세도 적당하고, 관리비도 엄청 저렴하게 나와서 이 집엔 아무 불만이 없었다. 작은 방이 고시원 같아서 옷 갈아 입을 때 말곤 안 들어간다는 점 빼고.

겸사겸사 결국 전세로 옮기기로 했다. 

계약서에 싸인하는 날 보증금의 10%를 계약금으로 임대인에게 송금해야 하는데 1일 이체한도를 한참 넘는 금액이었다는 걸 송금 버튼을 누르는 순간에서야 알았다. 사는 동안 한 번도 천만원이 넘는 크기의 돈을 어디로 보내거나 받아본 일이 없었으니까.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니 집주인 내외분들이 괜찮다고, 내일 마저 넣고 전세 대출금 이체하기 전에는 은행 내방해서 억 단위로 늘려놓으라고 조언해주셨다.

그리고 지난 주말, 카카오뱅크에서 (개 tmi네) 전월세보증금대출 상품을 신청하고, 화요일즈음 승인 연락을 받았다. 2억에 가까운 돈이 내 이름으로 (나를 스쳐)왔다, 간다. 

에어콘을 설치하던 날엔 조금 벅차고 뿌듯한 어른의 기분이이었다면 이번주는 좀 서러운 어른이다.
은행 곳간에 잠들어 있던 돈이 내 이름을 달고 누군가의 손으로 넘어간다. 나는 만져본 적도 없는 돈인데. 고래 잔치에 낀 새우라, 등이 터지지 않기 위해 꼬박꼬박 몇 십만원의 이자를 은행에 낸다. 돌려받을 수 없는 돈. 신용은 내가 빌려주는데 왜 그 대가도 내가 치러야 하는 거지. 

그래도 갖고 싶었던 소파를 사서, 놓고 살 약 6평의 공간이 더 생겼으니 좋아하고 뿌듯해 해야겠지?
근데 왤케 다 버겁다는 느낌인지 모르겠네.


여튼 첫 집은 이렇게 이별. 근데 벌써 그립다, 이 집.


(서울시내에 이만한 조건의 투룸 아파트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집 구하시는 분들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