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단 한번 직접 만나 본 적도 없는 대상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1.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될 수록 답은 단순하다.
고3, 멀쩡히, 잘 다니던 학교를 관두고 미국행을 결심한 이유는 뉴욕때문이었다.
그저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분홍 투투를 입고 당당히 워킹하던 그 뉴욕 거리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섹스고 연애고 잘 알리 없던 여고생에게는 드라마 속 뉴욕이 바로 섹스고 사랑이고 환상이었다.
뉴욕에서 무얼 하고 싶다는 것보다 뉴욕이라면 무엇이든 하게 될 것이다,라는 순진한 동경.
(물리적 간격뿐 아니라) 무어파크와 맨하탄의 거리는 제주도와 서울의 거리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미국에 가서야 알았지만 어쨋거나 나는 늘 뉴욕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2.
우습게도 미국에서 사는 동안 나는 뉴욕 땅 한번 밟지 못했다.
가장 멀리 나간 곳이 라스베가스니 말 다했지.
헌데 엄마는 두 번씩이나 다녀왔다.
내가 미국에 넘어가기 두 해 전이던가? 당시 매리랜드에 살던 삼촌은 엄마를 미국으로 초청하려고 했었다. 엄마는 서류처리 겸 관광겸 삼촌의 차를 타고 처음으로 뉴욕에 갔다. 하지만 일방통행 도로에 넘치는 차들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엄마와 숙모만 차에서 내려 서울관? 서울옥? 뭐 그런데서 육개장만 먹고 매리랜드로 돌아왔다고 했다.
나는 그것조차도 부러웠다.
3.
senior year,
다시 그림을 시작하겠다 마음 먹고 선생님 도움으로 포트폴리오 준비를 막 시작했을 때,
나는 마귀할멈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동부 대학들만 알아봤다.
유명한 예술대학들을 알아보고 물어보고 메일을 보내 상황을 설명하고 카달로그를 신청한 날에는 설레 잠도 오지 않았었다.
그리고 Rhode Island에서 두꺼운 책자 하나가 도착했다.
'내가 뭐라고 나같은 애한테 이렇게 또 직접 책자까지 보내주지'
감격하며 매일 밤 머리맡에 두고 지원서를 쓰다 말다, 사진 하나하나 손끝으로 훑다 잠이 들었었다.
여기선 뉴욕도 가깝겠지?
여기선 아메리칸 드림도 이루어지겠지?
얼바인의 가출소녀는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카달로그를 안고, 혹은 산산이 부서진 꿈을 안고,
홀로 남겨진 어두운 방, 카펫 위에 꿇어앉아 참 많이도 울었다.
다 까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또 그렁그렁 하네. 허 참. 허참 참참참.
4.
그러니까, 단 한번 만나지 못하고
남에게 이야기만 전해듣고, 사진으로 영상으로만 알고 지내던 대상과 사랑에 빠질 수 있냐는 말이다.
5.
내게 당신은 뉴욕이다.
for the time being.
글 재밌게 잘쓰시네요-
답글삭제헤에- 부끄러라.
삭제그냥 수다쟁이에요 :D ;;
슬퍼유 ㅜㅜ 잘 읽고가욧 10월에 또 오면 봐요 안뇽~~
답글삭제-정인-
내가 되게 정성껏 폰트와 사이즈를 골라 넣었는데 학교컴에선 굴림체로 보여서 화나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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